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아이디어 발상법 : 대구의 광고회사를 전국구로 만든 ‘생각의 전환술’



롱블랙 프렌즈 B 

대구에서 시작해 전국의 광고 맛집이 된 회사가 있습니다. 빅아이디어연구소. 지난 13년간 병원부터 학원, 로펌, 심지어 경찰청까지 수백 곳 넘는 클라이언트의 이미지를 바꿔놓았죠. 

광고 맛집이 된 이유가 있습니다. 단 한 장의 이미지로 시선을 붙잡거든요. 병원 광고라면 원장의 약력 대신 ‘환자의 진솔한 편지’를 걸고, 보이스피싱 방지를 위해선 낚싯줄에 매달린 5만원권 지폐를 은행 천장에 붙여두는 식이죠.

광고가 넘쳐나는 시대, 빅아이디어연구소가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는 방법이 궁금했어요. 연구소를 만들고 이끄는 김종섭 소장을 만났습니다.



김종섭 빅아이디어연구소 소장

영어를 못하는 영문학도, 광고가 막막했던 광고인 지망생… 김 소장은 젊은 시절 오랫동안 길을 헤맸습니다. 경쟁에서 늘 뒤처졌고, 친구들이 하나둘 취업할 때도 백수로 남아 방에서 나오지 못했죠.

그런 그를 살린 건 ‘발상의 전환’이었어요. “경쟁하지 말고 독점하라”는 피터 틸Peter Thiel*의 조언처럼, 남들이 쉽게 흉내낼 수 없는 독점적인 아이디어를 광고에 펼치기로 했죠.
*페이팔 및 팔란티어의 공동창업자이자 경제경영 베스트셀러 『제로 투 원』의 저자.

남을 이기려 드는 대신 ‘내가 빛나는 영역’에 뛰어들자, 인생이 수월해졌습니다. 창업 첫해인 2013년 연 매출 130만원에서 시작해 조 단위 기업의 의뢰를 받기까지. 그를 살린 광고 기획법을 챕터별로 담았어요.

김종섭 소장은 2013년부터 대구에서 광고 회사 ‘빅아이디어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병원부터 로펌, 경찰, 시 브랜드 등 다양한 분야로부터 광고를 의뢰받고 있다. Ⓒ롱블랙

Chapter 1.
누구나 공감하는 아이디어의 비밀

김종섭 소장이 광고를 시작한 계기는 조금 엉뚱합니다. 대구에서 나고 자라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던 그에게, 명절날 삼촌이 던진 잔소리가 화근이었죠. 

“영문과 나와서 뭐 할래? 경영이나 경제를 배워야 돈을 벌지. 하다못해 광고라도 배우던가.”

기분 나쁠 법도 한데, 김 소장은 여기서 힌트를 얻었어요. ‘광고’라는 단어에 마음이 꽂힌 겁니다. 잘 만들면 5000만 국민의 머릿속에 두고두고 기억될, 영향력 있는 일이자 자본주의 꽃이었으니까요.

그는 곧장 미국행을 선택합니다. 가족에겐 경영학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참여한다고 했지만, 마음속엔 이미 다른 계획이 서 있었죠. 2007년, 스물여섯 살에 조지아에서 경영학을 배우다 애틀랜타의 광고 학교 더 크리에이티브 서커스The Creative Circus로 발길을 옮긴 겁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어요. 영어도 모르고 광고의 기본기도 서툰 이방인에게, 교수님은 매일 같이 독설을 내뱉었습니다. 조롱 섞인 말까지 섞어서요. 

“내일까지 ‘빅 아이디어’를 들고 오지 않으면, 넌 짐 싸서 북한으로 돌아가야 할 거야.”

이 말을 들은 그는 이번에도 낙담 대신 ‘빅 아이디어’를 건져냈습니다. 미국도 한국도 잘 아는 ‘북한’을 수업 과제물로 만들기로 했죠.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의 눈동자에 서로의 모습을 비춘 채, 타이레놀 로고 하나를 얹었어요. 

“영어가 안 되니 한 장의 이미지로 경쟁해야 했어요. 그러다 뉴스를 보는데, 북한의 미사일 도발 소식에 이어 오바마 대통령이 이마를 짚는 모습이 나오더라고요. 

‘이거다!’ 싶었죠. 오바마 눈 속에 김정은을, 김정은 눈 속에 오바마를 넣고 타이레놀을 더했습니다. 누구나 이해하는 ‘관계’를 활용한 거예요.”

카피 한 줄 없는 두통약 광고. 교수의 인정은 물론 업계의 주목도 받았습니다. 한참 뒤인 2014년 크리에이티비티 국제 광고제Creativity International Awards에서 은상을 받기도 했죠. 

기쁨도 잠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들이닥칩니다. 환율은 하루 만에 900원에서 1500원으로 치솟았죠. 김 소장은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고향에 돌아왔습니다. 원하는 일자리를 찾지 못한 채, 3년간 우울증과 슬럼프가 이어졌어요.

김종섭 소장이 2008년 애틀란타 유학 시절 만든 광고. 당시 미국과 북한의 긴장 관계를 이용해 두통약을 홍보했다. Ⓒ빅아이디어연구소

Chapter 2.
고집을 내려놓으면, 온 세상이 영감이다

방황하던 김종섭 소장을 다시 일으킨 건, 돌고 돌아 광고였습니다. 

2013년, 서른세 살의 그는 광고 회사 ‘빅아이디어연구소’를 차렸어요. “빅 아이디어를 가져오라”던 교수님의 경고에서 따온 이름이었죠. 경쟁이 치열한 수도권 대신, 고향인 대구를 틈새 시장 삼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사업 첫해 매출은 고작 130만원. 당시 대구는 카피라이팅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했습니다. 김 소장이 지역 상인을 찾아가 “카피를 무료로 만들어주겠다”고 하면, “복사기는 필요 없다”며 문전박대당하기 일쑤였죠. 

“아이디어라는 게 원래 인정받기가 어려워요. ‘카피가 뭐예요?’라는 질문에 ‘나이키의 저스트 두 잇Just Do It 같은 겁니다’라고 하면, ‘그런 건 나도 쓸 수 있으니 나가주세요’라는 반응이 돌아오는 게 당연했어요.”

김 소장은 ‘설득의 언어’를 바꿔보기로 합니다. 자신을 ‘매출 올려주는 의사’로 소개한 거예요. 초록색 명함에 십자 모양 구멍이 뚫린 커버를 만들어, ‘병원 처방전’을 연상케 하는 명함을 건네면서요.

김종섭 소장이 광고회사를 차린 뒤, 대구의 여러 가게를 다니며 건넨 명함. 처방전 모양의 명함 케이스를 만든 뒤, ‘브랜드 고칩니다’라는 슬로건을 새겼다. Ⓒ빅아이디어연구소

덕분에 첫 의뢰인을 만났습니다. 척추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대구 보강병원. 이들은 처음엔 ‘연예인 광고’를 주문했어요. “다른 병원은 이만기도, 박지성도 나오는데 우리도 그렇게 해달라”면서요. 

하지만 김 소장의 생각은 달랐어요. ‘연예인이 허리 수술의 실력을 보증할 수는 없다’고 봤거든요. 고민을 품고 병원 로비에 앉아 있던 그는, 수술 후 할아버지의 부축을 받으며 나가는 할머니를 발견합니다.

“잠시 노부부의 입장이 돼 봤어요. 보강병원이 너무 고마울 것 같았죠. 그들의 마음을 광고에 싣고 싶었는데, 마침 원장님이 노부부의 감사 편지를 받은 거예요. ‘아내의 허리를 고쳐줘서 고맙 감사합니다’ 라는 문장이 쓰여 있었죠. 허락을 구하고 편지를 그대로 광고판에 올렸습니다.”

광고를 걸어놓은 곳은 다름 아닌 ‘골프 연습장’이었어요. 골프 치다 허리가 아픈 사람을 노렸냐고요? 아니에요. 김 소장의 타깃은 그 골프장을 자주 이용한다는 대구 시내의 ‘병원장들’이었죠.

“다른 병원의 원장님들이 ‘병원 광고를 저렇게도 할 수 있나’ 하고 충격을 받으셨어요. 원장의 이력이나 의료기기 자랑 없이, 문장 한 줄만 뒀으니까요. 그때부터 의뢰가 밀려들기 시작했습니다.”

광고주가 아닌, 광고를 볼 고객의 마음에서 시작한 아이디어. 김 소장은 “고집을 내려놓는 마음이 있어 가능했다”고 말합니다. ‘좋은 카피는 카피라이터만 뽑을 수 있다’고 자부했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나만이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고집에서 벗어나면, 온 세상이 영감으로 보여요. 덕분에 편지를 본 순간 인정할 수밖에 없었죠. 카피라이터인 나도, 이만기나 박지성도 줄 수 없는 감동이 여기에 있다는걸요.”

김종섭 소장이 보강병원을 위해 만든 광고. 허리 수술을 받은 환자 부부의 편지를 그대로 광고에 활용했다. 그는 “가장 좋은 카피는, 카피라이터가 쓸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빅아이디어연구소

Chapter 3.
고객이 듣고 싶어 할 말을 찾는다

발걸음을 멈춰 세우는 광고의 비결은 또 있습니다. 바로 ‘고객이 듣고 싶은 말을 건넨다’는 점이에요. 

김종섭 소장은 이를 ‘팩트 위에 이미지를 입히는 작업’이라 설명합니다. 광고에 신뢰감을 주는 사실에, 고객이 갈망하는 인식 한 겹을 포장하는 일이죠. 사실만 나열하는 광고는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니까요. 그는 두 가지 사례를 들었습니다,


① 로펌 의뢰인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을 띄우다

팩트를 디자인하기 위해, 김 소장은 철저히 ‘고객의 입장’이 되어봅니다. 2020년에 만든 미국 시카고의 한인 변호사 광고를 볼까요? 그는 상상했어요. 억울한 상황에 처한 의뢰인이 법률가에게 ‘가장 듣고 싶어 할 말’을요.

“사람들은 개인 변호사나 로펌을 왜 찾을까요? 막막한 상황에서 희망을 찾고자, 어떻게든 재판에 이겨보고자 찾는 거예요. 그 희망을 광고가 먼저 붙잡아주면, 없던 신뢰도 생길 거라 생각했어요.”

덕분에 이런 카피가 나왔습니다. ‘당신은 이길 법합니다. 우리는 이길 법합니다.’ 

법이라는 단어를 넣어 ‘회사의 정보’를 알리면서, 의뢰인에게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메시지까지 녹인 거예요.

김종섭 소장이 만든 시카고 한인 변호사 광고. ‘법’이라는 단어를 강조해 전문 분야를 명확히 표기하면서도, 의뢰인이 가장 듣고싶을 이야기까지 함께 녹였다. Ⓒ빅아이디어연구소

② 수술실 환자를 안심케 하는 말을 올리다

안과 광고에서도 김 소장은 질문을 먼저 했어요. ‘눈을 수술하려는 환자는 어떤 말을 듣고 싶을까?’ 김 소장의 답은 ‘수술 후 안심할 수 있는 한 마디’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첫 글자는 흐릿하게 보이다가, 갈수록 또렷하게 보이는 비주얼을 담아 ‘수술 잘 끝났습니다’라는 카피를 만들었어요. 이걸 큼지막한 옥외 광고로 내걸었죠.

“피 한 방울 안 섞인 의사에게 내 눈을 맡기는 건 큰 용기잖아요. 그런데 옥외 광고엔 전부 ‘라식 수술 잘하는 병원’ 같은 카피만 있더라고요. 저는 그 대신 고객이 가장 ‘안심할 수 있는 말’을 찾았어요.”

김종섭 소장은 안과에서 수술을 받은 환자가 가장 듣고싶어 할 말을 카피로 풀어냈다. Ⓒ빅아이디어연구소

Chapter 4.
정보를 덜면, 입소문이 퍼진다

정보를 과감히 덜어내, 고객의 머릿속에 ‘물음표’를 심는 것. 김종섭 소장이 자주 쓰는 ‘무명無名 브랜드의 역전 전략’입니다. 그 물음표가 곧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입소문으로 이어지거든요.

그가 만든 ‘보광병원’ 광고가 딱 그랬습니다. 의뢰인의 고민은 이랬어요. ‘가까운 보강병원과 이름이 너무 비슷해, 시민들이 헷갈려 한다’는 거였죠. 심지어 새로 입사한 직원이 보강병원으로 출근할 정도였어요.

이 치명적인 약점을, 김 소장은 정면으로 돌파했습니다. 시민들에게 ‘광’자를 각인시키기로 했죠. 한 고객이 택시 기사에게 “보강 말고 보광, 빛날 광光 자요” 라고 설명하는 데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① 민머리 모델의 얼굴을 넣자

김 소장은 정류장에 병원 이름을 큰 글씨로 새겨넣었어요. 단, 한글 ‘광’ 대신 햇빛이 반사되어 빛나는 민머리 모델을 넣어서요. 자연스레 ‘빛 광’ 자를 떠올려 병원의 이름을 맞추게 하기 위해서였죠.

다른 병원과 이름을 헷갈려하는 사람이 많아 고민이었던 보광병원을 위해, 김종섭 소장은 ‘광’자를 사람들의 기억에 각인시키는 광고를 만들었다. Ⓒ빅아이디어연구소

② 비광 화투 그림을 넣자

다른 정류장 광고엔 아예 병원 이름을 지웠어요. 대신 화투의 ‘비광雨光’ 패를 그려 넣은 뒤, 우산을 들고 있는 오노도후小野道風* 대신 손으로 허리를 짚고 있는 환자를 세웠죠.
*일본의 전설적인 서예가이자, 비광 패에서 우산을 들고 있는 그림 속 실제 인물.

보광병원의 ‘광’자를 이용한 또다른 광고. 화투패 중 하나인 비광에 허리 수술 환자를 넣었다. Ⓒ빅아이디어연구소

대담한 장난을 섞은 광고,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SNS에선 ‘보살 병원’, ‘보스님 병원’이라며 장난 섞인 추측이 오갔어요. 한편 “병원을 어떻게 설득했냐”며 혀를 내둘렀죠. 

“사람들은 광고를 보면서 ‘왜 병원 이름이 한 글자 비어 있지?’ 라고 의문을 가져요. 정보를 다 주지 않고 유추하게 만들면, 사람들은 그걸 놀이처럼 즐기기 시작합니다. 

제가 광고주를 설득한 논리도 이거였어요. 브랜드 노출이 적다는 위험이 있지만, 정답을 찾아낸 사람은 이름을 반드시 기억할 것이라고요.”

김 소장은 믿습니다. 때로는 정보를 감추는 것이 오히려 ‘호기심과 집착’을 부른다고요. 너무 많은 광고가 눈 속으로 밀려드는 시대에, 고객이 먼저 찾게 만드는 ‘여백의 기술’을 활용해 보자는 거죠.

김종섭 소장이 부산의 자갈치 정형외과를 위해 만든 엘리베이터 TV 광고. 의사의 이력을 소개하기 전, 자갈치역 앞에 있다는 점을 활용해 ‘자, 같이 뛰자’라는 문구를 만들어 사람들의 기억에 각인시켰다. 자갈치 정형외과 원장이 직접 뛰었다. Ⓒ빅아이디어연구소


Chapter 5.
당연한 메시지를, 어디서 보여줄지 고민한다

광고는 ‘무엇을 만드느냐’보다, ‘어디서 보여주느냐’가 중요한 싸움입니다. 김종섭 소장은 ‘광고와 사람이 만나는 순간의 불꽃을 극대화하는 일’에 온 힘을 쏟아요. 

“광고인도 진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요. 더 중요한 건 어디서 하느냐입니다. 똑같은 말도 나이아가라 폭포 앞에서 하느냐, 자유의 여신상 앞에서 하느냐에 따라 임팩트가 달라지거든요.”

그는 2020년 제주지방경찰청의 의뢰로 만든 ‘보이스피싱 예방 공익광고’를 예로 듭니다. 당시 경찰청에선 4400억원*이라는 숫자를 강조해,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고 싶어 했어요.
*2019년 한해 전국에서 신고된 보이스피싱의 총피해액.

하지만 김 소장은 4400억원이 마치 ‘남의 이야기’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마음에 와닿을 광고를 만들기 위해, 그는 피해자의 동선을 따라가 보기로 했습니다. 

“전화로 협박을 받으면 나도 모르게 손발이 덜덜 떨릴 거예요. ‘돈을 빨리 보내라’ 하니 급히 외투를 걸치고 밖으로 나가겠죠. ‘조금이라도 늦으면 어떡하나’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은행 ATM 창구에 도착했어요.”

ATM 창구 앞에 서는 순간, 김 소장은 생각했습니다. ‘그래, 여기야.’ 이곳이야말로 광고가 필요한 ‘결정적 장소’라 생각한 거예요. 피해자의 생각을 바꿀 마지막 기회니까요.

“ATM으로 돈을 보내기 전, 잠시라도 눈길을 끌어 생각을 잡아챌 이미지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천장에 5만원권 지폐가 낚싯줄에 매달려 있는 듯한 이미지를 붙였죠. 아무리 1분1초가 급한 사람도, 머리 위에 돈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면?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 테니까요.”

사람들은 고개를 든 순간 천장에 적힌 ‘보이스 피싱은 의외의 곳에서 당합니다’라는 문구를 마주하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과 움직임을 담은 결과는 놀라웠어요. 이 광고가 설치된 뒤, 경찰은 “제주 지역의 피해 사례가 눈에 띄게 줄었다”며 고마움을 표했죠.

제주지방경찰청의 보이스피싱 예방 광고. 김종섭 소장은 잠재적 피해자가 돈을 송금하기 전, 은행 ATM 창구 천장을 올려다보도록 유도했다. Ⓒ빅아이디어연구소

Chapter 6.
“꼭 그렇지는 않다”고 말해보는 것 

김종섭 소장에게 물었습니다. “번뜩이는 발상은 어떻게 꺼낼 수 있느냐”고요. 그는 창의적인 사람이 가져야 할 중요한 태도를 들려줬어요. 남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에 “꼭 그렇지는 않다”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거였죠.

“어릴 때부터 저는 소위 ‘정신 승리’를 잘했어요. 부잣집 친구가 교문 앞에 선 외제차에서 내려도, 저는 ‘우리 집은 차가 없어서 많이 걸을 수 있어. 쟤보다 오래 살 거야’라고 생각했죠. 

이런 습관이 색다른 발상으로 이어졌어요. 현실을 마냥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어떻게 해야 긍정적으로 바꿀지를 연습하는 게 좋은 발상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또 다른 발상 사례로, 대구의 전문대학 ‘수성대’의 광고 이야길 들려줬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전문대학은 ‘취업률 100%’나 ‘해외 학위 보장’ 같은 문구를 내세웠어요. 김 소장의 생각은 달랐죠.

“취업률 100%는 절대 쓰기 싫었어요. 저는 전문대의 진짜 메리트가 ‘생생한 경험’에 있다고 봤거든요. 4년제 대학을 나온 친구들보다, 더 빨리 현장에 나가 세상을 배우니까요.”

고민 끝에 완성한 광고 포스터를 볼까요? 어두운 배경 속, 살며시 열린 문틈으로 ‘땀 흘리며 요리 실습을 하는 학생들’이 보여요. 그 옆에는 ‘교실에서 볼 수 없는 세상을 봅니다’라는 카피를 얹었죠. 교실이라는 공간을 넘어, 문을 열고 더 멀리 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떠올리게 한 거예요.

대구 수성대학교의 광고. 김종섭 소장은 뻔한 슬로건 대신, 전문대학이 지닌 가치를 표현하는 데에 집중했다. Ⓒ빅아이디어연구소

사람들이 공감하는 언어를 끌어당겨 보자 

김 소장은 선거에 나서는 정치인처럼 예민한 주제의 광고를 다룰 때도 ‘가치 전복’의 기술을 활용했어요. 그는 재선에 도전하는 한 후보의 포스터를 만든 이야길 들려줬습니다. 

당시 그는 ‘재선’이라는 단어가 유권자에게 주는 부정적 인식을 떠올렸어요. ‘재선 도전’을 듣는 순간, ‘왜 또 나오려는 거야’, ‘욕심이 많네’ 같은 생각이 꼬리를 물 수도 있다고 봤죠. 

그래서 단어를 바꿨습니다. 재선을 ‘재구독’으로요. 포스터를 넷플릭스 인터페이스처럼 디자인한 뒤, ‘OOO의 구독을 연장합니다’라는 문구를 넣었어요. 유권자들이 더 쉽게 공감할 언어로 광고를 풀어낸 셈입니다. 

“재선, 다시, 한 번 더 라는 단어에는 힘이 없어요. ‘저를 한 번 더 뽑아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후보의 이미지는 뻔해지죠. 

저는 정치인을 ‘하나의 콘텐츠’로 바라봤습니다. 그래서 콘텐츠의 언어를 빌려왔을 뿐이죠. 어차피 콘텐츠가 원하는 내용이 아니면, 선택받지 못하는 건 똑같으니까요.”

김종섭 소장이 명함을 들어보이고 있다. 그는 광고를 만들 때 언제나 잠재 고객이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언어를 쓰는 데에 집중한다. Ⓒ롱블랙

Chapter 7.
목마른 상태를 유지해야 프로다

김종섭 소장은 빅아이디어연구소를 13년째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물어요. 어떻게 꾸준하게 신선한 아이디어를 꺼낼 수 있느냐고요. 

김 소장은 이를 위해 “1년 365일 의뢰인과의 주파수를 맞추려 한다”고 말합니다. 어떤 브랜드의 광고를 맡을 때면, 밥을 먹거나 화장실에 갈 때나 ‘브랜드를 표현할 한 줄’을 고민하며 산다는 거죠.

“문장 한 줄에 목마른 상태로 저를 몰아붙입니다.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제 열한 살 아이를 잃어버렸다고 상상해 볼까요. 저는 어디서 뭘 하든 ‘아이가 어디 있을까’ 생각만 할 테죠.

광고를 만드는 일도 똑같은 마음으로 임해요. 아침에 일어나 잠에 들 때까지, 혹은 잠을 설치는 새벽에도 한 줄 카피를 위한 주파수를 계속 맞춰두는 거예요.”

그는 덧붙입니다. ‘번뜩 떠오르는 영감’만으로는 절대 의뢰인을 설득할 수 없다고요. 얼마나 깊이 고민했는가가, 찰나의 표정과 말투에서 전부 드러나기 때문이란 거죠.

“제가 보광병원에 민머리 그림을 넣자고 한 건, 나쁘게 보면 ‘장난’처럼 느껴질 수 있었어요. 그런데도 의뢰인이 허락한 건, 아이디어가 반드시 채택되어야 하는 이유와 그것이 가질 수 있는 약점을 모두 제안했기 때문이에요. 고민의 깊이가 의뢰인에게도 전해진 셈이죠.”

마지막으로 그는 말합니다. 꾸준하게 창의적일 수 있는 힘은 결국 ‘여백을 대하는 태도’에서 나온다고요. 

“오늘 내가 만들어야 할 광고판을 ‘해치우면 되는 작업’으로 여기는지, ‘도시의 첫인상을 결정짓는 브랜딩’이라고 믿는지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러니 오늘 주어진 일을 숙제가 아닌 ‘소중한 기회’로 대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여백에 무엇을 써 내려가는지가, 곧 나라는 인간의 가치를 결정하니까요.”

롱블랙과 인터뷰하는 김종섭 소장. 그는 “요즘은 광고인과 비광고인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며, 누구나 신선한 발상으로 원하는 것을 홍보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롱블랙


롱블랙 프렌즈 B

어쩌면 우린 살면서 ‘좋아하는 일’을 영영 못 찾을 수도 있습니다. 대신 김종섭 소장처럼 주어진 일을 천직으로 빚어낼 순 있죠. 그가 친척의 잔소리에서 기회를 찾아, 끝내 빛을 본 것처럼요. 

여러분은 지금 어떤 마음으로 오늘의 여백을 대하고 있나요? 어제의 관성을 덜어내고, 색다른 도전을 채워 넣기 위해 노력하는 여러분의 시간을, 저희가 응원하겠습니다.

김종섭 소장이 만든 이혼 전문 변호사 광고. 이혼의 원인을 개인의 부족함이나 악함에서 찾지 않고, 결혼을 하면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라는 점을 강조해 의뢰인을 위로하려 했다. Ⓒ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이 만든 형사 전문 변호사의 명함. 이태리타월로 제작했다. Ⓒ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이 제주 경찰의 의뢰로 만든 범죄 예방 광고. 범죄율을 낮추는 경찰관 이미지와, 범죄 예방에 효과가 있는 불빛을 합쳤다. Ⓒ빅아이디어연구소
HPV 및 질염 자가 검진 키트를 홍보하려는 산부인과를 위해, 김종섭 소장은 직관적인 문구로 고객이 어떤 가치를 얻을 수 있을지를 선명히 설명하려 했다. Ⓒ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이 만든 YBM 어학원 광고. 종이를 접는 식으로 점수의 차이를 직관적으로 설명했다. Ⓒ빅아이디어연구소
대구광역시치과의사회의 광고. 치아 건강을 위해 치실을 쓰자는 캠페인을 김종섭 소장이 지폐 속 인물을 활용해 홍보했다. Ⓒ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이 만든 변호사 광고. 경찰청, 국세청, 노동청 등 다양한 현장에서의 실무 경험을 쌓은 변호사의 이력을, 세 가지의 모자로 표현했다. Ⓒ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은 "내게 주어진 상황을 다르게 바라보려는 노력이, 나를 예상치 못한 곳으로 데려다준다""고 말한다. Ⓒ롱블랙

김종섭 소장이 만든 이혼 전문 변호사 광고. 이혼의 원인을 개인의 부족함이나 악함에서 찾지 않고, 결혼을 하면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라는 점을 강조해 의뢰인을 위로하려 했다. Ⓒ빅아이디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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