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블랙 프렌즈 L
어떤 업계든 공룡 같은 존재가 있지. 산업을 장악하고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는 1위 기업. 안경 업계에도 이런 공룡이 있어.
에실로룩소티카EssilorLuxottica. 세계 1위의 안경 회사야. 63년 역사의 안경회사 룩소티카가 2018년 프랑스 렌즈 회사 에실로와 합병하며 탄생했지. 이름이 낯설다고? 글쎄, 아마 롱블랙 피플 집에 있는 선글라스 중 최소 절반은 이 회사가 만들었을걸?
에실로룩소티카의 존재감은 사실 ‘공룡’이란 표현으로도 부족해. 2023년 이 회사의 매출은 무려 254억 유로(약 36조5900억원). 글로벌 아이웨어eyewear* 시장 점유율은 무려 30.3%에 달해**. 한 회사가 세계 시장의 3분의 1을 장악한 거야. “안경 독과점 제국”이라는 비난 섞인 표현이 나올 정도야.
*선글라스, 안경, 콘택트렌즈 등 눈에 착용하는 모든 것.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IBIS World 조사 보고서.
이 강력한 독과점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산업의 재정의, 과감한 혁신, 공격적이고 때론 무자비한 인수합병. 에실로룩소티카의 발자취엔 빛과 그림자가 뒤섞여있어.
에실로룩소티카의 성장 전략을 파헤쳐봤어. 3D 맞춤 안경 제작 브랜드 ‘브리즘’의 박형진 대표와 함께 말이야.
Chapter 1.
안경으로 세운 거대제국
샤넬, 프라다, 버버리, 베르사체, 불가리, 돌체앤가바나…. 안경 회사 얘기하다가 왜 럭셔리 브랜드 얘길 하냐고? 이 브랜드들의 아이웨어를 죄다 에실로룩소티카가 만들거든. 라이선스를 가진 럭셔리 브랜드만 23개. 백화점에서 선글라스 하나 집어 들면, 웬만하면 에실로룩소티카 제품이란 거야.
직접 운영하는 브랜드도 쟁쟁해. 영화 「탑건」에서 톰 크루즈가 쓰고 나온 선글라스 브랜드 레이벤Ray-Ban, 올림픽에서 자주 보이는 형형색색의 선글라스 브랜드 오클리Oakley, 이탈리아 대표 안경 브랜드 페르솔Persol까지.
에실로룩소티카는 말 그대로 ‘안경 제국’이야. 렌즈크래프터LensCrafters, 선글라스 헛Sunglass Hut 같은 글로벌 유통사와 아이메드EyeMed라는 미국 2위 시력 보험사까지 인수했어. 심지어 한국 아이웨어 업계에도 그 영향력이 뻗어있어. 2023년엔 젠틀몬스터 운영사인 아이아이컴바인드 3대 주주*가 됐거든.
*약 16%의 주식을 매수해, 아이아이컴바인드 오재욱 대표(지분율 44.96%)와 김한국 대표(지분율 25.18%)에 이어 3대 주주가 됐다.
이 거대한 성공 뒤엔, 2022년 세상을 떠난 룩소티카의 창업자 레오나르도 델 베키오Leonardo Del Vecchio가 있어. 박형진 브리즘 대표는 델 베키오를 “산업의 속도보다 한발 빠르게 움직인 기업가”라고 평가해.
*레오나르도 델 베키오는 2018년 룩소티카와 에실로의 합병을 추진했다. 이후 에실로룩소티카 회장을 맡아 회사를 이끌다, 8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산업마다 변화의 속도가 있어요. 안경은 변화가 느린 산업 중 하나였죠. 그 속도를 늘 앞서간 게 델 베키오 회장이에요. 안경 업계의 변화를 늘 맨 앞에서 이끌었죠.”
_박형진 브리즘 공동 대표, 롱블랙 인터뷰에서
Chapter 2.
남에게 의존하는 것은 곧 리스크risk다
델 베키오는 성공에 목마른 사람이었어. 배고픔이 어떤 건지 알았거든. 그는 1935년 이탈리아 밀라노 채소 장수의 다섯째로 태어났어. 가난 때문에 7살에 보육원에 맡겨졌어. 홀로서기가 좀 많이 빨랐지.
열네 살에 일을 시작했어. 안경 부품을 만드는 금속 공장이었지. 그때부터 안경 사업을 하겠다는 꿈을 키웠대. 낮엔 공장에서 기술을 익히고, 저녁엔 미술 아카데미에서 디자인을 배웠어. 10여 년 동안 돈과 실력을 쌓았지.
사업을 시작한 건 1961년이야. 이탈리아 북부 아고르도Agordo에 룩소티카Luxottica*란 이름의 안경테 부품 납품 공장을 열었지. 하지만 곧 브랜드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해. 납품사는 언제 망할지 몰랐거든.
*이탈리아어로 빛을 뜻하는 ‘luce’와 광학을 뜻하는 ‘ottica’의 합성어.
“하청업체의 미래는 클라이언트 손에 달려 있었어요. 어느 순간부터 ‘이 공장에서 나오는 안경테에 룩소티카 브랜드를 붙이고 싶다’고 생각했죠.”
_레오나르도 델 베키오 룩소티카 창업자, 2019년 Outsider news 인터뷰에서
당시 유럽의 안경 생산 시스템은 파편화돼 있었어. 공장마다 생산하는 부품이 달랐거든. 완제품 공장이 그 부품들을 모아 조립했어.
델 베키오는 ‘독립적인 기업만 지속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 거래처가 많을수록 리스크가 커진다고 본 거지. 1967년부터 룩소티카 공장은 통합 생산을 시작했어. 자연히 안경 생산비가 줄었어. 품질 관리는 더 잘 됐고. 완제품의 인기가 좋아 1971년엔 더 이상 부품 납품 사업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지.
질 좋은 안경테를 만들어 잘 파는 것. 안경 산업에선 최고의 경지 아닌가? 델 베키오의 생각은 달랐어. 자신이 제작 공정을 통일해 혁신을 이룬 것처럼 경쟁자가 ‘넥스트 스텝’을 찾아낼 수도 있잖아. ‘안경 산업은 이제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 델 베키오는 고민을 멈추지 않았지.
“이 모든 건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타인에 의해 좌우되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 말이죠.”
_레오나르도 델 베키오 룩소티카 창업자, 2019년 Outsider news 인터뷰에서
Chapter 3.
니즈가 부족하다면, 만들어라
델 베키오의 진정한 혁신은 1988년에 일어나. 그는 이탈리아의 패션 거장 조르지오 아르마니Giorgio Armani*를 찾아가 물었어. “아르마니의 브랜드 가치와 안경의 조합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나요?” 그렇게 안경 업계 최초로 럭셔리 브랜드 라이선스 사업을 시작했지.
*이탈리아 패션 디자이너.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설립자다.
안경과 럭셔리 브랜드의 결합. 혁명적이었어. 이 전에도 안경테는 패션 아이템으로 인식되고는 했어. 하지만 여전히 안경은 ‘시력 교정을 위한 도구’에 조금 더 가까웠지. 하지만 패션 브랜드와 결합하면서 판도는 완전히 바뀌었어.
“우리는 단순한 기능적 물품인 안경이 패션 액세서리가 될 수 있음을 바로 깨달았다. 우리는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현상을 함께 창조했다.”
_조르지오 아르마니, 2022년 레오나르도 델 베키오 추모글에서
아르마니의 아이웨어는 반응이 뜨거웠어. 평범한 안경보다는 비쌌지만, 아르마니 정장에 비해선 쌌거든. 게다가 가끔 꺼내 입는 것도 아냐. 매일 쓸 수 있지.
룩소티카의 수익성은 치솟았어. 1985년 1억 유로(약 1500억원)였던 매출은, 1990년 1억 9300만 유로(약 2900억원)으로 거의 두 배가 됐어. 영업이익은 3700만 유로(약 555억원)를 넘어섰어. 매출에서 ‘디자이너 안경’이 차지하는 비중은 38%까지 늘어났지.
박형진 브리즘 대표는 룩소티카가 “제조업에 영리하게 럭셔리 문화의 가치를 더했다”고 평가해.
“델 베키오는 안경에 1980년대 부흥하던 럭셔리 패션 문화를 더했어요. 지금은 ‘안경도 패션’이라는 인식이 익숙하지만, 사실은 룩소티카가 이 개념을 창조한 셈이죠. 안경의 쓸모를 바꿔 새로운 시장을 만든 거예요.”
_박형진 브리즘 공동 대표, 롱블랙 인터뷰에서
델 베키오는 아르마니를 시작으로 아이웨어 라이선스 사업을 키우기 시작해. 불가리(1997년), 샤넬(1999년), 프라다(2003년), 돌체앤가바나(2006년) 등 20개가 넘는 럭셔리 브랜드를 품에 안았지.
Chapter 4.
공장부터 고객까지, 다른 회사는 필요 없다
제조 경쟁력에 브랜드 프리미엄까지 업은 룩소티카. 남은 성장 동력이 더 있을까? 델 베키오는 있다고 생각했어. 유통이었지.
룩소티카는 1995년 북미 최대 안경 소매점 렌즈크래프터LensCrafters를 인수했어. 북미 지역에 600개가 넘는 안경 매장을 보유한 체인이었어. 안경 제조업체가 소매업에 진출하는 건 세계 최초였어.
“우리가 옳았다는 게 증명될 때까진, 아무도 우릴 따라오지 않겠죠.”
_레오나르도 델 베키오 룩소티카 창업자, 1995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렌즈크래프터는 단순한 유통 채널이 아니었어. 마케팅 채널이기도 했지. 룩소티카는 인수 즉시 600여 개의 매장을 룩소티카 제품들로 채웠거든. 유통 수수료는 줄었고, 시장의 트렌드를 바로 읽을 수 있었어.
결과는 어땠을까? 렌즈크래프터를 손에 넣은 룩소티카의 1996년 매출은 12억5000만 유로(약 1조 8600억원)를 기록했어. 인수 전인 1994년의 매출액은 4억1900만 유로(약 6200억원). 2년 만에 매출이 세 배로 늘어난 거야.
Chapter 5.
레이벤 : 완전한 ‘내 브랜드’를 원하다
제조와 브랜드, 유통까지 장악한 델 베키오. 그는 새로운 리스크에 주목했어. 바로 라이선스 사업 의존도. 1990년대 룩소티카 매출에서 라이선스 비중이 40% 가까이로 올라왔거든. 그러다 럭셔리 브랜드들이 계약을 끊으면? 끝이라고 델 베키오는 생각했어.
자체 브랜드가 필요했어. 이번에도 인수로 해결했지. 1999년 레이벤을 사들였어. 겨우 6억 4000만 달러(약 8890억원)에. 뭐, 레이벤이 6억 4000만 달러였다고?
당시 레이벤은 ‘다 망한 브랜드’ 취급을 받았어. 브랜드 가치가 땅에 떨어져 있었지. 유통 채널 관리에 실패했거든. 할인 마트와 담배 가게, 주유소, 카메라 가게에도 레이벤이 있었지. 가격도 29달러(약 4만원)에서 99달러(약 14만원)로 들쑥날쑥했고.
룩소티카는 왜 레이벤을 인수했을까? 박형진 브리즘 대표는 “룩소티카가 밸류업Value up*에 탁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해.
*기업, 제품 또는 서비스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다양한 활동.
“룩소티카는 전통 있는 브랜드가 가치가 떨어졌을 때 인수해, 새로운 가치를 더하는 데 아주 기발한 재주가 있어요.”
_박형진 브리즘 공동 대표, 롱블랙 인터뷰에서
레이벤을 인수한 룩소티카는 파격적인 변화를 이끌어.
첫째, 6개월 동안 전 세계 판매를 중단했어. 브랜드 가치에 걸맞은 유통처만 골라내기 위해서였지.
둘째, 미국에 있던 제조 시설을 이탈리아로 옮겼어. 품질에 신뢰를 주기 위해서였지. 미국의 직원들은 일자리를 잃었지만 말야.
셋째, 선글라스만 팔던 레이벤에 안경 제품군을 추가했어.
마지막으로 제품 가격대를 최소 89달러(약 12만원)로 끌어올렸어. 여기에 대대적인 마케팅을 더했지.
“우리는 모든 것을 새롭게 단장하고, (레이벤을) 고급 브랜드로 탈바꿈시켰습니다.”
_레오나르도 델 베키오 룩소티카 창업자, 2019년 Outsider news 인터뷰에서
레이벤은 2008년까지 매년 약 20%의 성장률을 기록했어. 2008년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아이웨어 브랜드가 됐지. 레이벤은 에실로룩소티카의 매출을 이끌었어. 가디언Guardian에 따르면 2018년 룩소티카 전체 매출의 40%가 레이벤에서 나올 정도였지. 라이선스 사업에 의존하던 매출 구조를 뒤엎은 거야.
Chapter 6.
무자비한 인수 야욕, 오클리를 삼키다
룩소티카는 이후에도 공격적인 인수 합병으로 덩치를 불려. 특히 레이벤의 경쟁자였던 오클리Oakley를 인수한 과정은 “잔인하다”는 비판을 받을 정도였지. 유통으로 숨통을 막고 집어삼켰거든.
2001년 룩소티카는 선글라스 헛Sunglass Hut을 인수했어. 전 세계 1800개 매장을 가진 세계 1위 선글라스 소매 회사였지.
인수 직후, 룩소티카는 선글라스 헛에 입점한 모든 업체에 “공급 가격을 낮추라”고 통보했어. 안 그러면 제품을 팔지 않겠다면서. 업체들은 가격을 내렸어. 당시 잘나가던 오클리만 빼고.
룩소티카의 대응은? 오클리를 선글라스 헛에서 빼버렸어. 오클리 매출의 4분의 1이 선글라스 헛에서 나오고 있었는데 말야. 심지어 오클리 인기 디자인을 똑 닮은 선글라스를 레이벤에서 출시하기까지 해.
오클리 주가는 곧바로 37% 하락했어. 덕분에 2007년, 룩소티카는 힘 빠진 오클리를 21억 달러(약 2조 9200억원)에 인수할 수 있었지. 델 베키오, 진짜 무서운 사람이었네.
룩소티카의 적대적 인수 전략은 늘 논란거리였어. 하지만 비즈니스적으로 영리했단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지.
“우리는 인수를 해왔고 앞으로도 인수를 계속할 것입니다. (…) 우리는 그 누구도 우리보다 더 빨리 성장하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그래서 매우 빠르게 성장하고 싶습니다. 다른 회사에게 우리 몫을 빼앗기지 않길 바라니, 가속 페달에서 발을 뗄 수 없죠.”
_레오나르도 델 베키오 룩소티카 창업자, 2014년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Chapter 7.
델 베키오가 떠난 룩소티카의 미래는
레오나르도 델 베키오 회장은 2022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어. 말년까지 그는 열정적이었어. 2018년 렌즈회사 에실로 인수 합병 협상도 직접 이끌었어. 무려 83세에 말야. 안경 제국을 세울 마지막 조각, 렌즈마저 손에 넣은 거야. 2017년 합병 계획을 발표한 델 베키오는 “평생의 꿈이 이뤄졌다”고 표현했지.
“우리의 목표는 원자재부터 완성된 안경까지 전체 생산 공정을 다루고, 도매에서 소매 및 전자상거래에 이르는 모든 채널을 포괄하는 완전 통합 그룹을 만드는 것입니다.”
_레오나르도 델 베키오 룩소티카 창업자, 2017년 Corriere della Sera 인터뷰에서
델 베키오가 없는 룩소티카, 과연 혁신을 이어갈 수 있을까? 일단 세 가지 커다란 변화가 이어지고 있어. 델 베키오의 DNA가 엿보이는 과감한 시도들이지.
① 스마트 글래스 : 안경에 기술을 얹다
첫 번째는 스마트글래스 출시. 메타Meta와 함께 2021년부터 ‘레이벤 스토리즈Ray-Ban Stories’를 선보였어. 2023년엔 2세대가 나왔지. 레이벤의 인기 모델에 기술을 얹은 거야.
스마트 글래스로 통화를 하고, 사진과 비디오를 촬영하고 보낼 수 있어. 안경 오른쪽 다리 위에 촬영 버튼이 있지. 음성으로 제어할 수도 있어. 곧 메타 AI도 더해질 예정이야. 안경을 쓰고 외국어 표지판을 보면 번역이 되는 거야. 예쁜 꽃을 보면 꽃 이름도 검색하고 말야.
“테크 회사는 안경의 착용성이나 디자인, 기술을 몰라요. 그래서 룩소티카는 IT기업들에게 매력적인 선택지죠. 특히 레이벤 같은 브랜드가 있다면, 디자인을 고객에게 설득할 필요가 없어요.”
_박형진 브리즘 공동 대표, 롱블랙 인터뷰에서
에실로룩소티카는 레이벤 스토리즈를 미래 성장 원동력으로 보고 있어. 메타와 파트너십을 넘어 장기 계약을 준비 중이라고 발표했지.
② 뉘앙스 오디오 : 시력을 넘어 청력까지
안경이 청각까지 개선할 수 있을까? 에실로룩소티카는 2024년 9월 보청기 대용 안경을 출시했어. 이름은 ‘뉘앙스 오디오Nuance Audio’. 마이크로 주변 소리를 흡수해 귀 옆의 스피커로 크게 들려줘. 티 나는 보청기를 쓰고 싶진 않지만, 일상생활에서 불편을 느끼는 중년들에게 딱이지.
안경에 청각 기능을 더할 생각을 하다니. 개척 정신은 아직도 사그라들지 않은 것 같지?
“의료 기술부터 럭셔리, 디지털, 그리고 이제 청각 솔루션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고인이 되신 회장님이 꿈꾸던 회사, 즉 변화의 촉매제이자 업계 전체를 비추는 가능성의 등불이 되고 있습니다.”
_프란체스코 밀레리 에실로룩소티카 CEO, 2022년 자체 인터뷰에서
③ 슈프림 : 패션 시장의 경계를 넘다
2024년 7월, 패션 시장을 술렁이게 만든 또 하나의 소식. 에실로룩소티카가 스트릿웨어 브랜드 슈프림을 인수했단 발표였지. 인수 대금은 14억달러(약 2조 700억원). VF코퍼레이션*이 4년 전 20억 달러(약 2조 7600억원)에 샀던 가격보단 훨씬 싸지? 슈프림의 가치가 떨어졌거든. 가품이 많아지고, 진출 국가가 늘면서 희소성은 줄어들었지.
*반스Vans와 노스페이스The North를 운영하는 글로벌 패션 회사
패션 브랜드를 산 이유는 뭘까? 업계는 라이선스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라고 추측해. 럭셔리 업계가 최근 아이웨어를 직접 생산하기 시작했거든. 대표적으로 케링Kering그룹*이 그래. 구찌, 까르띠에 등의 아이웨어를 직접 만들고 있지.
*구찌, 생로랑, 보테가베네타, 발렌시아가 등의 브랜드를 소유한 프랑스의 거대 럭셔리 그룹.
박형진 브리즘 대표는 “새로운 고객 확보”도 슈프림 인수 이유라고 봐.
“에실로룩소티카는 주로 클래식한 럭셔리 브랜드 고객을 타깃 해 왔어요. 스트릿웨어 시장 주류인 Z세대 고객에겐 다가갈 창구가 없었죠. 슈프림은 미래 고객을 데려오는 창구가 될 수 있을 거예요.”
_박형진 브리즘 공동 대표, 롱블랙 인터뷰에서
밸류업의 강자 룩소티카가 슈프림까지 살릴 수 있을까? 패션 업계는 쉽지만은 않을 거라고 보고 있어. 제조부터 유통까지 밸류체인을 장악한 안경 업계와는 경쟁 판도가 완전히 다를 테니까 말야. 5년 뒤 이번 인수가 업계의 혁신 사례로 평가될 수 있을까? 아주 궁금해지네.
롱블랙 프렌즈 L
사실 에실로룩소티카에 대한 평가는 엇갈려. 많은 소비자들은 이 회사를 ‘안경값을 올리는 주범’으로 비난해. 시장을 장악한 아이웨어 브랜드 대부분이 에실로룩소티카 거잖아. 경쟁이 제대로 일어날 수가 없는 거야.
해외 언론에서도 ‘독점monopoly 기업’이란 수식어가 늘 따라붙지. 업계에선 ‘공공의 적’이나 마찬가지야. 적대적인 인수 전략에, 유통망을 쥐고 흔드니까.
분명한 건 한 업계에서 이렇게 지속적으로 가치 창출 능력value creation을 입증한 회사는 거의 없단 거야. 박형진 브리즘 대표도 “솔직히 좋아하는 회사라고 말하긴 힘들지만, 얄미울 정도로 사업을 잘하는 회사”라고 표현했지. 성장을 위한 무자비함은 배우고 싶진 않대. 하지만 산업의 속성을 바꿔, 제조업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바꾼 능력은 인정한단 거야.
“안경은 혁신이랄 게 없어 보이는 아이템이에요. 하지만 IT 기업이 아닌 전통적인 제조업에서도 전략을 잘 쓰면 글로벌 대기업을 만들 수 있단 걸 보여준 게 델 베키오 회장이죠.”
_박형진 브리즘 공동 대표, 롱블랙 인터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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