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국 :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롱블랙 프렌즈 C 

행복에 관한 한 문장이 요즘 SNS에 자주 보여요.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이 말에는 원출처가 있어요. 행복학자로 유명한 서은국 연세대 교수의 유학 시절, 그의 지도 교수가 쓴 논문의 한 구절이에요. 서 교수가 10년 전 출간한 책 『행복의 기원』에서 소개했어요.

서은국 교수는 ‘세계 100대 행복학자’로 꼽히는 행복학의 대가예요. 그가 쓴 논문 인용 횟수만 9만 회. UN과 OECD가 매해 ‘행복 지수’를 측정하도록 하는 제안서가 채택되는 현장에도 그가 있었죠.

얼마 전 『행복의 기원』이 10주년 기념 개정판으로 나왔다는 소식이 들려왔어요. 롱블랙 <사유로, 떠나다> 시리즈의 마지막 주인공으로 그를 만나기로 했죠. 평소 서 교수의 행복론에 영감을 받아온 정시우 작가가, 그에게 만남을 청했어요.


정시우 작가 

행복해지려고 열심히 돈을 모으고, 꿈꾸던 명함도 얻었는데 왜 마음 한구석은 허전할까.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기에 명상도 해 봤는데, 왜 행복은 여전히 멀리 있는 것 같을까. 그러던 중 행복에 대한 기존 통념에 반기를 드는 심리학자를 만났습니다. 심리학 베스트셀러 『행복의 기원』에서 심리학자 서은국 교수는 말했죠.

“행복은 삶의 목적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행복을 향한 강박이 역설적으로 행복을 망치는 시대에, ‘유레카’를 만난 기분이 들었죠. 진화론적 관점에서 풀어쓴 행복의 ‘진짜 얼굴’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저는 그의 책을 읽고, 방바닥에 앉아 마음을 다스리던 자기최면을 접고, 기쁨을 주는 환경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기 시작했어요.


Chapter 1.
인간에게 중요하지 않은 감정은 없다

인터뷰 며칠 전, 인간의 감정을 의인화한 픽사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 2」를 봤습니다. 행복에는 꼭 ‘기쁨’만이 관여하는 것은 아님을 영화가 알려주더군요. 좋은 작품을 보면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 마음에 입이 근질근질해지곤 하는데, 마침 만나게 된 이가 행복학자이니 이 기회를 놓칠 수 있나요. 마주하자마자, 영화에 대해 질문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죠.

“슬픔·두려움·분노·절망 같은 부정적 감정 역시 회피하기보다 나의 일부임을 받아들이는 것이, 행복을 위해 중요한 일인가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럼요. 슬플 때 슬퍼야 하고, 무서운 상황에선 무서워해야 합니다. 그게 생존을 위한 정상적인 반응이에요. 많은 행복 지침서에선 무조건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하는데, 큰일 날 일이죠. 감정은 나를 행복하게 하려고 돌아가는 게 아니거든요. 감정은 우리 뇌에서 키는 ‘교통 신호등’ 같은 겁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망보고, 그것을 바탕으로 대처법을 알려 주는 시그널이죠.

가령 눈앞에 절벽이 나타나면 우리 뇌는 두려움과 같은 빨간불을 켜요. “조심해!”라는. 만약 신호등이 오작동 나면 어떻겠어요? 죽죠, 죽어. 인간의 감정 중 중요하지 않은 건 없어요. 모두 존재 이유가 있습니다.”

행복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오해는 무엇일까요.

“많은 이들이 행복을 성공과 혼동하고 있어요. 행복을 위해 노력한다고 하지만, 잘 들어보면 성공을 위한 것들이죠. ‘나는 부자가 됐는데, 그럴듯한 직업도 있는데, 왜 행복하지 않지?’ 왜 그러냐. ‘행복=성공’이 아니니까요. 돈·학력 등의 객관적 조건들이 행복과 큰 영향이 없다는 건, 오랜 연구가 밝혀낸 결론입니다.”

인간의 감정을 의인화한 애니메이션 영화 「인사이드 아웃 2」는 ‘기쁨’만이 행복에 관여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행복학자로 유명한 서은국 연세대 교수 또한, 인간의 감정은 모두 존재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Disney/Pixar

Chapter 2.
행복은 생각이 아니라 경험

서은국 교수는 행복이 거창한 ‘생각/관념’이 아니라, ‘경험’이라고 강조합니다. 생각을 고쳐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쾌(快, pleasure)가 묻어 있는 경험을 할 때 행복해진다고 말이죠. 

10년 전 『행복의 기원』을 쓴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고 해요. 사람들이 듣고 싶은 얘기들만 종교처럼 퍼지는 걸 보고, ‘잘난 척하지만, 인간은 동물이야!’라는 관점에서 행복을 바라봤다고요.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이라고 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우린 너무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어요. 그런데 이건 비과학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요. 흡사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었던 ‘천동설’처럼요.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간은 동물일 뿐이며, 동물의 모든 특성은 ‘생존’과 ‘번식’을 위해 존재합니다. 행복 역시 마찬가지예요.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게끔 설계돼 있습니다.”

그의 말대로 ‘행복’은 오랫동안 인문학 분야에서 다뤄져 왔습니다. 그런 행복을 심리학계가 진지한 연구 주제로 삼은 건, 얼마 되지 않은 일이죠.

“심리학은 100년 넘게 ‘불행’ 전문가였어요. 불안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없애면 ‘행복이 보너스처럼 오겠지’라고 생각했죠. 그러다 80년대 초반부터 불행을 없애는 것과 행복감을 늘리는 건, 완전히 다른 메커니즘이라는 연구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때 행복이라는 토픽을 심리학에서 처음으로 연 분이 에드 디너Ed Diener 일리노이대 교수님이에요.”

서은국 교수는 에드 디너 교수 밑에서 박사 과정을 밟으며, 행복을 과학의 영역으로 끌어오는 데 힘을 모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행복을 다루는 곳은 전 세계에서 디너 교수 연구실이 유일무이했다고 해요. “대가에게 배울 수 있어서 큰 행운”이었다고 그는 말합니다.

비과학적으로 다뤄지던 행복을 진지한 연구 주제로 삼은 서은국 교수. 인간에게 행복이란 ‘생각’을 고쳐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 ‘경험’을 통해 느끼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롱블랙  

Chapter 3.
‘강도’가 아니라 ‘빈도’가 중요한 이유

반평생 행복을 연구하면서 발견한 가장 큰 인사이트는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그가 뽑은 건, 바로 이것.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많은 사람은 인생을 ‘한방’, 그러니까 강도라고 생각해요. ‘죽어라 고생해서 강남에 아파트를 사면, 좋은 대학 간판을 달면, 고시를 패스하면 행복할 거야!’ 행복하긴 합니다. 그런데 얼마나? 일주일 혹은 몇 달. 아무리 큰 기쁨도 우리 뇌는 금방 ‘적응’해 버리거든요.

그래서 빈도가 중요해요. 모든 쾌락은 곧 소멸하기 때문에 극적인 경험 한 번보다, 잔잔한 즐거움을 여러 번 느끼는 것이 행복엔 유리합니다. 반대로 불행한 감정에도 평생 갇혀 있지 않을 수 있고요. 행복의 스위치를 켜 주는 습관들을 삶 속에 꽂아두는 게 필요한 이유죠.”

행복이 빈도라면,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은 정신 건강에 이로울까요?

“필요하죠. 다만 '소확행'도 장기적인 즐거움을 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소모적인 즐거움만 좇다 보면, 자칫 더 큰 즐거움을 누릴 기회를 놓칠 수 있으니까요. 나를 열정적으로 이끌 방향으로 시간을 모으셨으면 좋겠어요.”

행복에 있어서는 ‘강도’가 아닌 ‘빈도’가 중요하다. 모든 쾌락은 빠르게 소멸하므로 극적인 경험 한 번보다, 잔잔한 즐거움을 여러 번 느끼는 것이 행복에 유리하다. 사진은 서은국 교수가 집필한 『행복의 기원』 ⓒ롱블랙  

Chapter 4.
가장 재미있는 자극은 바로 ‘사람’

행복은 강도보다 빈도가 중요하다는 걸 알았으니, 이제 행복을 좌우하는 요소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들어볼 차례입니다. 이렇게 운을 떼는 이유는 많은 연구가 밝혀낸 진실이 다소 당혹스러울 수 있어서예요.

가장 펀치가 센 요인은 ‘유전(DNA)’, 더 구체적으로는 외향성! 행복은 타고 나야 한다는 걸까요. 왜 이런 연구가 나온 걸까요.

“외향적인 사람의 특징은 ‘자극 결핍’이에요. 지속적으로 자극을 갈구하죠. 그랬을 때, 가장 재미있는 자극은 뭐냐. 사람이에요. 그래서 사람을 찾아요. 전화해서 ‘밥 먹자!’ 그러죠. 이 과정에서 행복감이 유발될 확률이 높습니다. 우리 뇌는 생존에 필요한 자원에 다가갈 때 ‘좋다’라는 전구를 켜는데, 생존에 제일 필요했던 자원이 사람이었기에 그래요.”

진화론적으로 볼 때, 인류의 생존에 사람이 가장 중요한 자원이었다니. 무슨 말일까요? 

“먹이 사슬 중간에 위치하던 호모사피엔스가 급부상한 이유에는, ‘슈퍼 소셜한 사회생활’이 있었습니다. 무리에서 추방된 호모사피엔스는 생존이 힘들었죠. 맹수에게 잡아먹히거나, 후손을 남길 배우자를 찾지 못했으니까요. 600만 년간 유전자에 새겨진 이러한 생존 버릇을,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여전히 지니고 있어요. 사회성과 행복이 불가분의 관계인 이유고, 사회적 경험을 많이 하는 외향적인 사람이 행복에 더 유리한 이유죠.”

내향인 입장에선 우울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고 하자, 그건 오해라며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일러줍니다.

“다수의 호모사피엔스는 충분히 해피해요. 내향적인 사람들이 외향적인 이들에 비해 조금 덜 해피하다 일뿐이지, 이미 충분한 정도의 행복을 누리고 삽니다. 그런데 상품화된 행복 메시지가, 잘 살고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잘못 살고 있다’ 생각하게 만들죠.

중요한 건 행복이 꼭 우수한 특성은 아니라는 거예요. 만약 외향성이 가장 우월한 유전자였다면, 진화 과정에서 외향적인 사람만 살아남았어야 해요. 그런데 안 그렇거든요? 그 얘기는 뭐냐. 행복이라는 작은 창으로만 보면 외향성이 분명 이득이지만, 더 큰 ‘생존의 그림’으로 보면 외향성이든 내향성이든 그만의 장단점이 있다는 거예요.”

그의 이야기는 과거로 거슬러 갔습니다.

“독거미가 널려있고, 외부 침입 위험이 빈번했던 수십만 년 전에는, 예민하고 불안감 높은 내향적인 사람이 생존에 더 유리했어요. 실제로 진화 과정에서 그런 자들이 살아남고, 외향적인 사람은 많이 죽어 나갔죠. 코로나19 상황이 지속된다면 외향적인 사람이 더 취약할 테고요. 집에만 있지 못하니까요. 요지는, 어떤 기질이 더 좋다는 건 협소한 생각이라는 거죠.”

최근 유행하는 ‘MBTI 테스트’에도 우려를 표했습니다. 돈벌이를 위해 고안된, 과학적이지도 않은 검사라고요.

“재미로는 얼마든지 해도 좋죠. 근데 분위기를 보면, 재미 이상이거든요? 사실, 내향성이라는 게 따로 있는 게 아니에요. 외향성이 낮은 사람을 편의상 내향적이라 할 뿐이에요. 엄밀히 말해 ‘낮은 외향성’인 거예요. 외향성과 내향성은 상반된 특성이 아닌데, 이렇게 나누는 것 자체가 장기적으로 큰 편견을 만들고 말죠.”

순간, F(공감형 인간)로 보이도록 대화의 기술을 가르치는 ‘공감 학원’이 한국에 등장했다는 기사가 떠오르더군요. 공감을 강요하는 것도 편견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행복감은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과정에서 유발될 확률이 높다. 즉, 외향적으로 사회적인 경험을 많이 할수록 행복에 더 유리하다. ⓒPixabay

Chapter 5.
경제 수준 대비 행복감이 낮은 한국

 “와~ 한국 완전히 망했네요!” 한국 출산율이 0.78명(2022년)이라는 얘길 들은 조앤 윌리엄스Joan. C. Williams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가 내뱉어서 화제가 된 말이죠. 한국이 OECD 자살률 1위라는 사실까지 알면 뭐라고 할지 궁금해지더군요.

여러 수치가 알려주듯 우리 국민의 행복도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개인의 행복과 문화적 환경엔 어떤 영향이 있는 걸까요. 서은국 교수는 집단주의적 문화와 과도한 타인 의식이, 행복감을 낮춘다고 지적합니다.

“한국은 일본, 싱가포르와 함께 경제 수준 대비 행복감이 낮은 군에 속해요. 이들의 공통점. 유교적이고, 수직적이며, 위아래로 사람을 줄 세우는 집단주의 국가들이라는 겁니다. 집단주의가 꼭 나쁜 건 아니에요. 명령 하달이 빠르고, 위기에 빨리 대처하는 장점이 있죠.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개인의 자유도’는 엄청난 비용을 치러야 해요.”

‘개인의 자유도’에 대해 조금 더 물었습니다.

“어떤 사회나 나의 개인적인 선호와 집단의 요구가 마찰을 일으킬 때가 있잖아요? 가령 주말에 집에서 넷플릭스를 보고 싶은데, 우리 부서에서 도봉산을 가자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너 혼자 놀고 싶어? 그렇게 해.’ 아무 뒤끝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이게 자유도가 높은 개인주의죠.

집단주의 사회에서도 넷플릭스를 못 보게 하진 않아요. 다만 혼자서 그렇게 하면 ‘왕따’가 돼버리죠. 이건 어마어마한 소셜 페널티예요. ‘개인의 선호’가 ‘집단의 비전’에 굴복하는 게 당연하다는 메시지를 주입하는. 개인의 자유도가 낮은 사회는 행복감이 높기 어려워요. 내가 하고 싶은 걸 소신껏 하기 힘들고, 남의 눈치를 보며 살게 되죠.”

몇 해 전, 덴마크를 출장차 찾은 서은국 교수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공통 질문을 던졌답니다. “너네는 어떤 사람이 제일 비호감이니?” 일관되게 돌아온 답. “남의 삶을 평가하는 사람”이더랍니다.

“놀랐어요. 우리는 자신의 기준으로 남을 평가하는 사람이 많으니까요. 동시에 자기 행복의 판단 기준을 타인에 두는 이도 많죠.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에 너무 목을 맵니다. 일상이 피곤할 수밖에요. 왜곡된 행복을 추구하게 되고요. 직장 상사에게 인정받으려고, 부모 기대에 부응하려고 살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건 뭐지?’ 싶어지고 말아요.”

너무 안정 지향적인 삶을 추구하는 경향에 대해서도 그는 아쉬움을 나타냈습니다. 

“행복은 뭔가 저질러야 생기는 거예요. 모험도 하고, 항해하다가, 위기도 겪으면서 얻는 건데. ‘하지 마, 조심해!’ 하는 분위기에선 ‘펀(fun)’이 생기기 힘들죠. 이런 분위기가 왜 더 안타깝냐면, 한국은 안전한 나라거든요. 세계 대도시 중에 서울처럼 새벽 2시에 슬리퍼 신고 돌아다닐 수 있는 곳이 없단 말이에요. 그럼에도 우리의 염려 수준은 세계 최정상이죠.

제가 좋아하는 말이 있어요. ‘가장 안전한 배는 항구에 묶인 배다. 그런데 배는 그 목적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인생도 똑같다고 생각해요. 안전을 이상화하는 한국 사회가 무조건 나쁘다는 게 아니에요. 그러면서 행복까지 기대하는 건 욕심이라는 거죠. 그건 물과 기름이거든요.”

지나친 걱정 속에서 안정 지향적인 삶을 추구할 경우 행복을 얻기 쉽지 않다. 넓은 세상을 항해하고 모험하는 과정을 통해 행복이 생기기 때문이다. ⓒPixabay

Chapter 6.
좋아하는 사람과 밥 먹는 것

만담꾼 같은 그의 얘길 넋 놓고 듣다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행복학자이기 때문에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을 느껴본 적은 없는지. “유전자 대비 매우 해피한 편”이라고 활짝 웃어 보입니다.

“이렇게 말하려니 조금 쑥스럽지만, 저는 ‘행복’을 공부할 자격이 있는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인생의 제일 중요한 목표는 항상 ‘재미’였거든요. 제가 행복을 공부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말렸어요. ‘도사가 될 거니?’ 하면서. 근데, ‘아이 돈 케어(I don’t care)!’ 제가 재밌으면 된 거죠. 철이 없어서 인지는 몰라도, 인생의 큰 결정들이 늘 그랬던 것 같아요.”

미국에서 교수 생활을 하다가, 지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울로 돌아오는 결정을 한 데에도 ‘재미’가 크게 작용했다고 해요.

“저는 평양냉면에 진심인 사람입니다. 생각했죠. 한국에서도 평양냉면을 제대로 하는 집 찾기가 하늘에서 별 따기인데, 하물며 미국에선? 그걸 감수하면서 미국에서 살아야 하느냐 했을 때 아니었던 거죠. 그리고 행복의 요소가 사람이라고 했잖아요? 친구들이 한국에 있다는 것도 결정에 크게 작용했죠.”

진로 선택마저 참 행복 연구자답다, 생각하며 ‘행복’의 반대말이 무엇이라 생각하냐고 물었습니다. 그가 내놓은 답은 뜻밖에도 ‘권태’였어요.

“인지하지 못할 뿐, 우리가 일하는 이유 중 하나는 심심함을 못 견뎌서예요. 아무것도 할 게 없을 때, 그 무엇도 의미가 없을 때, 인간은 고통스럽거든요. 저는 이게 한국 사회에서 점점 이슈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상대적 빈곤이 없지는 않지만, 의식주 기본 욕구는 대다수가 충족할 정도로 사회가 유복해졌어요. 동시에 고령화는 늘고 있죠. ‘결핍’이 아닌 ‘잉여’의 시대. 이 남아도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가 화두인 시대가 올 거예요.”

그렇다면 우린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 게 좋을까.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 먹는 장면.’ 그가 꼽은, 행복의 ‘엑기스’를 압축한 장면이에요.

“여기서 중요한 건 ‘좋은 사람’이어야 해요. 가장 스트레스가 될 수 있는 것도 사람이니까요. 인맥을 늘리기 위해, 나에게 뭔가 도움이 될 사람 같아서, 좋아하지도 않은 사람들로 내 시간을 채운다? 이런 사회적 경험은 오히려 행복을 좀먹는 일이죠.”

그가 전하는 또 하나의 팁, 행복은 바이러스처럼 전염된다는 사실이에요. 그것도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범위로 말이죠.

“미국에서 진행된 굉장히 유명한 연구 결과가 있어요. 친구가 행복한 경우에도 내 행복이 올라가지만, ‘친구의 친구’, 심지어 ‘친구의 친구의 친구’가 행복한 것도 전염이 돼서, 나의 행복을 올린다는 연구죠. 반대로 주변에 우울한 사람이 있으면 그것도 전염이 됩니다.”

이왕이면 ‘우울’보다는 ‘행복’을 전염시키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하며, 서은국 교수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했습니다. 행복의 파랑새를 찾고 있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해 달라고요.

“용기 있게 사세요. ‘안전빵 라이프’를 이상화하는 분위기에 휩쓸리면 위축되고 자꾸 안정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데, 그로 인해 가장 크게 손해 보는 건 자기 자신이에요. 한국이 우주라고 생각하면, 여기서 돌아가는 게임에 혈안이 돼서 지칠 수밖에 없어요. 시야를 넓혀 세상을 보세요. 한국은 세계의 일부일 뿐이라는 걸 알게 될 겁니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재미’라고 말하는 서은국 교수. ‘안전빵 라이프’에서 벗어나 용기 있게 행복을 찾아 나갈 것을 권한다. ⓒ롱블랙


롱블랙 프렌즈 C

“행복은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행복은 앉아서 ‘감사 일기’를 쓰거나 ‘명상’을 한다고 얻어지지 않는다.” 낭만과는 거리가 먼 서은국 교수의 행복론을 어느 정도 오해했던 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이젠 알겠어요. 인간은 행복해지려고 태어나진 않았다는 것!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이미 행복할 잠재력을 가졌다는 것! 서 교수가 우리에게 진짜 전하고픈 메시지는 행복을 거창한 과업으로 생각하지 말자는 것이죠. 

잠들기 전 반려견과의 산책, 가족과 함께하는 주말 아침 식사, 혼자만의 커피 타임. 저의 행복은 이런 사소한 것들에서 나와요. 롱블랙 피플의 ‘행복 습관’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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