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롱블랙 프렌즈 L
‘결정 피로Decision Fatigue’라는 말 들어봤어? 너무 많은 선택지를 마주하느라, 결정 능력이 떨어지는 현상을 말해. 특히 쇼핑할 때가 그렇지. 컵 하나를 살 때도 검색 사이트와 블로그 후기, 커머스 서너 군데를 들락날락하게 되니까.
피로가 쌓여서일까? 이제 사람들이 쇼핑까지 AI에게 맡기는 추세야. 어도비Adobe가 조사한 숫자를 보면 흐름을 알 수 있어. 2025년 7월 기준 ‘생성형 AI를 거쳐 쇼핑 사이트로 들어온 트래픽’은 전년 대비 무려 4700% 상승했지.
*어도비의 리서치 기관 ‘어도비 디지털 인사이트Adobe Digital Insights’가 2025년 8월 발표한 자료.
더 놀라운 건 AI의 ‘매출 기여도’야. 세일즈포스Salesforce는 2025년 말, “전 세계 온라인 쇼핑 매출 1조2900억 달러(약 1948조원)의 20%(약 395조원)가 AI의 추천이나 개입으로 나왔다”고 발표했어.
이 숫자들이 알려주는 게 뭐냐고? 모든 브랜드의 숙제가 바뀌고 있다는 것. ‘예쁘고 부드러운 화면’을 만드는 시대를 지나, AI가 우리 브랜드를 추천할 ‘명분과 맥락’을 디자인하는 시대가 온 거지.

레드버스백맨 UX 리서처・라이터
“이제 사용자가 온라인에서 브랜드를 탐험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15년 차 UX 리서처 레드버스백맨(이하 레버맨)은 지금의 현상을 ‘UX의 종말’이라 불렀어. 현대차와 SK텔레콤, 쿠팡을 거치며 ‘편리한 사용성’을 설계해 온 그가, 왜 발칙한 이야기를 꺼낸 걸까?
다 이유가 있었어. AI가 사람 대신 일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에이전틱Agentic AI’*의 시대가 왔거든. 레버맨은 말해. “지금까지의 AI가 묻는 말에 답하는 ‘비서’였다면, 에이전틱 AI는 내 카드를 들고 직접 장을 봐오는 ‘심부름꾼’에 가깝다”고.
*사용자의 지시 없이도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AI. 답변 생성을 넘어, 웹사이트를 탐색하거나 구매를 대신하는 등의 자율적인 행동을 한다.
레버맨은 말해. “이젠 버튼을 예쁘게 만들어도 소용없는 시대가 오고 있다”고. AI는 화면이 아닌 데이터를 읽는다는 말이기도 하지. 에이전틱 AI가 나타나는 요즘, UX의 규칙이 어떻게 재설계되고 있는지를 그가 직접 체험하며 알아봤어.
Chapter 1.
클릭이 사라지고, ‘위임’이 남는 시대
솔직히 말할게. 난 아직 AI에게 쇼핑을 맡겨본 적이 없어. “봄 재킷 찾아 줘” 한마디로 제품 구매까지 할 수 있다는 게 실감 나지 않거든. 내가 원하는 걸 사 올지 믿음이 가지 않기도 하고.
그런데 레버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어.
먼저 그는 “쇼핑 앱을 열기 전, 우리가 얼마나 많은 수고를 쏟는지 생각해 보자”고 했어. 잠깐 순서를 떠올려 볼까? 우리는 제품을 검색하고, 후기를 읽고, 가격을 비교한 뒤 물건을 사곤 해. 검색 경로에 따라 구매 전 서비스 로그인도 해야 하고.
레버맨은 그 과정을 AI가 대신 한다는 게 ‘에이전틱 커머스’의 본질이라고 설명했어. 여기서 핵심은 수고로움이 아닌 ‘위임’에 있다고 했지.
“과거의 쇼핑은 사용자가 모든 걸 직접 하는 ‘수고로움Doing’의 과정이었어요. 이젠 다릅니다. AI 에이전트에게 ‘내게 어울릴 봄 재킷 찾아 줘’ 한 마디만 던지는 ‘위임Delegating’의 과정만 남은 거예요.”

레버맨은 위임의 또 다른 장점으로 “내가 몰랐던 선택지까지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을 들었어.
“AI 에이전트가 단순히 내 시간을 아껴줘서 좋은 게 아니에요. 직접 검색하면 내가 아는 플랫폼, 내가 쓰는 키워드 안에서만 답을 찾게 되잖아요. 하지만 AI 에이전트는 내가 평소 가지 않은 사이트와 생각하지 못한 조건까지 알아보죠. 덕분에 ‘더 나은 선택지’를 제안할 수 있고요.”
빅테크들이 이 일에 앞장서고 있어. 포문을 연 건 세계 최대의 커머스 아마존이야. 2024년 2월 자체적으로 만든 AI 쇼핑 어시스턴트 루푸스Rufus를 내놓았지.
이어 AI 검색 서비스 쪽에서 속도를 낸 건 퍼플렉시티. 2024년 11월 쇼핑·결제 서비스 코멧Comet을 내놓았어. 그로부터 약 10개월 뒤엔 오픈AI의 챗GPT가, 2026년 1월엔 마이크로소프트의 코파일럿Copilot이 비슷한 기능을 추가해 ‘대화로 구매하는 시대’를 선언했고.
사실 출시 소식보다 궁금한 건 실제로 AI 에이전트가 어떻게 쇼핑을 대신하느냐겠지. 레버맨에게 부탁했어. AI 에이전트를 써본 뒤의 경험을 들려달라고 했지.

Chapter 2.
AI 에이전트, 뭘 잘했고 뭘 못했을까
레버맨이 체험한 AI 쇼핑 에이전트는 두 가지야. 아마존의 루푸스와 퍼플렉시티의 코멧. 상용화한 해외 서비스 중 성격이 뚜렷하게 다른 두 가지를 골랐다고 해*.
*레버맨은 “한국의 서비스는 취재 당시 출시 전이거나 베타 단계라 체험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밝혔다.
루푸스는 커머스 안에 들어있는 AI 에이전트야. 아마존 앱 안에서만 움직이고, 아마존에 등록된 상품만 추천해 주는 방식이지.
반면 코멧은 특정 플랫폼에 묶이지 않고 검색하는 AI 에이전트야. 여러 쇼핑몰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클릭부터 구매까지 직접 할 수 있지.
먼저 아마존의 AI가 어떻게 일하는지 볼까? 레버맨은 아마존에 로그인한 뒤, 검색창에 뭔가를 쓰는 대신 루푸스에게 이렇게 말을 걸었다고 해. 자신의 감정과 상황을 던지면서 마음에 드는 걸 찾아내는지 알아내려 했지.
Q. 큰 스트레스였던 프로젝트를 막 끝냈어. 내게 보상이 될 만한 50달러 이하의 물건이 있을까?
A. 축하드려요. 긴장을 풀고 나를 돌보기 위한 물건을 골라봤어요. (포근한 담요, 아로마테라피 캔들, 초콜릿, 커피, 입욕제를 띄우며) 리뷰 수와 가격, 할인율, 배송 일정까지 정리했으니 편히 살펴보세요.
감정을 던졌을 뿐인데, 루푸스는 ‘기분 전환’이라는 테마를 잡아 추천 제품을 큐레이션했어. 레버맨은 여기서 입욕제를 고른 뒤, 한 걸음 더 들어가 질문했어.
Q. 좋아. 그런데 입욕제를 내가 사야 하는 이유가 뭐야? 다른 입욕제 세트보다 나은 게 뭐야?
A. 스트레스 해소에 초점을 맞춰 고른 제품이에요. 시어 버터와 코코아 버터가 들어 있어 보습 효과가 좋고, 미국산 수제 제작이라 품질이 안정적이에요. 개당 2.38달러로 목욕을 럭셔리 스파처럼 만들어주죠.
레버맨은 이 답변에서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고 했어. AI가 제품 스펙을 단순하게 나열하는 게 아니라, ‘스트레스 해소’라는 맥락에 맞는 정보를 풀어 전달했다는 것. 다음으로 레버맨은 여기서 구매까지 루푸스에게 맡겨보기로 했어.
Q. 이번 주 안에 전체 제품 가격이 17달러 아래로 떨어지거나 10% 할인을 하면 바로 구매해 줘.
루푸스는 여기서부터 막혔어. “가격 알림은 앱 설정을 이용하라”는 답변을 되풀이하다 대화를 먼저 종료했다고 해. 어느 지역에서 구매하는가, 어떻게 알림을 보내느냐에 대한 질문이나 설명도 없이 말야.
레버맨은 이 지점을 꼬집었어.
“루푸스의 경험을 짚으면서 배울 수 있는 건 ‘기획의 부재’입니다. AI 에이전트가 신뢰를 주려면,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에 대해 이유를 설명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해요. 여기서 무책임하게 대화를 끊어버리면 잘 끌어온 사용자의 경험을 절벽으로 밀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Chapter 3.
AI로 ‘신뢰’를 디자인하는 두 가지 방법
이번에 레버맨은 퍼플렉시티의 코멧으로 넘어가 또 다른 실험을 하기 시작했어. 이번에는 뭘 살지는 정해놓되, 그다음 여정을 AI 에이전트가 뒷받침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로 했지.
그는 아마존에서 추천받은 입욕제와 같은 제품을 언급하면서 코멧에게 다음과 같이 요청했어.
“공식몰에서 직접 사줘. 관세는 내지 않는 범위로 한국에서 받을 수 있도록 해줘.”
코멧은 곧장 행동했어. 공식몰에 들어가 상품을 찾고, 가격과 관세를 계산했지. 심지어 ‘공식몰에서 한국 직배송은 안 된다’는 사실을 확인하더니, 배송대행지*를 경유해야 한다고 판단할 정도였어.
*해외 쇼핑몰에서 구매한 상품을 현지 주소로 보내 받은 뒤, 특정 국가로 재배송해 주는 중간 물류 창고 및 서비스.
여기서 끝이 아냐. 코멧은 배송대행지로 뉴저지 센터와 델라웨어 센터를 비교하더니, 입욕제는 뉴저지로 보내야 ‘1달러 더 싸다’는 사실을 알아냈어. 그러더니 관세 면제 전략까지 제안했어. 면세 한도가 200달러인 점을 이용해, “8달러짜리 입욕제를 약 25개 사면 관세가 0원”이라 알려준 거야.
“코멧은 해외 직구를 할 때 실수할 만한 지점까지 계산해 방어해 줬어요. ‘AI 에이전트로 물건을 한 푼이라도 더 싸게 살 수 있다’는 인상을 줘, 최선의 결과를 준다는 믿음을 증명한 셈이죠.”
거침없는 AI의 움직임 외에 레버맨의 눈길을 사로잡은 부분이 더 있었어. 바로 에이전트 설계자들이 심은 ‘신뢰 디자인Trust Design’. 그는 크게 두 가지의 배울 점을 얻었다고 설명했어.
① ‘작업 생중계’로 안도감을 줬다
레버맨은 코멧이 ‘자신의 작업을 생중계하는 모습’에 주목했어. 화면 하단에 ‘상태 바Progress bar’를 표시하는 방식이었대. 상태 바는 AI가 지금 어딜 클릭하고, 어떤 이미지를 읽는지 알려줬지. 아래처럼.
Working → Navigating → Clicking → Image Reading → Taking Screenshot → Filling form…
단순히 ‘어떤 행동을 하고 있다’ 수준으로 끝낸 게 아냐. 코멧은 자신이 웹사이트 양식을 채우는 모습을 스크린샷으로 찍어, 사용자에게 실시간으로 보여줬어. 덕분에 AI와 사용자가 ‘같은 곳을 보고 있다’는 믿음을 만들어줬지.
“AI 에이전트를 쓸 때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은 뭘까요? AI가 뭘 보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겠죠.
이걸 알고 있다는 듯 코멧은 ‘AI가 지금 이곳을 보고 있어’, ‘이 단계에서 고민 중이야’라는 걸 제게 실시간으로 보고했어요. 사용자 입장에서 그걸 보는 것만으로 묘하게 안심이 됐습니다.”
② ‘한계 인정’이 믿음으로 이어졌다
레버맨이 AI 에이전트에 신뢰를 느낀 포인트가 하나 더 있어. 바로 코멧이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먼저 선언한 것.
코멧은 구매 단계에서 “신용카드 번호 같은 개인 정보는 보안 정책상 대리 입력이 어렵다”고 밝혔어. 대신 작업하던 링크를 공유한 뒤, “정보를 써주면 다시 알아서 구매하겠다”고 했대.
“앞으로 미래 커머스는 ‘얼마나 빠른가’가 아니라, ‘얼마나 안전하게 맡길 수 있는가’로 경쟁할 거예요. 그러려면 AI가 결정하는 근거, 이것이 할 수 있는 일을 명확하게 정리해 알려야 합니다.”

Chapter 4.
브랜드가 ‘AI의 눈’에 들려면, 뭘 해야 할까
빅테크가 만드는 AI 에이전트의 일하는 방식을 알았다면, 이제 이걸 활용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알아볼 차례야. 먼저 레버맨은 우리가 품어야 할 질문을 이렇게 정리했어.
“사용자를 대신하는 AI 에이전트가 우리 상품을 쉽게 읽을 수 있는가?”
낯설게 느껴진다고? 레버맨은 말해. 사실 이건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라고. 디자인의 방향이 살짝 달라졌을 뿐이란 거야.
“지금까지는 사용자가 직접 화면을 보고 클릭하니, UI 디자인이 중요했어요. 버튼 하나, 레이아웃 하나가 구매 전환에 영향을 줬으니까요.
그런데 AI 에이전트는 화면을 보지 않아요. 대신 상품 데이터와 리뷰 텍스트를 읽죠. 이젠 화면 앞의 디자인보다, 화면 뒤의 데이터 맥락이 훨씬 중요해진 거예요. AEOAI Engine Optimization, 즉 ‘AI 엔진 최적화’의 시대가 온 겁니다.”
가장 궁금한 건 AI가 읽기 좋은 데이터를 어떻게 쌓느냐겠지. 레버맨은 AI 서비스들이 언급하는 기준들을 토대로 두 가지 방향을 제시했어.
첫째, 리뷰의 맥락을 풍부하게 만들어야 해. AI는 별점이 아니라 리뷰의 내용을 읽어. 가령 ‘가족들과 쓰기 좋은 캠핑 의자’를 찾는다면, AI는 리뷰 속에서 ‘아이도 혼자 앉기 편하다’, ‘가벼워서 들고 다니기 좋다’ 같은 경험이 담긴 제품을 찾아. 리뷰에 담긴 언어가 질문과 연결될 때가 많기 때문이지.
둘째, 상품의 데이터를 코딩하듯 구조화해야 해. 사람과 달리 AI는 화면이 아닌 데이터를 읽잖아? 그러니 가격과 색상, 소재, 재고 여부, 해외 배송 여부 같은 정보가 구조적으로 정리돼 있어야 해.
실제로 코멧을 운영하는 퍼플렉시티는 상거래 프로그램에서 ‘구조화된 데이터’가 상품 등록의 필수 요건이라고 내걸었어. 쉽게 말하면 이런 거야. 상품 페이지 코드 안에 ‘이 제품의 가격은 2만9000원, 색상은 흰색, 현재 재고 있음’이라는 정보가 AI가 바로 읽을 수 있도록 포함되어 있어야 한단 거지.

Chapter 5.
‘AI 환대’까지 추구하는 시대
구조화한 데이터와 리뷰를 잘 쌓으면 AI에게 발견된다. 그런데 발견되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이 흐름에서 벗어나려는 브랜드의 움직임도 있다”고 레버맨은 소개했어.
주인공은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브루넬로 쿠치넬리Brunello Cucinelli(이하 쿠치넬리). 1978년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ria의 작은 마을 솔로메오Solomeo에서 시작했어. 하나에 수백만 원을 넘는 캐시미어 니트웨어로 이름을 알렸지.
2026년 1월, 쿠치넬리는 자사 공식몰에서 ‘상품 페이지’를 과감히 지워버렸어. 남성·여성, 상의·하의 같은 흔한 카테고리도 볼 수 없지. 그들이 남겨놓은 건 오직 AI 검색창 하나뿐이야.
특이한 건 검색창에 ‘인격’을 녹였다는 것. 이름은 칼리마코스Καλλίμαχος야. 고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장서를 목록화한 고대 그리스 시인의 이름에서 따왔지.
이 AI, 어떻게 일하는지 궁금하잖아? 레버맨은 칼리마코스에게 “월요일에 입을 차분한 출근룩”을 물었어. 그랬더니 ‘당신의 경험을 빚어내는 중입니다Crafting your experience…’라는 말과 함께 뜸을 들이던 칼리마코스. 이런 답을 내놓았지.
“내면의 고요한 자신감을 마주해 보세요. 세밀하게 다듬은 간결함과 부드러운 감촉이 어우러지는 순간, 반복되던 당신의 하루는 우아한 의식이 될 겁니다. (스크롤을 내려 살펴보세요)”
스크롤을 내리자 다양한 디자인의 정장이 펼쳐졌어. 고정된 페이지가 아니라, 화면 안에서 옷을 조립하며 추천하는 모습이었지. 룩북 이미지와 글씨, 결제 버튼이 하나의 캔버스 위에 배치되는 듯했어.
쿠치넬리는 이와 같은 자신들의 설계를 ‘페이지리스 디자인Page-less Design’이라고 불렀어.
“이들은 무엇보다 고객의 ‘의도’를 세심히 살펴요. ‘그저 둘러보고 싶다’는 뉘앙스를 읽으면 다양한 스타일을 보여줘 탐색하게 하고, 특정 제품을 원하면 그 제품의 화보와 가격을 더 크게 드러내죠.”
_프란체스코 보티글리에로 솔로메이 AI CEO, 2026년 IDEO 인터뷰에서
사람들의 반응도 뜨거웠어. 쇼피파이Shopify 대표인 할리 핑켈스타인Harley Finkelstein이 러브콜을 보내 관심을 보일 정도였지. 레버맨은 이 사례가 모든 브랜드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고 했어.
“쿠치넬리의 시도는 단순한 기술 과시가 아니에요. AI가 내 브랜드를 어떻게 읽고 전달하는지를, ‘브랜드가 직접 설계하겠다’는 선언이죠.
보통의 커머스는 ‘어떻게 더 빨리 찾고 사게 할지’에 초점을 두고 AI에 접근하죠? 쿠치넬리는 달랐어요. 부티크의 경험을 온라인에서 구현하기 위해 AI를 썼죠. AI를 효율의 도구가 아니라 환대의 확장으로 본 겁니다. 어쩌면 이게 경험을 중요시하는 브랜드가 가야 할 길이 아닐까요?”

마치며 : UX의 전쟁터가 바뀌었다
레버맨에게 마지막으로 물었어. 그가 15년간 몸담아온 UX 분야는 어떻게 되는 거냐고. 지금 하는 일은 의미가 있냐고 말야. 그는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어.
“사용자 경험의 본질은 변하지 않아요. 사람이 원하는 것을 더 쉽게 이루게 하는 것. 그게 전부죠. 다만 ‘더 쉽게’의 정의가 바뀌었을 뿐이에요. 간편한 클릭에서 믿고 맡길 수 있는 ‘위임’으로요.”
그는 이걸 자전거에서 자율주행차로의 전환에 비유했어. 지금까지의 UX가 ‘페달을 더 편하게 밟도록 돕는 일’이었다면, 앞으로의 UX는 자율주행차에 탄 운전자가 시스템을 믿고 목적지까지 맡기도록 돕는 일이 된다는 거야.
“어쩌면 지금의 사용성usability은 죽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UX를 배우고 개선하려는 수요는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다만 싸워야 할 전장이 화면 앞에서 화면 뒤로 옮겨간 것뿐이죠. 데이터의 구조, 리뷰의 맥락, 신뢰의 흔적. 이게 앞으로 UX 설계자들이 공들여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롱블랙 프렌즈 L
난 솔직한 게 좋으니까 털어놔 볼게. 이 글을 쓰고 나서도, 난 여전히 AI에게 쇼핑을 맡기진 않을 것 같아. 아직은 내가 직접 고를 때 오는 설렘이 있거든.
롱블랙 피플은 오늘 레버맨의 분석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어? 에이전틱 AI가 만들 미래를 기대하기도, 오히려 걱정한 사람도 있겠지. 어느 쪽이든 분명한 건 하나야. 다가오는 미래에 우리가 할 일은 여전히 많다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