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블랙 프렌즈 C
벌써 내일이 한글날(10월 9일)이에요!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만든 의도와 과정’이 전부 나와 있는 문자죠. 한글이 우수하다는 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봤을 거예요.
요새 한글과 함께 한국어를 배우려는 이들이 늘고 있어요. 미국 대학교에서 외국어 수강 증가율 1위가 바로 한국어래요.* 5년간 38%가 늘었다죠! 2023년엔 언어학습 앱 듀오링고Duolingo에서 한국어가 중국어를 제치고 세계 7위의 학습 언어가 됐어요.
*2021년 기준, 미국 현대언어협회(MLA).
마침 한글이 대세가 된 흐름에 올라탄 기획자들이 있더라고요? 이때다 싶어 만나 봤어요.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풀어볼게요!
Chapter 1.
이제 ‘Buldak’보다, ‘불닭’을 반기는 사람들
한글이 뜬 배경부터 짚어 볼게요. 여기엔 ‘한류’가 있어요. 세계가 한류 열풍인 건, 누구나 알 거예요. 규모도 엄청나죠. 2024년 한류 시장 규모는 760억달러(약 105조원)에 달한다고 해요. 2030년에는 무려 1980억달러(약 274조원) 규모로 커질 거래요!*
*틱톡코리아와 칸타Kantar가 2024년에 발표한 시장 전망치.
성장을 앞장서서 이끈 건 BTS와 「오징어게임」 같은, K팝과 K드라마예요. 이건 익숙한 이야기죠! 그보다 최근 K푸드의 인기가 흥미로워요. 대표적인 게 삼양의 ‘불닭볶음면’이죠. 미국에서 ‘품절 대란’을 일으킬 정도예요. 선물로 ‘까르보나라 맛’ 제품을 받고 눈물을 터트리는 여자아이 영상, 보신 분도 있을 거예요. 틱톡에서 조회 수 6700만회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죠.
여기서 주목할 점이 있어요. 해외에 진출한 K푸드가 이름을 쓰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거든요. 과거 불닭볶음면은 해외 제품 포장에 ‘Hot chicken flavor ramen’을 내세웠어요. 일단 어떤 제품인지 알려야 했거든요. 인지도가 높아진 다음엔, ‘Buldak’을 크게 썼죠. 지금은? 한글로 ‘불닭볶음면’이 가장 크게 쓰여 있어요!
CJ제일제당의 식품 브랜드 ‘비비고Bibigo’도 마찬가지예요. 2023년 기준 미국 만두 시장의 42%를 점유하고 있다고 해요. 이런 흐름에 힘입어 이들은 최근 해외용 로고를 새로 단장했어요. 눈에 띄는 점 하나는, Bibigo만 있는 게 아닌 한글 ‘비비고’가 쓰였다는 것!
“한국 제품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덩달아 한글을 마케팅, 디자인에 풀어내는 방식도 바뀌고 있어요. 과거에는 애국 마케팅처럼 한글을 강조했다면, 지금은 해외 소비자들의 관심을 반영해 한글을 내세우고 있는 거죠. 달리 말하면 시장이 점점 생기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_이승윤 건국대학교 경영학과 마케팅 교수, 롱블랙 인터뷰에서
콧대 높은 해외 브랜드도 한글을 활용하고 있어요. 2022년 뉴욕에서 열린 루이 비통 200주년 전시에는 ‘LV’를 ‘엘뷔’라고 표기한 전시물이 등장했죠. 올해 3월, 코카콜라는 캔 겉면에 한글로 ‘코카콜라’라고 적힌, ‘한류 에디션’을 내기도 했고요.
“세계인이 한글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한류를 향유하는 인구가 2억5000만명이라는 걸 고려하면 자연스러운 겁니다. K팝이나 예능 등을 경험하다 보면, 언어를 이해하고 싶어지거든요. 그 과정에서 가장 먼저 문자인 ‘한글’을 접하게 되죠.
다행인 건 한글이 문자로서 배움의 장벽이 낮다는 겁니다. 알파벳처럼 펼쳐지지 않고, 동그라미와 세모, 직선을 조합하듯 익힐 수 있어요.”
_김지형 경희사이버대 한국어문화학부 교수, 롱블랙 인터뷰에서
Chapter 2.
야호 : 한글을 품고, 아이돌과 ‘노는 판’을 기획하다
마침 배우기 쉬운 한글을 ‘노는 콘텐츠’로 풀어낸 기획자들이 등장했어요. 주인공은 ‘야호YAHO’ 팀. K팝 신인 및 중소 기획사 아이돌과 함께 한글 게임 북을 만드는 팀이에요. 2024년 8월, 20페이지 분량의 첫 한글 게임 북을 내놨죠.
야호는 ‘한글 교재’가 아니에요. ‘외국인이 한글에 쉽게 다가가게 만드는 소책자’라고 해요. 서너 살짜리 아이가 한글을 익힐 때 보는 책을 닮기도 했어요. 단, 내용은 아이돌과 한국 문화로 채웠어요. 분식으로 상을 차린 사진을 보며 빈칸에 ‘떡볶이’ ‘라면’ 등을 따라 써보게 하죠. 아이돌 멤버 이름을 한글로 읽어볼 수도 있게 하고요.
한글 책이 많은데 굳이 이걸 만든 이유는 뭘까요? 기획자들은 두 가지 이유를 들었어요. 의외로 쉽게 한글을 보게 하는 책은 없었다는 것. 또 하나는 K팝 팬덤의 놀거리가 필요하다는 것.
기획자는 총 3명이에요. K팝 팬덤 플랫폼 ‘블립Blip’을 운영하는 김홍기 스페이스오디티 대표와 26년간 K팝을 평론한 차우진 TMI.FM 디렉터, 오디너리 지니어스 김청 브랜드 기획자로 구성돼 있죠.
한글과 아이돌을 연결하자는 아이디어는 김홍기 대표로부터 나왔어요. 그는 22년간 음악계에서 일하며 한글과 음악을 연결하는 마케팅을 해왔죠.
그는 2014년 카카오뮤직에선 문학과지성사와 협력해 ‘시인들이 뽑은 노랫말이 아름다운 7곡*’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2015년엔 유튜브 채널 딩고에서 세로라이브를 기획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한글 가사가 영상 전면에 노출되는 새로운 라이브 영상을 선보이기도 했죠.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 루시드폴의 ‘물이 되는 꿈’ 등을 선정했다.
“어떤 노래를 좋아할 땐, 멜로디뿐 아니라 제목이나 가사를 읽어보며 음미하게 되잖아요? 내 이야기를 투영하기도 하니까요. 그러려면 언어를 아는 게 필요하죠.”
_김홍기 스페이스오디티 대표, 롱블랙 인터뷰에서
마침 차우진 디렉터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한국 문화에 관심 있는 외국인이 점점 늘어나는데, K팝을 일종의 미디어처럼 활용할 수 없을지 고민했죠. 그러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어요.
“K팝 팬들이 우리 노래로 한국어를 배운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문득 제 중학생 시절이 떠오르더군요. 라디오에 나온 팝송을 녹음해 듣고, 신문에 가사 해석 코너를 매번 스크랩했어요. 우리가 다시 이 역할을 하면 재밌겠다 싶었습니다.”
_차우진 디렉터, 롱블랙 인터뷰에서
Chapter 3.
‘누구나’ 집어 드는 한글 콘텐츠를 만든다는 것
야호 팀의 목표는 단순했어요. ‘일단 사람들이 책을 집어 들게 하자’.
“한글은 처음부터 쉽게 쓰기 위해 만들어진 문자잖아요. 외국인도 편하게 다가오게 하고 싶었어요. 한글이 있다는 걸 아는 수준에서, 아는 한글 단어 몇 가지만이라도 만들어 주는 게 목표였죠.”
_김청 오디너리 지니어스 브랜드 기획자, 롱블랙 인터뷰에서
문턱 낮추는 전략 ① : 설명하지 않고, 일단 보여준다
물론 이들도 처음엔 한글을 정확히 알려주려 했어요. 발음을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에, 로마자 알파벳으로 발음을 병기했습니다. 교수님들께 자문까지 받아 가면서요.
그런데 주변 외국인들의 의견을 들으니, 의외의 반응이 나왔어요. “내용이 너무 어렵다”고 한 거예요. 예를 들면 받침과 ‘이응(ㅇ)’의 개념을 이해하기 힘들어했대요.
“만약 ‘애플’이라고 하면, 왜 ‘ㅐ플’이라고 하지 않는지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거예요. 게다가 이응이 받침으로 들어갈 수도 있죠. 이응은 자음이지만, 우리는 모음처럼 쓰기도 해요. 알파벳 논리와는 달랐죠.”
_차우진 디렉터, 롱블랙 인터뷰에서
야호 팀은 20페이지 책자에서 이런 개념까지 설명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어요. 오히려 외국인에게 거리감을 줄 거라고 봤죠. 이때 이들은 학습지가 아닌, 게임 북으로 방향을 새롭게 잡았어요.
“전문 교육은 다른 곳에서도 받을 수 있어요. 우리는 한글과 K팝에 대한 ‘최초의 관심’을 터트리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어요. 그러려면, 콘텐츠가 더 ‘귀엽고 하찮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죠.”
_차우진 디렉터, 롱블랙 인터뷰에서
귀엽고 하찮게!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이들이 택한 전략은 ‘설명하지 않고, 보여주기’였어요. 언어학적인 내용을 풀기보다, 실생활에서 많이 쓰는 단어를 그대로 보인 거예요. 예를 들어 2호 게임 북에는 ‘김치전’, ‘동묘’, ‘눈물의 여왕’, ‘멋있는 척’ 등이 나와요.
또 게임 북의 주인공은 아이돌이지만, 누가 봐도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아요. 아이돌 멤버들에게 설문을 받아, 이들의 취향을 한글로 쓰는 식이죠. 주로 한국에서 실제로 체험할 수 있는 요소를 담았어요. ‘요아정* 최애 조합’부터, ‘매운 음식을 잘 먹는 나만의 꿀팁’ 같은 것들이죠.
*디저트 프랜차이즈 ‘요거트 아이스크림의 정석’의 줄임말로, 최근 MZ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사전에 있는 단어가 아닌, 실생활에서 쓰는 요즘 말을 쓰려고 했어요. 또 아이돌과의 거리감도 좁히기 위해 이름보다 캐릭터를 부여했어요. ‘불닭볶음면 5단계 먹는 친구’ ‘순댓국 좋아하는 친구’ 이런 식으로 등장인물을 기억하게 했죠.”
_김청 오디너리 지니어스 브랜드 기획자, 롱블랙 인터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