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롱블랙 프렌즈 B
‘죽은 이의 변호사’로 불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법의학자. 더 이상 말할 수 없게 된 이들의 증거와 사연을 파악해, 세상에 전하는 이들이죠.
매일 죽음을 바라보는 이들은 어떤 태도로 삶을 대할까요? 궁금증을 품었을 즈음, 정시우 작가가 한 법의학자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정시우 작가
예외가 있을까요? 모든 삶의 종착역은 ‘죽음’입니다. 죽음을 구체적으로 상상하지 않더라도, 자기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가 평온하길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매한가지일 거예요.
그러나 타인에 의해, 허술한 사회 안전망 때문에, 교통사고나 의료사고 등으로 예기치 않게 삶을 일찍 마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에 미처 남기지 못한 말, 밝히고 싶은 진실…죽은 자는 말할 수 없지만, 몸으로 자신의 마지막을 증언할 수는 있습니다. 고인이 몸에 남긴 증거에 귀 기울여주고, 부검을 통해 그들이 떠나는 길에 억울함이 남지 않도록 변호해 주는 이가 바로 법의학자입니다.
의사가 사람의 ‘생명’을 지켜낸다면, 법의학자는 사람의 ‘인권’을 지킵니다.
전북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교실의 이호는 30여 년간 4000여 구의 시신을 부검하며 인권 회복에 힘써 온 법의학자입니다. 저는 그가 많은 죽음을 마주하며 느낀 단상을 쓴,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을 읽으면서 적잖이 놀랐어요.
주검을 대하는 게 일이니 ‘삶의 허무함’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 않을까 싶었는데, ‘삶에 대한 의지’가 오히려 더 감지됐거든요. 그를 만나기 위해 전주행 KTX에 몸을 실은 이유입니다.
기분 탓인지 그의 연구실로 향하는 복도에서 포르말린* 냄새가 나는 듯한 착각이 들더군요. 긴장은 곧 풀렸습니다. “법의학은 삶에 대해 얘기하는 학문”이라고 말하는, 그의 푸근한 미소 덕분에 말이죠.
*시신의 부패를 막기 위해 쓰는 용액. 법의학에선 부검 시 조직을 보존하는 용도로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