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파이롯트 : 과거의 향수를 역사로 만들고, 소비자에게 다시 다가가다


롱블랙 프렌즈 B 

학생 시절, 문구를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같은 색 펜끼리 분류해 필통을 정리하는 것만큼 뿌듯한 일이 없었죠. 그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펜은 하이테크C였습니다. 다른 펜들보다 가격이 비싸(4000원대) 명품 펜이라고 불리기도 했죠.

최근, 이 하이테크C를 다시 눈여겨 볼 계기가 있었습니다. 한국파이롯트가 지난 11월27일까지 성수동에서 한달 조금 넘게 팝업을 열었어요. 친구와 가보니 체험 위주의 공간이었습니다. 파이롯트 펜으로 서로의 얼굴을 그려주고,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써서 교환했어요. 마침 손님을 응대 중이던 김진표 대표와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김진표 한국파이롯트 대표

한국파이롯트는 68년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한국파이롯트의 유구한 역사를 잘 모르죠. 우리나라 최초로 만년필을, 사인펜과 샤프펜슬을 개발한 곳인데 말입니다. 한국파이롯트는 국내 문구 사업의 개척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파이롯트는 제 외할아버지 고홍명 창업주가 시작한 사업입니다. 할아버지의 문구 사업은 일본파이롯트와 기술제휴를 맺으며 ‘한국빠이롯드만년필’이 됐죠. 일본파이롯트의 제품을 생산했습니다. 그리고 2019년, 지금의 한국파이롯트로 이름이 바뀌었어요. 지금은 생산 없이 일본 제품을 수입하는 수입·유통사예요.

제가 사업에 본격 합류한 건 2016년입니다. 같은 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죠. 회사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할아버지의 역사를 읽은 겁니다. 할아버지의 일기장, 70년간 쌓인 계약서… 그 흔적을 따라가다 알았습니다. 사업은 기록과 정리의 반복이라는 것, 그 과정에서 기록은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