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블랙 프렌즈 B
매거진 <B>가 10주년을 맞았습니다. 10주년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남산 자락의 복합 문화공간 피크닉Piknic을 올라가면서 프라이탁FREITAG*을 떠올렸습니다. 2011년 11월 발행된 <B> 1호가 프라이탁을 다뤘죠.
*트럭 방수천 등 재활용 소재를 이용해 가방을 만드는 스위스 패션 브랜드
서점에서 이 낯선 잡지를 집어들고 떠올린 질문들이 지금도 또렷합니다. 잡지라고 하면서 왜 책 같은 판형일까. 광고가 없는데 사업이 가능할까. 한 호에 오로지 한 브랜드라니, 이렇게 브랜드를 깊이 파고들 사람이 많을까.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응원하는 마음으로 하나 둘 사모았습니다. 저의 걱정이 무색하게 <B>는 계속 성장해 왔습니다. 종이 잡지들이 하나둘 사라져가는 시대에 말입니다.
지난 10년, 많은 질문들에 <B>는 어떤 답을 찾아왔을까요. 롱블랙이 매거진 <B>의 김명수 대표, 박은성 편집장을 만났습니다.
김명수 매거진 <B> 대표, 박은성 매거진 <B> 편집장
매거진 <B>를 이야기할 때 조수용이라는 이름이 빠질 수 없습니다. 카카오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그는 지금도 발행인직을 유지할 정도로 이 잡지에 애착이 큽니다. 아직도 매 호의 표지 디자인을 직접 확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네이버의 초록 검색창을 만든 디자이너. 네이버에서 부사장까지 지낸 조 대표가 2010년 독립해 만든 회사가 JOH입니다. <B>는 JOH의 핵심 프로젝트 중 하나였습니다. 인천 영종도의 네스트호텔, 서울 광화문의 D타워 등과 함께 말이죠.
김명수 대표와 박은성 편집장은 조수용 발행인과 함께 초기부터 <B>를 만들어왔습니다. <B>의 지난 10년을 오롯이 지켜보고 이끌었습니다.
Chapter 1.
김명수 : 매거진 키드, 매거진에 이끌려 네이버를 나오다
조수용 대표를 만난 건 2005년이었습니다. 저는 네이버 디자인 본부의 신입사원이었고 조 대표는 본부장이었어요. 까마득히 높은 분이었죠. 일대일로 대화를 하는 건 일년에 한두 번 정도? 그 때마다 느낀 건, 경영에 대한 이야기를 참 쉽게 풀어내신다는 거였어요. 디자인에 대한 얘기보다 우리가 왜 이런 사업을 하고 있고, 어떤 결과를 내길 원하는지를 말씀해주셨죠.
네이버가 빠르게 성장하던 때였어요. 브랜드 디자이너로 압축적인 경험을 했습니다. 팀이 커지면서 3년 만에 팀장이 됐습니다. 뛰어난 팀원이 많았고, 제가 할 일이 많지 않았어요.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력을 기르려면 여기에서 안주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었죠.
그때 조 대표가 저를 찾으셨어요. JOH 설립 직후, 2010년 말이었습니다. 그때 하신 말씀을 거칠게 떠올려보면 이랬어요. “하고 싶은 일들이 있다. 돈을 많이 벌고 나서 하겠다고 기다리고 싶지 않다. 지금 하자. 잡지도 만들 거고, 식당도 만들 거다. 같이 하자.”
제게 강하게 꽂힌 단어가 잡지였어요. ‘잡지를 만든다고? 너무 좋다.’ 가슴이 뛰었어요. 저는 매거진 키드였어요. 부산에서 자랐는데, 관심 가는 정보를 볼 곳이라곤 잡지가 유일하던 시절이었죠. 시간이 날 때마다 잡지를 봤습니다. 씨네21도 즐겨 봤지만, 특히 서브Sub라는 이름의 음악 잡지를 정말 좋아했어요.
발행인은 이미 큰 틀의 구상을 다 잡아놓은 상태였어요. 브랜드에 대한, 광고없는 잡지를 만들 거라고 했죠. 솔직히 브랜드에 대한 잡지여서 마음이 움직였던 건 아니에요. 어떤 잡지였어도 하고 싶었을 겁니다. 그렇게 2011년 초에 네이버를 퇴사하고 JOH로 입사했어요. 브랜드 디렉터로 <B> 뿐 아니라 일호식, 사운즈 한남, 스틸북스 등을 개발하고 운영하다가 2016년부터 <B>의 사업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사실 경영주도, 직원들도, 소비자도 모두 행복해하는 모습을 그린다는 게 불가능해 보이는데, 매거진 <B>에 나오는 브랜드들은 거의 그런 패턴을 갖고 있어요. 흔히 생각하기에 사업적으로 가치 있고 가족적인 분위기면 가난하게 살 것 같은데, 그런 기업들이 오히려 돈을 훨씬 잘 벌어요.”
_조수용 매거진 <B> 발행인, 2013년 경향신문 인터뷰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