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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속노화의 시대, 저속노화 식단과 노화를 늦추는 방법

“지금의 3040은 부모보다 빨리 늙는 첫 세대가 될 것이다.”

노화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가속노화’의 시대.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현시대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빨라지는 노화를 늦출 수 있을까요? 더 근본적인 질문으로, 우리는 왜 잘 살아야 하는 걸까요?


생활 습관만으로 노화를 늦출 수 있다

저속노화, 문자 그대로 ‘천천히 늙는 방법’입니다. 정희원 교수생활 습관만으로 뇌의 인지 기능부터 운동 능력과 피부 건강까지 지킬 수 있다고 그는 주장해요.


대표적으로 MIND 식사법*이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당 지수가 낮은 음식을 먹는 거예요. 렌틸콩, 잡곡밥 같은 거죠. 요리용 기름으로 올리브유를 쓰고, 치즈와 붉은 고기는 자제하고, 채소와 과일을 되도록 많이 먹는 식사법입니다.
*Mediterranean-dash Intervention for Neurodegenerative Delay. 지중해식 식단으로 치매·고혈압 예방을 위한 식단이다.

단순히 탄수화물을 적게 먹는 게 아니에요. 해로운 탄수화물을 걷어내는 겁니다. 그럼 작은 노력으로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어요.

“야채, 과일은 너무 비싸지 않느냐”는 분들도 많습니다. 잡곡밥에 올리브오일 1 테이블스푼, 계란 프라이, 밑반찬 조금을 곁들이면 한 끼 단가는 요즘 물가로도 3000원 이하래요. 실제로 정 교수도 저속노화 식단으로 생활비가 많이 줄었다고 합니다.

더 큰 문제가 있죠. 맛이 없다는 것. 그런데 정 교수는 반박합니다. 맛없는 음식이 아니라고요. 우리 뇌가 초가공식품에 너무 길들여져 있는 거라고요.

“어두운 방에 갑자기 들어가면 잠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죠. 그러다 서서히 주변 사물이 보이기 시작하잖아요. 우리 뇌는 ‘맛’도 그렇게 느껴요. 인공향료와 설탕, 지방, 소금이 가득한 식품을 먹다 잡곡밥을 먹으면? 처음엔 맛없게 느껴질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차차 재료 본연의 맛에 눈을 뜨게 됩니다.”

문득 궁금해져요. 그는 어떤 식사를 할까요. 그의 식단을 엿봤습니다. 아침엔 우선 양배추 한 줌과 찐 계란에 간장 소스를 뿌려 먹어요. 에스프레소 한 샷 혹은 무가당 두유를 곁들입니다. 점심은 병원 식당에서 먹어요. 밥은 없이 반찬만 받아서 먹죠. 쉬는 날엔 집에서 렌틸콩 통조림 하나 정도를 먹어요.

그도 외식할 때가 있습니다. 특히 저녁엔 모임이 잦죠. 이땐 최대한 고기가 아닌 채소 위주로 먹습니다. 집에서 먹을 땐 아들이 남긴 잡곡밥과 밑반찬을 먹곤 합니다.

“우울감이나 스트레스 레벨이 높은 분들이 정크푸드에 손을 댈 가능성이 높아요. 그분들의 마음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직접 해보면 저속노화 식단은 시간과 돈이 많이 들지 않아요. 한번 시작하신 분들은 생각보다 이탈이 적습니다. 딱 한 달만 해보면 이해하실 거예요.”


도파민 중독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방법

“행복을 위해 먹고 싶은 것 실컷 먹겠다”는 사람들에게 정희원 교수는 말합니다. “떡볶이, 라면 같은 걸 먹어서 불행해지는 것”이라고요.

논리는 이렇습니다. 자극적인 음식을 먹으면 우리 뇌는 도파민을 분비해요. 이때 반대급부로 코르티솔cortisol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이 함께 나옵니다. 달콤한 사탕을 먹으면 혈당이 빠르게 올라요. 그 후 혈당이 폭락하면서 코르티솔 분비를 자극합니다.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역할을 하는 호르몬. 혈당 생성, 기초 대사 유지, 항염증 작용 등을 한다.

이 호르몬은 수면의 질을 떨어뜨려요. 푹 자지 못하면 스트레스 호르몬은 더 치솟죠. 충동 조절 능력은 더 나빠지게 됩니다. 다시 자극적인 음식에 손을 뻗게 돼요.

중독의 굴레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요?

ⓒ흐름출판


『도파민네이션』의 저자 애나 램키는 때론 ‘선조의 지혜’가 중독 치료에 도움 될 때도 있다고 말합니다. 수천 년 전, 부족한 자원으로 살아 나갔던 인류를 따라 하는 거예요. 

“인류는 풍요로운 세상을 목표로 진화한 게 아닙니다. 언제 일어날지 모를 위험에 대비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거죠. 지금의 세태를 ‘인간이 꼭 원한 건 아니다’라고 가정해 볼까요?”

상상은 끝났고, 이제 전략을 짜야죠. 애나 박사는 ‘자기 구속’을 권해요. 중독된 물건이나 사람, 환경에서 되도록 멀리 떨어지는 거죠. 첫 2주가 가장 고통스럽고, 그다음부터 서서히 적응한다고 해요.

“감자칩에 중독되면, 집에 감자칩을 두지 말아야 해요. 게임을 너무 많이 하면, 게임 좋아하는 친구들과 어울리지 말아야 하죠. 스스로의 선택을 믿는 대신, ‘선택지’를 줄여나가는 겁니다.”

자기 구속이 중요한 이유는 또 있어요. 뇌에서 ‘고통 도파민’을 생산하거든요. 앞서 말한 쾌락-고통 저울의 균형을 유지하게 돕죠. 어떻게 고통이 좋을 수 있냐고요? 애나 박사는 말합니다. 우린 그동안 고통받을 시간조차 차단했다고.

“왜 우리는 전에 없던 부와 자유를 누리고 기술적 진보, 의학적 진보와 함께 살아가면서 과거보다 불행하고 고통스러워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가 모두 너무나 비참한 이유는, 비참함을 피하려고 너무 열심히 노력하기 때문이다.”
_애나 램키, 『도파민네이션』 64p

매일 운동하기, 적당히 외로움 타기, 고전소설 읽기… 모두 고통을 통한 ‘쾌락 얻기’의 대표 사례에요. 애나는 중독 환자에게도 이러한 방법을 권하죠.

고통은 피하고 쾌락을 원하는 마음, 인간의 본능 아닌가요? 애나는 이렇게 대답했어요. “인간은 먼 옛날부터 고통을 지혜롭게 이용해 왔다”고. 그것이 ‘생각하는 동물’의 특징이라면서요.

“고대 로마인은 난방 시스템을 발명하고도 찬물에 샤워하길 즐겼어요. 의사들은 침술, 뜸질처럼 고통스러운 자극을 치료에 활용했죠. 이런 걸 영웅 요법이라고 부릅니다. 고통으로 고통을 다스리는 거예요.”

고통 끝에 얻은 쾌락이 훨씬 자극적일 때도 많아요. 석 달의 공부 끝에 시험에서 100점을 맞거나, 일 년간 매일 운동해 얻은 복근을 볼 때가 그렇죠. 애나 박사는 말합니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얻은 도파민이, 쉽게 얻은 도파민보다 질적으로 좋다고요.


우리가 저속 노화를 해야 하는 이유

이런 생각도 듭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좀 빨리 늙더라도 좋아하는 음식을 실컷 먹고 사는 게 행복 아닌가?’ 그럼에도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우리에겐 모두 예외없이 ‘끝’이 찾아오기 때문일 겁니다.

2007년부터 죽음학*에 대해 강의를 해온 정현채 교수는 아침에 일어나면 하는 독특한 의식이 하나 있어요. 샤워를 하며 살아있음에 감사해하는 겁니다. 방광암 수술 후 아직까지 전이가 안 되고 건강하게 지내는 것, 지난밤 사이 돌연사하지 않는 것에 대한 감사예요.
*죽음학은 인간의 죽음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타나톨로지Thanatology’라고 한다. 인류학, 의학, 철학 등 여러 학문이 혼재된 학문으로 아직도 연구가 한창이다.

감사 기도를 마친 후엔, 샤워기의 물줄기를 밝은 빛의 폭포로 생각하는 심상화Imaging 훈련을 해요. 마치 폭포수로 몸에 쌓인 부정적 에너지를 씻는다고 상상해요. 15분간의 이 샤워 의식으로 하루를 시작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해요. 

죽음을 생각할수록 삶에도 더 충실하게 된다고, 그는 말하죠.  

“평상시 죽음을 인지하면 삶의 선택지가 간결해집니다. 죽음이 한 달 남았다고 생각해 보세요. 절실한 일에 몰두하며 일주일을 살겠죠. 일의 경중이 저절로 나눠질 겁니다. 남을 해치거나 나쁜 일을 할 수가 없어요. 누군가를 미워할 시간조차 아깝거든요.” 

실제로 죽음을 사유한 후 삶의 태도가 바뀐 이들이 있었어요. 한 번은 정 교수의 제주 집을 지은 건축회사 사장과 지인들에게 죽음학 강연을 했어요. 그러자 나이 지긋한 사장이 엉엉 우는 것이 아니겠어요. 본인도 이유를 모르겠다며 눈물을 훔쳤죠. 

이듬해 사장의 요청으로 그 회사 직원들에게 강연했습니다. 그때 한 직원이 정 교수에게 말해줬어요. 사장이 죽음학 강연을 듣고 온 후, 180도 바뀌었다고. 예민하고 까칠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친절하고 따뜻하게 직원들을 대한다고 했죠. 죽음에 대한 사유가 삶의 태도를 바꾼 겁니다.

멀리 갈 것도 없죠. 정 교수의 삶이 변했거든요. 죽음을 사유하기 전엔 오로지 일과 연구에만 몰두했어요. 하지만 죽음을 공부하면서부터, 아무리 바빠도 가족과의 시간을 갖기 시작했어요. 누군가에게 잘못했던 일이 생각나면 직접 연락해 용서를 구했다고 해요. 아주 오래전 같이 수련했던 동료에게 문자로 사과의 말도 건넸죠. 

“아침에 출근하겠다고 인사하고 나간 가족이, 저녁에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는 거예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게 삶이죠. 갑작스러운 사고로 저녁에 다시 만나지 못할 수도 있어요. 저 같은 암 환자는 언제 재발할지 모르죠.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한순간도 허투루 보낼 수가 없게 됩니다.”

하지만 죽음은 머릿속에서 잊히기 쉽습니다. 그렇기에 정 교수는 매일 훈련하듯 죽음을 사유해야 한다고 말하죠.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나는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 생의 매 순간 이를 상기하세요. 죽음은 끝이 아니라, 마지막 성장의 기회가 될 겁니다.”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죽음을 잊지 말라’라는 뜻으로 번역되는 라틴어 문구


정희원 교수가 말하는 저속노화의 목표가 단순히 느리게 늙는 것만은 아니에요. 저속노화를 통해 “인생을 천천히, 농밀하게 맛볼 수 있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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