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설 디자인이란?
유니버설 디자인은 성별이나 연령, 국적, 장애의 유무, 문화적 배경에 상관없이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디자인을 말해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도가 올라감에 따라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됐어요. 휠체어를 끌고 오르기 쉽게 계단 대신 경사로를 배치한다거나, 눈이 안 좋은 노인도 보다 잘 볼 수 있게 만든 폰트 등을 예시로 들 수 있겠죠.
마이너리티 디자인, 디올연구소, 피치마켓. 유니버설 디자인을 통해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그들의 사례를 통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마이너리티 디자인 : 한 사람을 위한 디자인이 모두를 만족시키다

“당신이 지닌 소수자성, 즉 ‘약점’이나 ‘못하는 일’이나 ‘장애’나 ‘콤플렉스’는 극복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활용해야 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약점에는 누군가의 강점을 이끌어 내는 힘이 있으니까. 이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저는 이 책을 썼습니다.”
책 『마이너리티 디자인』의 한 문구입니다. 책의 저자 사와다 도모히로는 일본 최대 광고회사, 덴츠Dentsu의 카피라이터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의 소개를 그치기엔 조금 아쉽습니다. 그는 세계유루스포츠협회*와 세계유루뮤직협회**의 대표이사면서, 비영리사단법인 ‘장애공략과’의 이사도 맡고 있거든요.
*운동을 못해도 성별, 연령, 건강, 장애와 상관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스포츠를 만들고 운영하는 협회. 유루이ゆるい는 느슨하다는 뜻.
**음악 약자를 없애기 위해 사와다 도모히로가 만든 단체. 소니, NEC 등과 협업해 누구나 연주할 수 있는 PC 키보드형 악기를 개발하고 있다.
그가 무려 네 곳에서 일을 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아들의 시각장애입니다. 아이가 생후 3개월이 되었을 무렵, 그는 아이의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마이너리티 디자인』은 사와다 도모히로가 아들의 장애와 함께하면서, 그 과정에서 탄생시킨 비즈니스를 다룬 책입니다.
그는 패션기업 유나이티드 애로우즈와 함께 ‘041올포원 FASHION’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장애인 한 사람만을 위한 옷을 만드는 프로젝트였죠. 장애 당사자들은 패션에 갈증을 느낍니다. ‘우리는 잠재 고객으로 여겨지지 않는다’고 체념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 오아시스를 원하죠.
협업을 위해, 사와다는 장애 당사자 여섯 명에게 옷에 대한 절실한 바람을 물었습니다. 예를 들어, 세키네 씨는 열두 살부터 휠체어 생활을 하고 있는데요. 입고 벗기 불편하고, 휠체어 바퀴에 낀다는 이유로 스커트를 입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입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죠.
이런 불편들을 모아 유나이티드 애로우즈에 전달했고, 그 결과 ‘플레어도 타이트도 되는 스커트’라는 제품이 만들어졌습니다. 지퍼들을 닫으면 타이트스커트가, 열면 플레어스커트가 되는 이 제품. 휠체어로 이동할 때는 타이트스커트로 입어 옷이 낄 염려가 없고요. 평소에는 플레어스커트로 입어 화사한 분위기를 낼 수 있습니다.

놀라운 건, 이 제품들이 일반 고객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는 겁니다. ‘멋있으니까’ 혹은 ‘기능이 좋으니까’ 같은 이유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판매됐죠.
그리고 해당 프로젝트는, 유나이티드 애로우즈의 직원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요즘은 폐기되는 옷이 너무 많잖아요. 끊임없이 새 유행이 등장하고 순식간에 사라지죠. 창작에 대한 직원들의 열의가 식어가던 와중, 이 의뢰가 나타난 겁니다.
“창작자들 역시 목이 바싹 말라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상품으로서든 표현으로서든 안 만들어진 것이 없는 패션업계에서, 장애인들이 내준 과제가 빛나 보였는지도 모르죠. 다들 ‘더욱 좋은 것’을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단 한 사람’을 위해서 더욱 본질적인 것에, 진심으로 원하는 것에, 자신이 지닌 재능을 쏟아부을 수 있는 이 프로젝트가 모두의 마음에 불을 붙인 것입니다.”_p128
그는 또 운동을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모두 같은 수준에서 ‘느슨하게(유루이, ゆるい)’ 즐길 수 있는 스포츠도 만들었는데요. 어떻게 이런 기발한 아이디어가 나오는 걸까요. 그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면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해보세요!

디올연구소 : 누구에게나 선명한 글자를 만들다

디올연구소는 유니버설 디자인을 연구하는 사회적기업이자 벤처기업입니다. 디올은 ‘Design for All’의 한글 줄임말이죠.
이종근 대표는 ‘모두를 위한, 디자인 평등’을 꿈꿉니다. 대표적인 상품은 디올폰트. 저시력자와 노안이 온 고령자에게 잘 보이는 글씨를 개발했어요.
디올폰트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상용화된 유니버설디자인폰트예요. 국내 글씨체 중 가장 작은 6pt에서도 비교적 명확하게 보여요.
개발자 5명이 꼬박 1년 반을 매달려 만들었습니다. 보통 3~5개월 걸리는 폰트 제작 기간보다 3~4배 넘는 시간이 들었죠. 유니버설디자인 폰트를 개발할 땐, ‘사용자 리서치’와 ‘사용성 평가’ 두 단계가 더해지기 때문입니다. 사용자 리서치로 노안이 있는 사람이 작은 글씨를 읽기 어려워하는 이유를 연구했어요.
디올폰트의 첫 번째 특징은 ‘잉크트랩Ink trap’입니다. 노안이 오면 시야가 흐려져 획끼리 맞닿는 부분은, 잉크가 뭉개져 보여요. 그래서 가로획과 세로획이 맞닿는 부분에 홈(잉크트랩)을 냈습니다. 뭉침 현상을 해결해 잘 보이게 한 거죠.

두 번째로는 생김새가 비슷한 글자를 찾아 자음과 모음의 형태를 명확히 구분했어요. 예를 들어, ‘띵’과 ‘명’은 글자 크기가 작으면 서로 비슷해 보여요. 시력 약자는 구분이 더욱 어렵죠. 디올폰트는 ‘ㄷ’과 ‘ㅁ’이 확실히 구분되게 디자인했어요. ‘ㅁ’은 수평을 맞춰 반듯한 직사각형인 반면, ‘ㄷ’은 아래획이 오른쪽 위로 휘어져 있죠.
세 번째 특징은 흰 바탕의 면적이 크다는 겁니다. 노안이 온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어두워서 잘 안 보인다”거든요. 디올폰트가 인쇄된 부분은 다른 폰트보다 밝아 보여요.
“관점을 바꿔봤어요. 밝은 흰색 면도 폰트라는 생각으로 디자인했죠. 어떻게 하면 안정적이고 아름답게, 흰 면적을 늘릴지 고민했어요.”
장평長平도 줄였어요. 글자의 총넓이를 말해요. 좁은 면적에 많은 글을 넣을 땐, 글자 사이 간격을 의도적으로 줄이곤 하죠. 디올폰트는 이 경우를 고려해 균일하게 좁은 폭으로 폰트를 설계했어요. 자간이 좁아도 글자가 겹쳐 보이지 않죠.
디올폰트는 총 일곱 번의 사용성 평가를 거쳤어요. 일반 시력자와 노안이 있는 사람, 저시력자 모두를 대상으로 가독성 개선 테스트를 했죠. 테스트 결과를 바탕으로 수정과 보안을 진행했어요. 사용성 평가의 과정에만 1년이 걸렸죠.
2018년 빙그레에 디올폰트를 납품했어요. 국내 최초로 상용 유니버설디자인폰트를 판매한 사례였죠. 지금은 삼성카드, 춘천시청, 사회연대은행 등이 디올폰트를 씁니다. 시니어 매거진 「브라보 마이 라이프」도 디올폰트로 인쇄돼요.
이처럼 불편함을 찾고, 해결하는 감각은 어떻게 길러질까요. 이 대표는 타인의 불편함을 찾아내는 건 분명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나의 사소한 불편’부터 주목해 보길 권합니다. 그의 이야기를 더 자세히 듣고 싶다면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해보세요!

피치마켓 : 느린 학습자도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들다

‘느린 학습자.’ 이 말이 낯선 분도 있으실 겁니다. 최근에는 ‘경계선 지능인’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는 분위기예요.
우리 주변에 ‘느린 학습자’는 얼마나 될까요? 우리나라에 등록된 발달장애인의 수는 25만여 명. 경계선 지능인의 경우 아직 정확한 통계가 없지만, 다수의 연구에서 전체 인구의 약 13%가량 된다고 추정합니다.
피치마켓은 이런 느린 학습자를 위해 만들어진 2014년에 만들어진 콘텐츠 전문 기관입니다.
2014년 함의영 대표가 피치마켓을 시작하고 가장 먼저 할 일은 책을 만드는 거였어요. 당시 함 대표가 나가던 글쓰기 모임이 있었는데, 한 멤버의 동생이 발달장애인이었다고 해요. 그 멤버가 얘기했죠. 동생이 성인이 되고 나니 마땅히 읽을 책이 없더라고. 함 대표는 그 이야기를 듣고 아, 먼저 책부터 만들어 보자 싶었대요.
『빨간 머리 앤』을 사례로 들어 볼게요. 워낙 유명해서 동화와 소설, 여러 버전으로 나와 있죠. 대부분은 이렇게 시작해요.
“브라이트 리버역, 가지런히 쌓아 올린 널빤지 위에 머리카락이 빨간 여자아이가 앉아 있었다.”
빨간 머리 앤을 소개하는 장면이에요. 보통은 3인칭 시점으로 쓰여 있어요. 이걸 피치마켓은 1인칭으로 바꿨어요.
“내 이름은 앤이야. 내 머리카락은 빨간색이지. 나는 빨간 머리가 정말 싫어. 사람들은 빨간 머리 아이를 좋아하지 않거든.”

그림책은 아무래도 한 페이지당 글자 수에 제한이 있죠. 그들은 어떻게 하면 비교적 적은 글자 수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도, 느린 학습자들을 몰입하게 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그래서 주인공이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거는 방식으로 써보기로 했죠. 그랬더니 실제로 느린 학습자 독자들이 보다 쉽게 몰입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해요. 물론 피치마켓이 발간하는 책 중에는 3인칭 시점도 많아요. 하지만 그림책은 되도록 1인칭을 사용합니다.
또 가급적 이야기 전개는 시간 순서대로 해요. 문장은 최대한 짧고 간결하게 쓰죠.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금방 읽을 수 있겠다’는 느낌을 주는 거예요.
초고는 지적장애인과 발달장애인한테 감수받아요. 술술 읽히는지, 내용은 잘 이해되는지를 확인해요. 피드백에 따라 30~40번씩도 퇴고합니다.
그들은 느린 학습자를 위한 책 뿐만 아니라, 교육도 하고, 도서관도 만들고, 기업과 손잡고 사용 설명서도 만들고 있습니다. 피치마켓이 꿈꾸는 정보 격차 없는 세상을 아래 링크를 통해 직접 확인해보세요!

우리나라는 장애인과 고령자의 불편에 대한 공감도가 그리 높은 편은 아닙니다. 앞서 말한 디올폰트가 ‘누구에게나 더 잘 보인다’는 데엔 공감하지만, 굳이 폰트를 바꾸려고는 하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는 모두 노안을 피할 수 없어요. 시력장애가 생기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죠. 결국 유니버설 디자인이 만드는 세상은 우리에게도 이로운 세상입니다.
더 많은 ESG 사례, 브랜드와 그 창업자의 철학으로부터 얻는 인사이트를 얻고 싶다면 이전 글도 확인해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