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롱블랙 프렌즈 K
새해 첫 주말, 서점이 일 년 중 가장 붐비는 시기죠. 저도 그 인파 속에 있었어요. ‘올해는 지난해보다 두 배 정도 책을 읽겠다’고 다짐하면서요.
그런데 솔직히 고백할게요. 집에 오자마자 쥔 건 책이 아니라 스마트폰이었습니다. 책장을 펼쳐도 글씨가 영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고요. 저만 그런 게 아닌가 봐요. L은 “아무래도 난독증인지, 책이 안 읽힌다”고 하더라고요.
답답한 마음에 독서 교육 전문가를 찾아갔습니다. 최승필 작가. 2018년 출간한 『공부머리 독서법』 한 권으로 무려 180쇄, 50만 부의 판매 기록을 세웠죠. “입시 공부에 사실은 독서가 가장 결정적”이라 주장한 교육서입니다. 이 책은 “대치동 학원가에 독서 열풍을 몰고 왔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최승필 독서 교육 전문가
최승필 작가에게 물었습니다. “요즘 왜 이렇게 읽기가 어려울까요?” 그는 “읽기 근육이 풀려서”라고 말했습니다. 책을 읽는다는 게 의외로 쉽지 않은 활동이라는 겁니다.
입시도 끝난 어른인데, 좀 안 읽으면 어떠냐고요? 최승필 작가는 “미래엔 읽는 사람과 안 읽는 사람 간의 격차가 더 벌어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더군요. 읽기 근육이 풀리면 사고 근육이 함께 풀리기 때문이랍니다.
“읽기 능력이 사라지면 복잡한 맥락을 파악하는 힘, 생각의 설계도를 짜는 힘이 함께 사라집니다. 이게 바로 AI 시대에 필요한 가장 결정적인 능력인데 말이에요.”
남양주시 마석우리, 최 작가가 운영하는 서점에서 읽기를 둘러싼 대화가 3시간이 훌쩍 넘게 이어졌습니다.
Chapter 1.
독서 유전자라는 건 없다
먼저 물었습니다. 왜 점점 책 읽기가 어려워지는 걸까요. 최승필 작가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지극히 정상”이라면서요.
“원래 인간은 읽도록 설계되지 않았어요. 말은 본능이지만 글은 발명품이거든요. 생각해 보세요. 30만 년 인류 역사에서 문자가 발명된 건 고작 4000~5000년 전이에요. 우리 DNA에 ‘독서 유전자’ 같은 건 없습니다.”
듣고 보니 그렇습니다. 우리는 돌 무렵이면 말을 시작하고 걸음마를 하잖아요. 글은 훨씬 더 나이가 들어서, 혹독한 훈련 뒤에야 깨칠 수 있는 거죠. 최 작가는 “읽기는 인간이 발명한 가장 고차원적이고 인위적인 뇌 훈련”이라고 말했어요.
읽을 때, 우리 뇌는 마치 전력 질주하듯 분주해집니다.
“영상을 볼 때 우리 뇌는 편안합니다. 이미지와 소리를 들어오는 대로 받아들이면 되니까요. 글은 다릅니다. 눈으로 기호를 인지하고 → 이를 소리로 변환하고 → 그 속 의미를 기억 저장소에서 꺼내고 → 앞뒤 문맥을 맞춰봐야 해요. 이 과정이 0.1초 만에 동시에 일어납니다. 그래서 뇌과학자들이 책을 읽는 사람 뇌를 fMRI*로 찍어보면 뇌의 전체 영역이 시뻘겋게 활성화되는 겁니다. 뇌 전체가 불타오르는 셈이에요.”
*기능적 자기공명영상장치. 신체에서 피가 쏠리는 곳을 포착해 활성도를 파악한다.
뇌 전체를 쥐어짜듯이 사용하는 읽기. 그러나 이 고통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근육을 키우는 거예요.
“운동과 똑같습니다. 계속 달리면 종아리에 근육이 잡히죠. 그러고 나면 달리기가 훨씬 수월해져요. 읽기도 똑같습니다. 읽는 양을 늘리면 뇌에 근육이 잡힙니다. 그 근육이 바로 문해력이에요. 단순히 글자를 읽는 게 아니라, 글의 맥락을 장악하는 힘이죠. 문해력이 생기면 읽기 고통은 줄고, 생각의 깊이는 깊어집니다.”

Chapter 2.
문해력 : 읽을 수 있는 만큼만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문해력이란 구체적으로 뭘까요? 글자를 빨리 읽는 능력일까요, 아니면 어려운 단어를 많이 아는 어휘력일까요?
최승필 작가는 고개를 젓습니다. 그는 문해력을 이렇게 정의해요. “언어 논리의 길이와 복잡성을 장악하는 힘”이라고요. 너무 어려운 표현인가요? 최 작가는 이렇게 간단하게도 정리했습니다. “문해력은 한마디로 사고력입니다.”
‘생각이 짧다’는 건 문해력이 낮다는 뜻
“그림책을 생각해 보세요. ‘문이 열리고 토끼가 들어왔다.’ 논리가 단순합니다. 하지만 성인의 책은 다릅니다. 문 하나가 열리는 데도 온갖 묘사와 심리, 배경 설명이 붙습니다. 논리의 호흡이 훨씬 길고 복잡하죠.”
최 작가는 우리가 읽어낼 수 있는 글의 수준이 곧 우리가 할 수 있는 생각의 수준이라고 말합니다.
“흔히 ‘생각이 짧다’는 말을 하죠? 그게 문해력이 낮다는 뜻입니다. 긴 호흡의 논리를 다뤄본 적이 없으니, 생각이 짧고 단순하게 뚝뚝 끊어지는 거예요.
반대로 문해력이 높다는 건,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길고 복잡하게, 앞뒤 맥락을 맞춰가며 생각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생각할 수 있는 만큼 읽을 수 있고, 읽을 수 있는 만큼 생각할 수 있다.’”
모래가 쌓이지 않는 모래시계
여기서 최 작가는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비유를 꺼냈습니다. 바로 ‘모래시계’입니다.
“독서는 모래시계와 같아요. 아직 읽지 않은 뒷부분이 ‘윗 모래’고, 이미 읽은 부분이 ‘아랫 모래’라고 칩시다. 읽는 행위는 모래가 윗병에서 아랫병으로 떨어지는 순간이죠. 제대로 읽었다면, 중간쯤 책을 읽었을 때 내 머릿속(아랫병)에 모래가 수북이 쌓여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 ‘무슨 내용이야?’라고 물으면 그 흐름을 술술 설명할 수 있어야 하죠.”
하지만 읽기 근육이 풀린 사람의 머릿속엔 모래가 쌓이지 않습니다. 분명 눈으로 읽었는데, 어딘가로 줄줄 새버리는 거예요.
“문해력이 부족하면, 모래가 쌓이지 않고 쓸려 내려갑니다. 책장은 다 넘겼는데 덮고 나면 ‘그래서 무슨 내용이지?’ 하고 멍해지는 경험, 다들 있으시죠? 영화는 봤는데 줄거리를 모르는 것과 같아요.”
우리가 긴 보고서를 읽다 포기하거나, 뉴스 기사를 보며 습관적으로 ‘세 줄 요약’을 찾는 이유가 여기 있었습니다. 집중력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우리의 뇌가 그 글이 가진 ‘생각의 길이’를 감당하지 못해 정보를 튕겨내고 있었던 겁니다.

Chapter 3.
AI는 벽돌을 쌓고, 읽는 인간은 ‘설계도’를 그린다
전 솔직히 말했습니다. 문해력이 그렇게까지 중요한지는 모르겠다고요. 깊은 사고가 밥을 먹여주는 건 아니지 않냐고 말입니다. 최승필 작가는 눈을 크게 떴습니다.
“그럴까요? 전 앞으로 문해력이 통장 잔고와 생존을 결정할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궁금한 건 챗GPT에 물어보면 되는데 굳이 책을 읽어야 하냐’고 묻는 분들도 있죠. 하지만 AI는 ‘답’을 주는 도구지, ‘질문’을 던지는 도구가 아닙니다. 좋은 질문은 탄탄한 생각의 뼈대가 있어야만 나옵니다.”
생각의 뼈대를 잡는 것, 그것은 오로지 독서를 통해 가능하다고 최 작가는 주장합니다.
“책은 저자가 완성해 둔 정교한 생각의 뼈대예요. 독서를 통해 이 구조를 파악하는 훈련을 한 사람만이, 상황의 맥락을 읽고 핵심을 찌르는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질문의 수준이 곧 내가 얻을 답의 수준을 결정할 거예요.”
유튜브로는 얻을 수 없는 것들
잠깐, 영상에도 생각의 뼈대가 숨어있지 않을까요? 왜 꼭 읽기여야 할까요?
“영상을 볼 때 우리 뇌는 편안한 승객이에요. 마치 조수석에 앉은 것처럼 남의 생각을 구경합니다. 이해는 하지만, 길을 찾는 감각은 생기지 않아요.
독서는 다릅니다. 책을 읽을 때 우리 뇌는 운전자가 되는 겁니다. 이 문장과 저 문장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저자는 왜 이런 결론을 내렸는지 끊임없이 질문하면서 길을 찾아갑니다. 이 훈련을 해본 사람이 자기 생각의 뼈대도 잡게 되는 거예요.”
생각의 뼈대, 다른 말로 하면 생각의 설계도입니다. 이 설계도를 그리는 능력은 성공과 직결된다고 최 작가는 강조했습니다.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가 다독가였던 건 우연이 아니라면서요.
“문해력의 핵심 기능은 설계도를 그리는 능력이에요. 그러니까 책을 많이 읽은 사람들은 일의 결과와 과정을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게 생각의 힘이니까요.
사업을 예로 들어볼게요. 생각의 힘이 약하면 계획이 허술합니다. ‘앱을 만들어 홍보하면 대박이 나겠지?’ 이런 식으로 상상합니다. 인과관계가 빠져있으니 망상에 가까워요.
문해력 높은 사람들의 상상은 치밀합니다. ‘앱을 만들려면 개발자 몇 명과 디자이너를 고용해야 하고, 마케팅비까지 감안하면 돈이 얼마 정도 필요하겠다’고 추론해요. 논리의 빈틈을 메우는 훈련을 했기 때문이에요.”

Chapter 4.
왜 문학을 읽어야 하는가
문해력이 일종의 생존 기술이라면, 소설과 시는 왜 읽어야 하는 걸까요. 때로 문학은 너무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잖아요. 실용적인 글이나 사이다 결말의 웹소설만 읽는 것도 좋을까요?
최승필 작가는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반드시 문학을 읽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웹소설 같은 대중 서사는 우리 욕망을 담은 환상을 보여주지만, 문학 서사는 불편한 진실을 보여줍니다. 웹소설을 읽고 나면 기분이 좋아져요. 재벌 2세나 연하남 같은 환상에 빠져있다 나오니까요. 문학은 반대입니다. 내가 외면하고 싶은 문제적 진실을 끄집어냅니다. 읽고 나면 기분이 찜찜해져요. 밤에 잠이 안 오고, 우울해지기도 하죠.”
그러면서 카프카의 소설 『변신』을 예로 들었습니다. 주인공은 어느 날 눈을 떠보니 거대한 벌레(갑충)로 변해버리죠.
“말도 안 되는 설정 같죠? 하지만 그게 당시 노동자들의 진짜 내면이었습니다. ‘돈을 벌지 못하면 나는 가족에게조차 벌레 취급을 받겠구나.’ 기능이 다하면 버려지는 부품 같은 존재. 작가는 그 끔찍한 진실을 ‘벌레’라는 메타포로 던진 겁니다.
문학은 늘 시대의 가장 큰 고민을 직시합니다. 그 고민을 생생하고 처절하게 전하는 것이 문학의 역할이죠.”

안전하게 상처받기 : 혐오의 세계에서 탈출하는 법
왜 굳이 내 돈 주고 책을 사서 읽으며 이런 괴로움을 느껴야 할까요? 최 작가는 이 과정을 “안전하게 상처받기”라고 부릅니다.
“문학을 읽는 건 상처받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건 ‘내 인생이 무너지지 않는 안전한 상처’예요. 책 속에서 처절하게 가난해 보고, 차별받아 보고, 벌레가 되어봅니다. 이 가상의 상처를 입고, 다시 회복하는 과정을 반복하면 어떻게 될까요? 자아가 튼튼해집니다. 마음의 근육, 즉 ‘감수성’의 성능이 비약적으로 좋아지는 겁니다.”
이 ‘상처의 데이터’가 쌓인 사람은 타인을 함부로 혐오하지 못합니다. 내가 책 속에서 이미 그 약자가 되어봤기 때문입니다.
“우리 뇌의 본능은 나와 다른 존재를 보면 즉각적으로 거부감(혐오)을 느끼게 세팅되어 있어요. 하지만 문학으로 ‘대리 상처’를 많이 받아본 사람은 그 본능에 제동을 겁니다. 길에서 우는 아이 때문에 쩔쩔매는 엄마를 볼 때, ‘아 시끄러워, 맘충’이라고 내뱉지 못해요. 대신 소설 속에서 읽었던 한 어머니의 고단한 삶을 떠올리며 ‘얼마나 힘들까’라고 이해하려 노력하죠. 문학은 우리를 납작한 혐오의 세계에서 구원해 입체적인 이해의 세계로 이끕니다.”

Chapter 5.
지적인 사람은 자신이 무식하다는 걸 안다
문학이 우리의 마음Heart을 지킨다면, 독서는 우리의 지성Head을 오만으로부터 지켜줍니다. 최승필 작가는 책을 안 읽는 어른들에게 나타나는 가장 큰 특징으로 ‘확증 편향’을 꼽았습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확증 편향이 심해집니다. 살아온 경험이 쌓이니까요.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이게 맞아’라며 자신의 좁은 경험을 세상의 전부로 착각하게 되죠. 자아가 점점 비대해지는 겁니다. 흔히 말하는 ‘꼰대’가 되는 과정이죠.”
나를 ‘우주의 돌멩이’로 내려놓는 과정
독서는 이 비대해진 자아를 깨뜨리는 망치입니다. 최 작가는 “책을 읽는다는 건 나를 ‘객관화’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합니다.
“책을 읽다 보면 깨닫게 됩니다. 내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걸요. 다윈의 진화론을 읽으면 인간이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동물과 다를 바 없다는 걸 알게 되고, 천체물리학을 읽으면 내가 우주의 작은 먼지라는 걸 알게 되죠.
특권 의식을 내려놓을수록 세상을 더 정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책은 나를 겸손한 위치, 즉 ‘돌멩이’의 자리로 돌려놓습니다.”
무식의 연대에서 탈출하라
그는 책을 읽지 않는 사회가 위험한 이유를 ‘무식의 연대’라는 말로 경고했습니다.
“책을 안 읽으면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게 됩니다. 무식한 사람은 자기가 무식한 줄 몰라요. 그래서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목소리를 높입니다. ‘우리가 맞아!’라고요. 서로의 무지를 강화해 주는 ‘무식의 연대’가 생기는 거죠.
반면 지적인 인간의 가장 큰 덕목은 ‘자신의 무식을 아는 것’입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압니다. 세상엔 내가 모르는 맥락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요. 그래서 함부로 단정하지 않고, 끊임없이 배우려 합니다. 그 태도가 진짜 어른의 모습 아닐까요?”

Chapter 6.
독서 재활 : 제발 ‘있어 보이는’ 책은 덮으세요
이쯤 되면 결심이 섭니다. ‘그래, 올해는 진짜 읽어야지.’ 의욕에 불타 서점으로 달려가 베스트셀러 코너에 섭니다. 벽돌처럼 두꺼운 『총, 균, 쇠』나 『코스모스』, 혹은 어려워 보이는 철학 책을 집어 들죠.
최승필 작가는 손사래를 칩니다. “제발 그것부터 내려놓으세요. 그건 헬스장 첫날부터 100㎏ 역기를 드는 것과 같습니다. 십중팔구 다치거나, 3일 만에 포기하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독서 환자’다
그가 제안하는 독서 재활의 제1원칙은 “자존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솔직해집시다. 스마트폰에 길들여진 우리 뇌는 지금 ‘독서 환자’ 상태예요. 읽기 근육이 다 풀려있죠. 그런데 남들 보기에 ‘있어 보이는’ 책, 어려운 책을 고집하면 10페이지도 못 가서 포기하게 됩니다. 그건 독서가 아니라 고문이에요.
무조건 재미있는 책, 내 수준보다 쉬운 책부터 읽으세요. 청소년 소설도 좋고, 장르 소설도 좋습니다. 읽다가 재미없으면? 과감하게 덮으세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지식이 아니라, ‘활자를 읽는 즐거움’이란 감각을 되살리는 겁니다.”
속독은 독이 된다 : 꼭꼭 씹어 읽기
책을 고르는 법만큼 중요한 게 ‘읽는 법’입니다. 최 작가는 성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착각 중 하나가 ‘빨리 많이 읽어야 한다’는 강박이라고 지적합니다.
“속독Speed reading은 잊으세요. 빨리 읽으면 눈은 움직이지만 뇌는 멈춰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우리가 밥을 급하게 먹으면 체하듯, 글도 급하게 넣으면 체합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읽으세요.
문장 하나를 읽고 ‘이게 무슨 뜻이지?’, ‘나라면 어땠을까?’ 하고 멈추는 순간. 바로 그 ‘멈춤’의 시간에 사고력이 자랍니다. 1년에 100권 읽고 남는 게 없는 사람보다, 1년에 3권을 읽더라도 완전히 씹어먹어서 내 생각으로 만든 사람이 훨씬 강력합니다.”


롱블랙 프렌즈 K
최승필 작가에게 마지막으로 물었습니다. 독서 교육가로서, 그리고 한 명의 애서가로서 그가 꿈꾸는 세상은 어떤 모습인지요.
“저는 아이들을 가르치며 기적 같은 순간을 많이 봤습니다. 산만하던 아이가 책에 빠져들면 눈빛부터 깊어져요. 거칠던 아이가 섬세해지고, 자기밖에 모르던 아이가 타인을 이해하기 시작하죠.
어른도 똑같습니다. 우리가 책을 읽는다고 해서 당장 연봉이 두 배가 된다는 보장은 없어요. 하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합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함부로 말하지 않고, 쉽게 세상에 휘둘리지 않으며, 타인의 고통을 상상할 줄 아는 ‘품위 있는 어른’이 됩니다.”
그는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묵직한 당부를 남겼습니다.
“AI가 답을 주고, 알고리즘이 취향을 골라주는 세상입니다. 편하죠. 하지만 편한 만큼 우리는 생각할 기회를 뺏기고 있습니다. 기계에게 주도권을 뺏기지 않고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는 길은 딱 하나,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놓지 않는 겁니다. 그리고 그 힘은 오직 읽는 행위를 통해서만 길러집니다. 올해는 우리, 천천히 곱씹는 읽기를 해보면 어떨까요. 더 괜찮은 어른이 될 수 있습니다.”

롱블랙 프렌즈 K
새해 첫 주말, 서점이 일 년 중 가장 붐비는 시기죠. 저도 그 인파 속에 있었어요. ‘올해는 지난해보다 두 배 정도 책을 읽겠다’고 다짐하면서요.
그런데 솔직히 고백할게요. 집에 오자마자 쥔 건 책이 아니라 스마트폰이었습니다. 책장을 펼쳐도 글씨가 영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고요. 저만 그런 게 아닌가 봐요. L은 “아무래도 난독증인지, 책이 안 읽힌다”고 하더라고요.
답답한 마음에 독서 교육 전문가를 찾아갔습니다. 최승필 작가. 2018년 출간한 『공부머리 독서법』 한 권으로 무려 180쇄, 50만 부의 판매 기록을 세웠죠. “입시 공부에 사실은 독서가 가장 결정적”이라 주장한 교육서입니다. 이 책은 “대치동 학원가에 독서 열풍을 몰고 왔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최승필 독서 교육 전문가
최승필 작가에게 물었습니다. “요즘 왜 이렇게 읽기가 어려울까요?” 그는 “읽기 근육이 풀려서”라고 말했습니다. 책을 읽는다는 게 의외로 쉽지 않은 활동이라는 겁니다.
입시도 끝난 어른인데, 좀 안 읽으면 어떠냐고요? 최승필 작가는 “미래엔 읽는 사람과 안 읽는 사람 간의 격차가 더 벌어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더군요. 읽기 근육이 풀리면 사고 근육이 함께 풀리기 때문이랍니다.
“읽기 능력이 사라지면 복잡한 맥락을 파악하는 힘, 생각의 설계도를 짜는 힘이 함께 사라집니다. 이게 바로 AI 시대에 필요한 가장 결정적인 능력인데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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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에서 논술 강사 생활을 시작해 12년 동안 독서 교육에 몸담은 최승필 작가. 그는 읽는 인간만이 생각의 주인이 되어 ‘질문력’을 기를 수 있다고 말한다. ⓒ롱블랙
2026년 새해를 맞아 최 작가가 롱블랙 피플에게 보내온 메시지. ⓒ롱블랙
2018년 최 작가가 독서 논술 교사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공부머리 독서법』. 2023년 기준 50만 부 이상 판매되며 자녀교육 분야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롱블랙
반에서 꼴찌였던 최 작가를 독서의 세계로 이끈 『플란다스의 개』. 최 작가는 소년 네로와 반려견 파트라슈의 감동적인 이야기에 태어나 처음으로 책을 읽고 엉엉 울었다고 한다. ⓒ더모던
최 작가가 남양주 마석우리에서 운영 중인 책방 ‘공독서가’ 전경. ⓒ롱블랙
공독서가에 방문한 손님에게 아이가 읽기 좋은 책을 추천해 주고 있는 최 작가. ⓒ롱블랙
공독서가에서는 인근 주민들과 함께하는 독서 모임이 열린다. 책만 판매하는 공간이 아닌 배우고 나누는 지역 공동체를 지향한다. ⓒ롱블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