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롱블랙 프렌즈 B
이따금 달력을 보다가 멈칫할 때가 있습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흘렀나’라는 생각과 동시에,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나’라며 자문하게 되죠.
그런 우리를 위해 정시우 작가가 한 사람을 소개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11년간 삶과 죽음의 갈림길을 오가며, 그때의 마음을 글로 남겨온 구급대원. 백경 소방관의 이야기를 정 작가가 전합니다.

정시우 작가
위험한 사고 현장, 화마가 치솟는 곳, 좁은 주택가, 빙판길, 맨홀, 고독사 현장까지.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선 사람들을 위해 달려 나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타인의 생명을 책임지는 사람들. 소방관입니다.
소방관은 역할에 따라 불을 끄는 ‘화재진압대원’, 재난 사고 현장에서 인명을 구조하는 ‘구조대원’, 응급환자 처치와 병원 이송 등을 맡는 ‘구급대원’으로 나뉩니다. 구급대원으로 11년째 근무 중인 백경 소방관은 자신의 일을 “동네북, 주취자 처리반, 피투성이 소방관”이라고 설명해요.
출동 건수가 많은 구급대원은 “상상도 못 한 사람들을 상대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가 큰 기피 부서”로 뽑힙니다. 대신 그만큼 시민들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안전을 책임지는 이들이죠.
이웃을 돕는 보람된 직업. 그러나 그의 가슴엔 지워지지 않은 매캐한 그을음이 가득합니다. 기계에 손이 끼어 한쪽 팔을 잃은 일용직 노동자, 개똥 범벅인 채로 사는 남자, 부패된 후에야 발견된 노인…. 그는 “마주하는 모든 죽음에 눈을 빼앗기면 마음이 남아나질 못”하기에 ”내 가족 아니고, 내 친구 아니다”라는 주문을 가까스로 되뇌며 현장을 오간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