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블랙 프렌즈 C
“시영 선배 같은 분이 각 분야에 한 명씩만 있어도 한국 청년들이 더 살 만해질 것 같다.”
SBS 유튜브 채널 <문명특급> 69회에 달린 댓글이에요. 해당 회차에는 연예인이 아닌 한 포스터 디자이너가 출연했죠. ‘디자이너’보다 ‘선배’라는 호칭으로 더 많이 불리는, 박시영 포스터 디자이너예요.
박시영 디자이너는 「마더」, 「하녀」, 「곡성」 등 유명 영화의 포스터를 제작해 왔어요. 그는 정상의 자리에 서서 업계를 향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아요. 그래서 별명도 ‘따르고 싶은 꼰대.’ 롱블랙과 만난 그는 웃으며 말했어요. “영화판은 이제 재미없다”고.
박시영 디자이너
박시영 디자이너는 2005년부터 디자인 스튜디오 ‘빛나는’을 운영하고 있어요. 약 20년 동안 500개가 넘는 포스터를 제작해 왔죠. 「꿈의 제인」, 「윤희에게」 같은 독립영화부터 「곡성」, 「관상」, 「동주」, 「추격자」 같은 흥행작 할 것 없이요. 이제 한국 영화 포스터는 ‘박시영 표’가 표준이 됐어요. 최근 그는 「마스크 걸」 포스터로 대중들과 만났고, 곧 개봉할 영화 「베테랑 2」의 포스터 역시 그가 맡았어요.
밤새워 작업하는 디자인 노동자의 모습이 떠오르나요? 반대예요. 박 디자이너는 나만의 템포를 잃지 않으면서도 실력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해요. 본인이 이를 증명하는 선례가 되고자 하죠.
자기소개를 부탁하자 박 디자이너는 말했어요. “고흥에서 농사도 짓고, 물고기도 잡고, 개도 키우고, 포스터도 만드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입꼬리가 휘어지도록 웃었죠.
Chapter 1.
칭찬 한마디가 중력이 되다
박 디자이너는 구미의 한 유흥가에서 태어났어요. 어머니는 미용실을 운영하셨죠. 6살의 박시영은 반짝이는 네온사인 간판을 보며 한글을 뗐어요. 영화나 디자인, 예술 같은 것들과는 거리가 먼 삶이었다고, 그는 기억하죠.
“초등학교 6학년 때 롤러장에서 신발 벗겨주는 일을 하며 처음 돈을 벌었어요. 학생 때는 술 먹고 담배 피우고, 오토바이 타고 다니는 애였고요. 영화는 그 시절만 해도 비싼 취미였어요. 비디오 대여점 딸이랑 연애했던 게 유일한 접점이었을까요?”
박 디자이너는 새로운 세계를 원했어요. 동네에서 벗어나고 싶었죠. 처음 서울에 발을 디딘 나이는 열여덟. 오토바이를 타고 가스를 배달했어요. 영화라는 세계와 만나게 된 것도 가스 배달이 계기가 됐어요. 하루는 서울아트시네마의 전신인 문화학교서울의 모임 자리에 배달을 간 거예요. 생각 없이 문고리를 돌렸는데 글쎄 그가 꿈꾸던 세계가 바로 거기 있더래요.
“옷을 멋지게 입은 형, 누나들이 데릭 저먼Derek Jarman 감독의 「블루」라는 영화를 보고 있었어요. 두 시간 내내 사운드와 파란 화면만 나오는 영화였는데, 그 장면이 잊히지가 않아요. 공기 자체가 새로웠달까요. 그건 마치 자유를 꿈꿀 수 있는 세상 같았어요.”
박시영은 자연스럽게 문화학교서울에 녹아들었어요. 모임이 있는 날에 맞춰 배달을 갔고 그렇게 친해진 직원들과 사담도 나누었죠. 그가 군대에서 ‘한글 97’ 프로그램을 배워왔다고 자랑하자, 마침 일손이 부족하다며 상영회 포스터를 하나 맡겨 왔어요.
한글 97로 만든 표에 색을 채운 게 다였던 첫 포스터. 하지만 “너 디자인 잘한다, 한 번 제대로 해봐라”는 말이 돌아왔어요. 좋아하는 형, 누나들이 툭 던진 한마디. 태어나 처음 듣는 칭찬이었죠.
그 말 하나가 박시영의 세계에 엄청난 중력으로 작용했어요. 그의 온 신경이 포스터 디자인으로 빨려 들어갔죠. 때마침 홍대를 중심으로 인디 문화가 퍼지던 시기였어요. 박 디자이너는 작은 라이브 클럽이나 소규모 파티의 포스터를 만들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해요.
Chapter 2.
사람들이 원하는 건 매력, 그건 캐릭터에서 나온다
문화예술과 가까운 삶을 산 것도 아니고, 디자인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닌 박시영의 포스터가 주목받은 이유. 아이러니하게도 ‘비전공자’여서예요. “초심자의 행운이었다”고 박 디자이너는 말해요.
“업계가 돌아가는 시스템을 몰랐어요. 그냥 제가 갖고 있는 생각대로 막 해봤습니다. 순탄치 않았던 삶의 환경 덕인지, 과감하고 독특한 스타일이 만들어졌어요. 틀을 모르니 오히려 새로운 틀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거예요.”
글쎄요. 제가 보기에 그가 선택받는 이유는 분명해요. 매력 때문이죠. 사람들은 가장 좋은 것이 아닌, 가장 매력적인 것에 마음을 여는 법이니까요. 그리고 그 매력은 캐릭터에서 나오죠. 박 디자이너가 말한 ‘과감하고 독특한 스타일’ 말예요.
예를 들어 2004년 제8회 부천판타스틱영화제 포스터. 그가 처음 대중적으로 주목받은 작품이에요. 기존 영화제 포스터의 틀을 완전히 뒤흔들었죠. 당시 대부분의 포스터는 정보 전달 중심이었어요. 조금 단편적으로 말하자면 안상수체 폰트로 글씨가 쓰여 있곤 했어요.
반면 박시영 표 포스터는 실험적이었어요. 다소 그로테스크한 하위문화 코드를 집어넣었거든요. 쨍한 노란색 배경에 타이틀은 손글씨로 투박하게. 정중앙에는 생뚱맞게도 ‘소시지 샴쌍둥이’ 캐릭터가 카메라를 든 채 앉아 있고요. 한 편의 잔혹 동화 콘셉트였다고 할까요.
‘그런데 왜 하필 소시지 캐릭터였냐’고 묻자, 박 디자이너가 웃으며 답했어요. “시장님이 절대로 컨펌하지 않을 것 같아서”라고.
“젊은이들이 밑바닥부터 시작한 인디 영화제가 유명해지니까 어느 순간 공무원들이 얼굴을 들이미더라고요. 그게 꼴 보기 싫었어요.”
권위는 파격을 싫어하죠. 제8회 부천판타스틱영화제 포스터는 세간의 화제가 됐지만 부천시의 환영을 받지는 못했어요. 이를 계기로 박 디자이너는 생각했죠. “돈을 벌려면 상업 영화를 다뤄야겠다”고. 그는 한 영화제의 단상에 올라 감독들을 향해 말했어요. “포스터로 돈 벌고 싶으니까 나한테 일 달라”고.
포스터란 영화의 인상을 만드는 것
그렇게 계약한 첫 상업영화 포스터가 2006년 류승완 감독의 「짝패」였어요. 제44회 대종상에서 인기상을 수상한 작품이에요.
그간 한국 영화계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류승완식 재기발랄함과 더불어, 박시영 디자이너의 파격적인 포스터가 시너지를 냈어요. 포스터에서는 금방이라도 배우들이 날려차기를 할 것처럼 점프하고 있죠. 영화의 한 장면을 그대로 도려낸 듯이요.
박시영 디자이너는 포토샵을 새로 배워야 했고, 일러스트로 그림 그리는 데에만 3주 넘게 걸렸어요. 그럼에도 전에 없던 스타일을 고집했던 이유. 포스터의 본질이 ‘인상을 각인시키는 데’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사람들은 포스터는 정보 전달이 1순위라고 생각하죠. 전 아니에요. 포스터는 정보가 아니라 인상을 각인시키는 거거든요. 2시간짜리 영화가 갖고 있는 하나의 이미지를 압축해서 사람들 머릿속에 팍 집어넣는 거예요. 그래서 포스터는 좀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매체예요. 그래서 매력적이고요.”
Chapter 3.
레이어와 함축, 이미지의 작동 방식
박시영 디자이너에게 포스터 제작이란, ‘한 영화를 압축해 하나의 인상으로 만드는 작업’인 셈이에요. 강렬한 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뭐가 중요할까요?
“여러 겹의 정보를 페스츄리처럼 쌓아야 해요. 인물의 표정, 배경이 된 장소, 액션이라는 장르, 영화의 톤앤매너. 이것들이 한데 모여 인상이 만들어지죠.
신기하게도 우리 인간에게는 그 압축파일을 푸는 인지 능력이 있어요. 훈련받지 않아도 아주 본능적으로 해내죠. ‘네 친구에 대해 한 줄로 설명해 봐’랑 똑같은 거예요.”
「곡성」 포스터는 매력적인 레이어들만 골라 쌓은 대표작이에요. 가령 배우 황정민이 카메라를 들고 서 있는 모습, 결말에 관한 힌트였어요. 영화를 다 본 관객에게 포스터는 일종의 스포일러처럼 느껴지죠. 배우 천우희만 반투명하게 표현한 포스터 역시, 그가 귀신(무명 역)이라는 정보를 심어놓은 거예요.
심리적 레이어도 쌓습니다. 곡성은 특히 ‘혼란스러움’이 지배적인 정서의 오컬트 영화죠. 박 디자이너도 포스터에 일부러 여러 요소를 집어넣어, 그 정서를 증폭시켰어요. 또 여름에 개봉하는 공포 영화이니 창백하고 푸른 빛의 색감을 사용했고요. 티켓 파워가 강한 곽도원, 황정민 배우의 얼굴을 크게 내세우기도 했죠.
“포스터 제작자인 제 자신의 개인적인 감상, 거기에 시스템과 사회적인 맥락이 모두 갖춰줘야 포스터 하나가 완성되죠. 배우들의 이미지, 상업적인 규모, 개봉 당시의 사회 분위기… 엄청나게 많은 것들이 뒤섞여요. 마치 한약재를 넣은 다음에 끓여서 한 방울 간신히 짜내는 것과 같죠.”
이 모든 정보를 함축해 이미지화하는 것이 포스터의 미션. 그래서 박 디자이너는 함축적인 표현이 주로 쓰이는 문학 작품으로 이미지화를 연습해요.
“시는 포스터와 닮았어요.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뼈아픈 후회, 황지우)’라고 하면, 사랑하는 이와 헤어진 뒤 낙엽이 나뒹굴고 모든 게 휩쓸려 간 폐허가 떠오르죠. 건물이 무너진 폐허가 아니라요. ‘사랑’과 ‘자리’, 과거형이라는 레이어 때문이에요. 그 시적 상황을 이미지화해서 비주얼 작업으로 남길 수 있겠죠. 영화 「윤희에게」 포스터를 그렇게 만들었어요.”
Chapter 4.
창작자의 미션, 친절하게 새롭기
박시영 디자이너는 지금까지 500개가 넘는 포스터를 만들어 왔어요. 그가 생각하는 ‘좋은 포스터’란 무엇인지 묻자, ‘공동의 목표를 가지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어요. “비단 포스터뿐 아니라 모든 창작 활동이 그래야 한다”고도 덧붙였죠. 새로우면서도 친절해야 한다는 거예요.
“예술적이면 안 팔린다는 건 편견이에요. 사실 가장 잘 팔리는 디자인은 독창적인 디자인이거든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낯선 걸 좋아해요. 그 낯선 걸 강압적으로 주입하려는 걸 싫어하지. 그래서 낯설되, 친절해야 해요. 그 두 가지가 먼 것처럼 느껴질지라도, 창작자라면 동시에 해내야죠.”
박 디자이너는 걸그룹 뉴진스와 애플을 예시로 들어요. 뉴진스는 전에 없던 걸그룹의 느낌을 주지만, 하나하나 분해해 보면 Y2K, 레트로, 올드힙합, 청량한 소녀의 이미지 등 익숙한 요소들이 들어있죠. 애플의 아이폰 역시 혁신으로 평가받았지만, 이미 키패드로 자판을 두드리는 행위가 우리에게 익숙했기에 대중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어요.
1. 낯섦 : 새로움은 관객으로부터 완성된다
박 디자이너는 모든 작업에 새로움과 친절함을 고루 섞으려고 노력해요. 중요한 건 작품에 맞게끔 그 비율을 조절하는 것. 시대극인 「동주」의 포스터는 초안과 완성본이 꽤 달라요. 초안은 배우 강하늘(윤동주 역)이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어요. 박 디자이너는 이 디자인이 친절함에만 치중됐다고 느껴 포스터를 수정했어요.
완성본 속 윤동주는 사뭇 달라요. 살짝 긴장한 듯 무표정한 얼굴로 의자에 앉아 있죠. 고등학교 졸업 사진 같은 구도예요.
“동주와 관객 사이에 거리를 둔 거예요. 초안은 사람들이 쉽게 윤동주의 고통을 느끼지만, 최종안은 관객이 윤동주의 감정을 적극 상상하게 만들죠. 시대상(일제식 교복)만 남겨 놓고, 나머지를 담백하게 만든 덕분이에요.”
2. 친절함 : 관객의 클라이맥스는 주변부에 있다
반면 영화가 대중에게 낯선 소재일수록 친절함의 비중이 높아야 해요. 예를 들어 「윤희에게」는 동성애를 다룬 영화예요. 인물에 이입하기보다 관객의 입장에서 포스터를 제작했어요.
눈 오는 오타루의 거리를, 배우 김희애(윤희 역)와 배우 김소혜(새봄 역)가 걷고 있어요. 사연을 알 수 없는 모녀가 조용히 동행하는 모습. 포스터를 보고 있으면, 그 두 사람을 지켜보는 관찰자가 된 것 같아요.
“때로는 영화의 부수적인 요소가 관객의 감상과 더 맞닿기도 합니다. 「윤희에게」의 중심은 동성애 코드의 사랑 이야기예요. 이대로 포스터를 만들면? 아련한 멜로의 느낌을 줘야겠죠. 하지만 저는 다르게 생각했어요. 딸과 함께 걸어가는 엄마의 걸음걸이, 처연해지는 일본 오타루의 풍경에서, 관객들은 더욱 감정적인 카타르시스를 느낄 거라고.”
중심에서 벗어난 포스터를 만들면, 영화의 의도가 전달되지 않는 건 아닐까요?
“감독의 의도는 중요하지 않아요. 제작 의도를 고스란히 알리는 게 영화는 아니잖아요. 엔터테인먼트란 관객 각자가 영화에서 좋은 순간을 찾는 거죠. 감독과 관객의 카타르시스가 일치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괴리가 있어요. 친절하기 위해서는 이때, 관객의 편에 서야 해요.”
Chapter 5.
영화 산업, 더 이상 엔터테이닝하지 않다
박시영 표 디자인은 이제 한국 포스터 산업의 스탠더드가 됐어요. 한국 관객들에겐 정보형 포스터보다, 인상형 포스터가 더 친숙하죠. 한국 영화계의 ‘넥스트 포스터’는 어떤 모습일까요? 박 디자이너에게 영화 포스터 트렌드를 물었어요. 충격적인 대답을 들을 수 있었죠.
“더 이상 트렌드는 없어요. 영화는 촌스럽고 낡은 매체가 돼버렸죠. 코로나 이후 영화 산업이 이전 같지 않으니까 자본에 휩쓸리고 있어요. 마블, 디즈니, 바비… 전부 검증된 IP로만 영화를 만들어요. 일종의 자기 복제 현상입니다.”
그렇게 영화의 개성이 줄은 만큼, 포스터의 개성도 함께 줄어들고 있죠. OTT에서는 몰개성화가 더 심각하다고 그는 말했어요.
“OTT는 모든 걸 데이터 위주로 판단하니까요. 안전한 콘텐츠를 바라죠. 그런데 이미지, 엔터테인먼트, 여흥과 즐거움. 이런 게 과연 정량화될 수 있나요? 혹시 넷플릭스 포스터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나요? 없죠.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냥 ‘어떤 배우가 출연한다’는 정보만 있거든요. ‘관객의 열광을 얻어내고 싶다’가 아니라, ‘어떤 게 실적이 더 높을까’를 목적으로 한 포스터라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는 최근 영화에서 벗어난 작업들에 도전하고 있어요. 글로벌 기업과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고, 버추얼 아이돌의 콘서트 포스터도 디자인했죠.
업계 정상에 선 디자이너가 쓴소리하는 모습. 멋있지만, 암울하기도 해요. 영화 산업이 그의 말대로 개성을 잃고 있다면, 영화를 꿈꾸는 이들은 모두 어디로 가야 하죠?
“나쁜 얘기 해서 안 올 사람이면 오지 말아야죠. 좋은 것만 보면 환상만 품는 거예요. 시장이 정체돼 있다면, 싸울 생각을 하세요. 싸우고, 설득하는 것이야말로 창작자의 의무예요. 자본에 착한 척하지 말고, 내 철학을 고집하세요. 무기를 만드세요. 그래야 산업을 이끌고, 바꿀 수 있습니다.”
Chapter 6.
트렌드는 소비가 아니라 추구다
나만의 무기는 어떻게 만들까요? 박시영 디자이너가 권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내 생활 반경에서 벗어나는 것.’
“싫어하는 걸 보고, 싫어하는 음악을 들으세요. 좋아하는 것만 하면 내 세상이 얼마나 쪼그라들겠어요. 퇴근하고 집 가서 라면 끓여 먹고 원룸에 누워 바라보고 있는 게 5인치 휴대폰 화면이라면, 차라리 밖으로 나가세요. 한강을 걷거나 아니면 클럽에라도 가세요.”
박 디자이너 그 자신이 그렇게 살고 있어요. 서울살이를 접고 전남 고흥으로 내려간 지 3년째죠. 아침에는 물고기를 낚고, 주민들만 아는 맛집을 찾아다니고, 마을 사람들과 친해지며 사는 중이에요.
그러다 보니 깨달은 게 있어요. 서울에서 즐겼던 도시의 삶보다, 고흥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훨씬 개성 있다는 것.
“트렌드 즐기는 거 너무 재밌죠. 저도 클럽 VIP였는걸요.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세요. 조말론 향수 뿌리고 성수동 가서 팝업 보고, 젠틀몬스터에서 선글라스 한 번 껴보는 거. 그건 그냥 브랜드 소비예요. 코앞에 있는 유행을 따르다가 획일화되지 말고,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아보세요. 나를 예외적인 사람으로 만드는 거죠.”
밤샘 작업, 가장 게으른 방식
“포스터 디자이너를 꿈꾸던 시기, 유일하게 메일에 답해줬던 선배님이다.”
박 디자이너의 인터뷰 기사에는 종종 그를 ‘선배님’이라 칭하는 댓글들이 달려요. 실제로 그는 업계 선배로서 많은 것을 바꾸고자 해요. 최우선 숙제는 ‘일하는 방식.’ 당연시되는 밤샘 작업을 없애는 것이, 디자이너로서의 또 다른 미션이에요.
“무조건 밤새우면서 일하고 ‘열심히 했다’ 느끼는 거. 죄송하지만 게으른 거예요. 무능한 거죠. 입시 위주 교육의 가장 큰 폐해라고 생각해요. 어렸을 때부터 책상 앞에 앉아서 무조건 열심히만 했으니까요. 밤을 새워서 하는 게 프로페셔널한 게 아니라, 포뮬러한 리듬을 갖는 게 진짜 프로페셔널이에요.”
그는 스튜디오 ‘빛나는’을 전면 재택·원격 근무 체제로 운영해요. 서울에 사무실이 있었을 때도 저녁 6시가 되면 전기를 꺼버렸어요. 초반에는 클라이언트보다도, ‘야작’에 익숙한 직원들을 설득하는 게 더 어려웠다죠.
박 디자이너 역시 초기에는 발로 뛰며 영업해야 했고, 술을 사 가며 계약을 따냈어요. 하지만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일하는 지금이나 그때나, 그는 한결같이 ‘잘하는 디자이너’일 뿐이죠. 능력은 ‘몸빵’으로 채워지는 게 아니니까요. 직원들에게도 스스로 해나가는 법을 가장 먼저 가르쳐요.
“프로젝트 방향성 같은 것을 일절 말해주지 않아요. 지시를 따르는 건 디자인이 아니에요. 그냥 오퍼레이터지. 개성 있는 디자이너가 되려면 스스로 판단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의 개성을 제가 대신 만들어주면 안 되거든요. 그러면 걔네는 제 수족이고, 제 아류밖에 안 돼요.”
박시영 디자이너의 자부심은 그의 작업물보다도, 그가 독립시킨 후배들의 작품에서 나와요. 후배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어느 때보다 밝게 웃음 지었죠.
“우리 스튜디오에서 독립한 친구들 보는 거, 그게 제 프라이드예요. 내가 내 나와바리는 만들었구나, 뿌듯하죠.”
롱블랙 프렌즈 C
인터뷰가 끝나기 직전 물었어요. “지금 커리어를 쌓아가는 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세요?” 박 디자이너는 막연한 응원보다 따끔한 한마디를 해줬어요.
“자기 연민 때문에 무너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그런데 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요.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한테 관심이 없거든요. 그래서 제일 잘해줘야 하는 사람은 나 자신이에요.
그러려면 먼저 나한테 이쁜 짓을 해야 돼. 내가 나한테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행동을 의식적으로 하세요. 내가 노력한다고 느끼는 순간, 그때 나한테 좀 너그러워질 거예요. 나를 깨는 방법은 딱 그거밖에 없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