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롱블랙 프렌즈 C
요새 SNS를 스크롤하다 뭔가 눈에 띄면 ‘이건 AI로 만들었을까?’라는 질문부터 하게 돼요. 얼마 전만 해도 어색한 손가락과 살짝 뭉개진 글자로 AI 제작물을 알아냈잖아요? 이젠 그마저도 해결되고 있는 것 같죠.
실제로 메타의 CEO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는 “2026년까지 기업이 목표만 알려주면, 크리에이티브부터 타기팅까지 AI가 담당하게 하겠다”고 했어요. AI로 뭔가를 만드는 게 당연한 방향이 된 셈이죠.
궁금해져요. 앞으로 우리가 뭔가를 만드는 일은 더 쉬워질까요? 그런 세상 속에서, “딸깍*은 환상”이라고 말하는 한 디자이너를 찾았어요.
*디자인, 작문 등에서 AI를 활용해 클릭만으로 쉽게 결과물을 낼 때 쓰는 말.
김진영 디자이너. AI 디자인 에이전시 콜렉티브 턴Collective Turn의 대표이자, 그라피스 어워드Graphis Awards*에서 광고·디자인·뉴탤런트 분야 3관왕을 차지한 인물이에요.
*뉴욕의 세계적 디자인 전문 기관 그라피스가 매년 개최하는 국제 디자인 어워드. 브랜딩·광고·포스터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을 선정한다.
19년 차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기도 한 김 디자이너는 말해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딸깍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세공하는 능력”이라고. 그 세공이 무엇인지, 들어볼게요.

김진영 AI 디자이너
먼저 김진영 디자이너는 “스스로 세공력을 익히기까지 비주류로 오래 방황했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그는 자신에게 학사 학위가 없다는 점을 밝혔어요. 디자인이 하고 싶었지만 국민대 공예과에 붙었거든요. 꾸역꾸역 학교를 다니다 결국 4학년이 되면서 자퇴를 택했죠.
2005년, 그는 27살에 삼성디자인스쿨(SADI)*에 들어가 디자인을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편이라 절박하게 배웠다고 해요. 2013년, 네덜란드의 세인트 요스트 미술대로 유학을 떠날 정도였죠. 이후 그는 1인 에이전시 대표가 됐고, 국민대에서 ‘AI와 아트’라는 과목을 가르친 선생님이 되기도 했어요.
*Samsung Art and Design Institute. 삼성이 설립한 디자인 전문 교육기관.
김 디자이너는 말해요. “여러 학교를 다니며 공부하고, 또 여러 고객사와 일하면서 절대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없다는 걸 배웠다”고.
Chapter 1.
‘딸깍’은 없다
김진영 디자이너에게 물었어요. “정말 AI로 3초 만에 완성도 높은 이미지나 영상을 만들 수 있을까요?”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어요.
“‘3초 만에 AI로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사기꾼이에요. 저도 AI가 마법이면 좋겠어요. 원하는 게 ‘뿅’ 나오지 않아서 제일 슬픈 건 디자이너인 저 자신이거든요.
‘뿅’, ‘딸깍’과 같은 단어에는 디자이너의 여러 능력이 생략돼 있어요. 디자이너가 가진 ‘기획의 눈’,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까지. AI 시대에 가려진 능력들이죠.”
김 디자이너는 “디자이너의 능력을 보여주려면 AI 디자인의 과정을 언어화해야 한다”고 했어요. 그는 세 단어로 AI 디자인 과정을 정리했죠.
① Create(쏟아내고) → ② Curate(골라내고)→ ③ Craft(세공한다)
하나씩 살펴볼까요? 먼저 쏟아내기Create는 말 그대로 ‘새로운 걸 많이, 다양하게 만드는 과정’이에요.
이 단계에서 그는 가능한 많은 AI 도구를 쓴다고 했어요. 나노 바나나Nano Banana*, 힉스필드Higgsfield**, 클링Kling***까지 활용한다고 했죠. 도구마다 저마다의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에요.
*구글이 만든 생성형 AI ‘제미나이Gemini’의 AI 이미지 생성기이자 사진 편집기.
**카자흐스탄 출신 개발자들이 2023년에 만든 생성형 AI 영상 서비스. 2025년 카자흐스탄 최초의 유니콘 기업이 됐다.
***중국의 콰이쇼우가 2024년 6월에 공개한 생성형 AI 서비스. 프롬프트를 입력하거나 이미지를 올리면 영상을 만들어 준다.
중요한 건, 그가 쏟아내는 단계에서 AI에게 지시하는 법이에요. 그는 일부러 프롬프트(명령어)를 적게 쓴다고 했죠.
“일하다 보면 가끔은 내가 내 의도조차 모를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AI는 제가 상상하지 못했던 걸 채워주기도 합니다. 그 표현을 확장하기 위해 일부러 프롬프트를 적게 쓰기도 해요. Warm Metal(따뜻한 재질의 금속), Sharp Explosion(강렬한 폭발), Transparent Weight(투명한 무게감)* 이런 식으로요.”
*김진영 디자이너는 영어 기반 서비스는 프롬프트를 영어로 써야 성능이 최대화된다고 말했다.
다음은 골라내기Curate. 여기서부터는 사람이 더 적극적으로 달라붙어야 해요. 김 디자이너는 이때 그저 예쁜 것을 골라선 안 된다고 조언해요. “기획자의 눈으로 메시지를 가장 잘 전달하는 이미지를 가려내는 게 우리의 일”이라고 말하죠.
예쁜 게 아니라 메시지가 담긴 이미지를 골라내는 것. 김 디자이너는 이미지 두 장을 보여줬어요. 3월 14일 화이트데이를 기념해 식물로 하트 모양을 만든 이미지예요.

왼쪽 사진이 오른쪽 사진보다 식물의 질감과 디테일이 살아있어요. 하지만 ‘하트 모양’이 나오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디자이너 입장에선 오른쪽 사진을 선택해야 하죠.
“AI는 무작정 멋지고 예쁜 이미지를 우리 눈앞에 들이밀어요. 그럴 때 휩쓸리지 않고 콘텐츠가 가야 하는 방향을 담은 이미지를 뚝심 있게 골라내야 해요. 타깃에게 정확히 꽂히는 이미지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는 겁니다.”

Chapter 2.
세공은 AI 작업물의 핵심 승부처다
쏟아내고 골라내는 게 AI 디자인의 80%라면, 세공Craft은 남은 20%를 차지해요. 김진영 디자이너는 말해요. “사실 결과물의 진짜 승부는 마지막 20%에서 갈린다”고.
“이미지를 생성하고 골라내는 것까지는 몇 분이면 될 겁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사람들에게 ‘좋은 디자인’으로 인식될까요? 그렇지 않아요. 결국 남은 20%가 ‘먹히는 디자인이냐 아니냐’를 가르죠.”
그럼 세공이 뭘까요? 김 디자이너는 “AI가 만든 이미지의 미묘한 어색함을 좁히는 작업”이라고 말해요. 장신구의 거친 부분을 연마하고, 다듬는 작업과 비슷하달까요?
하지만 김 디자이너는 “AI 디자인에서 세공은 이미지를 다 만든 뒤에 다듬는 후보정 수준이 아니”라고 했어요. 그는 “디자인을 시작할 때부터 세공 단계를 고려해야 한다”고 했죠. 무슨 말일까요?
“어떤 자료를 한 AI 도구에서 여러 번 수정해달라고 하면, 오히려 결과물이 나빠지곤 합니다. 화질이 떨어지거나, 반대로 현실감이 사라지는 식이에요.
이건 떡볶이를 한 냄비에서 계속 우려먹었을 때 맛이 점점 없어지는 것과 비슷한 거예요. 그렇기에 처음 디자인을 할 때부터 내가 세공할 도구와 지점을 미리 예상하는 게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김 디자이너는 세공의 출발점은 결과물의 ‘변수’를 미리 분해하는 데 있다고 했어요. 어디가 어색해질 수 있는지를 먼저 예상하고, 그때 어떤 도구로 보완할지 생각하는 거죠. ‘AI가 다 해주겠지’가 아니라, ‘저 부분은 내가 보완하겠다’는 마음으로 다가가는 거예요.

나의 팔레트 위에 AI 물감을 올려둬야 한다
김 디자이너는 최근 자신이 만들었던 영상을 세공의 사례로 들었어요. 2026년 5월 7일, 김 디자이너는 인스타그램에 ‘멧 갈라Met Gala*’ 드레스를 모티프로 한 AI 디자인 작업물을 올렸어요. 일월오봉도** 패턴의 드레스를 입은 인물이 멧 갈라에 오르는 상상을 한 작업물이었죠.
*매년 5월 첫 번째 월요일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열리는 자선 파티. ‘패션계의 아카데미 시상식’으로 불린다.
**조선 왕실 회화 가운데 대표적인 그림으로 왕의 권위와 존엄을 상징한다. 1만원 지폐 앞면 세종대왕의 초상화와 함께 그려져 있다.
먼저 쏟아내고 골라내는 단계에선 오픈AI의 ‘GPT 이미지 2.0’을 썼어요. ‘일월오봉도 패턴의 드레스를 입은 인물’을 만들어 달라면서, ‘폭포수는 비즈로, 그림은 자수로’라는 질감을 요청했죠. 그렇게 나온 것들을 살피면서 세공할 이미지를 골랐어요.
이제부터는 세공 단계. 첫 번째 변수는 얼굴이었어요. 그는 “이미 작업하던 AI에서 인물의 얼굴을 가깝게 당기면 화질이 깨지거나, 표정이 어색해진다”고 했어요. 그래서 ‘시드림Seedream*’이라는 AI 도구로 합성용 얼굴을 만든 뒤, 골라둔 이미지에 더했죠.
*중국 개발사 바이트댄스의 이미지 생성형 AI. 2026년 2월에 5.0 버전까지 공개되었다
두 번째는 질감이에요. 그는 AI가 ‘실크’와 같은 느낌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어요. 이를 보완하기 위해 어도비 파이어플라이Adobe Firefly의 ‘AI 마크업’ 기능을 활용했죠. 브러시로 드레스에 원하는 부분을 칠해 실크의 광택을 입혔어요.
마지막은 구도와 시점. 김 디자이너는 일월오봉도 드레스를 강조하기 위해, 카메라가 아래에서부터 머리 장식까지 훑게 하고 싶었어요. 이때는 영상에 맞는 AI를 사용했죠. 해피홀스Happy Horse*라는 도구를 써서 ‘불렛 타임 효과Bullet time effect**’를 적용했어요.
*중국의 알리바바가 개발한 영상 생성형 AI. 프롬프트, 이미지 등을 영화적 영상으로 바꾼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총알 피하는 장면으로 유명해진 기법으로, 피사체의 시간은 느리게 흐르고 그 주변을 카메라가 빠르게 이동하는 시각효과.
“AI 작업물을 세공하는 작업은 마치 팔레트 위에 다양한 색의 물감을 풀어놓고 보완하는 것과 닮았어요. 평범한 이미지는 AI가 충분히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디테일한 구도와 질감, 조명이 들어간 결과물에는 인간의 기획과 세공이 필요해요. 이를 위해 저는 ‘가장 중요한 이미지 요소’를 앞에 두고, 변수를 하나씩 풀어가는 식으로 작업합니다.”

Chapter 3.
세공은 ‘소통’으로 완성된다
세공이 AI 디자인의 핵심 승부처다. 김진영 디자이너는 이 말과 함께 “한 가지 더 챙겨야 할 게 있다”고 했어요. 바로 ‘클라이언트와의 소통’. 자신 역시 1인 에이전시로 10년간 일하면서 계속 배우고 있다고 했죠.
“AI로 협업할 때, 클라이언트로부터 ‘AI로 다 되는 거 아니에요?’라는 말이 나오면 끝장이에요. 그 말을 부정하는 순간 제 능력을 의심받으니까요. 그래서 기대치를 미리 조율해야 합니다.”
김 디자이너는 “내가 AI 작업물에 몰입하는 만큼, 협업하는 사람들과의 소통에도 집중해야 한다”고 했어요. 아예 그는 협업을 시작할 단계에서 AI가 가진 약점을 먼저 전한다고 했죠. 딸깍으로 나오지 않는 부분, 사람이 달라붙어야 할 요소들을 알려주는 거예요.
“저는 고객들에게 이렇게 설명해요. ‘AI가 많은 걸 해주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당연히 리스크도 있습니다’라고. 특히 패키지의 비례를 유지하거나, 옷의 디테일을 유지하는 건 어렵다고 설명해요. 그런 부분은 나중에 직접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시면, 리터칭으로 마무리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말하죠.
중요한 건 이걸 먼저 소통하는 거예요. 이 말을 전해두면, 결과물에 대한 기대도 함께 조정되거든요.”
김 디자이너는 기대치 관리를 했을 때, 일에 드는 비용도 낮출 수 있다고 했어요. 말 그대로 ‘들어가는 돈’을 줄일 수 있다는 뜻이었죠. 이유는 간단해요. 이제 AI 도구가 다양해지면서 재룟값이 들기 시작한 거죠.
예를 들어볼까요? AI 디자이너에게 필수인 미드저니Midjourney는 정해진 할당량을 다 쓰면 1시간당 4달러(약 6000원)*를 더 내야 해요. 4K 해상도 이미지를 만들 수 있는 나노 바나나 프로는 1장을 만드는데 0.24달러(약 350원)가 들죠. 즉, 수정이 늘고 작업이 길어질수록 비용이 느는 거예요.
*미드저니는 ‘장수’가 아닌 ‘GPU 처리 시간’을 팔며, 이미지 한 장 생성에 약 1분 정도 소요된다.
김 디자이너는 ‘AI 디자인 비즈니스’를 ‘마라톤’에 비유했어요.
“AI 작업은 ‘AI와 클라이언트, 디자이너가 같이 뛰는 마라톤’입니다. 어느 한 쪽이 가만히 서서 코치 역할을 할 수 없죠.
고객도 AI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하는지를 알아야, 같이 페이스를 맞춰 결승선까지 갈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AI 작업물을 세공하는 일은, ‘소통 역량’으로 완성된다고 할 수 있어요.”

Chapter 4.
AI 밖에서도 세공력은 쌓인다
이쯤에서 궁금해져요. 김진영 디자이너는 어떻게 고객을 두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AI 디자이너가 된 걸까요? 단순히 해외에서 유학했다는 것만으로 고객이 생기는 건 아니잖아요?
그는 자신이 2022년 말부터 인스타그램에 올린 게시물들을 소개했어요. 지금까지 830개 넘는 AI 작업물이 올라가 있죠. 강의 요청과 워크숍 제안, 브랜드 협업이 모두 그 게시물에서 비롯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에요.
“저도 2022년 11월 챗GPT가 등장하면서 ‘AI가 모든 직업을 빼앗을 것’이라는 말에 위협을 느꼈어요. 불안하지만 방법은 없잖아요?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루틴을 만들었습니다. 아침마다 카페에 가서 오전 내내 AI로 콘텐츠를 만들고, 인스타그램에 올렸죠.”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하루는 ‘내가 갖고 싶은 향수’ 이미지를 만들어 올렸고, 하루는 ‘좋아하는 브랜드의 컨셉 이미지’를 만들어 올렸죠.
자신의 불안을 콘텐츠로 풀어내자, 사람들은 ‘열심히 작업한다’며 그를 알아봤어요. 게시물 100개를 올리자 패션·뷰티 브랜드에서 AI 디자인을 의뢰하기 시작했고, 2023년부터는 자퇴했던 대학에서 AI 관련 강의까지 하게 됐죠.

김 디자이너에게 물었어요. “그럼 우리도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면 계속 AI 콘텐츠를 쏟아내면 되겠느냐”고. 그는 한 번 더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답했어요.
“AI를 잘 다루려면 AI를 꺼두는 시간을 가져야 해요. AI가 쏟아낸 것에서 하나를 고르는 건, 결국 내 안에 쌓인 감각입니다. 그러려면 색다른 경험을 찾아 나설 필요가 있어요.
요즘엔 다들 핀터레스트에서 이미지를 찾고, 유튜브 쇼츠를 보고, 성수동 팝업에서 사진을 찍죠? 모두가 비슷한 루트를 돌고 있어요. 이렇게 비슷한 걸 보면 비슷한 것밖에 고를 수 없습니다. ”
김 디자이너 역시 작업이 막힐 때면, 노트북을 닫는다고 했어요. 일에 골몰하는 대신, 연극을 보러 가거나 전시회를 간다고 했죠. 때로는 가죽 가방을 직접 만들고, 민화를 그린다고 했어요. “직접 손을 움직이면 생각이 정리된다”는 게 이유래요.
나아가 그는 “프롬프트를 쓸수록 ‘문해력’을 키워야 한다는 믿음이 강해지고 있다”고도 했어요. AI에게 지시를 하든, 고객과 소통하든, 글을 잘 쓰는 게 핵심이라는 게 그의 말이었죠.
“단언컨대 글을 못 쓰는 사람은 프롬프트를 잘 쓸 수 없어요. 벌써 타이핑이 아닌 말로 프롬프트를 쓰기도 하죠. 심지어 뇌파로 프롬프트를 쓰는 시대가 올 수도 있어요. 결국 ‘자기 생각을 정리하는 힘’이 필요한 건 똑같습니다. 그 힘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여전히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거예요.”

Chapter 5.
‘대체된다’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보자
인터뷰가 한참 무르익었을 무렵, 김진영 디자이너에게 물었어요. “그래도 언젠가는 AI가 디자이너를 대체할 날이 올까요?”라는 질문이었죠.
김 디자이너는 “AI는 우리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우리를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말했어요. 디자이너는 자기 삶을 재료로 쓰는 사람이라고요. 그러면서 자신의 작품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10년간 파킨슨병*을 앓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작품으로 표현한 경험이었죠.
*뇌의 신경세포가 서서히 감소하는 퇴행성 뇌 질환.
“물론 저도 아버지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꺼낼 생각을 쉽게 한 건 아니었어요. 자신도 없었어요. 하지만 국민대 AI 디자인랩의 주다영 교수님이 저의 이야길 듣고 ‘작가로서 이걸 풀어보는 게 어떻느냐’고 권하셨어요.”
그 권유는 4년이 흘러 AI를 만나 하나의 작품이 됐어요. 이름은 「각도의 정치학」. 2025년 8월, 오픈AI가 전 세계 최초로 한국에 지사를 열 때 함께 전시된 작품이죠. 오픈AI에서 먼저 이메일로 작품을 의뢰해왔고요.

이 작품에는 무용수가 등장해요. 무용수의 얼굴엔 김진영 디자이너 자신과 아버지의 얼굴을 반반씩 합성한 얼굴이 담겨 있죠. 춤을 추던 몸은 잘못 박힌 못처럼 점점 기울어져 가요. 파킨슨병을 앓으며 점점 굽어간 아버지를 표현한 거예요. 김 디자이너는 전시 설명을 이렇게 썼어요.
“어느 날 아빠가 앞으로 기울어진 채 걷는 모습을 보았다. 마치 잘못 박힌 못 같았다. 그때 문득 생각했다. 인간의 삶이란 결국 각도의 여정 아닐까. 0도로 누워서 태어나 90도로 일어서 세상을 마주하고, 나이가 들거나 아프면 다시 기울어지다가 결국 0도로 돌아가는 것.”
_오픈AI 크리에이티브랩 김진영 「각도의 정치학」 설명에서
그는 이 작품을 전시하면서 두 가지를 깨달았다고 했어요. 첫째, 내 마음에 박힌 아픈 이야기를 AI로 풀어낼 수 있다. 둘째, 그럴 때 사람들은 공감하고 자신의 모습을 겹쳐본다. 이를 말하면서 그는 AI 디자인의 의미를 이렇게 짚었어요.
“제게 디자인은 새로운 것만 찾는 게 아니라, 내 마음에 숨겨진 걸 발견하는 여정 같아요. 세계관, 흔히 말하는 취향 모두 ‘나’에게서 시작하는 거니까요.
저는 인간이라는 동물이 AI로 대체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저는 저를 몰라서 알아가고 있는데, AI가 어떻게 저를 알고 대체할까요? 과거에 대한 기억도, 그걸 마주할 수 있게 된 지금도 끊임없이 바뀌고 있는 저를 AI는 다 담지 못할 거예요.”


롱블랙 프렌즈 C
김진영 디자이너에게 AI는 더 이상 일을 빼앗는 존재가 아니었어요. “오히려 흩어져 있던 자신의 점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도구”라고 했죠. 오늘 노트, 제 마음에 남은 김 디자이너의 문장으로 마무리해 볼게요.
“저는 제가 지나온 모든 경험을 ‘점을 뿌리는 과정’이라고 봐요. 물론 점을 뿌리는 순간엔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 같죠.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쌓은 감각과 내공이 연결되는 순간이 분명 나타납니다. 저도 그랬어요. 대학을 중도에 떠난 때부터 지금까지. AI가 그 점을 잇는 도구가 돼줬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