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가격으로 경쟁할 순 없어요. 소비자에게 정의 당할 수 있느냐가 경쟁력이에요. 그러려면 소비자를 움직일 수 있는 동기 부여가 브랜딩에 녹아 있어야 해요. 저는 그게 ‘나의 소비가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다’는 동기 부여라고 생각해요.
_'김성준 : 제냐부터 시몬스까지, 브랜드를 만들려면 사회부터 읽어라'노트 중 발췌
상장사라면 ESG 리포트를 내야 하고, PR 예산은 줄여도 ESG 예산은 늘리는, 그야말로 ESG가 필수인 세상에서 시몬스 김성준 부사장은 이렇게 말했어요. 그렇다면 ESG가 정확히 무엇이고 요즘의 기업들은 어떤 방식으로 이를 실천하고 있을까요?
유한킴벌리, 블랙앤어브로드, 초바니. 각자만의 방식으로 ESG를 실천하고 있는 세 기업을 통해 자세히 알아볼게요!
Environmental : 유한킴벌리의 40년을 지속한 ESG 캠페인

ESG의 E는 Environmental의 약자로 기업 구조가 얼마나 환경 친화적인지를 판단하는 지표예요.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는 유한킴벌리의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이 올해로 40주년을 맞았어요. 1984년부터 숲의 가치를 알려 온, 국내 최장수 숲·환경 공익 캠페인이죠. 지금까지 이 회사가 심고 가꾼 나무는 모두 5700만여 그루. 국내외 1277곳에 크고 작은 숲을 만들고, 가꾸고, 알렸습니다.
캠페인을 처음 시작한 이는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대표예요. 1974년 유한킴벌리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했죠.
그는 1982년 떠난 호주 연수에서 숲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호주는 곳곳에 숲이 울창했고, 숲을 지키려는 사회의 노력이 대단했대요. 한국에 돌아온 그는, “숲이 훌륭해야 국민 삶의 질도 높아진다”고 이야기하기 시작했어요.
“어딜 가든 잘 가꿔진 숲을 볼 수 있었죠. 경제뿐 아니라 환경에서도 선진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_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대표이사 사장, 2000년 매일경제 인터뷰에서
문득 궁금해집니다. 숲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과, 민간 회사가 돈과 시간을 들여 나무를 심는 것은 좀 다른 이야기가 아닌가요? 유일한 박사의 사명에 끌려 유한양행의 계열사에 입사한, 문국현 전 대표의 생각은 달랐나 봐요.
“환경 문제를 고민하다가, 한국의 물 문제뿐 아니라 산림 복구도 나라에만 맡길 일이 아니라, 시민과 기업이 같이 바꾸면, 성과가 빠를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지요.”
_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대표이사 사장, 유한킴벌리 숲·환경 캠페인 40주년 백서에서
유한킴벌리는 숲을 만들기 위해 돈을 모으기 시작합니다. 2년 동안 크리넥스 미용티슈 매출의 1%를 떼어 모았어요. 캠페인 시작 1년 전부터 정부를 설득했죠. 기업이 나라의 땅에 나무를 심는 일, 당시엔 낯설었기 때문이에요.
1년의 설득 끝에야 “국·공유지에 숲을 만들어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집니다. 1984년 11월, 산림청과 유한킴벌리의 첫 회의가 열렸습니다. 이듬해 4월, 충북 제천 백운면 화당리의 야트막한 민둥산에 잣나무 1만2000 그루가 뿌리를 내렸습니다. 유한킴벌리가 만든 첫 번째 숲이에요.
첫 숲을 만든 뒤에도 쉽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유한킴벌리는 나무심기 기부금을 전달할 때마다 세금을 추가로 내야 했어요. 민간이 정부에 기금을 내는 일이 흔치 않아, 비용 처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래요.
그럼에도 계속 나무를 심고 가꿨습니다. 매년 약 150만 그루씩, 세금을 내가며 9년을요. 1994년,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야 유한킴벌리는 비로소 기금에 대해 면세 처리를 받습니다. 캠페인이 공익 활동으로 인정받은 거예요. 그때까지 심고 가꾼 나무는 약 1350만 그루였습니다.
시민단체도 아닌데, 왜 40년 넘게 이런 캠페인을 이어온 걸까요? 그리고 또 어떻게 캠페인을 40년이나 지속할 수 있었던 걸까요.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해보세요!

Social : 블랙앤어브로드, 차별을 마케팅으로 역이용하다

S는 Social의 약자로 기업이 이윤을 남기며 동시에 사회적으로도 책임을 지고 있는지 나타내는 지표예요. 여기에는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약자들의 인식을 개선하는 활동도 포함될 수 있겠죠.
‘블랙앤어브로드Black&Abroad’. 흑인을 타깃으로 하는 여행사예요. SNS에 올리는 모든 이미지에는 흑인이 있어요. 여행 상품은 아프리카 위주예요. 주목할 점은 흑인을 향한 편견을 역이용해서 마케팅 전략으로 썼다는 것이죠.
잠깐 나쁜 말을 하나 소개할게요. “Go back to Africa.” 아프리카에 가본 적 없는 흑인들마저,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 말을 들어요. 2022년 프랑스 하원의원이 동료 의원에게 이 말을 해서 징계를 받기도 했어요.
“‘Go back to Africa’라는 문구는 여전히 쓰입니다. SNS에서 한 달에 4500회 이상, 하루에 150번, 3분에 한 번씩.”
_블랙앤어브로드 홈페이지
블랙앤어브로드 창업자인 에릭과 켄트는 이 차별의 언어를 캠페인 문구로 썼어요. ‘아프리카에 돌아가라고? 그래, 아름다운 땅으로 돌아가 주지!’ 이렇게 맞받아친 거예요.
“‘아프리카로 돌아가라’는 건, 대체 어느 나라로 가라는 건가요? 아프리카 대륙엔 54개국이 있어요. 아프리카는 세계의 심장이에요. 자원을 공급하고, 문화도 풍부해요. 아프리카는 황무지가 아니에요.”
_에릭 마틴, 2019년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때마침 당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트위터에 이렇게 썼어요. “네가 온 곳으로 돌아가라(Go Back where you came from).” 뉴욕타임스는 이 글이 유색인종colored 민주당 의원을 겨냥했다고 보도했어요.
“트럼프가 저희 캠페인에 신뢰를 더해줬죠. 이 문구가 여전히 나쁜 뜻으로 쓰인다는 게 증명됐으니까요.”
_에릭 마틴, 2019년 CNN 인터뷰에서
블랙앤어브로드는 이 문구를 더 많이 쓰라고 독려하기까지 했어요. 흑인 여행자들에게 휴가 사진을 SNS에 게시할 때 #GoBackToAfrica를 추가하라고 했죠. 그리곤 이 태그를 달아준 사진을 모아서, 홈페이지에 전시했어요.

“구글 비전을 사용해서 실시간으로 해시태그를 추적해요. 누가 온라인에서 그 해시태그를 사용할 때마다,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흑인들의 이미지가 우리 사이트로 올라와요.”
_에릭 마틴, 2019년 CNN 인터뷰에서
캠페인 사이트에 들어가면 온통 아프리카로 돌아간 흑인 사진 뿐이에요. 사이트의 이름은 ‘혐오 대체하기(displace the hate)’. 아프리카로 돌아가라고 욕해봤자, 캠페인을 홍보하는 꼴이 되는 거예요.
이 캠페인은 2019년 칸 라이언즈 페스티벌에서 크리에이티브 부문 그랑프리를 수상했어요. 좋은 마케팅은 차별적인 언어를, 캐치프레이즈로 바꾸는 힘이 있다는 걸 보여줬어요.
“디지털 시대에는 증오를 담은 부정적인 데이터가 많습니다. 블랙앤어브로드는 이를 의미 있는 콘텐츠로 바꿨습니다. 데이터의 힘으로 새로운 커뮤니티 문화에 기여했어요.”
_야스하루 사사키 칸 크리에이티브 데이터 심사위원
에릭과 켄트의 캠페인은 아름다운 땅, 아프리카를 찾는 관광객이 있는 한 계속될 거래요. 편견을 부수며 영역을 확장해나가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아래 링크를 통해 직접 확인해보세요!

Governance : 초바니, 사람보다 중요한 건 없다

ESG의 마지막 G는 Governance, 기업의 지배 구조가 법과 윤리를 준수하며 투명한지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특히 한국은 ESG에서 환경Environment과 사회공헌Society은 글로벌 수준으로 나아가지만, 거버넌스Governance 관련 대책은 없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초바니 CEO 함디 울루카야Hamdi Ulukaya의 행보는 시사할 점이 많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초바니는 미국의 그릭 요거트 브랜드입니다. 2021년 예상 매출은 약 20억달러(약 2조3630억원). 미국 요거트 시장 톱Top 3 안에 들죠.
초바니의 CEO 울루카야는 자신과 같은 CEO에게 쓴 소리를 내뱉었어요. 2019년 테드TED 강연에서 ‘CEO의 경영 방식에 반대한다’며 안티 CEO 플레이북*을 소개했죠. 수익이 아닌 사람 위주의 경영을 해야 한다면서요.
*각본이라는 뜻. 기업 경영의 각본을 바꿔야 한다는 뜻으로 붙인 단어.
그러면서 자신이 2005년 사들인 크래프트 공장을 예로 듭니다. 울루카야가 공장을 방문했을 때 55명의 해고 노동자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죠. 공장이 노후화 되자, 회사는 그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고한 뒤 새 보금자리로 떠난 거예요.
“전 오히려 해고 당한 직원들의 반응이 더 충격적이었어요. 화내는 사람도 없었고, 눈물을 보이는 사람도 없었죠. 다들 그저 조용했어요. 품위 있게 공장을 폐쇄하는 겁니다. 저는 너무 화가 났어요. 여기 사장은 아주 먼 곳의 높은 빌딩에서 재무제표나 보며 이 공장을 닫기로 했을 거예요. 그런 표가 무슨 소용이 있나요? 거기엔 사람이나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는 없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 사업상의 결정은 이런 식으로 내려요.”
크래프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울루카야는 경영 각본을 ‘바꿔야 할 때’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그만 두세요. 그건 정당한 방법이 아니에요. 이제 인정할 때가 되었어요. 지난 40년 동안 사업체와 CEO를 이끌었던 지침서는 이제 소용없다는 걸요. 수익에 매달리지 않고 그 너머를 봐야 해요. 영화에 보면 이런 사람들이 나와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옳은 일을 하는 사람들. ‘안티 히어로’라 부르죠. 비즈니스에도 이런 개념이 있어야 해요. 우리는 안티 CEO 지침서가 필요합니다.”
울루카야가 제시한 지침에는 기업이 ‘책임’을 지라고 합니다. 직원과 공동체에 말이죠.
“가장 먼저 직원을 보살펴야 해요. 요즘 잘 나가는 기업들은 오히려 공동체에 요구합니다. ‘세금 감세는 얼마나 해줄 건데?’ 진실된 기업은 힘들어하는 공동체에 다가가서 ‘제가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라고 물어야 합니다. 직접 찾아가서 허락을 구하세요. 함께 시간을 보내고 함께 이뤄내서 성공하세요.”
마지막으로 울루카야는 기업가에게 호소합니다.

“공장에서 제가 찾은 보물은 노동의 존엄성, 강인함, 사람들의 기개였습니다. 이런 정신이 온 세상에 퍼져야 합니다. 여러분이 알아주셔야 해요. 이 세상에는 여전히 버림받고 낙후된 사람들과 지역이 많아요. 하지만 다들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그저 기회 한 번이면 돼요. 예전의 영광을 살리는 정도가 아니라,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 해요. 이게 바로 투자에 대한 수익과 친절에 대한 수익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이게 바로 단순한 수익과 진정한 부의 차이예요. 이런 일들이 뉴욕 북부의 작은 마을이나 아이다호에서 일어날 수 있다면, 전 세계 어느 도시나 마을에서도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직원들을 동등한 파트너로 대우하고, 지역 공동체에 투자하는 초바니의 행보는 브랜드의 경쟁력을 더 강화시키는 원동력입니다.
초바니가 ‘건강하고 맛있는 그릭 요거트’로 빠르게 성장한 만큼, 이제는 ‘지역과 더불어 사는 기업’에 사람들이 반응하고 있습니다. 울루카야의 소신있는 경영 방침이 더 궁금하다면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해보세요!

기업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결국 ESG에서 중요한 건 지속성과 그 안에 담긴 진정성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마케팅적 관점에서 접근하면 독창성도 중요하다 볼 수 있겠죠.
더 많은 브랜드와 창업자의 이야기, 그 안에서 얻는 브랜딩 및 마케팅 인사이트를 얻고 싶다면 이전 글도 확인해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