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블랙 프렌즈 B
<맛의 달인>이라는 일본 만화를 아시나요? 제가 참 좋아하는 만화인데요. 고급 요정을 운영하는 천재 요리사 유우잔이 주인공이에요.
그 유우잔의 모델이 기타오지 로산진北大路魯山人입니다. 타계한 지 60년이 훌쩍 넘었지만, 지금도 그를 ‘감각의 일인자’로 꼽는 이들이 많아요. 요리와 서예, 도예 등 다방면에서 뛰어난 천재 예술가였죠.
공간 기획자 최원석 프로젝트렌트 대표와 감각의 거장, 로산진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려고 합니다. 로산진을 파고들다 보면 “감각은 어떻게 쌓이게 되는가” 라는 큰 질문에 어렴풋이 답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최원석 프로젝트렌트 대표
로산진은 1883년에 태어나 1959년에 별세했습니다. 오래 전 일이죠.
그런데도 “감각이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저는 여전히 로산진을 가장 먼저 떠올립니다. 천재적인 감각을 타고났고, 하나에 꽂히면 무섭게 파고들어 차원이 다른 경지를 열었고, 그렇게 산업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놓은 사람이죠.
그는 현대 일식의 기틀을 닦은 천재 요리사였어요. 일식당에 예약제를 도입했고, 지금의 코스 요리를 설계했으며, 요리뿐 아니라 그릇과 공간까지 고민하는 ‘차림멋’의 개념을 소개했어요.
그 뿐 아니에요. 그는 당대 최고의 서예가였으며, 지금까지도 어마어마한 가치로 거래되는 도자기를 빚은 도예가였습니다.
Chapter 1.
요리와 서예, 천재성을 발견하다
로산진은 교토의 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어요. 그 바람에 어머니는 남의 집 식모가 됐죠.
로산진은 갓난 아기일 때 다른 집 양자로 보내졌어요. 이집 저집을 옮겨다니며 자랍니다. 충분히 먹지 못했고 구박 받기도 했죠. 여섯 살 때 목판업자인 양아버지를 만나면서 비로소 삶은 안정을 찾게 됩니다. 최소한 끼니는 거르지 않는 생활이었죠.
불운했지만 그의 타고난 감각은 어린 시절부터 도드라졌습니다. 주머니 속 송곳처럼요. 어린 로산진은 집에서 심부름과 식사 준비를 맡았다고 해요. 그런데 어린 아이가 요리를 너무 잘하는 거예요. 불조절을 능숙하게 하고 좋은 식재료를 골라냈대요.
로산진은 미각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고 합니다.
“미각은 빈부와 관계없다. 천부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다. 돈이 없어 형편없는 음식만 먹더라도 그 감각은 변하지 않는다. 학습이나 훈련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_로산진 평전 24p
천재가 노력까지 할 때
감각은 타고 난다는 주장이죠. 서예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로산진은 11살 때 양아버지를 도와 목판일을 시작했어요.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고 한 달 만에 이미 아버지의 솜씨를 넘어섰다고 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목판일을 대부분 로산진에게 넘겨버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