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롱블랙 프렌즈 K
시장이나 마트에 가야 할 이유가 점점 사라지는 시대예요. 생수와 휴지는 물론, 스테이크용 소고기나 샤인머스캣까지 문 앞에 놓이니까요. 요즘 같은 무더위엔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죠.
그런데 서울의 한 동네 풍경은 다릅니다. 주민들은 여전히 장바구니를 들고 어느 슈퍼마켓을 찾아요. 주말이면 외지인과 젊은 연인도 일부러 찾아오죠. 이곳은 61년 역사의 ‘사러가쇼핑센터(이하 사러가)’입니다.
겉보기엔 흔한 쇼핑센터예요. 2층짜리 회갈색 건물에 꽃집과 약국, 빵집, 반찬 가게가 모여 있죠. 하지만 몇 걸음만 들어가면 낯선 풍경이 펼쳐집니다. 라디치오와 루꼴라, 망고스티키라이스, 일본 의약품, 50여 종의 수입 생수까지. 평소 슈퍼에서 보기 힘든 물건이 빼곡하거든요.
‘연희동의 냉장고’라 불리는 이곳, 어떻게 반세기 넘도록 대형마트와 새벽배송 사이에서 살아남았을까요. 사러가의 곽대순 영업총괄과 이서연 마케팅팀장을 만나, ‘공식을 거스르는 슈퍼 운영법’을 듣고 왔습니다.

사러가 슈퍼마켓 곽대순 영업총괄・이서연 마케팅팀장
“손님이 자주 찾는 물건만 갖다 놓으면, 우린 진작에 없어졌을 거예요.”
두 사람은 사러가를 ‘발견을 파는 슈퍼’라 설명했어요. 가령 포도를 팔 땐 여섯 종*을 준비하고, 생선을 고르면 게랑드Guerande부터 말돈Maldon, 핑크솔트Pink salt, 천일염 중 어떤 소금을 뿌릴지 묻죠.
*포도, 청포도, 샤인머스캣, 델라웨어, 거봉포도, 캠벨포도.
효율만 따진다면 잘 팔리는 품목만 남기고, 손 많이 가는 서비스는 줄여야 해요. 하지만 사러가는 익숙한 상품 옆에 낯선 선택지를 함께 놓죠. ‘필요한 물건을 파는 일’만으론 대기업을 이길 수 없다고 본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