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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 : ‘좋은 도시’를 사유할수록, 우리는 더 다정한 이웃이 된다


롱블랙 프렌즈 B 

히말라야에서 등산객을 돕는 셰르파*는, 산을 오르다 가끔 한자리에 머뭅니다. 분주한 몸의 속도를 영혼이 따라잡을 수 있게 기다리는 거라고 해요. 숨을 고르는 동안 셰르파는 어떤 생각에 잠겼을까요?
*히말라야 등산대의 짐을 나르고 길을 안내하는 사람.

오늘부터 5일간 롱블랙은 여러분과 생각에 잠기려 합니다. <사유, 한 주> 위크를 준비했어요. 다섯 가지 생각에 잠시, 머물며 쉬어가세요.

첫 주인공은 유현준 교수입니다. 그는 ‘도시’를 사유하는 건축가예요.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유현준건축사사무소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유현준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교수ㆍ유현준건축사사무소 대표

‘강남 거리는 왜 걷기 싫을까?’ ‘펜트하우스가 비싼 이유는?’ ‘사람들은 왜 라스베가스의 네온사인을 좋아할까?’ ‘좋은 건축은 소주가 아닌 포도주와 같은 건축이다.’ ‘땅에서 출발하는 개미집은 관계지향적이고, 공중에서 시작하는 벌집은 기하학적이다. 개미집(유교 사상)은 동아시아의, 벌집은 서구(이데아 철학)의 건축을 닮았다.’

유현준 교수의 책을 읽다보면 어느 대목에선 생물 시간이, 어느 부분에선 한문 시간이, 또 어느 구석에선 지리 시간이 생각납니다. 건축이라는 주제로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영역을 자유로이 휘젓고 다니며 콘텐츠를 만들죠. 그 원천은 오랜 사유에 있다고 그는 말합니다.


Chapter 1.
서울의 품에서 자란 소년

1969년 서울의 강북. 마당이 있는 오래된 단층집에서 사내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네 살 땐 2층 양옥집으로 이사했어요. 열두 살엔 처음으로 아파트에 살았죠. 복도식, 계단식 아파트를 경험하고 다시 마당이 있는 주택으로 옮겼습니다.

소년은 그림을 잘 그렸어요. 사생대회에서 상을 받으면 가족이 기뻐했습니다. 소년은 생각했죠. “내가 만든 무언가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구나.”

소년이 자라는 동안 도시도 커졌습니다. 소년이 태어날 때 433만 명이었던 서울의 인구는 그가 열아홉이 되던 해, 88올림픽과 함께 1000만 명을 넘겼어요. 두 배나 성장했죠. 도시 노마드 생활에 익숙했던 그는, 훗날 미국에서 공부할 때도 타운하우스*로 아파트로 옮겨 다닙니다.
*1~3층의 단독주택이 약 10~100가구씩 모인 저밀도 주택단지.

유현준 교수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운이 좋았다”고 말해요.

“해외 건축가들과 대화해보면, 교외의 주택에서만 살아온 경우가 많아요. 도시의 성장을 지켜보고, 주거 공간 변화를 체득한 건 건축가로서 제 자산이죠.” 

유현준 교수가 건축가란 꿈을 가진 건, 십대의 끝자락인 고3 때였어요. 아버지는 아들이 판검사가 되길 바랐지만 그는 고시 공부는 하고 싶지 않았어요. 문과 아니면 이과. 두 갈래뿐인 진로에서 그는 이과를 택합니다. 

“그런데 제가 수학을 싫어했어요. 좋아하는 과목을 모아보니 미술, 지리, 지구과학, 물리였죠. 이 네 가지가 딱 겹치는 게 ‘건축학’이라는 걸, 고3 10월쯤 알았어요.”

건축학도가 된 그는 점점 건축에 빠져듭니다. 건축을 알아가는 공부가 좋았다고 해요. 

“그림 그리고, 만들고, 내 생각을 설명하고. 내 작품을 사람들에게 표현하는 게 건축학이었어요. 어릴 때부터 딱 제가 꿈꿨던 일이었죠. 모교인 연세대 학풍도 저와 잘 맞았어요. 자유로웠거든요. 수업 시간에 자유롭게 경쟁하며 대화했고, 건설적인 비평이 오갔어요. 내가 남에게 뭘 배웠다기보다는, 스스로 탐색하고 답을 찾아갔죠. 그렇게 건축이 점점 더 좋아진 거예요.” 

건축사사무소에서 만난 유현준 교수. 서울의 성장을 지켜본 그는 ‘도시’를 사유하는 건축가가 되었다. ⓒ롱블랙

처음으로 도시를 사유한 순간

도시는 공기와도 같습니다. 아마도 많은 이에게 도시는 날 때부터 자연스럽게 존재해 있었을 거예요. 건축학도였던 유 교수에게도 그랬습니다. 도시가 새삼스럽진 않았어요. 

그런데 1994년, 보스턴의 ‘뉴버리 스트리트Newbury Street’를 걸으며 그는 충격을 받습니다. 거리가 아름다울 수 있단 걸 처음 알게 됐죠. 울창한 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웠고, 붉은 벽돌 건물이 이어졌습니다. 세로로 긴 유리창들은 햇살을 튕기며, 건물 속 사람들을 상상하게 했어요. 

“‘왜 이렇게 아름다울까?’ 생각했어요. 건물의 재료를 분석하고, 도보 면적을 보고, 이론도 적용해 봤죠. 당장 답이 나오지 않아도 집요하게 매달렸습니다.”

그때부터 30년 가까이 도시를 사유했어요. 방대한 생각은 방대한 생산으로 이어졌습니다. 건축물은 물론, 책과 강연까지. 그의 ‘도시 콘텐츠’는 마르지 않습니다.

이제 유 교수는 우리에게 권합니다. “도시를 함께 사유하자”고. 왜 건축가가 아닌 우리를 찾는 걸까요. 유 교수는 진지하게 말합니다. 우리가 도시를 생각하지 않으면, 큰 건설사의 몇 사람이 설계한 틀에 인생이 갇힐 수 있다고 해요.

“제가 정의하는 도시란 수많은 ‘인생들’이 모인 공간입니다. 세금을 내는 사람 모두가 건축주예요. 공금으로 공공 도서관을 짓고 문화센터를 지으니까요. 건축주인 시민들이 목소리를 낼 때, 좋은 공공 건축물이 탄생합니다. 좋은 도시가 만들어지고요.” 

미국 보스턴의 뉴버리 스트리트. 유 교수는 유학 시절, 이 길을 걸으며 도시의 아름다움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David Ohmar

Chapter 2.
좋은 도시란, 공통의 추억이 있는 곳 

그에 앞서, 궁금합니다. 건축가 유현준이 말하는 ‘좋은 도시’란 뭘까요? “사람들이 공통의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공짜로 머무는 장소가 많은 곳.” 이때 ‘공통의 추억’은 다양한 사람과 만들수록 좋습니다. 

“인간은 나약한 존재예요. 그럼에도 지구 생태계에서 살아남은 건, 다른 사람과 무리 지어 협동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도시는 사람들이 화합하며 살 수 있는 공간을 내어주는 ‘장치’예요.”

도시가 장치라면, 건축은 장치를 이루는 ‘하드웨어’입니다.

“세상에 갈등이 많죠. 세대차이, 빈부격차, 젠더이슈… 이 갈등 지수를 낮추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종교나 정책 같은 소프트웨어를 활용하는 것. 그리고 공간 구조, 즉 하드웨어를 활용하는 것.”

그는 건축가로서, 우리가 낸 돈으로 어떤 건물을 지어야 더 행복할지 알리는 거죠. 청담동에 벤치를 놓는 게 맞는지, 도서관을 크게 하나 지을지 작게 여러 개 지을지, 그런 걸 고민할수록 하드웨어가 업데이트됩니다.

사회의 불신을 줄인 하드웨어의 예를 하나 볼까요? 영국의 건축가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가 리모델링한 ‘독일 국회의사당’이 있습니다. 지붕의 둥근 돔Dome이 특징이죠.

“돔은 예부터 권력을 상징하기 위한 건축적인 요소였다. (…) 포스터는 돔을 과거 형태 그대로 유지했다. 하지만 그 의미는 반대로 해석했다. 권력의 상징인 돔을 투명한 유리로 만들고 그 안에 경사로를 넣어 베를린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로 만들었다.

도시만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아래층에 있는 국회 회의장도 내려다볼 수 있게 디자인되어 있다. (…) 국회의원이 허튼짓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민주주의의 완성을 보여주는 통쾌한 건축 디자인이다.”
_유현준, 『인문 건축 기행』 140p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독일 국회의사당. 지붕의 ‘유리 돔’에서 누구나 국회 회의장을 내려다볼 수 있다. ⓒFoster+Partners

도시에 추억을 심어야 한다

해외에서 공원 벤치에 앉으면 옆 사람이 다정하게 인사할 때가 있죠. 한국인에겐 ‘스몰 토크’가 조금 어색하지만, 여행을 마치면 그런 순간이 떠오릅니다. 유 교수가 말하는 ‘공통의 추억’은 그런 거예요.

“샹젤리제에 가보셨나요? 참 걷기 좋은 거리예요. 작은 상점들이 촘촘해서, 구경하며 대화할 수 있죠. 가게에 들어서면 우연한 만남이 생깁니다. 그에 비해 광화문 광장은 대로변을 따라 큰 건물만 있어 교류하기 어려워요.”

상점보다 가볍게 만들 수 있는 교류점이 ‘벤치’입니다. 뉴욕 맨해튼은 부촌이지만 벤치가 많아요. 덕분에 누구나 앉아 정취를 즐길 수 있죠. 반면 서울의 가로수길은 벤치가 적어요. 돈이 없으면 앉을 수도 없는 거예요. 빈부격차가 커지죠.

“서울을 이대로 두면 양극화가 심해지고, 사회가 분열될 수 있어요. 그걸 예방하려면 하드웨어인 건축을 개선해야 합니다. 화합을 목표로요.”

혹시 유 교수, 이타주의자일까요? 그는 허심탄회하게 웃습니다.

“사는 게 힘들잖아요. 인생이 축복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고난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제가 원하는 삶을 사니까 행복하지만, 절망의 세월이 길었어요. ‘왜 나에겐 기회가 안 올까’ 그런 생각을 20년쯤 했습니다. 요즘 사회엔 이런 실망과 분노가 가득해요. 제가 도시를 사유하는 건, ‘다같이 더 행복하게 살자’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과 같아요 .”

벤치는 우연한 만남과 추억을 만들 수 있다. 유 교수의 꿈 중 하나는 전국에 100만 개의 벤치를 놓는 것이다. ⓒ유현준건축사사무소

Chapter 3.
33년의 차선들이 모여 최선이 되다

유현준 교수 같은 사람이 절망의 세월이 길었다니.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현재 그가 설계한 건물 12채가 한창 올라가는 중입니다. 컨설팅 회사를 따로 둘 만큼, 그를 찾는 이들이 많고요. 그는 담담히 말합니다. “이렇게 된 지는 불과 3년밖에 되지 않았다”라고.

“건축가는 버텨야 합니다. 제가 MIT를 나오고 하버드를 우등 졸업했지만, 건축주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서울에 돌아온 것도, 뉴욕에선 백인 남성이나 유태인이 아니면 제 이름을 건 좋은 설계를 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이게 현실입니다.”

20대 때 그는 건축을 관두고 싶었어요. 지금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위대한 직업이라 생각하지만, 당시엔 미천하다 느꼈죠. 그에겐 머릿속에 그려둔 아름다운 도시를 설계할 땅도, 자금도 없으니까요. 다행히 어느 ‘귀인’이 그를 도왔습니다.

뉴욕의 건축사사무소에서 일할 때였어요. 유독 얄미운 동료가 있었어요. “설계는 내가 최고”라는 잘난 체에 유 교수, 오기가 발동했습니다. 동료의 코를 납작 누르려 공모전에 나가기 시작했죠. 정신없이 경쟁하는 사이, 다시 건축에 맛을 들였습니다.

“제자들에게 말해요. 귀인이 꼭 고상하게 나타나진 않는다고요. 때론 ‘빌런’의 탈을 쓰고 오더군요. 그때 그만뒀으면, 지금의 저는 없었겠죠.”

유현준 교수가 설계한 ‘툇마루 하우스’의 건축 모형. 30년 넘게 건축에 전념하는 동안, 절망과 고민의 순간도 많았다. ⓒ롱블랙

콘텐츠로 기회를 얻다

20대의 슬럼프를 극복했지만 30대도 쉽지 않았어요. ‘내가 건축을 해도 될까?’ 의문에 확신을 얻고자 쉴 새 없이 공모전에 나갔습니다. 덕분에 수상도 많이 했지만, 그보다 더 많이 떨어졌어요. 늘 초조했기에 지금 제자들의 고충을 이해합니다.

“건축가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큰 직업이에요. 원치 않는 설계를 하면서 힘들어하는 제자들에게 늘 말합니다. ‘견뎌라.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것을 창피하게 여기지 말아라. 정말 숭고한 일이다.’”

유 교수도 생계를 위해 고군분투했습니다. 30대 후반, 서울에 돌아와 홍익대 교수로 재직하며 건축사사무소를 열었지만 일거리가 들어오지 않았어요. 

그때 경향신문에서 칼럼 제안이 들어옵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어요. 유 교수는 건축을 통해 바라본 세상을 쉬운 글로 써내려갔습니다.

독자들은 어디서도 못 본 신선한 글이라고 평가했어요. 그럴 법했습니다. 논문처럼 남의 저서를 인용한 게 아니라, 자신의 고유한 생각을 썼으니까요.

이를테면 직접 고안한 ‘이벤트 밀도’ 개념. 일정한 거리(100m)에 출입구가 많을수록 이벤트 밀도가 높아지고, 그럼 ‘우연성’이 넘쳐 생기 있는 도시가 될 거라고 제안했죠.

칼럼을 본 출판사가 연락해 왔어요. 유 교수의 첫 책은 마중물이 됐습니다.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방송 출연을 부르고, 굵직한 일감을 부르고… 그의 책은 곧 아시아를 넘어 영어권에서 출판된다고 해요.

“쉽고 재밌다.” 유 교수의 책에 대한 흔한 후기입니다. 스토리텔링 내공은 어떻게 키웠을까요?

“쉽게 풀어서 설명한다고 하시는데, 사실 그런 노력은 전혀 안 합니다. 어렵게 말하는 법을 모를 뿐이에요. 저는 제가 생각하는 패턴대로 얘기합니다. 그런데 이게 차별화가 됐어요.”

그는 건축 책을 잘 읽지 않습니다. ‘건축가만의 리그’에 빠지는 걸 경계하기 때문이에요. 그보다는 일상 속에서, 너무나 당연해 의문을 품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가설을 세우고, 답을 찾아냅니다.

생계를 위해 칼럼을 쓰길 참 잘했다고, 그는 회고합니다.

“‘이런 건 할 수 없어. 건축가로 성공해야 해.’ 그런 고집을 부렸다면 아직도 세상을 원망하며 살았을 수 있어요. 차선이 모여 최선이 됐습니다. 그게 제 인생이에요.”

유 교수의 신간 『인문 건축 기행』. 고유한 생각이 담긴 그의 글을 독자들은 쉽고 신선하다고 느낀다. ⓒ롱블랙

Chapter 4.
‘다양한 관계’를 품는 공간 설계

도시를 사유하는 건축가는, 어떤 집과 건물로 도시의 표정을 바꿀까요? 유현준 교수는 ‘다양성’과 ‘관계 지향성’이란 키워드를 말했어요. 

다양성

대치동 은마아파트, 여의도 광장아파트, 압구정 현대아파트까지. 서울에 재건축을 앞둔 아파트가 수두룩해요.

“다양한 주거 공간을 만들 40년 만의 기회입니다. 아파트는 우리 나라 주거 문화의 핵심이죠. 60%가 아파트에 사니까요. 문제는 다 똑같이 생겼다는 거예요. 공간이 획일화되면 사람들의 가치관도 정량화됩니다.”

그는 ‘한국인이 생각하는 중산층’을 언급했어요. 30평 이상의 아파트에 살고, 월 급여 500만원 이상에, 2000cc급 자동차를 가져야 하죠. 모든 기준이 정량화된 겁니다. 

반면 서구권의 기준은 정성적이에요. 페어플레이를 하는 사람, 악기를 다루고 자신만의 요리법을 가진 사람, 약자를 지키는 사람을 중산층으로 여겨요.

유 교수는 올해 처음으로 재건축에 도전합니다. 여의도 광장아파트 1, 2동의 재건축을 맡았어요. ‘다양성’에 초점을 맞춰 디자인했습니다.

14층짜리 아파트를 49층으로 늘리면서, 옥상에 3개 동*을 잇는 스카이브릿지를 설계했습니다. 하늘을 보며 산책하고, 이웃과 다정하게 인사하는 경로입니다.
*기존의 2개 동을 3개로 늘릴 계획이다.

저층부의 집에는 마당처럼 넉넉한 발코니가 있어요. 고층부엔 파노라마 뷰를 볼 수 있는 통 유리창이 있죠. 가족 구성원이 단절되지 않게 방과 방을 잇는 창문도 만들 겁니다. 다른 아파트와의 차별점들이에요.

유 교수가 맡은 여의도 광장아파트의 재건축 디자인. 옥상에 3개 동을 잇는 스카이브릿지를 설계했다. ⓒ유현준건축사사무소

관계 지향

유현준건축사사무소 입구에는 벤치를 겸하는 계단이 있어요. 행인이 그곳에 앉아 쉴 때 유 교수는 흐뭇합니다. 또한 1층 쇼윈도엔 건축 모형들이 전시되어 누구나 감상할 수 있죠. 잠시 머물고 들여다보는 ‘작은 관계’가 그에겐 소중합니다.

“결국 건축은 관계를 디자인하는 일이에요. 좋은 건축은 사람들을 화목하게 만들죠.”

그가 스크린에 건물 사진을 띄웠습니다. 거제도 몽돌해변에 있는 펜션 ‘머그학동’이에요. 유 교수가 설계한 2층짜리 건물은 희고 단정하지만, 반전이 있습니다. 폴딩 도어와 회전 벽을 설치한 ‘가변형 공간’이거든요. 문과 벽을 밀 때마다 공간이 나뉘고 합쳐지며 카페로, 객실로, 회의실로 변신해요.

“작은 건물도 여러 관계를 소화할 수 있어요. 회전 벽으로 공간을 나누면, 카페 손님들과 분리되어 프라이빗하게 쉴 수 있죠. 단체 손님이 오면 큰 스튜디오로 쓸 수 있고, 흰 벽은 프로젝터를 쏘는 스크린이 됩니다.”

다른 포트폴리오도 살폈어요. 공주 석남리의 황금빛 논 옆에 지은 마을회관. 건축가인 그의 눈에 ‘논’이 흥미롭더랍니다.

“논도 공간인데, 높이가 계속 변해요. 겨울엔 텅 비었다가, 모내기하기 전에 물을 채우면 풍광을 비추는 거울이 되죠. 모내기를 하면 잔디밭 같고, 벼가 자라면 바람에 너울거려요.”

다 큰 벼의 키는 80cm 남짓. 그는 마을회관의 바닥을 벼의 허리께에 오도록 설계했어요.

“마을회관 창가에 앉으면 툭 트인 논이 보입니다. 계절 따라 논이 내 눈높이보다 낮을 때도, 높을 때도 있으니 자연의 흐름을 즐길 수 있어요. 바닥의 높이를 조정한 것만으로 나와 논 사이에 재미난 관계가 생긴 거예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두루 좋은 관계를 맺게 건축해야죠.”

거제도에 있는 머그학동. 카페, 펜션, 연수원 등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는 가변형 공간이다. ⓒ유현준건축사사무소

Chapter 5.
콘텐츠 : ‘건축가 리그’에서 벗어나 말하다

그의 유튜브 채널 ‘셜록현준’의 구독자가 100만 명을 넘겼어요. 대한민국 인구의 50분의 1, 전체의 2%나 되는 숫자예요. 유 교수는 앞으로 10년 넘게 유튜브를 하며 이 비율을 높일 계획입니다. 구독자들은 도시 이야기를 퍼뜨릴 ‘스피커’이죠.

“학부모들 사이에선 새로운 학교 공간을 위한 움직임이 있어요. 중고등학생들도 건축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요. 미래 건축주들의 미감이 기대됩니다.”

실무적으로도 시너지가 있어요. 그의 철학에 동의하는 건축주들이 찾아오고 있죠. 유 교수의 최신작은 대부분 3년, 5년 뒤 완공됩니다. 그때까지 유튜브로 건축 의도를 기록할 거라며 소년처럼 즐거워하더군요.

소신을 밝히는 일에 부담은 없을까요? 그는 고개 젓습니다. 

“건축가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길 원하는 사람이에요. 관점이 분명한 사람에게 어울리는 직업이죠.”

살기 좋은 도시를 위해, 유 교수는 미래의 건축주인 청소년들이 미감을 기르길 독려한다. ⓒ롱블랙

Chapter 6.
마치며 : 고유한 관점을 위해, 집요하게 사유하라

인터뷰 내내 그는 명료했습니다. 이토록 단단한 관점은 어디서 왔을까요? 그는 두 가지 사유법을 소개했습니다.

사유법 1 : 내 기분이 왜 이럴까?

새로운 공간에 진입할 때마다 사람의 기분은 바뀝니다. 유 교수는 그때마다 “내 기분이 왜 이럴까?” 곱씹어보길 권해요. 

그는 교회에서도 골똘했습니다. ‘왜 예배 중에는 졸려도 나가기 어려울까?’ ‘예배당의 의자가 길고 양 끝에 사람들이 앉으니까, 가운데 앉은 내가 나가면 민폐구나.’ ‘순응할 수밖에 없으니 공간에 권위가 생기는군.’ 그렇게 기분을 캐물으며 논리를 구축했습니다. 다만 실무에 활용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해요.

“깨달음을 얻어도 바로 설계로 이어지진 않아요. 빵의 재료가 버터와 계란, 밀가루임을 알아도 빵으로 굽는 레시피를 알기까지 시간이 걸리죠. 그것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유법 2 : 단 하나의 프리즘을 간직하라

또한 사유에는 ‘구심점’이 필요합니다. 천 권의 책을 읽어도 구심점이 없으면 정보가 뿔뿔이 흩어지죠. 그의 구심점은 ‘건축’입니다.

“책을 읽든 영화를 보든 모든 걸 ‘건축’과 연결해 생각했어요. 세월이 쌓이자 견고한 프리즘이 되더군요. 어떤 인풋이 들어와도 그 프리즘을 투과해 선명한 빛깔로 나오죠. 사람들은 제 빛깔을 ‘관점’이라 부릅니다.”

유현준 교수가 알려주는 두 가지 사유법. 내 기분의 이유를 곱씹을 것, 그리고 사유의 구심점을 가질 것. ⓒ롱블랙


롱블랙 프렌즈 B

밀크티를 마시며 대화하는 사이, 도시에 어둠이 내렸습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참 솔직하시다”고 말했어요. 유현준 교수는 끄덕이며 “솔직하려 노력한다”고 답하더군요. 그의 메시지를 전하며, 오늘의 노트 마무리하겠습니다.

“제가 이야기하는 것들은,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깨달은 거예요. ‘내가 왜 이런 기분이 들지?’라는 질문에서 많은 게 출발하잖아요. 그 원인과 결과는 내가 제일 잘 알겠죠. 그래서 자신에게 솔직해야 합니다. 남 따라 하지 말고, 눈치 보지 말고, 자유롭게 사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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