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슈라이어 : 자동차 디자인 40년 거장, 좋은 디자인을 말하다


롱블랙 프렌즈 B

피터 슈라이어Peter Schreyer. 자동차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분들이라면 익숙한 이름일 겁니다. BMW의 크리스 뱅글Chris Bangle, 아우디의 월터 드 실바Walter De Silva와 함께 세계의 3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꼽힙니다. 2006년 기아의 최고디자인책임자CDO·Chief Design Officer로 취임한 뒤 한국 자동차 디자인을 한 단계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지금은 현대자동차그룹 전체에서 디자인경영 담당 사장을 맡고 있죠. 

그가 탄생시킨 역작들을 꼽아볼까요. 아우디 A6(1994년), 폭스바겐 뉴비틀(1997년), 폭스바겐 골프 4세대(1997년), 아우디 TT(1998년)가 그를 통해 태어났습니다. 기아로 옮겨서는 모하비(2008년), K5(2010년), 올뉴쏘울(2013년) 등을 내놓았죠. 

그런 그가 책을 펴냈습니다. 한국어로는 <디자인 너머>, 영어로는 <Roots and Wings뿌리와 날개>라는 제목을 달았더군요. 출간을 기념해 방한한 피터 슈라이어 사장을 김양아 어메이즈 대표와 함께 만났습니다.


김양아 어메이즈 대표

피터 슈라이어 사장을 처음 만난 건 이노션 유럽 법인에서 일할 때입니다. 이노션은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의 종합광고대행사잖아요. 중요한 논의를 위해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한 컨퍼런스를 사흘 정도 함께 참석한 적이 있었어요.

인상적이었던 건, 자주 뭔가를 스케치하고 계셨다는 거예요. 늘 갖고 다니시는 파버카스텔faber-castell의 검정색 샤프펜슬이 있어요. 이야기를 하다가도 냅킨에 선으로 슥슥 그려가며 설명하곤 하셨죠. 사소한 디테일도 놓치지 않고, 언제나 주위의 모든 것을 날카롭게 응시하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이번 인터뷰를 통해 디자인 거장의 철학을 소개하게 된 것이 기쁩니다.


Chapter 1.
열정 : 중요한 건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다 

피터 슈라이어는 1953년 독일 바이에른주 바트라이헨할이라는 휴양 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이 운영하시던 식당 근처에는 공항이 있었대요. 어린 슈라이어는 비행기를 정말 좋아했다고 합니다. 장난감 비행기를 가지고 놀면서도 ‘빨간 비행기’, ‘파란 비행기’라고 하지 않고, ‘클렘’, ‘파이퍼’라고 모델명을 부를 정도로 관심이 많았죠. 

기계에 대한 열정을 타고났나 봅니다. 슈라이어는 지금도 자신이 다섯살 때 그린 트렉터 스케치를 가지고 있어요. 몇 개 안되는 선으로 트렉터의 특징을 정확하게 표현했죠. 10대 시절에 나무를 깎아 만든 자동차 모형은 또 어떤가요. BMW의 경주용 자동차 F2 그대로입니다.

우리는 이런 얘기를 들으면 마음이 흔들리곤 하죠. 아, 감각은 타고나야만 하는 것인가. 슈라이어는 고개를 흔들며 웃었습니다.

“중요한 건 열정이에요. 열정은 모든 것의 토대입니다. 감각을 기르기 위해서는 당연히 경험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내면에서 우러나는 열정이 있어야, 이 훈련에 몰입할 수 있어요. 그러니 가장 중요한 건 열정입니다.

여기서 제가 말하는 훈련은 기술적인 훈련만이 아니에요. 마음가짐이 단련돼야 해요. 축구 선수나 피아노 연주자도 마찬가지예요. 물론 프로페셔널이 되려면 기술을 단련해야죠.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내면으로 느끼는 거예요. 가슴으로 느끼고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미술을 좋아하던 슈라이어는 우연히 본 포스터에 이끌려 산업디자인과에 진학합니다. 그리고 운명처럼 대학 3학년 때 아우디의 인턴 사원이 돼요. 원래 교수가 염두에 뒀던 학생이 인턴 자리를 거절해 슈라이어에게 기회가 왔죠.

그는 43년 전 아우디의 인턴십 첫날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회사에 들어서자마자 ‘와, 여긴 천국인데!’라고 느꼈다고 해요. 인턴십 3개월이 끝날 때는 울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일을 좋아했죠. 그는 디자인팀 총괄 하르트무트 바르쿠스Harmurt Warkus의 눈에 들었습니다. 바르쿠스의 추천으로 그는 아우디의 장학생이 됩니다. 런던의 왕립 예술 아카데미(RCA)에서 자동차 디자인 공부를 한 뒤, 다시 아우디에 합류하죠. 그리고 폭스바겐 그룹에서의 질주가 시작됩니다. 

피터 슈라이어가 10대에 BMW F2를 보며 만든 목각 자동차 모형. ⓒgestalten

Chapter 2.
개성 : 좋은 디자인은 고유의 특성이 있어야 한다 

피터 슈라이어는 1980년 이후 아우디와 폭스바겐을 넘나들며 눈부신 경력을 쌓습니다. 아우디에서 그는 A6와 A3, TT를 내놓았죠. 폭스바겐의 뉴비틀과 4세대 골프를 디자인했어요. 2003년 독일 연방 디자인 대상을 수상하며 승승장구합니다. 

연달아 최고의 자동차 디자인을 내놓은 비결은 무엇일까요. 그는 책에서 40년간 자신이 추구해 왔던 5가지 디자인 원칙을 정리했어요. 지난 시간의 깨달음이 함축돼 있다는 느낌을 저는 받았습니다. 

1. 비례와 균형이 전부다 Proportion is everything
2. 주제를 찾아내 고수할 것 Find a theme and follow it
3. 자동차 실내 디자인은 건축이다 Interior design is architecture
4. 주류 너머의 세계로 전진할 것 Swim beyond the mainstream
5. 개성을 구축하는 것은 결국 아날로그다 Analog builds charac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