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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 3 : 장례 사업부터 카페까지, ‘메이드 인 나이키’의 혁신가들




롱블랙 프렌즈 C 

롱블랙 클래스 <나이키 딥다이브 시리즈>, 마지막 시간이에요! 첫 번째 시간엔 나이키가 팬을 만드는 전략인 ‘스파이크’를, 두 번째 시간엔 나이키의 혁신 비결인 ‘디자인 마인드’에 대해 공부했죠?

마지막 시간에는 ‘메이드인 나이키’의 혁신가들을 알아볼게요. “나이키 출신들이 만든 기업을 보면, 나이키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는 김병규 교수와, 이번 클래스도 함께 할게요!


김병규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저에게 나이키는 브랜드 후학을 양성하는 스승처럼도 보입니다. 나이키는 제2의 나이키를 만드는 데 능해요. 나이키 출신들이 나이키의 정신으로 혁신적인 회사를 속속 만들고 있습니다.

롱블랙 클래스 <나이키 딥다이브 시리즈>의 마지막 시간. 과연 나이키라는 스승에게는 어떤 배울만한 점이 있는지, 그리고 그 DNA를 물려받은 제자들은 어떻게 스승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는지 함께 보시죠.


Chapter 1.
나이키의 다섯 가지 DNA

우선 지난 노트들에서 살펴본 나이키의 핵심 DNA를 다섯 가지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누가 뭐라 해도 ‘혁신과 도전’이에요. 나이키는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길을 갑니다. 장애인을 위한 핸즈프리 신발을 만들거나, 임산부를 위한 브랜드를 만들고, 고객 1:1 맞춤 운동화를 만들죠.

다음 DNA는 ‘액트Act’로 정의해 봤습니다. 나이키의 혁신은 실용적이에요. 그들의 기술 혁신은 운동선수의 기량 향상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죠.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펼치는 캠페인도 나름 효과적이에요. 나이키가 인종차별을 반대하며 만든 팔찌는 650만 달러(약 86억원) 어치나 팔려나갔어요. 모두 인종차별 반대 단체들에 기부됐습니다.

세 번째 DNA는 ‘상업성과 심미성의 밸런스’. 보통 브랜드는 둘 중 하나예요. 상업성을 위해 심미성을 포기하거나, 그 반대거나. 나이키는 적당히 상업적이면서 심미성 높은 제품을 만들어요. 둘 다 포기하지 않는 것이죠.

그다음은 ‘컴패니언십Companionship’이에요. 보통 기업은 고객을 ‘내 물건을 돈 주고 사는 사람’으로 정의해요. 나이키에게 고객은 ‘멤버’이자 ‘크루Crew’예요. 함께 나아가야 할 동지로 여깁니다. 오죽하면 세일 기간의 이름도 ‘멤버 데이즈’죠. 

“우리는 매주, 매달, 매 시즌 우리의 멤버들을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업을 계획하는 방법은 그저 멤버들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함께 하고 싶은 멤버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며, 또 모든 멤버들이 라이프 사이클life cycle에서 어디에 있는지 생각하는 것입니다.”
_다니엘 헤프Daniel Heaf 나이키 다이렉트 부사장, 2023년 모던 리테일 인터뷰에서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DNA는 ‘엑설런스Excellence’라 이름을 붙여봤습니다. 많은 기업이 매스 마켓을 겨냥한 저가 제품을 내놓아요. 마켓 세그멘테이션(market segmentation)의 기본이죠. 그런데 나이키는 그렇게 하지 않아요.

재미있는 스토리가 있어요. 마크 파커Mark Parker가 2006년 나이키의 CEO가 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뭘까요? 애플의 스티브 잡스에게 전화한 겁니다. 마크는 잡스에게 “CEO가 됐는데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어요. 잡스는 “나이키에는 좋은 신발이 많지만 쓰레기도 너무 많다. 다 버리고 좋은 것만 남기라”고 조언했어요.

애플이 그래요. SKU(상품 가짓수)가 매우 적습니다. 애플을 떠났던 스티브 잡스가 1997년 8월 경영에 복귀했을 때, SKU를 단 4개로 줄여버렸어요. 전문가용과 일반 소비자용 데스크탑 2개, 그리고 노트북 2개로. 대신 4개의 제품을 정말 잘 만들기로 합니다.

잡스의 조언을 따라 나이키도 SKU를 줄입니다. 그리고 전 제품의 퀄리티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렸어요. 대중적인 제품으로 돈을 많이 벌겠다는 마인드였다면 할 수 없었을 겁니다.

“잘 만든 제품은 하나의 아이디어가 되고, 아이디어는 곧 감정이 됩니다. 나이키는 그런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요. 제가 디자이너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것은 ‘소름이 돋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_존 호크 나이키 CDO, 2021년 타임센서티브 팟캐스트에서

나이키의 DNA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건, 혁신과 도전이다. 사진은 나이키 스포츠 연구소 설립 당시의 광고. ⓒ나이키

Chapter 2.
나이키의 여섯 번째 감각 : 악수와 와플의 정신

여기에 더해, 나이키의 DNA를 한 가지 더 소개하려 합니다. ‘기업가 정신’이에요.

나이키는 시작부터가 무모함 그 자체였어요. 육상 선수였던 필 나이트Phil Knight와 그의 코치인 빌 바우어만Bill J. Bowerman의 악수로 시작됐죠. 악수 외에는 계약서 한 장 없었어요. 또 나이키의 상징적인 와플 슈즈. 정말로 와플 메이커로 제품을 만들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에요. 이렇듯 나이키의 창업기는 ‘Just Do It(그냥 해봐)’ 그 자체입니다.

오죽하면 필 나이트는 나이키를 떠나고 나서도 2021년 83세의 나이에 벤처 기업을 만들었어요. 디비전 스트리트Division Street. 대학 운동선수들이 자신의 이름, 이미지, 초상권으로 수익을 창출하도록 돕는 회사예요.

“1962년 그날 새벽에 나는 나에게 이렇게 선언했다. ‘세상 사람들이 미쳤다고 말하더라도 신경 쓰지 말자. 멈추지 않고 계속 가는 거다. 그곳에 도달할 때까지는 멈추는 것을 생각하지도 말자. 그리고 그곳이 어디인지에 관해서도 깊이 생각하지 말자.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멈추지 말자.’”
_필 나이트, 『슈독』 중에서

나이키의 이 기업가 정신을 완성시키는 것이, 바로 ‘언더독 포지셔닝’입니다. 기업이 탄생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어요. 블루오션을 선점해 크게 성공하거나, 시장의 지배자를 무너뜨리거나. 나이키는 후자였어요.

지금이야 나이키가 엄청난 브랜드지만 과거에는 아니었거든요. 오니츠카타이거Onitsukatiger, 리복Reebok, 아디다스Adidas 등 거대 기업과 경쟁했고, 승리를 쟁취해 왔죠.

“우리(나이키)는 비상식적인 기업을 참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일을 신나게 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하는 일에는 의미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골리앗을 잡으려고 한다. 우리는 브랜드뿐만 아니라 문화를 창조하려고 한다. 우리는 복종, 진부함, 단조로움을 거부한다. 우리는 제품뿐만 아니라 아이디어, 즉 정신을 팔려고 한다.”
_필 나이트, 『슈독』 중에서

재미있는 건, 거대기업이 된 후에도 나이키가 ‘언더독’ 포지션을 유지했다는 겁니다. 어떻게 가능하냐고요? 자기 자신에게 계속 도전하는 방식으로요. 끊임없이 자기 혁신을 하고, 위험한 도전을 하는 거예요.

무엇보다 그 혁신을 성공시켜 낸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도전의 결과가 실패뿐이라면 백날 도전해 봤자 의미가 없겠죠. 나이키는 성과를 냈어요. 그렇게 “계속 도전해도 비즈니스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나이키 내부에 깊이 자리 잡습니다.

“나이키는 기업가 정신이 투철한 회사예요. (창업자) 필 나이트부터가 그렇거든요. 그 정신이 회사 전체에 흐르고 있습니다. 많은 직원이 악수와 와플 메이커의 교훈을 실천하고 있어요. 저 또한 마찬가지이고요.”
_케이트 델하겐 오리건 스포츠 엔젤스 대표, 2022년 비즈니스 인사이더 인터뷰에서

그리고 이 믿음을 가지고 나이키의 문밖을 걸어 나간 직원들이, 제2의 나이키를 꿈꾸며 출사표를 던지고 있습니다. 나이키의 DNA를 어떻게 자신들의 새 사업에 녹여내고 있는지, 어떤 도전과 혁신을 이뤄내고 있는지, 지금부터 알아보겠습니다.

빌 바우어만은 와플 메이커를 이용해 무턱대고 밑창을 만들기도 했다. 나이키 박물관에 전시도 돼있다. ⓒ나이키

Chapter 3.
솔레이스Solace : 장례를 디지털로 혁신하다

처음 소개할 기업은, 솔레이스예요. ‘위안’이라는 뜻입니다. 장례 산업에 D2C*와 디지털이란 개념을 불러온 스타트업이에요. 2019년 4월 론칭해 총 400만달러(약 53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했고, 2022년 투자사 파운데이션 파트너스에 인수됐습니다.
*Direct to Consumer. 소비자와의 직접 거래. 

솔레이스가 혁신적인 점은 장례 서비스를 모바일에 담아냈다는 것. 앱에서 몇 분 만에 시신의 화장을 예약할 수 있어요. 장례식장을 방문하거나, 장례 업체 직원들을 만나지 않아도 돼요. 사망에 대비해 미리 화장 계획을 세울 수도 있습니다.

가격도 비교적 저렴해요. 미국 전역의 화장 비용 평균은 2500달러(약 330만원)예요. 솔레이스를 이용하면 885달러(약 117만원)에 할 수 있습니다. 온라인 납골당 서비스도 이용 가능하죠. 디지털이 편한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주목받고 있어요.

솔레이스의 창업자는 키스 크로포드Keith Crawford와 데이비드 오두산야David Odusanya. 둘 다 나이키 출신이에요. 크로포드는 나이키의 디자인 부사장 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나이키에서 18년간 일했어요. 오두산야는 글로벌 브랜드 디자인 부사장으로 17년을 근무했죠.

두 사람은 2017년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 나이키를 떠났습니다. 처음에는 디자인 에이전시를 차렸어요. 그런데 그 무렵 두 사람 모두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맞닥뜨립니다.

“장례 과정에서 큰 충격을 받았어요. 우울하고 압도적으로 불쾌했으며 매우 시대에 뒤떨어진 경험이었어요. 장례 업계에도 혁신이, 특히 유족이 (화장 후) 고인을 더 쉽게 돌볼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그렇게 솔레이스를 만들게 됐습니다.”
_키스 크로포드, 2022년 애드에이지 인터뷰에서

‘브랜드 불모지’ 장례 비즈니스를 개척하다

나이키 출신답게 이들이 주목한 또다른 포인트가 있어요. 장례 업계에 브랜드라고 할 만한 서비스가 없다는 것. 소비자를 향해 메시지를 던지는 곳이 없던 거예요. “고객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두 사람은 나이키에서 얻은 배움을 써먹기로 해요.

먼저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이야기를 담은 단편 애니메이션을 제작했어요. 따뜻한 분홍색을 배경으로 덩그러니 놓인 의자 하나. 그리고 담담히 이어지는 내레이션. 가슴 아프지만 그래서 더욱 위로가 됩니다. 솔레이스에 따르면 고객들은 30초 분량의 애니메이션 광고를 평균 29초 시청해요.

D2C 방식의 화장, 마케팅과 브랜딩을 통해 이들이 이룩하고자 하는 건, 죽음에 대한 금기를 깨는 겁니다. 그리고 죽음에 관한 더 많은 대화가 오가도록 하는 것이죠. 

“브랜드 보이스를 친근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개인적인 목소리를 내는 거예요. 솔레이스 역시 개인적인 이야기를 알리는 데 집중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여읜 것에 대해 이야기해도 괜찮다는 걸 알리고 싶었어요. 

우리 사회에서 죽음과 임종에 관한 이야기는 금기시 되곤 합니다. 그 대화가 음지에 있다는 건, 업계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죠. 솔레이스가 그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_데비 카터 솔레이스 CMO, 2023년 애드에이지 인터뷰에서

솔레이스의 유골함. 아이폰 상자 같은 느낌을 의도했다고 한다. 솔레이스는 장례 업계에 브랜드 개념을 불어넣었다. ⓒ솔레이스

Chapter 4.
오모르포Omorpho : 가벼운 중량조끼라는, 새 장르를 열다

중량조끼라고 들어보셨나요? 운동 효과를 높일 목적으로 입는, 무게감이 있는 조끼예요. 몸에 적절한 무게감을 주어 동작의 난도를 높여줘요. 연구 결과에 따르면, 3~5%의 무게를 추가하면 운동 효과가 최대 8%까지 향상된다고 해요.

그런데 중량조끼는 보통 디자인이 투박해요. 게다가 정말로 무겁습니다. 여기에 불만을 가진 사람이 있어요. 나이키에서 21년간 일한, 글로벌 디지털 혁신 담당 부사장 출신의 스테판 올랜더Stefan Olander입니다.

“최고의 아이디어는 무언가를 직접 경험한 끝에, 부족한 부분이나 더 잘할 수 있는 부분을 발견할 때 나온다고 생각해요. 오모르포는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중량조끼를 입었을 때 마치 변신한 것처럼 힘과 자신감을 느꼈지만, 동시에 너무 투박하고 불편했어요. 왜 아무도 편안하고 스타일리시한 웨이트 조끼를 디자인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죠. 결국 제가 만들기로 했습니다.”
_스테판 올랜더, 2022년 오모르포 블로그에서

스테판은 나이키 출신의 동료들을 모았어요. 3년의 연구 끝에 마이크로로드MicroLoad라는 기술을 개발해 냈어요. 작은 추를 온몸에 고르게 분산시켜, 중력의 영향을 덜 받도록 설계하는 기술이죠. ‘그래비티 스포츠웨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냈죠.

“브랜드 이름인 오모르포는 그리스어로 ‘아름다운’이란 뜻입니다. 우리의 비전은 모든 운동선수와 피트니스 애호가를 위한, 아름다운 솔루션을 디자인하는 거예요. 기능이 뛰어나도 아름답지 않으면, 선택받을 수 없습니다.”
_스테판 올랜더, 2023년 핏 인사이더 인터뷰에서

오모르포는 제품군을 확장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전문 선수를 위한 중량조끼인 지-베스트G-Vest를 만들었죠. 그다음에는 스포츠 애호가들을 위한 무게가 조금 덜 나가는 지-베스트 스포츠를 개발했어요. 그리고 마침내, 일상적으로 입을 수 있는 마이크로로드 기술이 탑재된 의류까지 내놓았습니다. 지-웨어G-wear예요.

나이키의 행보와 똑같죠. 전문 선수를 위한 런닝화로 시작했다가, 모두를 위한 운동화로 그 폭을 넓혀갔잖아요. 오모르포 역시 선수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조끼를 입고 어디서나 트레이닝을 할 수 있도록, 피트니스 앱을 출시하기도 했어요. 이 역시 나이키를 닮았습니다.

중량조끼계의 나이키를 표방하는 이 브랜드. 총 1600만달러(약 214억원) 어치의 투자를 받아냈습니다.

“우리가 나이키에서 배운 것은 혁신의 정신입니다. 다만 ‘나이키’라는 안전망 안에서 혁신을 시도했었죠. 한 번쯤은 그 어떤 안전망 없이 도전해 보고 싶었습니다. 저 혼자서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오모르포를 만났어요.

글로벌 스포츠웨어 시장에는 오랫동안 의미 있는 기능적인 혁신이 나타나지 못했어요. 오모르포는 25년 만에 나타난 가장 혁신적인 제품이라고 생각합니다.”
_스테판 올랜더, 2022년 비즈니스 인사이더 인터뷰에서

중량조끼의 불편함을 개선하고, 심미성을 살린 오모르포. 그래비티 스포츠웨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 ⓒ오모르포

Chapter 5.
데드스탁Deadstock 커피 : 나이키 청소부의 혁신

미국 포틀랜드에서 사람을 사귀고 싶다면, 꼭 가야 하는 카페가 있습니다. 포틀랜드의 사랑방으로 불리는 ‘데드스탁 커피’예요. 물론 커피도 개성 넘치고 맛있습니다. “Coffee Should be Dope(커피는 끝내줘야 한다)”가 이 카페의 모토이거든요.

이 카페의 주인은 이안 윌리엄스Ian Williams. 나이키의 신발 디자이너였어요. 저는 이 친구의 여정이야말로 기업가 정신,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원래 이안은 2006년 나이키 매장에서 일했어요. 그러다 운동화에 관심이 생겼고, 운동화를 인생의 일부로 삼고 싶다고 생각했죠.

어떻게든 나이키 본사에서 일하고 싶었던 이안은 청소부에 지원했어요. 그렇게 3년 동안 본사 바닥을 쓸고 닦았죠.

“내부에서 ‘발견’되고 싶다면 매일 눈에 띄는 곳에서 일하세요. 저는 나이키의 높은 분들의 쓰레기를 매일 치우며, 그들에게 말을 걸어보기도 했습니다. 심지어는 사무실에 슬쩍 제 책상을 설치해서 사무직 직원처럼 위장도 해봤어요. 그만큼 간절했던 거죠.”
_이안 윌리엄스, 2020년 노사 파밀리아 인터뷰에서

결국 이안은 임원의 눈에 띄게 띄었어요. 그들은 나이키에서 ‘청소부’로 일하며 얻은 영감을 신발 디자인에 녹여내 보라고 했죠. 미션을 받은 이안은 거침없었어요. 청소하며 자주 마주하는, 미끄럼 방지 표지판을 모티프로 운동화를 만들었습니다. 정식 디자이너로 채용된 순간이었죠.

이안 윌리엄스가 미끄럼 방지 표지판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한 스니커즈. ⓒ스터피딜런

무시를 원동력 삼다

꿈에 그리던 나이키였지만 일을 할수록 이안은 불안했어요. 그에게 나이키는 너무 체계적인 회사였습니다. 나이키를 나와 카페를 차리기로 해요. 운동화를 좋아하는 친구들과 어울릴 만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데드스탁 커피는 이안이 바라는 대로 커뮤니티가 되어갔어요. 전시나 팝업도 열고, 러닝 클럽과 필드 데이* 등도 개최했죠. 포틀랜드 주민들의 안식처 역할을 하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이 스포츠를 중심으로 모여 노는 것.

다만 한 가지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어요. 이안이 커피를 전혀 몰랐다는 것이죠. 그는 평소 커피를 즐기지 않았어요. 커피를 ‘뜨거운 진흙’이라고 생각했대요.

커피 업계에서는 그런 이안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오기가 생긴 이안은 커피를 제대로 공부하기 시작해요. 유명 커피 업체로부터 원두 로스팅을 배웠어요.

“제가 커피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자, 커피도 저를 이해하기 시작했어요. 저는 저만의 커피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모든 사람을 위한 맞춤형 커피를 만들 수 있게 됐죠. 커피는 느낌이에요. ‘섬에 온 것 같은 느낌’, ‘크림을 넣고 싶지만, 넣지 않는 커피it's the coffee that you wanna add cream to but then you don't’ 등의 메모를 곁들이며, 고객과 대화를 나눕니다.”
_이안 윌리엄스, 2020년 노사 파밀리아 인터뷰에서

이안은 유수의 바리스타 대회에서 상도 받고, 바리스타 전문지의 표지도 장식했어요. 포틀랜드에 ‘콩코스Concourse 커피’라는 두 번째 카페도 열었죠. 2022년부터는 나이키의 팟캐스트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커피 업계의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커피 산업을 사랑하고 존경하니까요. 나이키에서 배운 것이죠. 최고의 커피에는 관심이 없지만, 가장 멋있는 커피를 만드는 데는 관심이 많습니다.”
_이안 윌리엄스, 2020년 바리스타 매거진 인터뷰에서

데드스탁 커피는 포틀랜드 지역의 스니커즈 커뮤니티로 불린다. ⓒ데드스탁커피

Chapter 6.
DNA가 모여, 나이키 제국이 되다

그 밖에도 재활용 플라스틱병으로 스크럽*을 만드는 ‘라고Lago’, 스포츠 업계의 비백인들을 위한 팟캐스트 ‘클라이마 스토리Claima Stories’, 케냐 장인들이 만든 팔찌 브랜드 아티켄Artiken, 인도 어린이를 위한 저가 신발 브랜드 플라에토Plaeto, 바나나 줄기로 신발과 의류를 만드는 이에스지 브랜드ESG brands… 나이키 출신의 혁신 기업들은 많습니다.
*의사, 간호사 등이 수술실에서 입는 옷.

재밌는 건, 이 나이키의 후예들은 서로 잘 뭉쳐요. 나이키 출신이 만든 투자사가 나이키 출신이 만든 회사에 투자해요. 나이키 출신끼리 상부상조하며 컬래버도 하죠. 학연, 지연, 그리고 이른바 ‘나이키연’이 생겨난 겁니다.

이를 보며 저는 나이키의 ‘언더독 포지셔닝’이 대단하고 다시금 느꼈어요. 언더독이라는 건 외부에 적을 두고, 이를 물리치기 위해 똘똘 뭉치는 거거든요. 그 과정에서 유대감이 생겨나요. 이 유대감을 토대로 나이키를 나가서도, 함께 할 수 있어요. 그리고 고객들도 여기에 동참하게 만들죠.

게다가 이들에게는 포틀랜드라는 거점이 있어요. 많은 나이키의 후예들이 나이키 본사가 있는 포틀랜드에 회사를 차렸어요. 풍요로운 도시 포틀랜드에서, 혁신과 도전을 무기로 한 ‘나이키 제국’이 만들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언더독 정신으로 유대감을 형성한 나이키의 후예들. 각자 창업 후에도 똘똘 뭉치며 나이키 제국을 만들어 간다. 사진은 아티켄의 팔찌. ⓒ아티켄


롱블랙 프렌즈 C

공부하면 할수록 나이키, 참 멋진 기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많은 비즈니스가 성공하길 바라잖아요. 그런데 성공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느냐, 혹은 혁신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면서 성공을 이루느냐는 많이 다른 것 같아요. 나이키는 후자를 몸소 보여주고 있는 기업이고요. 그래서 나이키 출신들도 그 길을 걷는 게 아닐까요?

오늘의 노트는 나이키 출신의 벤처 투자가인, 멜라니 스트롱의 말로 마무리할게요.

“나이키에서 오래 일해 온 사람들은, 기업의 테두리 밖에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사회에 무언가 기여할 수 있을 거라 믿으며 밖으로 나아가요. 그것이 저희가 추구하는 우수성입니다.”
_멜라니 스트롱 넥스트 벤처스 대표, 2023년 포틀랜드 이노 인터뷰에서

롱블랙 피플, 조금 쉬었다가 4월 클래스로 다시 만나요. 4월에는 어떤 주제를 딥다이브 할지, 많이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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