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블랙 2025 : 9인의 경험 설계자,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을 말하다


롱블랙 프렌즈 L 

11월 27일 아침의 서울은 온통 새하얬어. <롱블랙 컨퍼런스 2025 : 경험과 공감> 둘째 날 행사가 열린 서울 삼성동 코엑스. 3층 창밖엔 한 폭의 그림이 펼쳐져 있었어. 눈을 이고 선 소나무와 봉은사 풍경이 마치 수묵화 같았지.

눈길을 지나, 롱블랙 피플이 아침 일찍부터 1000여 석의 컨퍼런스장을 가득 채웠어. 기다렸다는 듯 노트북과 태블릿, 메모장을 펼쳤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약 8시간의 강연이 이어지는 동안 자리를 떠난 사람은 거의 없었어. 

오늘은 그 뜨거웠던 컨퍼런스 현장에서 아홉 명의 연사*가 들려준 이야기를 정리해 볼게.
*나가사카 조 스키마타 건축 대표, 양태오 태오양스튜디오 대표, 안성재 모수 셰프, 홍성태 한양대 경영대학 명예교수, 이진민 아이소이 대표, 김성준 시몬스 부사장, 김지수 작가, 조승연 작가, 호소다 다카히로 TBWA 하쿠호도 CCO.

서울 삼성동 코엑스 3층 창밖으로 보이는 눈 덮인 봉은사. <롱블랙 컨퍼런스 2025 : 경험과 공감> 둘째 날은 갑작스레 찾아온 함박눈과 함께 시작했다. ⓒ롱블랙

Chapter 1.
덜어냄이 만드는 몰입의 경험

롱블랙이 그동안 만난 대가들은 공통점을 가졌어. 한 분야를 오랜 시간 파고들다 보면, 무엇을 ‘덜어낼까’를 고민하게 된다는 거야. 

컨퍼런스 첫 세션의 문을 연 세 연사도 딱 그랬어. 그들이 설계한 경험은 하나같이 ‘몰입감’이 높기로 유명해. 공간에 들어서고, 커피를 마시고, 손가락만 한 음식 하나를 먹어도 오래 기억에 남지.

“불필요한 요소를 덜어낸 공간은, 사람들의 소통을 만듭니다.” 나가사카 조 스키마타 건축 대표가 던진 화두야. 그는 르 라보Le Labo와 이솝Aesop, 블루보틀Blue Bottle의 매장을 설계한 인물이야. 모두 미니멀하고 단순한 게 특징이지.

실제로 그의 건축사사무소에도 외벽과 문이 없어. 사무실 한편이 길과 연결된 공터처럼 보일 정도야. 술 취한 사람이 들어와 쉬기도, 동네 커플이 만남의 장소로 쓰기도 하지.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공간이 있으면 그 공간 안에서 보여지는 사람, 보는 사람이 자연스레 섞이는 모습이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벽을 없애는 것만으로도 작은 변화들이 생겨나요. 완벽하게 꽉 찬 공간이 아닌 덜어낸 공간은, 부족해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공백은 그곳에 사는 사람 그리고 이웃들의 취향과 삶이 채울 겁니다. 전 그런 작업이 굉장히 즐거워요.”
_나가사카 조 스키마타 건축 대표

컨퍼런스 둘째 날의 문을 연 나가사카 조 스키마타 건축 대표. 그는 건축물을 디자인할 때 채움이 아닌 덜어냄을 먼저 생각한다고 말했다. ⓒ롱블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