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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시간이 필요할 때, 감각적인 국내 숨은 여행지 추천

마음의 안정을 얻고자 할 때, 사람들은 자신만 아는 곳으로 여행을 가곤 합니다. 풍경, 음악, 술, 책 등 부가적인 요소와 함께요. 

아원고택, 카메라타, 책바. 감각적이면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국내에서 가볼만한 숨은 여행지들을 추천해드립니다.


아원고택 : 270년 된 한옥을 자연으로 옮기다

전북 완주군 소양면, 종남산 자락의 아원고택은 한옥 스테이입니다. 방탄소년단이 다녀가 유명해졌죠. 하지만 더 주목할 사실이 있습니다. 이곳은 200년 넘은 한옥을 해체해 이축移築한 곳이에요.

아원고택의 한옥 네 채는 각자 다른 지역에서 왔습니다. 경남 진주 지수면에서 한옥 두 채를 옮겨 와 연하당(사랑채)과 설화당(안채)으로 만들었어요. 전북 정읍의 100년 된 한옥을 옮겨 만휴당(천지인)으로 만들었죠. 조선시대 말 전남 함평에서 서당으로 쓰이던 공간도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집을 옮긴다는 게 낯선가요? 전해갑 아원 대표는 한옥이 건축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명품 고가구古家具라고 생각합니다. 못 하나 박혀 있지 않고, 퍼즐처럼 조립할 수 있는 거죠. 굳이 새로 지을 필요가 없습니다. 더 나은 자리에 옮기고 다시 조립하는 겁니다.

전대표가 옮길 한옥을 찾는 데는 5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100년 넘도록 한자리를 지킨 고택만 찾아다녔어요. 서른 채를 넘게 본 것 같다고 해요. 2006년, 진주 승산마을에서 250년 된 한옥을 발견했어요. 만석꾼들의 마을, 너른 논밭 사이에 우뚝 선 한옥이었죠. 

“크지 않았지만, 위풍이 느껴지더군요. 기존 소재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지붕과 처마 선이 인상적이었죠. 조선 시대의 방과 부엌, 마루의 구조가 살아 있었습니다. 옮기는 것만으로 이야기가 될 거라 생각했어요.”

지붕을 떼내는 데만 며칠이 걸렸어요. 멀쩡한 기와는 따로 모아, 종이로 겹겹이 포장해 옮겼습니다. 손상된 기와도 가져왔어요. 지붕에 얹는 대신, 돌담 위에 쌓아 모양을 냈습니다. 서까래와 나무 기둥, 숟가락을 걸어 잠그던 문고리까지 조심스레 분리해 옮겼습니다. 중간에 실수로 자재가 훼손되면 되돌릴 수가 없잖아요. 섬세하게 조금씩 조금씩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한 채를 옮기는 데 3~4년씩 걸린 이유입니다. 

이렇게 네 채의 한옥을 옮기는 데 15년이 걸렸습니다. 실용성을 위해 설계도 조금씩 바꿨어요. 설화당의 경우, 부엌으로 쓰이던 곳을 누마루*로 바꿨습니다. 대신 이곳을 찾는 분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드리죠. “200년 전 부엌에서 여러분은 지금 종남산 경치를 즐기고 계십니다.”
*바닥을 지면으로부터 높이 띄워 통풍이 잘 되도록 다락처럼 한 층 높게 만든 마루. 

전 대표가 아원고택을 찾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건 딱 하나예요. ‘명상’.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힐 수 있는 공간이길 바랍니다.



카메라타 : 헤이리 예술마을 안 사색의 공간

카메라타는 헤이리 예술마을 한복판에 있어요. 마을 길을 접어들어 3분여를 걷다 보면, 자작나무들 사이로 노출 콘크리트의 3층 건물이 보입니다. 건물 뒤편으로 키 큰 소나무와 단풍나무가 푸르러요.

근처에 다다르자 바이올린 선율이 건물에서 울려 나옵니다. 철문을 밀고 들어가면, 뭔가 압도되는 광경이 펼쳐집니다. 실내의 양쪽 끝 콘크리트 벽은 높이가 10미터에 달합니다. 창문 하나 없는 벽은, 높이가 2m가 넘는 초상화들이 장식하고 있죠. 3층 높이로 뚫린 양쪽 끝 천장은 통유리로 마감됐어요. 어두운 실내, 양쪽 벽을 따라 햇빛이 사선으로 내리꽂힙니다. 

압도감은 공간을 가득 채운 음악의 진동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정면의 벽은 거대한 빈티지 스피커 세 대로 꽉 차 있어요. 입구부터 높은 천장 끝까지, 60평 남짓한 공간은 풍성한 소리로 빈틈이 없어요. 마흔 개가 넘는 검은색 의자, 편안하게 앉은 관객들이 스피커를 바라보고 있죠.

입장료(1만2000원)*를 내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사각 뿔테안경을 쓴 황인용 DJ가 스피커 옆에 있는 작은 공간에서 나옵니다. 컨트롤부스CB라 부르는, 일종의 DJ실이었어요.
*카메라타는 입장료를 내면 무료 음료를 한잔 제공한다.

그는 하얀색 티셔츠에 겨자색 재킷을 입었습니다. 목이 긴 하늘색 양말에 갈색 민무늬 스니커즈를 신었어요. 잠시 음악을 멈추고 꼿꼿하게 선 황 DJ. 호흡을 고르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곳은 아날로그 공간입니다. 여기 있는 스피커는 1900년대 초반에 만들어진 것이죠. 디지털이 아닌 진공관, 아날로그의 힘으로 소리를 듣는 겁니다. 여기서 나는 소리는 서두르지 않아요. 공중에 뜨지 않고 가라앉습니다. 그 다름을 느끼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DJ실로 들어가요. 정적이 흐르는 사이, 그가 오디오에 LP를 올리는 소리가 ‘치지직’하고 들려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흘러나옵니다. 

주변을 둘러봤습니다. 눈을 감은 사람, 책을 읽는 사람, 뭔가를 메모하는 사람, 의자에 기대어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까지… 모습은 다르지만 알 수 있었어요. 이들은 모두 음악에 빠져들고 있다는 걸요.


책바 : 책과 술이 함께하는 혼술러들의 아지트

연희동의 한 골목길로 들어가면 나오는 책바. 아는 사람만 찾아갈 수 있을 법한 곳에 있습니다. 대로변에서는 간판도 보이지 않고, 골목에 들어서서도 곧장 눈에 들어오지 않아요. 지도 앱을 보면서도 한참을 긴가민가하게 됩니다. 의도한 위치입니다.

책바는 비싼 월세를 감당하면서까지 역세권과 대로변을 고집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조금 숨겨진 장소에 있는 편이 좋았다. 지나가다 들르는 곳이라기보다는 확실한 목적을 갖고 찾아오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_『밤에 일하고 낮에 쉽니다』 중에서

비밀 공간을 찾아온 것 같은 마음으로 유리문을 엽니다. 15평 남짓한 아늑한 공간이에요. 입구를 기준으로 왼쪽에는 책장 가득 책이, 오른쪽 테이블 바에는 술병이 나란히 세워져 있습니다. 책바라는 공간이라는 정체성이 곧바로 느껴져요.

책바는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주일에 5일만 문을 엽니다. 영업시간은 저녁 7시부터 자정까지. 매장 직원은 정인성 대표 한 사람이 전부예요. 책 추천부터 칵테일 제조, 설거지까지 모두 혼자서 오롯이 감당합니다.

책바의 메뉴판은 꼭 처럼 생겼습니다. 구성도 책과 같아요. 목차가 있습니다. 01 책 속의 그 술, 02 시, 03 에세이, 04 소설 & 별책부록…. 이런 식이에요. 두 번째 챕터 ‘시’에 해당하는 술은 ‘다소 도수가 높은 술’입니다. 시는 일반적으로 소설이나 에세이에 비해 길이가 짧고, 내용이 함축적이잖아요. 그 응축성을 비유한 겁니다. 이런 디테일이 메뉴판 곳곳에 숨어 있어요.

책바에서 가장 많이 팔린 칵테일은 책바가 자체 제작한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 입니다. 진Gin과 포트 와인Port Wine, 오렌지 주스 등이 들어간 칵테일인데요. 메뉴판의 설명을 그대로 들려드릴 테니 맛을 상상해보세요.
*동명의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에서 영감을 받아 이름을 지었다. 

길을 걷다가, 어떤 남자와 여자가 마주칩니다. 그런데 둘은 본능적으로 느껴요. 서로가 서로의 100퍼센트의 사람이라고. 그 느낌을 맛으로 표현했습니다. 달콤한 과일의 풍미가 가득한 술이에요.

내 100퍼센트의 사람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느낌을 표현한 맛. 이 설명을 읽고 술맛이 궁금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정 대표는 포르투를 여행하며 포트 와인을 접했습니다. 포트 와인의 묵직하고도 달콤한 매력에 빠졌어요. 

“여행지에서 종종 아이디어를 얻는데, (해리포터의 저자인) J.K. 롤링이 단골로 이용했던 포르투의 마제스틱 카페에 갔다가 포트 와인이 들어간 칵테일을 마시고 반했어요. 돌아온 뒤, 바로 포트 와인을 넣은 칵테일을 만들어봤죠. 처음 맛을 보자마자 떠오른 하루키의 책을, 칵테일의 이름으로 붙였어요.”

얼핏 보기에 은 어울리지 않는 키워드 같습니다. 그런데 이 둘의 궁합을 한 번 접하면, 빠져나오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보고 읽는 무수한 영화와 책에 다양한 술이 나오잖아요. 이야기 속 장면에 맞춰 술을 마시면, 몰입도가 한층 높아지는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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