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롱블랙 프렌즈 B
한때 ‘스토리텔링’은 콘텐츠나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주로 쓰이는 단어였습니다. 작가나 연출자가 ‘대중을 끌어들이는 기술’로 다뤘죠. 기업에서 이야기는 광고 한 줄이나 경영진 인터뷰로 쓰였어요.
지금은 다릅니다. 앞서가는 기업들은 ‘자신들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설득하려 합니다. 기업이 이 일을 왜 하는지, 어떻게 제품을 만드는지, 어떤 사람이 무슨 생각으로 일하는지 이야기하죠.
롱블랙은 지금을 ‘이야기 자본Story Capital의 시대’라 이름 짓고, 두 편의 특집을 기획했습니다. 1부에선 이야기가 왜 지금 중요한지 짚었습니다. 제품이 상향 평준화된 시대, 소비자를 착 달라붙게 하는 서사의 작동 방식을 짚었죠.
2부는 실전입니다. 이야기를 전략 자산으로 쓰는 기업의 실무자 4인을 만났습니다. 노션 악샤이 코타리Akshay Kothari 스토리텔링 팀 헤드, 토스 정경화 브랜드 헤드, 네이버 원지수 브랜드 내러티브 팀 리더, 민음사 조아란 마케팅부 부장까지요.
네 기업의 이야기는 제각각이었지만, 그 안에는 공통된 원칙이 있었습니다.
1. 이야기는 제품과 같은 방향을 바라봐야 한다. 제품이 풀려는 문제를 이야기가 함께 해결할 때, 사람들은 신뢰를 갖는다.
2. 이야기는 사람의 언어를 빌릴 때 힘이 더 세진다. 기업의 말은 권위를 갖지만, 사람의 말은 몰입을 낳는다.
3. 이야기는 총량의 게임이다. 이야기 자본은 하루아침에 쌓이지 않는다. 네 기업이 투자한 시간은 5년에서 많게는 10년이다.

노션 스토리텔링 팀 : 이야기꾼을 돕는 별동대를 만들다
전 세계 1억 명이 쓰는 생산성 도구 노션은 2025년 12월, 파격적인 실험을 단행했습니다. 사내 소통과 SNS, 인플루언서와 커뮤니케이션 팀을 하나로 합친 ‘스토리텔링 팀’을 신설한 겁니다.
이 팀을 이끄는 리더는 악샤이 코타리. 노션의 공동창업자입니다. 창업자가 직접 스토리텔링 팀을 이끈다는 건, 이야기를 제품 개발만큼 중요한 ‘비즈니스 엔진’으로 보고 있음을 뜻하죠.
Chapter 1.
창업자가 스토리텔링 팀을 직접 이끄는 이유
코타리 헤드가 나선 이유는 분명합니다. 기업이 커질수록, 각 팀이 자신들의 고립된 목표에만 집중하는 ‘사일로Silo*’ 현상을 봤기 때문이죠.
*조직 내 부서나 팀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운영해, 부서 이기주의가 강화되는 상태.
“회사가 성장하면서 각 팀이 각자의 목표에만 집중하기 시작했어요. 따로 움직이는 사이, 메시지는 손실됐습니다. CEO나 제품 팀에서 뭔가 말할 때쯤이면, 메시지는 3~4단계의 보고 체계를 거치며 희석된 형태로 전달됐죠.”
_(이하) 악샤이 코타리 노션 스토리텔링 팀 헤드, 롱블랙 인터뷰에서
코타리 헤드가 택한 ‘통합의 원칙’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스토리텔링 팀을 창업자와 제품에 가장 가까운 위치로 배치한다. 둘째, 이야기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제품을 만드는 초기 단계부터 참여한다.
“제품이 완전히 만들어진 후에야 그들이 이야기를 생각해 내는 게 아닙니다. 프로세스의 시작부터 제품이 만들어지는 걸 보고, 주변에 알리기 시작하는 것. 이게 회사에 큰 도움이 되죠.”
즉 이야기와 제품은 함께 태어나야 한다는 겁니다. 이야기 자본의 핵심은 이야기를 ‘잘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속도와 타이밍에 있기 때문이죠.

Chapter 2.
빌더가 직접 말할 때, 파급력은 세 배가 된다
코타리 헤드가 정의하는 스토리텔링의 목표는 네 가지입니다. ① 인지도를 높이고 ② 비즈니스를 키우며 ③ 최고의 인재를 데려오고 ④ 투자자를 끌어들이는 것.
네 가지 목표의 우선순위는 분기마다 달라집니다. 이야기는 감성의 영역이 아닌, 비즈니스 목표와 연동되는 ‘전략의 영역’에 있기 때문이죠.
“스토리텔링 팀이 생각하는 메시지는 회사의 목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요. 회사가 제품의 인지도와 사용량을 확대하는 걸 목표로 하면, 그때 우리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인지도를 어떻게 성장시킬지에 초점을 맞추죠.”
흥미로운 건, 스토리텔링 팀이 이야기를 직접 만들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들은 40~50명의 직원으로 구성된 ‘어필리에이트Affiliates’ 그룹을 운영해요. 팀이 따로 선발하고 관리하는 ‘사내 이야기꾼 그룹’이죠. 엔지니어부터 디자이너, 마케터까지 다양한 직군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들의 역할은 단순합니다. 노션에서 하고 있는 일을, 자신의 SNS에서 마음껏 떠드는 겁니다. 오늘 노션에서 어떤 제품을 만들었는지, 어떤 토론을 벌였는지까지요. 가령 노션 디자이너 앤디Andy가 2026년 2월 28일에 올린 게시글을 볼까요?
“아이반 자오Ivan Zhao*와 종일 머리를 맞대고 노션 메일Notion Mail 출시를 알리는 모달을 디자인했어. 출시 당일에 (내가 만든) 세 가지 디자인을 모두 테스트해 봤지. 어떤 게 가장 전환율이 높을지 내기를 걸었고.”
*노션의 공동 창업자 중 한 명. 현재 CEO 역할을 맡고 있다.
코타리 헤드는 왜 이같은 이야기 전달 구조를 택했을까요. 답은 숫자에 있었습니다.
“일주일 전 커스텀 에이전트* 제품을 출시했을 때, 직원들의 게시글에서 나온 조회수가 노션 본사의 게시글보다 세 배나 많았어요. 사람들은 노션 본사가 말하는 것보다, 직원이 엑스X에서 직접 말하는 걸 더 높이 평가한다는 깨달음을 얻었죠.”
*노션이 2025년 출시한 AI 기능. 사용자가 직접 목적에 맞는 AI 에이전트를 설계, 자동화할 수 있는 도구.

Chapter 3.
직원의 자부심이 이야기의 화수분이다
결국 기업의 이야기 자본은 ‘전문 스토리텔러’에게서만 나오지 않습니다. 제품을 만드는 사람이 ‘마음껏 이야기할 조건’을 갖춰 줄 때, 그 이야기의 속도와 도달 범위는 공식 채널을 넘어서죠.
그래서 코타리 헤드는 스토리텔링 팀의 제1원칙을 ‘직원 옹호Employee Advocacy’로 정의합니다. 팀원들은 직원이 이야기할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 마인드셋’을 갖춰야 한단 거죠. 다만 그는 이 노력이 ‘아직 실험 단계’라는 점을 짚었습니다. 대신 이걸 하는 이유만큼은 확실하다고 했죠.
“어떤 일이든 측정하기 어렵다고 해서, 시작을 미룰 이유는 없습니다. 특히 이야기는 쌓기 시작한 순간부터 자산이 될 테니까요. 도중에 관두고선 ‘역시 측정 불가능한 실험은 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토스 브랜드 트라이브 : 역경을 기록해야 강해진다
토스는 국내 금융업계에서 앞장서서 콘텐츠에 투자한 조직입니다. 토스라는 이름 아래에서 콘텐츠와 관련된 일을 하는 구성원만 약 27명이 넘죠.
이들이 요구받는 일은 단순한 기업 블로그를 만드는 것과 다릅니다. 금융을 더 쉽게 알릴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시도해 보라는 것.
전폭적인 지지는 책과 콘텐츠 플랫폼, 다큐멘터리와 유튜브 채널로 이어졌습니다. 조직의 금융 서비스 도전기를 담은 책 『유난한 도전』은 4년간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하고 있어요. 금융 상식을 알려주는 미디어 토스피드Toss Feed는 누적 조회수 6000만 회를, 유튜브 채널 머니그라피Moneygraphy는 구독자 65만 명을 돌파했죠.
토스의 이야기로 ‘신뢰 자산’을 쌓고 있다는 전략가, 정경화 브랜드 헤드를 만났습니다. 7년간 조선일보에서 기자로 일했던 그는, 2020년 토스에 커뮤니케이션 매니저로 합류했죠.
Chapter 1.
취약함은 어떻게 무기가 되는가
‘이야기가 흐르지 않는 조직은, 위기 앞에서 취약하다.’ 정 헤드가 토스 합류 직후 깨달은 사실입니다.
당시 대중은 토스를 ‘승승장구하는 유니콘’으로 바라봤어요. 누적 사용자는 2000만 명을 넘었고, 은행과 증권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었죠. 오히려 전통 금융권의 견제를 받을 정도였습니다.
질투와 오해의 시선은, 자칫 토스의 성장까지 막을 수 있었습니다. 합법적으로 확장을 시도해도 거절당하는 일이 생겼고, 언론도 이들을 매섭게 지적했죠. 정 헤드는 돌파구로 ‘솔직한 이야기’를 꺼내 들었습니다.
“전 토스 팀이 단지 ‘욕심부리고 싶어서’ 서비스를 키우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금융을 편하게 만들자는 생각으로, 매일 일터에서 구르고 좌절하고 갈등하는 이들이 보였죠. 그래서 책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실패하고 고뇌하는 과정을 드러내, 사람들이 우릴 더 이해하고 응원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_(이하) 정경화 토스 커뮤니케이션 팀 헤드, 롱블랙 인터뷰에서
1년 8개월의 준비 끝에 정 헤드는 2022년 『유난한 도전』을 써냈습니다. 그는 이승건 대표를 비롯한 사내 구성원 35명을 인터뷰해, 토스가 간편송금 서비스를 만들기까지의 10년사를 담았어요.
중요한 건 그가 ‘성공담’을 늘어놓지 않고, ‘실패에서 얻은 배움’을 쓰려했다는 겁니다. 격한 논쟁으로 팀원이 떠나거나, 창업자의 무리한 진행으로 좌절된 프로젝트 끝엔 늘 배운 점을 녹였어요. 이렇게요.
“연이은 실패의 이유가 명백해졌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창업했는데 알고 보니 하고 싶은 일을 해서는 성공할 수 없었다. 고객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야 성공에 가까워진다는 사실을 실패를 견디며 깊숙이 이해한 끝에 나온 것이었다.”_『유난한 도전』 30p
책은 출간 약 5개월 만에 10쇄를 찍었습니다. “직장인도, 창업가도 읽어야 하는 책”, “모두에게 맞진 않지만, 토스가 왜 강도 높게 일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는 후기가 따라붙었죠.

Chapter 2.
토스가 등장하지 않는 콘텐츠를 만드는 이유
‘효능감을 주는 이야기’는 이후 토스 콘텐츠 전략의 핵심 기준이 됐습니다. 토스가 2018년부터 운영 중인 브랜드 미디어, 토스피드를 보면 알 수 있어요.
토스피드는 미디어 안에서 ‘서비스 홍보’를 2순위로 밀어냅니다. 대신 사람들이 궁금해할 ‘금융과 돈에 관한 정보’를 주는 데 공을 들이죠. 현재 토스피드 콘텐츠의 80%가 금융 지식으로 채워질 정도입니다. 피드에는 이런 제목의 글들이 상단에 떠 있죠.
- 입지 좋은 구축 vs 입지 안 좋은 신축, 부동산 선택의 기준은?
- 이자는 언제 기회가 되고, 언제 위기가 될까?
당장의 매출로 이어지지 않는 콘텐츠에 집중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회사가 추구하는 서비스의 본질이, 콘텐츠의 목표와 맞닿아야 하기 때문이죠.
“이야기는 제품과 같은 목표를 바라봐야 합니다. 토스가 금융을 쉽고 간편하게 만들 때, 콘텐츠는 금융 문해력을 높이는 ‘조력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브랜드 트라이브의 철학이에요.”
왜 그래야만 할까요. 정 헤드는 콘텐츠의 일관성이 브랜드의 ‘자산’으로 돌아올 거라 믿습니다. 금융 콘텐츠로 사람들이 지식을 얻어 삶을 낫게 한다면, 그걸 만든 토스로 호감이 쌓일 거라는 겁니다.
이 논리를 손에 잡히는 존재로 만든 게 2024년 출간한 『머니북』입니다. 토스피드 속 금융 지식을 정리한 400페이지 분량의 책이에요. ‘급할 때 리볼빙해도 되는 걸까?’부터 ‘내 돈을 두 배로 늘리려면 얼마나 걸릴까?’ 같은 현실적이고 보편적인 고민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죠.
“파편화된 작은 점에는 힘이 없어요. 그것이 선으로 연결되어 단단한 이야기가 됐을 때 설득력이 생기죠. 『머니북』을 낸 이유도 같습니다. 흩어져 있던 금융 이야기를 400페이지짜리 책으로 묶으면, 사람들은 비로소 ‘토스가 금융을 쉽게 만드는 데 진심이구나’라고 기억해 주실 테니까요.”

Chapter 3.
이야기가 ‘축적될 시간’을 보장하라
그렇다고 회사에서 생기는 모든 일을 모두 바깥에 전할 순 없습니다. 조직이 커지고 추구하는 방향이 넓어지면, 혼란을 겪을 때도 있죠. 이때 정 헤드는 억지로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전하기 어려울 땐 그냥 안 만드는 게 답일 수도 있어요. 뾰족한 생각이 안 설 땐 팀원들에게 말하죠. ‘우리가 조금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자. 지금은 쌓아가는 시간이다’라고요.”
이 인내심을 가능하게 하는 데엔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하나는 제도, 다른 하나는 문화입니다.
토스엔 ‘DRIDirectly Responsible Individual*’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전문성을 가진 실무자가 자기 업무에 대한 ‘최종 의사결정 권한’을 가지는 구조죠. 덕분에 콘텐츠 담당자들은 회사 내 콘텐츠에 대한 모든 결정권을 쥡니다. 유난한 도전부터 머니북, 머니그라피 모두 그렇게 태어났죠.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시행한 것으로 유명한 제도. 이승건 대표도 빠른 실행을 위해 토스를 세울 때부터 이 제도를 도입했다.
“다른 팀이 동의하지 않아도, 우리가 확신하면 도전할 수 있는 룸room이 있어요. 그 기회를 쓸 때 우리는 그간 쌓은 ‘신뢰 자산’을 베팅하죠. 성공하면 다음엔 더 대담한 시도를 할 룸이 또 생기고요.”
문화는 창업자인 이승건 대표의 브랜딩 가치관에서 나옵니다. 이 대표는 브랜딩의 조건을 이렇게 이해하고 있어요. “정량적인 목표로 잴 수 없으며, 오랜 시간 기다려야 효과를 보는 일.” 그래서 이야기를 전하는 팀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허락한다는 게 정 헤드의 말이에요.
“승건 님은 ‘열 번 시도해서 한 번 터지면 정말 성공한 브랜딩’이라고 늘 말해요. 정량적으로 ‘99냐 100이냐’를 따지는 게 아니란 걸 명확히 알고 있죠. 그렇기에 계속 시도할 기회를 얻고 있습니다.”
이야기 자본은 재밌는 서사나 전달력만 필요한 게 아닙니다. 이야기가 자산이 될 때까지 기다려주는 리더의 믿음과, 이를 뒷받침할 단단한 제도가 있어야 하죠.


네이버 브랜드 내러티브 팀 : 기술 언어를 ‘사용자의 언어’로 번역하라
한국 IT 포털 서비스의 대표 주자인 네이버는 오랫동안 우리 삶의 ‘정보 연결자’였습니다. 검색에서 쇼핑, 지도와 블로그, 지식iN까지 일상을 연결하며 없어선 안 될 ‘디지털 인프라’로 자리 잡았죠.
그래서일까요? 네이버는 색이 분명한 브랜드라기보다 ‘편리한 도구’에 가깝다는 인식이 강해졌습니다. 그 속에서 회사의 고민도 시작됐죠. 기술의 효용을 넘어 사용자의 마음에 ‘이야기’를 스며들게 하고 싶었던 겁니다.
Chapter 1.
사용자는 브랜드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
네이버에는 브랜드 내러티브 팀이 있습니다. 브랜드와 서비스 가치,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한 전략 조직이죠. 2022년 시작해 올해로 5년 차가 된 곳이에요.
팀을 이끄는 건 원지수 리더입니다. P&G 영업직과 제일기획 카피라이터, 스타벅스코리아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기획자를 거쳐 2020년 네이버에 브랜드 기획자로 합류했습니다. 이후 ‘브랜드 라이터’로 업을 넓힌 그는, 네이버의 기술에 ‘사람들이 써야 할 이유’를 입히는 임무를 맡았어요.
“도구로서의 편리함을 넘어, 우리의 매력을 사용자가 더 알아주었으면 하고 바랐죠. 다소 모범생 같았던 이미지를 지나, 사용자와 더 가깝게 연결될 이야기를 구축해야 했습니다.”
_(이하) 원지수 네이버 브랜드 내러티브 팀 리더, 롱블랙 인터뷰에서
원 리더는 냉정한 전제를 깔았습니다. 바로 ‘사용자는 브랜드 이야기에 근본적으로 관심이 없다’는 것. 이야기가 마음을 움직이려면, 브랜드가 하고 싶은 말과 사용자가 듣고 싶어 할 말 사이의 ‘교집합’을 찾는 것이 먼저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시작한 게 브랜드 미디어 ‘네이버피셜NAVERfficial*’입니다. 이때 다짐한 게 있다고 합니다. 기업이 운영하는 온드미디어Owned Media와는 다른 길을 걷겠다는 것. 사람들이 네이버를 볼 때 궁금해할 만한 이야기만, 현직자가 직접 들려주는 쪽을 택했어요.
*2022년 ‘네이버코드NAVER CODE’로 시작, 리브랜딩을 통해 지금의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자기 제품의 기능만 자랑하는 기업은 공감받을 수 없습니다. 반면 그 기능이 나에게 줄 혜택을 말하면 호기심이 생기죠. 이야기는 제품을 만드는 사람의 진심이나, 쓰는 사람의 경험을 통해 전달되어야 합니다. 나와 같은 ‘사람의 언어’를 구사해야, 비로소 마음에 닿을 수 있으니까요.”

Chapter 2.
공지 대신 ‘진짜 읽을거리’를 전하라
매력적인 이야기의 돌파구는 어디에 있을까요. 브랜드 내러티브 팀은 이를 ‘인간다움’에서 찾았습니다. 기술 너머에 숨은 사람들의 땀방울을 ‘단독 기사’처럼 다룰 때, 이야기는 ‘진짜 읽을거리’가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죠.
대표 사례가 2025년 4월에 만든 ‘네넷* 비하인드’입니다. 사용자들에게 ‘네이버에서 넷플릭스를 보세요’라는 공지를 반복하는 대신, ‘200일간 네넷 협상 테이블을 훔쳐봤다’는 제목을 띄웠어요. 그 안에는 실무자들의 고군분투를 다뤘습니다. 협상 시작부터 계약서 도장을 찍기까지의 과정 등을 취재해 담았어요. 이런 식이었죠.
*네이버의 유료 구독 서비스인 ‘네이버플러스 멤버십’과 ‘넷플릭스’가 결합한 제휴 서비스. 월 4900원의 가격이 화제였다.
“넷플릭스 : 네이버와의 파트너십을 꼭 해야 하냐는 질문을 받았던 때가 있었는데요. 우리는 전략적인 관점에서 왜 이 파트너십이 필요한지, 왜 반드시 지금 해야만 하는지 끈질기게 설명했죠.
정말 확신할 수 있겠어?’라는 질문을 또다시 받았을 때, 팀원 중 평소엔 차분하던 한 분이 벌떡 일어나서 ‘나를 믿어라Trust Me’라고 말했어요. 그때 ‘오케이, 가보자’라며 최종 결정이 났죠.”
_네이버피셜, 2025년 <네이버와 넷플릭스, 전무후무한 협업의 탄생>’에서
이전과 다른 비하인드에 호응이 이어졌습니다. “기사를 보고 멤버십에 가입했다”는 피드백부터, “대기업도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라는 SNS 후기도 이어졌죠. 이야기가 소비를 끌어낸다는 걸 증명한 겁니다.

Chapter 3.
‘이타주의자’로 정체성을 바꾸다
‘무엇을 말할 것인가’ 만큼 중요한 건 ‘어떻게 말할 것인가’입니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도 ‘기업의 언어’로 말하면 독자와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죠.
브랜드 내러티브 팀이 삽을 들고 찾아간 곳은 ‘네이버 공식 인스타그램’이었습니다. 대중적인 서비스로서 갖고 있던 담백한 어투 대신, 페르소나를 입히는 방법을 고민했죠. 이들이 떠올린 건 ‘26세*의 협력가이자 이타주의자 청년’이었어요.
*네이버가 서비스를 시작한 1999년을 기점으로, 서비스의 역사를 한 인물의 나이로 치환한 것.
“네이버는 원래 정보로 사람을 연결하는 서비스였잖아요? 그런 네이버가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을 돕고 싶어 하는 청년일 것 같았어요. 이런 ‘인격체’가 인스타그램을 운영한다면 딱딱한 공지 대신 ‘당장 도움 되는 네이버 지도 꿀팁’ 같은 이야길 알려줄 거라 생각했죠.”
페르소나가 잡히자, 콘텐츠의 성격도 달라졌습니다. 단순히 요즘 알아야 할 것이 아닌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발굴하기 시작했거든요. 그 과정에서 큰 반응을 이끈 건 잊었던 네이버의 쓸모를 사용자에게 일깨워주는 콘텐츠였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2025년 8월부터 이들은 ‘지식iN 인생 답변’을 시리즈로 소개했어요. 조회수 170만 회에, 저장 1만2000건을 기록한 시리즈입니다. ‘2002년 시작해 20년간 질문과 답변이 쌓였다’는 사실에 더해, 마음을 울린 ‘인생 답변’을 선별해 전했습니다.
가령 “우주 다음으로 넓은 건 뭐죠”라는 질문엔 “우리를 사랑하시는 부모님의 마음입니다”라는 답변을, “짧고 힘 나는 명언 제발요”라는 질문엔 “누군가는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답변을 소개했죠.
때로는 인사를 건네기도 했습니다. 2025년 어린이 포털 쥬니버가 서비스를 종료하던 날, 인스타그램은 공지 대신 작별 인사를 건넸습니다. ‘고마웠어 친구들아.’ 어른이 된 옛 사용자가 몰렸고 “어린 시절을 책임져줘서 고마워”, “나중에 다시 만나”와 같은 댓글 1100개가 쏟아졌죠.
이 변화는 채널 전체의 온도를 달궈놓았습니다. 개편 후 1년 6개월 만에 팔로워 수가 3.5배 늘었어요. 조회수는 12배, 댓글이나 공유, 저장 같은 반응은 6배가 늘었죠.
원 리더는 말합니다. “내러티브란 결국 우리가 필요하다고 믿는 기술을, 남도 필요하다고 믿게 만드는 설계의 한 방법”이라고요.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의도’와 ‘의지’를 언어로 풀어내는 ‘번역 역량’이 핵심 경쟁력이 될 겁니다. 결국 기술 회사가 이야기를 붙잡는 이유도, 그 기술을 쓰는 사용자와의 오래가는 관계를 지키기 위해서예요.”


민음사TV : 책보다 사람을 앞세우니, 책이 따라 나왔다
2025년 성인 평균 독서율 38.5%*. 매년 역대 최저를 경신하는 독서율을 놓고, 출판업은 ‘위기’라는 말을 달고 삽니다. 그런데 유독 ‘대중의 인기’를 누리는 출판그룹이 있습니다. 60년 전통의 민음사예요.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5년 국민 독서실태조사.
2019년 이들이 만든 유튜브 채널 ‘민음사TV’는 4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확보했습니다. 영상에 나온 편집자의 말투와 가치관은 1020세대 사이에서 밈meme으로 유행하고, 잠깐 언급된 책조차 판매량이 뛰죠.
이게 가능한 이유에는 ‘상품보다 사람을 앞세운 스토리텔링’이 있습니다. “책 광고는 하지 않겠다”며 실험을 주도한 주인공, 조아란 마케팅부 부장에게 이야기 자본을 쌓는 법을 들었습니다.
Chapter 1.
책이 아닌 ‘책 좋아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민음사TV를 시작한 건, ‘쌓이지 않는 마케팅’에 대한 조아란 부장의 갈증 때문이었습니다. 민음사의 스테디셀러인 세계문학전집부터 시인선, 에세이까지. 소개할 책은 많았지만, 매번 새롭게 불을 지펴야 했죠.
“상품 중심으로 운영된 기존 출판 마케팅에서 늘 한계를 느꼈어요. 어제는 고전을 소개하고, 오늘은 시집을 소개하는 법만으로는 브랜드를 봐주지 않으셨거든요. 그보다 민음사라는 존재 자체를 믿어주는 사람을 모으고 싶었어요.”
_(이하) 민음사 조아란 마케팅부 부장, 롱블랙 인터뷰에서
조 부장은 생각을 뒤집었습니다. ‘책을 살 이유’를 사람들에게 설득하기보다, 민음사라는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에게 애정을 갖게 하고 싶었죠. 먼저 사람을 좋아하면, 그 사람이 만든 상품도 좋아질 테니까요.
유튜브는 사람의 매력을 보여줄 좋은 수단이었습니다. 2019년 민음사TV를 연 뒤, 컨셉을 이렇게 잡았어요. ‘책 대신 책 만드는 사람이 나오는 채널.’
“대표님께 유튜브 채널을 만들겠다고 하면서 원칙을 내걸었습니다. ‘책 광고는 직접적으로 하지 않겠다’고 했죠. 기업 유튜브가 자사 상품을 홍보하는 영상은 아무도 안 볼테니까요. 대표님도 작은 시도를 반기는 편이어서, 흔쾌히 OK를 했습니다. 곧장 대학 졸업을 앞둔 PD 두 분을 모셔 왔어요.”

Chapter 2.
잘 찍은 영상 말고, ‘할 말 많은 사람’을 데려오라
채널의 방향을 정했다면, 연출의 뼈대를 잡아야겠죠. 어떤 사람을,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 것인지를요. 조아란 부장에겐 한 가지 확신이 있었습니다. 민음사 직원들은 문학적 담론을 ‘재밌게 떠들 줄 아는 사람들’이란 겁니다.
“한번은 논픽션 팀이 『사서四書*』 시리즈를 준비하게 돼, 회의를 했어요. 마케터인 제가 ‘요즘 독자들이 지금 이 고전을 읽어야 할 이유’를 물으면 함께 고민하는 식이었죠. 편집자들은 이렇게 제게 말했습니다.
‘부장님,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아는 것이다 라는 구절 들어보셨어요? 이게 다 논어에서 나온 거예요’라는 식으로 신나서 말해요. 그 모습 자체에 흥미가 생기는 겁니다.”
*성리학의 기본 경전인 논어, 맹자, 중용, 대학을 가리키는 용어.
회의실 속 편집자들의 ‘전문적인 잡담’을, 조 부장은 카메라 앞으로 옮겨왔습니다. ‘2000년대 베스트셀러 추억하기’부터 ‘구독자 책 처방 고민 상담’, ‘출간 전 마케팅 회의 현장’까지 담았죠.
“PD들과 모든 영상을 기획할 때는, 동료들의 일상이나 취향을 벗어나지 않으려 해요. 예를 들어 책을 한 번에 여러 권 읽는 편집자에겐 ‘병렬 독서법을 전수해 달라’고 하고, 「듄」이나 「위키드」 같은 영화를 좋아하는 저는 ‘세계관 소개를 하겠다’고 하는 거죠.”
출판사 직원들이 이야기를 늘어놓다 보면, 늘 책이 따라붙습니다. 자연스레 그게 판매로도 이어져요. 가령 ‘세계문학전집 월드컵* 최악의 애인 편’에서 언급된 『구르브 연락 없다』는 소개 후 지금까지 세계문학전집 판매량 50위 내에 드는 도서가 됐어요. 그 전엔 거의 판매가 없었던 책입니다.
*해외문학 편집자 두 명이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고전 중에서 특정 주제에 맞는 명작을 선정하는 콘텐츠.
Chapter 3.
좋은 이야기는 ‘책임지는 조직’을 낳는다
민음사TV의 흥미로운 점은, 주 시청 연령층이 10~20대라는 점입니다. 책을 멀리한다는 세대가, 오히려 이곳 직원들의 일상과 가치관에 열광하죠. 심지어 특정 출연자의 ‘찐팬’을 자처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이토록 몰입하는 건, 단순히 ‘캐릭터를 잘 짜서’가 아닙니다. 민음사가 구성원들의 평범한 말과 표정, 가치관을 ‘중요한 전략 자산’으로 생각하고, 이를 조명하기 때문이에요.
이를 위해 PD들은 직원들의 성격을 살핀 뒤 매력을 입혀요. 조아란 부장은 ‘부장이지만 털털하고 실수 많은 선배’로, 성연주 차장은 ‘꼼꼼하고 똑부러지는 후배’로, 박혜진 편집자는 ‘차분하고 우아하지만 어딘가 엉뚱한’ 인물로 조명하죠.
“저희 채널의 시청자들은, 나와 다를 것 없는 사람들이 우당탕탕 직장 생활하는 모습에서 재미와 공감을 느껴주세요. ‘출판사 직원은 고상할 것’이라는 편견을 깨는 반전도 한몫하죠.
부장의 흑역사를 파는 ‘실수 배틀’부터, 휴가 간 후배 대신 일하는 ‘나 홀로 출근’까지. 민음사 사무실이라는 공적 공간에서 일어나는 ‘개인적인 서사’가 주는 재미에 몰입하시는 것 같아요.”
몰입을 부르는 콘텐츠는 성과로도 이어졌습니다. 10년 넘게 연 5000~7000명의 박스권에 갇혀 있던 유료 멤버십 ‘민음 북클럽’은, 유튜브 성장과 함께 최근 구독자 2만 명을 넘겼죠. 개별 책 구매를 넘어 ‘민음사’라는 브랜드, 정확히는 ‘민음사의 스토리텔러들’을 지지하는 팬덤이 나타난 겁니다.
조 부장은 말합니다. 자신의 이야기가 브랜드의 자산으로, 또 누군가의 기쁨으로 닿는 걸 보며 ‘책임감’을 더 깊이 생각하게 됐다고요.
“구독자들의 응원을 받으면서 저 스스로 계속 ‘좋은 사람’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이건 기업도 마찬가지라 생각해요. 사람의 얼굴을 내걸고 진솔한 이야기를 건네는 기업은, 계속해서 자신이 꺼낸 이야기에 책임지는 존재가 되려 노력할 테니까요.
결국 이야기 자본은, 일하는 사람의 가치관을 ‘가장 귀한 자산’으로 대접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롱블랙 프렌즈 B
스토리텔러들을 취재하며 연구한 ‘이야기 자본’을 세 줄로 정의해봤습니다.
1. 기업이
2. 자기 존재의 이유를
3. 시장이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반복하는 능력
이 능력은 카피 몇 줄이나 캠페인 몇 편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노션은 이야기를 퍼뜨릴 ‘확산 구조’를, 토스는 ‘실패를 드러내는 문화’를, 네이버는 ‘기술을 언어로 번역하는 역량’을, 민음사는 ‘몰입을 부르는 연출력’을 쌓은 뒤에야 빛을 본 것처럼요.
롱블랙은 이번 시리즈를 준비하는 한 달 동안, 아홉 명을 따로 만나 20시간 넘는 대화를 나눴습니다. 일과 삶에 영감을 주고 싶어 만든 이 노트가, 여러분만의 이야기 자본을 쌓는 출발점이 되길 바랍니다. 그 시작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노트를 공유해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