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패션 시장이 날로 커지고 있어요! 통계*에 따르면 2023년 한국 패션시장규모는 전년 대비 2.8% 오른 48조4167억원으로 역대 최대규모라고 해요.
*시장조사기관 트렌드리서치 『한국패션산업 빅데이터 트랜드 2024』
이에 따라 해외 진출을 노리고 있는 한국 패션 디자이너와 브랜드들도 늘어나고 있는데요. 이 중에는 이미 한국보다 해외에서 먼저 인정을 받은 패션 디자이너 브랜드들도 있죠.
파프 : 실험적이면서도 실용적인 한국 디자이너 브랜드

포스트 아카이브 팩션Post Archive Faction(이하 파프). 영화 「파묘」에서 배우 이도현이 입은, 이른바 ‘MZ 무당룩’이 이 브랜드 옷이에요.
이미 해외에선 몇 년 전부터 유명했대요. 2018년 브랜드 론칭 두 달 만에 래퍼 켄드릭 라마가 입었고, 오프화이트의 수장 버질 아블로가 먼저 연락해 왔어요. 2021년엔 LVMH 프라이즈*에서 세미파이널까지 진출해 실력을 인정받았죠. 2023년 매출은 45억원. 이 중 60%가 해외 매출이라고 해요.
*LVMH 그룹이 신진 디자이너를 발굴해 전폭 지원하는 어워드.
파프의 임동준 대표가 옷을 만들기로 결심한 건 대학교 3학년. 유학 갈 돈을 벌기 위해서였어요. 옷을 파는 게 제일 진입 장벽이 낮아 보였죠. 원단 비용만 있으면 어떻게든 될 것 같았대요. 월세 50만원 옥탑에 살던 시절이었어요. 프리랜서로 간판 디자인, 웹디자인을 하면서 창업 자금을 모았죠.
낡은 다세대 주택을 하나 구해 작업실 겸 집으로 삼았어요. 대학 선배 소개로 든든한 파트너도 만났죠. 패션을 전공한 정수교 디자이너와 함께 밤낮없이 샘플을 만들기 시작해요. 그런데 점점 옷 만들기에 진심이 돼갔어요. 자꾸만 더 잘해보고 싶다는 승부욕이 생겨났죠.

“돈 벌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자꾸만 욕심이 났어요. 다른 제품과 비교도 하게 됐죠. ‘내가 만든 게 좀 별론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왕 시작했으면 제대로 만들어 보자 싶었어요.”
브랜드 이름도 레고 조립하듯이 지었어요. 먼저 파프PAF라는 이름부터 떠올렸어요. 강렬한 인상을 주는 거센소리의 어감이 좋았다네요. 그런 다음엔 임 대표가 좋아하는 세 가지 단어를 끼워 맞췄어요. 포스트Post, 아카이브Archive, 팩션Faction.
포스트는 미술의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따왔고, 아카이브*는 산업디자인에서 많이 쓰는 단어인데 의미가 멋져서 택했어요. 그런데 팩션은? ‘파벌'이라는 뜻이잖아요. 패션 브랜드에 웬 파벌일까요? 다양한 파벌이 생겨나 의견이 부딪칠 때, 진화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대요.
*오랜 세월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자료를 기록하고 보관하는 것.

2018년 9월 론칭한 파프. 새로운 파벌답게 패션계의 플레이북을 따르지 않았어요. 첫 아이템이 패딩이었죠. 만들기 쉬운 티셔츠가 아니라요.
“패션 좋아하는 사람들이 패딩을 잘 안 입었어요. 보온성은 뛰어난데 멋이 좀 없거든요. 디자인이 지루했어요. 파고들 가능성이 있다고 봤죠.”
새로운 디자인은 어떻게 나오는 걸까요? 임 대표는 디자인 요소를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과정에서 탄생한다고 말해요. 어릴 적 레고를 만들었던 것처럼요.
패딩을 떠올려 보세요. 미쉐린 마스코트처럼 울룩불룩하죠. 구역을 나눠 충전재를 넣어서 그래요. 보온성을 위해서죠. 대개 이 구역은 스티치(바느질)로 구분돼 있어요. 임 대표는 스티치 대신 스트링(끈)을 넣었어요. 후드나 소매 끝을 조이는 끈으로 구역을 나눈 거예요.
익숙한 패딩의 실루엣을 닮았지만, 스트링이라는 낯선 디테일이 더해졌어요. 사람들은 이 새로운 조합을 ‘멋’으로 받아들였죠. 브랜드 론칭 두 달 만에, 켄드릭 라마가 SNL에 파프의 패딩을 입고 나와 주목받았어요.
협찬도 인맥도 없었어요. 기회의 통로가 돼준 건 그 흔한 인스타그램. 디엠으로 연락해 온 뉴욕 편집숍 오프닝 세레모니Opening Ceremony에 입점했거든요. 바로 그 편집숍에 켄드릭 라마의 스타일리스트가 들렸다가 파프의 패딩을 산 거예요.
임 대표조차도 이 소식을 방송이 나간 후에야 알았죠. 론칭하자마자 제품력을 증명받은 것과 마찬가지였어요. 모델 헤일리 비버가 파프 패딩을 입고 파파라치에 찍히기도 했죠. 패딩은 지금도 파프의 시그니처 제품이에요.
실험적이면서도 실용적인 패션을 동시에 추구하는 파프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면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해보세요!

김해김 : 파리에서 먼저 알아본 한국 디자이너 브랜드

한국보다 파리에서 먼저 주목받은 패션 브랜드가 있어요. 김해김KIMHEKIM. 네, 맞습니다. 김해 김씨란 뜻이에요. 디자이너 김인태가 그의 본관과 성씨를 따서 만들었습니다. 구찌오 구찌, 가브리엘 샤넬처럼요.
김인태 디자이너는 2014년부터 ‘김해김’이란 이름을 썼습니다. 그는 파리에 살며 ‘인태 김’이 아니라 ‘김인태’로 불리길 원했어요. 누군가가 이름을 물어보면 ‘인태’가 아니라 ‘김인태’라고 답했죠. 성을 물어보면 ‘김해김’이라 했어요. ‘김인태 김해김’ 그의 프랑스식 풀네임이 결국 브랜드 이름이 됐어요.
첫 컬렉션은 일곱 벌의 드레스였어요. 할머니와 함께 갖고 놀던 오간자 원단을 사용했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인간 김인태로서의 정체성을 오롯이 담아냈죠.

컬렉션 이름은 ‘페르쓰네즈Perce-Neige’. 눈꽃이라는 뜻이에요. 얇은 흰색 오간자를 사용했어요. 지금도 오간자라는 소재는 김해김의 시그니처예요.
“눈꽃처럼 차가운 시련 속에서도 피어나겠다는 의미를 부여했죠. 제 염원을 담은 거예요. 내 이야기를 시작하니, 그때부터 브랜드도 형태를 잡아가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2017년 김해김의 거점을 한국으로 옮겼어요. ‘한국’과 ‘금관가야’를 더 적극적으로 브랜딩하기 시작했죠. “김해김은 고대 한국 왕실의 헤리티지를 물려받아 장인의 기술로 현대의 작품을 만든다”고 정의했어요.
“제가 파리에 있든 한국에 있든 내가 만든 컬렉션은 ‘한국’으로 브랜딩 됐어요. 브랜드 이름부터가 다르잖아요. 그렇다면 오히려 한국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게 파리 패션계에서의 차별점이 될 것 같았죠. 실제로 그랬어요. 김해김과 금관가야의 기원에 관해서 얘기하면 너무 좋아해요. 마치 우리가 서양의 공주, 왕자 이야기를 동화처럼 듣는 것과 같은 거예요. 우리가 잘 알지 못해서 그렇지 정말 멋진 문화적 유산이죠.”
2019년 파리의상협회가 김해김 컬렉션에 흥미를 보였어요. 한복을 소재로 했던 컬렉션입니다. 김인태는 한국인으로서는 세 번째이자, 최연소로 협회의 멤버가 됐어요. 파리 패션위크 공식 쇼에 참여하는 브랜드 중 하나가 된 거예요. 단 30여 개뿐이죠.

김인태 디자이너에게 패션은 자기를 탐구하고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파리 패션위크 공식 쇼라고 다를 건 없었죠. 2020 S/S 시즌 공식 쇼에서 ‘관종Attention Seeker’을 주제로 쇼를 진행했어요. 컬렉션 이름은 ‘미ME’. 네, 자기가 관종이란 말이죠.
모델은 링거 폴대를 끌거나 셀카봉을 들고 런웨이를 걸어요. 흰 티셔츠엔 ‘ME’라는 단어가 적혀있죠. 의상은 하나하나가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습니다. 몸통을 가릴 만큼 큰 리본이 달렸어요. 소매는 바닥에 닿을 정도로 길죠. 옷 안쪽에 있어야 할 라벨이 밖에 한가득 붙어있기도 합니다. 300개나요.
“전 정말 관심을 원했어요. 파리에서 데뷔 쇼를 하는 거잖아요. 그 시기에 저를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이 ‘관종’이었죠. 근데 그게 나쁘지 않게 들렸어요. SNS의 시대잖아요. 사실 나 말고도 다들 관심을 받고 싶어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컬렉션으로 사람들한테 ‘나 관심받고 싶어!’라고 외치고 싶었죠.”
그는 이어지는 유You, 힘Him, 헐Her 컬렉션에서도 자기 탐구를 주제로 잡았어요. 그는 자기 자신을 “스터디했다”고 표현해요.
“초기 컬렉션엔 나 자신에 대해 탐구하고 알아가는 과정이 담겼어요. 나에 대한 태도를 만들어 가는 컬렉션이었죠. 내가 좋아하는 것, 나와 주변의 관계를 알아갔어요. 컬렉션을 하다 보니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라고 깨달아 간 거죠.”
그가 어떻게 파리 패션위크에 올라 샤넬, 루이비통과 나란히 이름을 올리는 디자이너가 되었는지 더 궁금하다면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해보세요!

지용킴 : 전에 없던 옷으로 주목받은 한국 디자이너 브랜드

선블리치Sun-Bleach라고 들어보셨나요? 원단을 햇볕에 그을리는 염색 기법입니다. 옷이 상하지 않을까 싶은데 괜찮다고 해요. 자연스러운 빛바램 자국이 옷에 새겨집니다.
이 기법을 토대로 패션 브랜드를 만든 디자이너가 있습니다. 지용킴Jiyongkim의 김지용 디자이너. 런던의 미스터 포터MR PORTER와 도버 스트리트 마켓Dover Street Market, 미국의 SVRN, 도쿄의 GR8까지. 그가 만든 옷은 유수의 편집숍들의 선택을 받았어요. 론칭한지 단 2년 만에요.

김 디자이너는 ‘살 이유가 있는 옷’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편집숍을 다녀봐도 사고 싶은 옷이 많이 없었거든요. 브랜드만 다를 뿐, 섞어놓으면 구분하기 힘든 옷이 많았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제 옷이 수많은 편집숍에서 빛나고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만들었어요. 창작자의 의도는 물론, 의도하지 않은 ‘자연의 터치’까지 전부 담아냈죠.”
의도되지 않은 자연의 터치, 무슨 말일까요. 그는 선블리치의 디테일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옷 위에 레이스를 단 뒤 그걸 그대로 선블리치한 옷이 있습니다. 레이스의 색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선명한 곳도 있고, 아닌 곳도 있습니다. 바람이 레이스를 흩날리게 해, 빛바램을 방해한 겁니다. 자연이 빚은 우연한 현상이 옷을 자세히 들여다볼 이유를 만드는 거죠.
“스스로 멋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팔지 않아요. 가치를 설명할 수 있는 옷을 만들려고 하죠. 그냥 ‘이 브랜드가 유명해요, 디자이너가 유명해요’ 이런 걸 말하는 게 아니에요. 어떤 가치와 이야기가 담겼는지 보여주고 싶은 거죠. 저희의 옷은 그 이유를 제시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용킴의 옷을 해석하는 대표 키워드 중 하나는 ‘지속가능성’입니다. 버려진 옷이나 색이 바랜 커튼으로 옷을 만드는 까닭이죠.
2021년엔 코오롱FnC가 전개하는 업사이클링 기반 브랜드 ‘래코드’가, 지용킴에 관심을 보내왔어요. 재고 원단으로 옷을 만들기로 합니다. 재킷과 집업 후드를 만들어 마네킹에 입혔어요. 그리고 옷 곳곳을 하얀색 줄로 감았습니다. 그대로 두 달간 햇빛에 노출시켰죠. 줄에 감기지 않은 부분이 햇빛에 바래지면서, 일부러 염색한 것 같은 무늬가 만들어졌습니다.
“제가 먼저 지속가능성을 말한 적은 없어요. 해석을 해주셨죠. 제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해석해 주시는 가치를 이어가려 해요. 새로운 걸 보여주고 싶어서 택한 선블리치가 지속가능함과 연결된 거죠. 브랜드를 운영하다 보니, 그동안 하지 않았던 일도 더 생각하게 됩니다.”
브랜드 규모가 커지면서 그는 환경적으로 더 개선할 점을 찾고 있어요. 2023년부터는 재킷에 들어가는 안감까지 모두 재생원단으로 교체했습니다. 초기부터 하고 싶었지만 최소 주문량을 채울 수 없었어요. 수십 장 수준으로는 주문할 수 없었죠.
“사실 재사용 원단과 안감을 구하기가 더 힘들고 까다로워요. 그래도 가능한 지속가능한 원단을 쓰려고 해요. 물론 지속가능이란 가치에만 몰두하진 않을 생각입니다. 팬들은 저희를 지속가능하다고 좋아해 주시는 게 아니니까요. 멋있어서죠.”
그가 이렇게 전에 없던 새로운 옷을 생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요? 그의 브랜드 창업기가 더 궁금하다면 아래 링크를 통해 직접 확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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