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디자이너가 내놓는 결과물이 아니라 디자이너가 생각하는 방식 자체가 비즈니스에 더 중요하다고 여겨집니다. 그렇게 나온 것이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이죠. 디자인 씽킹이란 디자이너가 어떻게 결과물을 내놓는지를 도식화한 5단계의 과정입니다.
①공감 ②정의 ③아이디어 도출 ④프로토타입 제시 ⑤테스트
분석적 사고만 중시하던 비즈니스 세계에서 디자인 씽킹은 직관적인 사고를 통해 전에 없던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주는 강력한 방법론으로 떠오르고 있어요!
아이디오 : 디자인 씽킹의 시작은 공감에서부터

디자인 씽킹의 핵심은 첫 번째 단계, 공감empathy에 있습니다. 사용자를 관찰하는 것을 넘어, 이들의 입장에서 문제를 발견하는 과정입니다.
이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겸손한 마음입니다. 내가 잘하는 것, 내가 아는 것을 내려놓아야 해요. 사용자를 관찰하고, 그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찾아야 하죠.
아이디오는 1991년 미국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에서 출발*했습니다. 지금은 세계 아홉 개 도시에 700여 명의 직원을 둔 세계적 디자인 컨설팅 회사예요. 애플이 출시한 최초의 마우스, 마이크로소프트의 첫 번째 인체공학적 마우스 등 혁신적 제품으로 유명합니다.
*아이디오의 전신인 데이비드 켈리 디자인DKD은 1978년 설립됐다. 아이디오는 데이비드 켈리 디자인, 아이디투, 매트릭스 프로덕트 디자인의 합병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아이디오가 정말 탁월했던 건 제품 디자인만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디오는 디자이너들은 어떻게 세상을 관찰하고, 어떻게 창의적인 결과물을 내놓는지를 세상에 알렸습니다. 디자인 씽킹 프로세스를 통해서죠.
“사용자를 관찰하고,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늘 내가 모르던 어떤 지점에 가 닿게 됩니다. 처음 생각에서 90도, 180도, 때론 30도 정도를 틀면서 목적지에 도착하죠. 끝을 알 수 없다는 게 정말 즐거운 점이에요. 끝이 보이는 일은 지루하잖아요. 중요한 건 내 생각을 버리는 겁니다. 오직 사용자만 바라봐야 해요. 사용자가 편하다고 느끼나? 사용자가 만족하나? 사용자가 궁극의 리뷰어reviewer가 돼야 해요.”
1996년, 아이디오가 오랄비Oral-B와 함께 어린이 칫솔을 개발할 때의 일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어린이 칫솔은 성인 칫솔보다 막대 부분이 짧고 얇았어요. ‘아이의 손은 작으니까’라고 생각해서 나온 디자인이었죠.
아이디오는 관찰 첫날부터 중요한 발견을 합니다. 아이들이 칫솔질할 때 주먹을 아주 꽉 쥐고 움직이는 거예요. 손가락 힘이 부족한데, 칫솔 막대는 얇고 짧잖아요. 손에 힘이 많이 들어간 거죠. 아이디오는 아이들이 편하게 쥘 수 있도록 칫솔 몸통을 더 통통하고 길게, 그리고 부드럽게 만들었습니다.
아이디오가 처음 사용자 관찰을 한다고 할 때만 해도 오랄비 측에선 의아해했다고 해요. 로켓 과학도 아니고 고작 어린이 칫솔을 만드는 데 현장 조사까지 필요하냐는 거였죠. 하지만 책상에 앉아 머리로만 상상했다면, 새로운 칫솔이 나올 수 있었을까요?

이 외에 무수히 많은 제품이 아이디오식 사용자 관찰로 탄생했습니다. 육아용품 브랜드 윌로우Willow의 웨어러블 모유 착유기(2017년)는 엄마들이 모유를 짤 때 한자리에 꼼짝없이 앉아 있어야만 한다는 불편함을 포착해 탄생했습니다. 당뇨 관리 전문 회사 아센시아Ascensia와 손잡고는 당뇨 환자들의 혈당 관리 앱(2016년)을 만들었습니다. 당뇨 환자들이 하루에도 여러 차례 혈당과 먹은 음식 등을 따로 체크해야 하는 불편을 줄여주기 위한 것이었죠.
디자인 씽킹을 비즈니스 세계에 퍼뜨린 아이디오와 데이비드 켈리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해보세요!

모나미 : 디자인 씽킹으로 돌파구를 찾다

모나미. 국내 문구 업계 1위 브랜드에요. 문구 시장 점유율이 44%*에 달합니다. 시장 점유율 2위는 양지사(20%), 3위는 모닝글로리(19%), 4위는 동아연필(7%)이죠. 2, 3, 4위 다 합치면 모나미랑 점유율이 비슷할 정도예요. 그만큼 압도적이라는 거죠.
*2022년 모나미 사업보고서
그렇다고 아주 느긋한 상황은 아니에요. 사실 문구시장 침체가 심하거든요. 학령 인구가 줄고 있잖아요. 필기구 매출도 덩달아 줄어들고 있죠.
송하경 회장이 찾은 돌파구가 바로 디자인 씽킹이에요. 소비자를 관찰해서 문제 해결을 찾는 사고법이죠. 디자이너들처럼 말이에요. 모나미는 유명 컨설팅 회사 아이디오의 조언을 받았어요.
이때 나온 전략의 핵심은 빠른 프로토타이핑Prototyping. 시제품을 빠르게 내놓고, 시장 반응을 보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 고객의 숨은 욕망을 찾을 수 있다는 거였어요.
사내에 열 개가 넘는 제품 개발 TF가 생겨요. 고객을 관찰하고 다양한 시제품을 내놓기 시작하죠. 수산시장 상인을 관찰해 만든 ‘물기에 잘 써지는 마카’, 네일아트가 취미인 사람들을 관찰해 만든 ‘네일아트 펜’, 의사들이 일반 마카로 수술 부위를 표시하는 걸 보고 만든 ‘스킨라이너’가 대표적이에요.
이렇게 사고를 확장하다 보니,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기 시작했다고 해요. 가장 성공적인 전략이 바로 ‘프리미엄화’였죠. “과연 펜을 필기구로만 봐야 할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전략이에요.

그렇게 나온 첫 프리미엄 제품이 ‘모나미 리미티드 1.0 블랙’. 볼펜의 몸통을 황동으로 바꾸고 니켈로 도금했어요. 차분한 은빛의 금속 볼펜이 탄생했죠. 판매가는 2만원. 153 볼펜의 60배가 넘는 가격이었어요.
회사 전체가 ‘과연 이게 될까’ 반신반의했다고 해요. 하지만 디자인 씽킹의 핵심을 다시 생각했죠 ‘일단 빠르게 내놓고 시장 반응을 본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어요. 한정판 1만 개는 2시간 만에 품절됐죠. 중고가는 40만원까지 오를 정도로 인기였습니다. 153의 프리미엄화가 가능하다는 게 증명된 거에요.
10년째 진행 중인 프리미엄화. 사업적으로도 효과가 있었어요. 모나미의 프리미엄 제품 매출은 2014년 이후 연평균 30%씩 성장했다고 해요.
디자인 씽킹으로 위기를 극복한 모나미의 이야기를 아래 링크를 통해 좀 더 자세히 만나보세요!

알로소 : 디자인 씽킹을 소파에 접목하다

알로소는 2016년부터 퍼시스 그룹이 내놓은 세 번째 신사업이에요. 2016년 사무용 가구 브랜드 데스커DESKER, 매트리스 브랜드 슬로우 베드SLOU BED에 이어, 2018년 소파 브랜드 알로소를 론칭했죠.
알로소 상품 기획이 특별한 건 기획의 앞단을 매우 강하게 잡는다는 거예요. 퍼시스 그룹이 유럽의 유명 디자이너들과 협업하며 배운 거였죠. 알렉산드로 멘디니Alessandro Mendini*, 클라우디오 벨리니Claudio Bellini** 같은 디자이너들과 일하면서 손태희 사장은 “디자인이 나오는 절차가 완전히 다르다”고 느꼈다고 해요.
*이탈리아 출신의 건축가 겸 산업디자이너로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디자인 거장으로 꼽힌다. 그로닝겐 미술관, 일본 히로시마 파라다이스타워를 설계했고, 춤추는 여인을 닮은 와인 오프너 ‘안나G’를 디자인했다. 알로소 암체어 뚜따TUTTA는 2019년 2월 세상을 떠난 그의 유작이 되었다.
**이탈리아 대표적인 산업 디자이너로 전세계를 누비며 ‘아르테미데’ ‘발터놀’ 등 명품 가구 회사와 일했다. 퍼시스그룹과 10년 넘게 협업을 하며 알로소의 대표 소파 케렌시아QUERENCIA, 보눔Bonum 등 여러 제품을 디자인했다.
“유럽 디자인팀은 확실히 앞쪽에 시간을 길게 써요. 어떤 콘셉트, 어떤 톤이 필요한지를 놓고 치열하게 토론해요. 그렇게 중심을 잡고 나면 정작 제품 스케치는 빠르게 나와요. 스케치가 우리가 잡은 콘셉트과 다르다고 생각하면 빠르게 엎고 다시 스케치하기도 하고요. 콘셉트가 확실하면 최종 결과물이 흔들리지가 않아요. 중심을 보면서 거기 맞게 디자인하니까요. 이 중심이 없으면 디자인하면서 외부를 쳐다봐요. 사람들이 좋아할까, 하면서 계속 디자인을 뜯어고쳐요. 이렇게 해선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가 생길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_손태희 퍼시스 그룹 사장
앞단의 기획을 단단히 잡는 것. 팀은 디자인 씽킹 프로세스Design Thinking Process를 가구 기획에 적용했어요. 사용자 관찰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책을 제품 디자인에 녹여 넣는 거죠.
보통 기업의 상품 출시 과정을 볼까요? 기획팀이 시장을 조사하고, 제품 콘셉트를 도출해요. 디자인팀은 이 콘셉트를 시각화하고, 개발팀은 그 디자인을 설계로 구현하죠. 이후에 시제품 제작과 양산 프로세스가 진행돼요.
디자인씽킹은 이런 순서도가 없어요. 처음부터 기획자, 디자이너, 개발자가 한 자리에 모여. 아이디어 회의부터 시장 조사와 고객 관찰을 동시에, 반복해서 진행하죠. 즉석에서 샘플을 만들어보고 콘셉트를 정교화할 수 있는 게 장점이에요. 고객을 가까이 관찰하는 실무진들이 제품 방향을 계속 수정하며 잡아나갈 수 있어요.

알로소의 첫 제품, 2018년에 나온 사티SATI를 볼까요? 지금까지 알로소에서 가장 많이 팔린 모델이기도 해요. 모양이 독특해요. 팔걸이가 없거든요. 세 면이 마치 단단한 벽처럼 사람을 감싸는 독특한 형태예요.
사티는 ‘눈으로 보기만 해도 편안함이 확 느껴지는 소파는 없을까’하는 질문에서 출발했어요. 소파의 기능보다, 한눈에 떠오르는 감성에 주목한 거죠.
기획자가 디자이너에게 “팔걸이를 높인 소파를 그려주세요”라고 주문한 게 아니에요. ‘보기만 해도 편안한 소파’ ‘부드러운 착좌감이 셰입shape에 드러나는 소파’ 같은 분명한 콘셉트를 정한 거예요. 팔걸이가 없는 파격적인 디자인에 처음엔 모두가 놀랐지만 콘셉트에 부합하는 디자인이라고 모두 인정했죠.
“보통 소파 팔걸이를 베고 눕거나 팔을 기대잖아요. 그런데 팔걸이가 없어도 편하더라고요. 3면이 벽처럼 둘러져 있으니까, 모서리에 비스듬히 기대 쉴 수 있죠. 보자마자 소파가 나를 안아줄 것 같다는 느낌도 들고요.”
_마미란 알로소 상품기획 파트장
디자인 씽킹으로 신사업을 개척해나가는 알로소의 이야기를 아래 링크를 통해 더 자세히 알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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