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롱블랙 프렌즈 B
40대 브랜드 전략가 이동현(가명) 씨는 매일 아침을 AI 기사 검색으로 시작합니다. 밤사이 어떤 기술이 나왔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죠. 처음엔 기술 변화를 따라잡는 게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점차 초조해지기 시작했대요.
“변화가 빨라도 너무 빨라요. 며칠만 방심해도 ‘뒤처지고 있나?’ 하는 걱정이 듭니다.”
오늘 바뀌고 내일 또 바뀌는 세상. 안심할 틈이 없습니다. 그렇게 삶은 복잡해집니다.
롱블랙과 LG유플러스가 함께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그랬습니다. 응답자 2169명 중 28.8%가 “불안하다”고 토로했어요. “막막한 미래, 극심한 경쟁이 고통스럽다”는 반응이었죠.
이 불안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을까요. ‘심플의 발견’ 시리즈가 두 번째로 만난 사람은 정신과 의사 하지현 교수입니다. 이 노트를 다 읽은 분들께 선물이 있으니 꼭 끝까지 읽어보세요.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서울 화양동 건국대병원 연구실에서 만난 하지현 교수. 자신을 ‘위로해주지 않는 정신과 의사’라고 소개합니다.
“전 마음을 달래주는 의사는 아니에요. 그런데 저와 얘기하고 나면, 복잡하고 애매하던 게 명료해진다고들 합니다.”
하지현 교수는 대중에게 꾸준히 말을 건네 왔습니다. 지난 22년간 책을 28권이나 펴냈죠. 그만큼 열심히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스스로 ‘콘텐츠 중독자’라 부를 정도예요. 1년에 읽는 책만 150여 권에, 신작 영화와 드라마도 줄줄 꿰고 있습니다.
매일 환자를 진료하고, 학생을 가르치고, 끊임없이 책을 쓰고 읽는 삶. 누구보다 분주할 텐데, 정작 그는 “내 삶은 심플하다”고 말합니다.
그가 말하는 심플한 삶은 “느긋한 삶”이 아니었어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선을 알고, 그 안에서 사는 삶이었습니다.
Chapter 1.
우린 어쩌다 불안해졌을까?
먼저 물었습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불안한 걸까요?”
하지현 교수의 진단은 간단합니다.
“인간이기 때문이죠. 인간은 불확실한 세상을 어떻게든 예측하고 통제하려고 하니까요.”
그는 인간에겐 두 가지 본능적 특징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첫 번째, 선형 예측입니다. 지금의 추세가 미래에 쭉 직선처럼 이어질 거라 내다보는 거예요. ‘올해 연봉이 이만큼 올랐으니, 10년 뒤엔 직선으로 쭉 올라 이 자리에 있겠지?’ 내다보는 식이죠.
문제는 세상이 더 이상 과거의 추세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지금의 변화는 뇌가 예측할 수 없는 속도예요. ‘10년 뒤쯤 오겠지’ 했던 세상이 1년 만에 코앞에 와있죠. ‘코스피가 언제 9000이 됐지? 삼성과 하이닉스가 언제 이렇게 올랐지?’ 저도 깜짝 놀라요. 그러니 30년, 50년 뒤를 떠올려보면 예측이 안돼 까마득해지죠.”
예측이 막히면 불안이 차오릅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 불안을 빈 채로 못 견뎌요. 반드시 이유를 붙여 이야기로 메웁니다. 하지현 교수가 말하는 두 번째 본능입니다.
“인간은 원래 이야기를 만드는 동물이에요. 어떤 일이 생기면 ‘왜 그랬을까’ 맥락을 만들고, 이유를 찾아야 안심하죠. 인류가 문화를 전수하고 진화해 온 힘이기도 해요.”
문제는, 그 이야기를 엮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따로 일어난 일들을 자꾸 하나의 인과로 묶어버려요. 하 교수는 맹장 수술을 예로 들었습니다.
“맹장 수술의 사망률은 1%라 칠게요. 99명을 무사히 수술한 의사가 있다고 쳐볼까요. 당신이 100번째 환자라면? 그때부터 극심한 불안에 떨게 돼요.
사실 모든 수술은 독립된 사건인데 말이죠. 앞의 99번과 내 수술은 아무 상관이 없어요. 그런데 우리 머릿속은 이걸 ‘이제 터질 차례’라고 한 줄로 엮어버려요.”
일상도 다르지 않습니다. 면접에서 두 번 떨어지면 ‘난 어디서도 안 뽑힐 사람’이라 단정하고, 연애가 한 번 어긋나면 ‘난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라 결론짓죠. 사실은 따로 일어난 일인데, 전부 연결된 필연으로 착각하는 거예요.
“그렇게 도착하는 결론은 하나예요. ‘나는 역시 안 되는 놈이야.’ 일종의 나쁜 심플이죠. 관계없는 일들을 억지로 엮어, 내 인생을 비극으로 단순하게 만들어버리는 거니까요.”

Chapter 2.
최선을 고르지 말고 최악을 피해라
예측하고 통제하려는 인간의 본능. 이 본능이 가장 또렷하게 튀어나올 때가 바로 ‘선택’의 순간입니다.
우리는 매 순간 ‘가장 좋은 것’을 고르고 싶어 해요. 최선을 원하는 거죠. 하지현 교수는 “바로 그 마음이 오만이고, 불안의 씨앗”이라고 말합니다.
“생각해보세요. 미래를 정확히 알아야만 ‘최선’을 고를 수 있잖아요. 이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아무도 모르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매 순간 최선을 택하려고 해요. 무얼 먹을지, 어떤 옷을 살지, 어디로 이사할지. 그러다 보니 진이 빠져요. 더 나은 결정이 있을까 봐 결정을 미루고, 골라놓고도 후회하죠.”
이 늪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하지현 교수는 ‘선택의 기준’부터 바꿔보자고 했어요. 간단해요. 최선을 찾는 대신, 최악을 제치는 겁니다.
“알 수 없는 미래의 최선을 맞히려고 애쓰는 대신, 지금 분명히 아는 최악부터 지우는 거예요. 그러면 선택이 한결 가벼워져요.”
하지현 교수 역시 그렇게 선택해 온 사람입니다. 많은 이들이 그가 정신과를 택한 게 운명이라 생각해요. 그는 예술인 집안에서 태어났어요. 그의 아버지는 영화감독 하길종, 큰이모는 수필가 전혜린이에요*. 하 교수도 서울대 의대 시절 희곡을 썼죠.
*하길종 감독은 영화 「바보들의 행진」으로, 전혜린 작가는 유고 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로 유명하다.
그러니 그가 인간 내면을 파고드는 정신과를 택한 건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타고난 정신과’가 아니라 ‘어쩌다 정신과’에 가깝다”고 말했어요.
“전 ‘원래 타고났다’는 말을 믿지 않아요. 사람이 어떻게 그것만을 위해 태어날 수가 있겠어요?”
본과 3학년 무렵, 하 교수는 생각했대요. ‘하루 종일 수술복을 입고 있으니 답답하다. 외과는 안되겠다’라고요. 그렇게 맞지 않는 걸 하나씩 지워나가다 남은 게 정신과입니다.
바로 이 ‘지우는 방식’이, 그가 말하는 심플한 삶의 핵심입니다. 직업·이사·결혼 등 인생의 크고 작은 일들에 적용할 수 있어요.
“모든 걸 만족시키는 선택지는 없다는 걸 인정해야 돼요. 이사를 생각해볼까요. 학군지, 역세권, 초품아*, 커뮤니티 시설, 로열층인데 급매. 이런 집을 찾을 수 있을까요? 없을 거예요.
*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정말 싫은 걸 먼저 정하세요. ‘나는 층간 소음은 절대 견딜 수 없어’. 그 다음엔 그나마 좋은 걸 고르는 거예요. ‘여기는 아파트 공원이 딱 보이네, 조그만 단지지만 탁 트였네’ 하고요. 그럼 최선은 아니라도, 차선은 고를 수 있는 거죠.”
어차피 현재를 사는 우리는 무엇이 최선인지 영원히 알 수 없다고, 하 교수는 강조합니다.
“최악을 걸러내면, 살아가면서 결정적인 하자는 일어나지 않아요. 그럼 계속 갈 수 있어요. 그러다 어느 시점에 돌아보면 알게 돼요. ‘아, 그게 그때의 최선이었네.’ 최선이라는 건 사실 출발점에선 알 수 없거든요.”

Chapter 3.
파도 같은 불안에 대처하는 법
그런데 인생이 늘 내 선택대로 되진 않죠. 때로 우리는 삶을 통째로 뒤흔드는, 예기치 않은 불안을 마주합니다. 갑작스러운 해고, 부모님의 병환, 도저히 내 맘 같지 않은 아이들. 꼭 거대한 파도를 만난 것처럼요.
이런 파도 앞에서, 하지현 교수의 처방은 분명합니다. 파도 자체는 막을 수 없다는 것. 그러니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엔 매달리지 말고, 통제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라는 거예요.
“이걸 제일 잘 하는 사람들이 양궁 선수예요. 그들은 늘 이렇게 말하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했다.’ 내 호흡, 내 자세. 오늘 바람이 어떻게 불든, 옆에서 누가 소리를 지르든, 그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거예요. 통제할 수 없는 걸 원망하거나 자책하지 않는 것. 전 그게 심플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심플하다는 건,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에 선을 긋는 일입니다. 반대로 불안은, 통제할 수 없는 걸 통제하려 해서 생기는 마음이죠.
하지현 교수는 “나이에 따라 밀려오는 파도가 다르다”고 했어요. 20대는 직업 정체성으로, 30·40대는 돈과 집 같은 현실적 고민이 크다면서요.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갑자기 크게 인식할 때, 우리 마음은 종종 탈이 납니다. 불안을 감지하는 센서가 고장 나는 거예요. 작은 자극에도 ‘죽을 것 같은 위협’을 느끼는 공황이 찾아옵니다.
하지현 교수는 한 50대 남성 환자의 사례를 들려줬어요.
“임원으로 잘 나가다 갑자기 계약 해지 통보를 받은 분이었어요. 처음엔 덤덤히 받아들였죠. 시골에 농막을 짓고, 편안히 오가면서요.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언덕길을 운전하다 갑자기 차가 미끄러졌대요. 바퀴가 살얼음을 밟은 거예요. 그런데 그 순간에 턱 숨이 막혀 운전을 할 수가 없었대요. 공황이 온 겁니다.”
작은 걸림돌 하나에, 그는 자신의 ‘사회적 죽음’을 마주한 겁니다.
하 교수는 “약물의 도움도 중요하지만, 그 다음엔 ‘마음의 자세’를 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어요.
“파도는 언제 덮칠지 몰라요. 그러니 파도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해요. 파도가 치는데 바람을 원망해선 답이 없죠. 결국 내 호흡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내 호흡에 집중하는 것.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보는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현 교수가 지금까지 꾸준히 책을 쓸 수 있었던 것도 같은 이유래요.
“제가 그래요. 지금까지 28권의 책을 썼지만, 어느 한 권 불티나는 베스트셀러가 된 적은 없었어요. 하나같이 평탄하게, 출판사에 누가 되지 않을 만큼 팔리다 어느 순간 차트에서 사라졌죠. 만약 판매 부수를 신경 썼다면, 지금처럼 꾸준히 글을 쓰지 못했을 거예요.
저는 목표를 세웠어요. 화려하게 게임을 뒤집는 타자보다, 1년 140 경기 중 130경기를 출전하면서 치명적인 실수를 하지 않는 선수가 되는 거예요.”

Chapter 4.
관계 : 모두에게 사랑받을 순 없다
내 안의 불안을 잘 다스린다고 끝은 아닙니다. 우리를 자주 흔드는 건 타인입니다. 직장에서, 친구 사이에서, 가족 안에서. 관계 때문에 울고 웃죠.
하지현 교수의 해법은 여기서도 같습니다. “통제할 수 없는 타인의 마음 대신, 통제할 수 있는 나부터 바로 세우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관계의 목표를 두 가지로 생각해요. 모두에게 인기 있고 모두가 날 좋아하길 바라거나, 반대로 아무도 안 만나거나.
그런데 그게 아니에요. 저 사람이 나를 좋아하게 만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나를 중심에 놓고 ‘내가 필요로 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거죠. 내가 있으니까 관계도 있는 거예요.”
모두에게 사랑받겠다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 그게 관계의 출발점입니다. 하 교수는 그 마음을 ‘1:2:7의 법칙’으로 풀어요.
“10명이 있으면, 1명은 나와 반드시 결이 안 맞아요. 내가 짜장면을 좋아하면, 쟤는 꼭 파스타를 좋아해. 그중 2명은 나와 아주 잘 맞고요. 나머지 7명은 무관심해요. 내가 뭘 하는지도 잘 몰라요.
그러니 에너지를 어디에 쓸지가 분명해지는 거죠. 안 맞는 1명은 거리를 두고 무심하게 지내고, 잘 맞는 2명에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무관심한 7명에겐 대가를 바라지 않는 작은 친절이면 충분해져요.”
이때 ‘무관심한 7명’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나에게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 무리해서 친절을 베풀 필요는 없어요. 다만 ‘나쁘지 않은 평판’ 정도는 남겨두는 게 좋습니다.
“마주치면 인사하고, 짐 들어주고, 편의점에서 1+1 상품 사면 건네주는 정도?
왜 그래야 하냐면, 살다 보면 언젠가 한 번은 내 의사와 상관없이 곤경에 빠지는 때가 오거든요. 그때 나를 적극적으로 변호해주는 건 잘 맞는 2명이에요. 하지만 여론을 만드는 건 나머지 7명이거든요. 그 7명이 ‘에이, 쟤가 그럴 리 없어, 실수겠지’라고 말해주길 바라는 거죠.”

Chapter 5.
부모와 자식 : 사랑할수록 거리를 두기
타인은 이렇게 고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고를 수 없는 ‘상수’ 같은 관계가 있어요. 바로 부모와 자식입니다.
이 끊을 수 없는 사이에서 하지현 교수가 내린 처방은 뜻밖에도 ‘거리’입니다.
먼저 내가 부모일 때입니다. 부모의 역할은 아이가 자랄수록 줄어들어야 합니다. 일종의 ‘지분 축소’입니다.
“일곱 살까진 부모의 책임이 커요. 청소년은 60% 정도로 줄어들고요. 성인이 되면 부모의 지분은 20~30%예요. 부모는 의견을 내는 사람이지, 지시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대주주가 아니라 소액주주인 거죠. 그런데 부모 상당수가 자기를 대주주라고 생각해요. 특히 자녀에게 돈을 많이 쓴 사람일수록요."
그가 그린 부모의 모습은 이렇게 변해갑니다.
“아이가 어릴 땐 부모가 같이 운동장을 뛰어주는 코치죠. 하지만 점점 응원단이 돼야 해요. 팬은 아니에요. 팬은 못하면 욕을 할 때도 있으니까요. 응원단은 잘해도 못 해도 응원만 하죠.
그다음엔 항구가 되는 거예요. 항공 모함처럼 줄줄이 달고 다니는 게 아니라, 자식이 마음대로 다니다 힘들면 가끔 와서 쉬는 항구.”
반대로, 내가 자식이 되어 나이 든 부모를 마주할 때는 어떨까요. 하지현 교수의 처방은 “바꾸려 하지 말라”입니다.
“부모님의 성격이 바뀌길 바라시죠? 생각해보세요. 서른다섯인 나도 내 성격 못 바꾸는데, 일흔 되신 아버지가 바뀌겠어요? 부모님도 바뀌지 않는 ‘상수’예요. 그냥 ‘이렇게 생긴 사람이구나’ 인정하는 게 먼저예요.”
부모 자식 관계에서도, 하지현 교수가 끝내 강조한 건 ‘나’를 먼저 챙기라는 겁니다.
“비행기를 타면 긴급 상황 시에 산소마스크를 나부터 쓰고 가족을 챙기라고 하잖아요. 부모나 자식에게 최선을 다하되, 내가 지치면 안돼요. 죄책감 들지 않을 만큼만 하되, 내 인생까지 희생할 필요는 없습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거리가 필요해요. 바꾸려 들지 않고, 내 지분만큼만 관여하고, 나를 먼저 지키는 것, 그게 오래 사랑하는 법이니까요.”

Chapter 6.
사소한 일상을 사수하자
하지현 교수는 2년 전 세바시에서 ‘불안’을 주제로 강연을 한 적이 있어요. 거기에 이런 댓글이 달렸습니다.
‘하지현 교수에게 오래전에 진료받았던 학생입니다. 전 너무 우울한데, 이 의사는 잘 먹고 잘 자란 말만 하더라고요.’
하 교수는 이 댓글이 섭섭하지만은 않았다고 합니다.
“물론 잠깐 속상했는데, 곧 뿌듯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환자가 제 말을 기억하고 있었잖아요.
실은 제가 환자들에게 묻는 말의 절반 이상이 그거예요. 잘 먹는지, 잘 자는지, 햇볕을 적절히 쬐는지. 불안을 다스리려면, 일상 관리가 가장 중요하거든요.”
잘 먹고 잘 자며 차곡차곡 굴러가는 매일에 심플이 있습니다. 정신 분석학적으로도 그렇다고 해요.
“국제 정신분석학회 논문들에는 정신분석가들이 주 4회씩 10년 가까이 정신분석을 성공적으로 마친 케이스를 발표해요. 그 치료의 끝이 어떤지 아세요? 환자가 사업을 일으켜 상장에 성공했을까요?
아뇨, 이들은 아주 사소한 일상으로 돌아가요. ‘평생 외면했던 어머니를 똑바로 보게 됐다, 한 사람과 길게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됐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이것이 정신분석학적인 성공인 거예요.”
그래서 하지현 교수는 일이 아무리 많아도 자신의 삶을 ‘심플하다’고 말합니다.
“굉장히 잡다하게 뭘 하고 있지만, 이 정도 선 안에서 완성된 삶이라고 말하기도 해요. 밖에서 볼 때는 복잡해 보여도, 제 입장에서는 심플하거든요. 일주일의 생활이 얼추 정해져 있고, 차곡차곡 굴러가고 있으니까요.”
심플한 삶을 위해 그가 ‘제친’ 게 있어요.
“저는 많은 교수들이 하는 걸 안 해요. 큰 연구비를 안 따고, 학교 행정도 안 맡고, 골프도 안 칩니다. 그 시간에 제가 좋아하는 일에 더 몰입하는 거죠.”
하지현 교수는 오전 6시에 일어나 글을 씁니다. 일주일에 두 번 싫어하는 근육 운동을 하고요. 오후 6시에 퇴근해 유튜브를 보고, 만화책을 읽다가 오후 10시쯤 잠에 듭니다. 결국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 안에서 내 삶이 굴러가면 그게 심플한 겁니다.
“결론은, 나 자신하고 좀 친해지시라는 거예요. 남들이 뭘 가졌는지가 아니고, 내가 어떤 생활을 하고 있고, 어떤 기준으로 무엇을 선택하며 지내고 있는지, 그걸 알아가시면 좋겠어요. 그게 제가 말하는 심플이에요.”


롱블랙 프렌즈 B
하지현 교수에게 마지막으로 물었어요. 우리가 왜 심플한 삶을 살아야 할까요. 그는 “끝이 있기 때문”이라 말했습니다.
“에디터님은 아직 인생의 끝을 떠올리진 않으시죠? 저는 일주일에 한두 번은 부고 연락을 받습니다. 가끔 친구가 세상을 떠나는 일도 있죠. 그때 확 느껴요. 나에게 주어진 삶은 유한하구나. 무한한 줄만 알았던 매일에 실은 끝이 있었네.”
생각해보면 끝은, 우리가 끝내 어쩌지 못하는 단 하나입니다. 최악을 제치고, 호흡에 집중하고, 거리를 둬도 소용없죠. 하 교수는 바로 그 통제 불가능성을 받아들일 때, 역설적으로 삶이 또렷해진다고 말해요.
“끝이 있다는 걸 알면, 내 하루가 점점 소중해져요. 자연스레 소중한 것에 더 집중하게 되죠. 만나기 싫은 사람 안 만나고, 싫은 건 안 하게 돼요. 네트워킹 파티에 안 가고, 그 시간에 소중한 사람을 한 번 더 만나요. 끝을 자각하면 ‘하루의 가치’가 달라집니다. 오히려 삶이 선명해집니다.”
글 첫머리의 이동현 씨가 떠오릅니다. 매일 아침, 뒤처질까 두려워 끝없는 변화를 좇던 사람. 그가 좇은 건 무한이었어요. 하지현 교수가 건넨 답은 정반대 편에 있었습니다. 무한을 좇는 대신, 끝이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 세상의 속도가 아니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에 나를 두는 것.
롱블랙 피플, 이 노트에서 와닿았던 구절이 있나요? 그 문장을 스크랩하기만 해도 추첨을 통해 20분께 『나는 왜 이유없이 불안할까』를 보내드립니다. 인상 깊은 문장을 스크랩해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