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영 : “해봐야 아는 거지!” 오늘을 끌어올리는 자신감과 실행력



롱블랙 프렌즈 B 

문득 처지는 날이 있습니다. 온갖 핑계를 대며 아무것도 하기 싫어져요. 제가 그럴 때면 C가 다가와 이렇게 말하곤 해요. “끌어올려~!”

괜스레 힘이 나요. 김호영 배우의 유행어라고 C가 그러더군요. 사실 저는 예능 방송에서 보고 알게 된 인물이지만, 그는 21년 차 베테랑 뮤지컬 배우입니다. 홈쇼핑 방송에서도 그를 봤던 기억이 납니다. 트로트 음반도 냈다고 해요.

지칠 줄 모르는 것만 같은 그가 궁금했어요. 삼각지역 근처의 한 식당에서 그를 만나 인터뷰했습니다. 화려한 패턴이 그려진 바지와 스카프. 공중에서 춤을 추는 듯한 손가락 제스처와 부드럽지만 분명히 다가와 꽂히는 목소리. 살면서 해온 모든, ‘자연스러운 선택’들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고 했어요.


김락근 인스턴트펑크 대표

슈퍼 E의 대표주자, 김호영 배우. 심지어 그는 방송에서 자신의 MBTI가 EEEE라고 말하죠. 그 넘치는 에너지의 원동력이 알고 싶었어요.

인터뷰 장소에서 만난 그의 모습은 ‘역시’와 ‘어라?’가 함께 있었어요. 예능 방송에서처럼 빠져드는 말솜씨를 보여주기도, 차분하고 나지막이 말하기도 했죠. 

집 앞에서 마주쳐도 “역시 저런 사람이 배우 하는구나”라는 말을 듣고 싶다는 김 배우. 그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Chapter 1.
한복을 입고 거리로 나선 소년

김 배우는 어린 시절부터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어 했어요. 초등학교에 다니기 전부터 그의 꿈은 한결같았죠. ‘배우’. TV에 나오는 모습이 특별해 보였던 거예요.

그때 입고 다녔던 옷부터 남달랐어요. 분홍색, 초록색의 비단 한복을 입고 거리를 다녔죠. 사극 속 기생들이 한복 차림으로 춤추는 모습에 매료됐던 초등학생 김호영. 남자 색동저고리로는 성에 차지 않았어요. 어머니가 사촌 누나의 한복을 받아오자 그제야 만족했죠. 

어머니의 뾰족구두를 신고 아파트 복도를 걸어 다니기도 했어요. ‘또각또각’ 소리가 마음에 들었거든요. 203호, 205호, 208호 아주머니들이 구두 소리를 듣고 나와 인사하면, 마음에 드는 집에 들어가 아침밥을 먹고 나왔다고 해요. 붙임성도 좋군요.

“사극을 보면 평상시에 내가 입지 못하는 옷을 입고 있잖아요. 저도 저런 걸 입고 싶었어요. 본능적으로 특별한 무언가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평범한 게 아니라, 옷조차도 특이하고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죠.”

한복을 입고 있는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김 배우. 사진 속 앉은 자세는 사극에 나오는 인물을 따라 하고 있던 것이라 말한다. ©롱블랙

주목받는 일에 두려움 없이

그의 학교생활은 교내활동으로 가득했어요. 방송반, 합창단, 연극반. 뭐든 적극적으로 나서는 학생이었죠. 

초등학교 땐 친구들 싸움에 나서기도 했대요. 반장이었던 그는 ‘또래 법정’을 하자고 선생님께 제안했죠. 의자와 책상을 옮겨 재판장처럼 만들고, 싸운 친구들의 짝꿍들이 증인이 됐어요. 한 명씩 싸운 이유를 말하고, 초등학생 김호영은 판사가 돼 판결을 내렸어요.

중학교 땐 학교 합창단 지휘를 맡았어요. 원래 선생님들만 하던 역할이었죠. 지휘를 배우던 수업 시간, 중학생 김호영은 지휘에 현란한 손짓을 섞었어요. 그 모습을 본 친구들이 재밌어하며 따라 하곤 했죠.

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던 이유. 어머니 덕입니다. 김 배우가 무얼 선택해도 문제 삼지 않으셨다고 해요. 여자 한복도 어머니가 구해오신 거였어요. 덕분에 그는 다양한 취향을 경험하며 자라났죠. 건담부터 미미까지. 방에는 온갖 로봇과 인형이 가득했어요.

“어머니는 ‘너니까 입을 수 있어. 그런 건 너니까 어울려.’ 이런 스타일이었어요. 제가 그래서 과감한 시도를 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어요. ‘너가 좋다면 뭐든지 괜찮다’는 식이거든요. 한 번도 저를 ‘호영아’하고 부르신 적이 없어요. 늘 ‘슈퍼스타 호영’ 이렇게 불러주셨죠.”

김 배우는 성악 전공으로 예고 진학을 희망했지만, 긴장으로 시험을 망쳐 일반고에 갔다. 진학하고 보니 전국적으로 유명한 연극반이 있는 학교였다며, 체계화된 시스템 속에서 연극을 처음 배웠다고 한다. ©롱블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