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의 발견 6부 : 『타임 푸어』 저자 브리짓 슐츠 “시간 관리 하지 마세요”


이 노트는 LG유플러스 지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브랜디드 콘텐츠, 위드롱블랙을 더 알아보세요.


롱블랙 프렌즈 C

요즘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일만 그런 게 아니에요. 친구들 청첩장 모임에, 가족 생일까지. 챙길 건 산더미인데 시간은 늘 모자라요. AI가 일을 대신 해 준다는 시대에, 왜 전 더 바빠진 것 같죠?

롱블랙과 LG유플러스가 함께 한 설문에서도 똑같은 답이 나왔어요. 응답자 2169명 중 무려 31.6%가 “시간 활용이 가장 복잡하다”고 했거든요.

그래서 책장에서 10년 전에 읽은 책을 다시 꺼냈어요. 브리짓 슐츠Brigid Schulte의 『타임 푸어Time Poor』*. 늘 시간에 쫓기며 사는 현대인의 삶을 파고든 책이에요. 2014년 3월 나오자마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죠. 저도 이듬해 한국어 번역본을 보고 바로 읽었죠.
*원제는 『Overwhelmed』로 ‘압도당함’이라는 뜻이다.

브리짓 슐츠는 노련한 기자예요. 「워싱턴 포스트」에서 17년간 일했고, 2008년엔 동료들과 퓰리처상*을 수상했어요. 지금은 미국의 싱크 탱크 뉴아메리카New America 안의 연구 조직 ‘베러 라이프 랩Better life lab’을 이끌고 있고요.
*2007년 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 사건을 보도한 워싱턴포스트 취재팀의 일원으로, 2008년에 ‘속보 보도 부문’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잠깐, 그가 원래부터 시간을 잘 쓰던 사람 아니냐고요? 정반대예요. 슐츠는 이 책을 “어쩌다 쓰게 된 책accidental book”이라고 불러요. 자기 삶이 엉망이라 쓰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심플의 발견」 여섯 번째 주인공, 브리짓 슐츠를 화상으로 만나봤어요!


브리짓 슐츠 베러 라이프 랩 대표

가장 먼저 물었어요. “시간을 심플하게 쓴다는 게 대체 뭐죠?” 슐츠의 답은 뜻밖이었어요. 시간을 관리하는 게 핵심이 아니라는 거예요.

“시간을 심플하게 쓴다는 건, 모든 일을 효율적으로 해내는 게 아니에요.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정하고, 거기에 시간을 쓰는 거죠.”


Chapter 1.
시간이 없는 게 ‘내 탓’이라고요?

“제 삶은 조각나 있었습니다.”

『타임 푸어』를 쓸 무렵, 브리짓 슐츠는 두 아이를 키우며 기자로 일했어요. 새벽 2시까지 아이의 컵케이크를 굽고, 새벽 4시에 기사를 마감했죠. 아이의 학교 화장실에서 취재원과 통화한 적도 있다고 해요.

그런데도 늘 부족했어요. 아이는 “엄마가 소풍에 와주지 않는다”고 울었고, 상사는 슐츠가 쓰지 못한 기사를 헤아리며 압박했거든요.

“처음엔 저 자신이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지 못하는 사람이구나’ 하면서요.”

시간 관리 전문가를 찾아간 슐츠, 뜻밖의 말을 들었어요. 전문가는 “당신에겐 일주일에 무려 30시간의 여유 시간이 있다”고 했거든요. 정말 슐츠에게 여유 시간이 충분한데, 이를 낭비하고 있었던 걸까요?

“전문가와 제 시간을 일주일 동안 기록해 봤어요. 그런데 그 표를 보자 왈칵 눈물이 났죠. 전문가는 제 조각난 시간을 모두 ‘여가’ 시간으로 생각하더군요.”

너무 지쳐 아침에 누워 있던 시간, 차가 고장 나 길에 멈춰 있던 시간, 일을 위해 신문을 읽던 시간도 ‘여가’로 보더래요. 5분, 10분씩 조각난 시간들을 말이죠. 정작 슐츠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온전한 시간은 없었는데도요.

그때부터 슐츠의 질문은 바뀌었어요. ‘나는 왜 시간을 쓰는 데 서툴지?’가 아니라, ‘왜 우리는 이렇게 자신을 몰아붙이지?’로.

기자로 일하던 브리짓 슐츠는 매일 시간 부족에 시달렸다. 그는 롱블랙과의 인터뷰에서 “시간 부족은 지금을 살아가는 모두가 겪는 문제”라고 말했다. ⓒ브리짓 슐츠

‘바쁨’이 지위의 상징이 된 시대

슐츠는 현대 사회에서 ‘바쁨’은 ‘지위의 상징status symbol’이 됐다고 말해요.

“100년 전엔 반대였어요. 귀족과 부유층은 차를 마시고 골프를 치면서, 일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로 지위를 증명했죠. 지금은 완전히 뒤집혔어요. 일론 머스크 같은 억만장자가 새벽 4시에 X에 글을 올리고, ‘주 40시간 일해선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말하잖아요. 얼마나 바쁜지를 자랑하는 시대가 된 거예요”

그런데 바쁘게 산다는 건, 바람직한 면도 있잖아요? 내 삶을 위해 노력한다는 거니까요. 슐츠는 제게 물었어요. “바쁨이 미덕인 사회에서, 가장 바람직한 직원은 어떤 모습일 것 같냐”고.

“바쁨을 미덕으로 보는 사회에서 ‘이상적인 노동자ideal worker’는 끊임없이 일하는 사람이에요. 건강이나 가정생활에 지장이 생겨도요. 대부분의 생산성 책과 팟캐스트는 ‘시간을 잘 관리해서 그런 노동자가 돼라’고 말하죠. 그렇게 되지 못하면 사람들은 자신을 탓해요. ‘남들은 다 하는데, 왜 나만 못하지?’하고요. 결국 모두가 시간에 쫓기는 삶을 살게 되는 겁니다.”

결국 바쁨을 능력으로 여길수록, 사람들은 같은 시간 안에 더 많은 걸 밀어 넣으려고 해요. 더 일찍 일어나고, 일정을 잘게 쪼개고, 빈틈없이 채우면서 말이죠.

2014년에 출간된 『타임푸어(원제는 Overwhelmed)』와 2024년에 출간된 『Over Work』. 슐츠는 두 책에서 현대인의 바쁨과 과로를 파고들었다. 슐츠는 “바쁨을 서로에게 자랑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짚었다. ⓒSarah CrichtonBooks(왼쪽), Henry Holt and Co(오른쪽)

Chapter 2.
‘시간 관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 이 굴레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슐츠는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써온 말부터 의심해 보라고 해요. 바로 ‘시간 관리Time management’. 슐츠는 단호하게 말해요. “시간은 관리할 수 없다”고. 아니, 이게 무슨 뜻이죠?

“시간은 그저 흘러가요. 늘리거나 줄일 수 없죠. 우리가 관리할 수 있는 건, 시간을 대하는 기대치와 우선순위, 그리고 그 안에서 하는 행동뿐입니다. 그 점이 제게는 엄청난 관점의 전환이었어요.”

시간을 잘 쓴다는 건, 같은 하루에 더 많은 일을 욱여넣는 게 아니에요. ‘오늘은 어디까지 하면 충분한가’를 정하는 일에 가깝죠.

“인간은 늘 ‘완성done’의 의미와 싸우고 있습니다. 농경 시대엔 밭을 다 갈면 끝이었죠. 하지만 지식 노동은 달라요. 기자는 기사 한 편을 써도 늘 다음 기사가 기다리고 있어요. 언제 ‘모든 걸 끝냈다’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무도 몰라요.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옛날 기준에 기대죠. ‘한밤중에 이메일을 보냈으니 나는 생산적이야’ 하면서요.”

할 일에는 끝이 없어요. 그러니 우리가 정해야 하는 건 ‘시간’이 아니라 ‘충분함의 기준’이에요. 모든 일을 다 해내려 하지 않고, ‘오늘은 이 정도면 됐다’는 선을 스스로 정하는 거죠. 그래야 매일 쏟아지는 일도 그 기준에 맞춰 걸러낼 수 있으니까요.

슐츠는 그 방법으로 생산성 전문가 데이비드 알렌David Allen의 방식을 알려줬어요.

“제가 좋아하는 건 데이비드 알렌의 ‘브레인 덤프brain dump’ 방식이에요. 말 그대로, 일단 해야 할 일을 전부 어딘가에 쏟아내는 거죠. 머릿속에 담아두지 않고 밖으로 다 비워내는 거예요. 그래야 뇌에 다른 생각을 할 공간이 생기거든요.

그다음엔 그중에서 딱 ‘하나one thing’만 골라요. 오늘 이것 하나만 끝내도 ‘됐다’ 싶은, 그런 핵심 과제 하나를요. 나머지는요? 하면 좋고 안 하면 그만인 ‘보너스’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하나’를 고른다는 건 결국, 내 시간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선택하는 일이에요.

슐츠는 그 선택을 삶의 세 영역에서 이야기했어요. 일work, 사랑love, 그리고 놀이play. 지금부터 하나씩 살펴볼게요. 

생산성 전문가 데이비드 알렌. 슐츠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일을 모두 적어내는 알렌의 방식을 자주 사용한다고 밝혔다. ⓒ데이비드 알렌 페이스북

Chapter 3.
일 : ‘진짜 일’을 가려내는 법

일에서 슐츠가 짚는 원칙은 하나예요. 더 빨리 일하는 게 아니라, 진짜 일이 아닌 것을 걷어내는 것. 그러려면 먼저 내가 지금 하는 일이 무엇인지 가려야 해요. 

슐츠는 일을 원자 구조에 비유했어요. 

“한가운데 원자핵이 있어요. 몰입이 필요하고, 조직에 가장 큰 가치를 만들고, 나 스스로도 가치를 느끼는 ‘진짜 일Core work’이죠. 그 주위를 회의, 슬랙, 이메일이 궤도처럼 돌아요. ‘일 주변의 일Work around work’이에요. 그리고 가장 바깥에 ‘바빠 보이려고 하는 일’이 있어요. 한밤중 이메일, 사무실에서 문을 쾅 닫고 다니는 것, 필요 없는 업무 공유. 일본의 과로 연구자들은 이걸 ‘낭비waste’라고 부르더군요. 저는 ‘어리석은 일Stupid work’이라고 해요.”

문제는 하루가 바깥 두 겹으로 채워진다는 거예요. 슐츠는 행동과학 연구소와 함께 여러 조직을 조사했을 때 흥미로운 걸 발견했대요. 사람들은 ‘가장 중요한 일’을 달력에 넣지 않았어요. 달력엔 온통 회의뿐이었죠.

“아침에 출근해서 회의에 쫓기다, 이메일에 답하면 하루가 끝나요. 이메일함을 비우면 생산적인 것 같죠? 그건 내 우선순위가 아니라 타인의 우선순위에 응답한 거예요. 답장을 보내면 상대가 또 답장을 보내고, 핑퐁이 되죠. 정작 중요한 일은 야근이나 주말, 심지어 휴가를 가서 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슐츠는 매일 오전 9시부터 12시를 취재와 글쓰기 전용으로 막아뒀어요. 팀원들도 그가 오전엔 회의를 잡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고요.

“집중이 필요한 시간을 미리 차단하고, 방해받지 않을 권리를 스스로에게 주는 거예요. 그래야 하루가 끝났을 때 ‘이만하면 됐다’ 하고 일의 스위치를 끌 수 있어요.”


진짜 일을 정의한 조직이 시간을 줄였다

개인만 바꿔선 부족해요. 슐츠는 조직 차원에서 ‘성공적 일하기 순서Success Sequence’를 제안했어요. 

첫째, 조직의 ‘진짜 일’이 무엇인지 정의한다.
둘째, 그 일을 중심에 놓고 회의와 소통, 업무 방식을 다시 설계한다.

슐츠는 아이슬란드의 노동시간 단축 실험*을 취재하며 첫 번째 단계의 중요성을 깨달았어요. 실험에서는 주 40시간 일하던 2500명 이상의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주 35~36시간으로 줄였어요. 그 뒤 생산성과 서비스 수준이 어떻게 변하는지 관찰했죠.
*아이슬란드는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정부 차원에서 노동시간 단축 실험을 두 번 진행했다. 선정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주 40시간 근무를 주 35~36시간으로 줄였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생산성이 유지되거나 오히려 높아졌어요.

“저도 처음엔 의심했습니다. ‘어떻게 더 짧은 시간에 똑같은 성과를 낼 수 있지?’하고요. 그들은 더 빨리 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 걸음 물러나 물었죠. ‘우리의 북극성은 무엇인가? 진짜 일은 무엇인가?

놀랍게도 많은 조직이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아요. ‘왜 일을 이렇게 하세요?’라고 물으면 ‘원래 그렇게 해왔으니까요’라는 답만 돌아오죠. 관습이 굳으면 변화를 막고 과로를 부추깁니다.”

진짜 일을 찾았다면, 이제 그 일을 방해하는 것들을 줄일 차례겠죠.

슐츠가 이끄는 베러 라이프 랩은 회의를 바꿨어요. 먼저 업무 현황 공유용 회의를 없앴어요. 누가 무슨 일을 하는지, 마감일이 언제인지는 협업 툴에 기록해요. 모든 프로젝트를 조직의 ‘핵심 우선순위’ 네 개에 연결해 뒀어요. 어디에도 연결되지 않는 일이면 애초에 하지 말아야 할 일이란 거죠.

“회의는 토론Discuss하고, 논쟁Debate하고, 결정Decide을 내려야 할 때만 엽니다. 이 ‘3D’가 좋은 회의의 조건이에요. 회의에서는 한 번에 하나의 주제만 다뤄요. 최근 홈페이지 개편 회의도 20분 만에 끝났죠. 자료를 미리 보고 와서 방향을 결정하고 말했죠. ‘자, 남은 시간은 여러분께 돌려드립니다!’

회의에서는 반드시 ‘다음 단계’를 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각자 돌아가 더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으니까요.”

슐츠가 말하는 일의 원칙은 단순해요. 더 빨리, 많이 일하는 게 아니라, 진짜 일이 아닌 것을 걷어내는 것. 그래야 중요한 일에 쓸 시간이 생기니까요.

브리짓 슐츠가 2014년 출간한 『Overwhelmed』의 한국어판 『타임 푸어』. 일과 사랑, 놀이의 영역에서 시간을 어떻게 쓰고, 중요한 것을 어떻게 선택할지 이야기한다. 현재는 절판됐다. ⓒ더퀘스트

Chapter 4.
사랑 : 애정은 턱끝까지 채워주는 게 아니다

시간의 우선순위가 필요한 건 일터만이 아니에요. 사랑에서도 그렇죠. 그런데 여기엔 함정이 있어요.

사랑하는 사람에겐 자꾸 더 해주고 싶잖아요. 특히 부모가 그래요. 아이에게 좋은 교육을 시키고 싶고, 일정을 빈틈없이 채워주고 싶어 하죠. 슐츠는 물었어요. 사랑한다고 해서 상대의 삶을 꽉 채워주는 게 정말 좋은 거냐고. 

“부모가 아이의 시간을 빈틈없이 채우려는 건 두려움 때문이에요. 혹시 내 아이만 뒤처지지 않을까, 좋은 미래를 놓치지 않을까 걱정하는 거죠.”

문제는 우리가 어느새 ‘좋은 부모는 아이에게 더 많이 해주는 부모’라고 믿게 됐다는 거예요. 더 좋은 교육, 더 많은 경험, 더 촘촘한 돌봄을 제공할수록 부모 역할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하지만 슐츠는 AI 시대에, 부모는 반대로 가야 한다고 말했어요.

“AI 시대에 모두가 직면한 건 불확실성이에요. 아무도 앞으로의 세상을 몰라요. AI가 얼마나 파괴적일지, 어떤 이점과 어려움이 있을지도요.

그렇다면 부모가 할 일은 미래를 지레짐작해 아이 일정을 채우는 게 아니에요. 아이가 실패하고, 스스로 털고 일어나는 회복탄력성을 배우게 하는 거예요. 아이에게 실패할 기회를 줘야 합니다.”

사랑에도 ‘여백’을 남기라는 거예요. 그럼 부모는 아이에게 무엇을 해줘야 할까요? 슐츠는 ‘북극성’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어요.

“저는 아이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이 ‘충분한 존재’라는 걸 알았으면 했어요. 왜냐하면 저는 자라면서 한 번도 그렇게 느껴본 적이 없거든요. 끊임없이 제 능력과 존재 가치를 증명하려고 했죠.

하지만 진정한 기준은 외부가 아니라 내면에서 나와야 합니다. 저는 아이들이 타인의 인정을 얻으려 애쓰지 않고, 자기 내면의 ‘북극성’을 따라 살아가기를 바랐어요.”

브리짓 슐츠는 부모가 아이를 향한 죄책감과 불안을 내려놓을 때 아이 스스로 실패하고 회복하는 힘을 기를 수 있다고 말한다. 사진은 『타임 푸어』의 ‘사랑’에 관한 대목. ⓒ롱블랙

Chapter 5.
놀이 : 비워야 다시 채울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영역은 ‘놀이play’예요. 여기서 놀이는 취미나 게임 뿐만이 아니에요. 아무 목적 없이 쉬고, 거닐고, 공상하는 시간까지 포함하는 거죠. 슐츠의 주장은 명확해요. 놀이는 일을 다 끝낸 뒤의 보상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필요한 시간이라는 것.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노는 법을 잊어버렸어요. 늘 생산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여가는 할 일을 다 마친 뒤에야 누릴 수 있는 보상이 됐죠. 그런데 할 일이 제때 끝나던가요? 여가를 보상으로 미루는 순간, 영영 제대로 쉴 수 없게 됩니다.”

슐츠는 독일 철학자 요제프 피퍼Josef Pieper의 말에서 깨달음을 얻었어요. “여가는 문명의 토대Leisure is the basis of civilization이다.” 즉, 비워야 새로운 생각을 채울 수 있다는 거예요.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행위doing’의 쳇바퀴에서 내려와야 생각할 공간이 생겨요. 바로 거기서 예술과 발명, 새로운 아이디어가 태어나죠.”

그렇다고 ‘좋은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쉬자’는 말은 아니에요. 그렇게 생각하면 여가마저 또 하나의 생산성 프로젝트가 되니까요.

슐츠 자신이 그랬어요. 산책을 나가면 팟캐스트를 듣고, 빨리 걸으며 걸음 수를 채웠어요. 쉬는 시간에도 뭔가를 배우고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죠.

요즘은 달라요. 어디로 갈지, 얼마나 걸을지 정하지 않아요. 예쁜 꽃이 보이면 그쪽으로 방향을 튼대요. 슐츠는 이런 산책을 ‘어슬렁거리기tootle’라고 부르죠.

“처음엔 ‘목적 없이 걸어 다니면 이상하게 보일 테니 강아지라도 키워야 하나’ 싶었어요. 여가에 대해 연구하고 글을 쓸 때조차 어딘가 철없어 보일까 봐 부끄러웠고요. 이젠 달라요. 여가는 획득하는 게 아니에요. 당연히 누리는 것이고, 그냥 그 순간에 ‘현존’하는 거예요. 그것만으로 충분해요.

삶 속에 그러한 여백이 있을 때, 비로소 경이로운 아이디어가 찾아옵니다. 스스로에게 여백의 시간을 선물할 때 위대한 아이디어도 싹틀 수 있습니다.”

20세기 독일 철학자 요제프 피퍼는 『여가, 문화의 토대』에서 여가를 노동을 위한 휴식이 아니라,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시간으로 봤다. 사진은 그의 책과 생전 모습. ⓒ요제프 피퍼 재단

Chapter 6.
삶은 매일의 ‘한 가지’를 다시 정하는 일

여기까지 읽으면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몰라요. ‘일도, 사랑도, 놀이도 중요하다면 셋을 어떻게 다 챙기지?’.

슐츠의 답은 뜻밖이에요. 매일 셋을 똑같이 챙길 필요는 없다는 것. 어떤 날은 일이, 어떤 날은 사랑이, 또 어떤 날은 쉬고 노는 시간이 가장 중요할 수 있어요.

그래서 슐츠는 자신에게 이렇게 묻는대요. “오늘 나에게 가장 중요한 ‘한 가지one thing’는 무엇이지?”

“어떤 날은 중요한 업무일 수도 있고, 어떤 날은 그저 비행기를 놓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죠. 비행기에 무사히 탔다면 다른 열 가지를 못 했어도 그날은 성공한 하루예요. 매일 그 ‘한 가지’를 새로 정하는 겁니다.”

마음이나 상황이 바뀌면 우선순위가 바뀌잖아요? 슐츠는 매일 우선순위를 다시 묻는 게 당연하다고 말해요.

“오늘의 우선순위와 내일의 우선순위는 달라질 수 있어요. 그게 바로 삶의 아름다움입니다. 매일 아침 다시 선택할 기회를 얻으니까요.”

슐츠에게도 우선순위를 다시 정해야 했던 순간이 있었어요. 올해 5월 말, 아흔네 살 어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졌거든요. 슐츠는 잠시 일을 멈추고 워싱턴 D.C.에서 4800㎞ 떨어진 오리건으로 갔어요. 처음엔 이렇게 생각했대요. ‘낮에는 어머니를 돌보고, 아침과 밤엔 원격으로 일하면 되겠지.’

“간병이 얼마나 강도 높은 노동인지, 직접 해보기 전엔 몰라요. 일은커녕, 어머니를 제대로 돌보는 것만으로도 매일이 벅찼습니다. 사소한 이메일 답장조차 할 수 없었죠. 집중도 안 되고 기억력도 떨어지더라고요.

그런데 그건 비현실적인 기대였어요. 저 자신에게 다시 한번 물었어요. ‘좋아, 너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뭐야?’ 답은 분명했어요. 어머니였죠.”

그때부터 어머니가 슐츠의 1순위가 됐어요. 이메일에 답장은 못 해도, 새를 좋아하는 어머니와 함께 새 모이를 사러 갔죠. 어머니의 창가로 새들이 찾아오면 어머니가 기뻐할 테니까요.

“그건 최고의 선택이었어요. 그 시간이 어머니에게 준 의미, 앞으로 몇 달 동안 어머니가 누릴 기쁨을 생각하면요. 누군가를 돌본다는 건 ‘생산성을 잡아먹는 블랙홀’로 느껴질 수 있어요. 하지만 지금 제겐 가장 가치 있는 시간이에요. 언젠가 다시 일이 1순위가 되는 날이 오겠지만, 오늘은 아니에요.”

슐츠는 ‘한 가지’를 고르기 어려울 땐 이걸 떠올려 보라고 했어요. 시간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 

“우리 중 그 누구도 영원히 살 수는 없어요. 인간의 삶은 원래 유한하니까요. 그걸 직면하는 건 두렵지만, 받아들이면 담담해져요. ‘나에게 주어진 이 아름답고 소중한 삶은 단 한 번뿐이구나,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구나’. 삶에 끝이 있다는 걸 받아들이면, 오히려 용기를 내어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어요. 그때 비로소 선택이 자유로워집니다.”

롱블랙과 화상으로 인터뷰하는 브리짓 슐츠. 그는 “삶에 끝이 있다는 걸 떠올릴수록, 중요한 한 가지를 고르기 쉬워진다”고 말했다. ⓒ롱블랙


롱블랙 프렌즈 C

인터뷰가 끝나갈 때 슐츠에게 물었어요. “당신에게 심플함이란 무엇인가요?”  

“‘본질적인 것essential에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에요. 본질이 아닌 것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에요. 가장 본질적인 것을 위해 시간을 확보하고, 그 안에 온전히 머무를 수 있을 때, 그게 심플함의 아름다움이죠.” 

그 반대말은 뭐냐고 묻자 슐츠는 웃으며 답했어요.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상태요. 지나침too muchness. 하루가 끝나면 지쳐 쓰러지는데, 정작 본질적인 것에 시간을 썼는지도 모르는 상태.”

롱블랙 피플, 오늘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무엇인가요? 이 노트를 소중한 사람에게 공유하면서 같이 생각해 보는 거 어떨까요?

「심플의 발견」 시리즈가 끝나가고 있어요. 벌써 다다음 주에 마지막 편이 나와요. 마지막 편에선 이 시리즈를 함께 만든 LG유플러스의 장준영 브랜드마케팅그룹장을 만나, 여섯 명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남긴 것을 정리해 볼게요. 많이 기대해 주세요!

브리짓 슐츠는 시간을 쪼개어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을 연구한다. 그는 바쁨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보다, 무엇에 시간을 쓸지 스스로 선택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Unsplash
2015년 TED 강연자로 연단에 선 브리짓 슐츠. 시간이 부족한 지금, 어떻게 일하고, 사랑하고, 즐길 것인지를 주제로 강연했다. ⓒTED 유튜브 캡쳐
20세기에 활동한 독일 철학자 요제프 피퍼는 여가와 휴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여가를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 자체를 긍정하는 시간으로 봤다. ⓒ요제프 피퍼 재단
『타임 푸어』 책 날개에 적힌 문장. 브리짓 슐츠는 “시간 관리란 없으며, 가장 본질적인 것에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롱블랙
2025년 포브스 ‘Future of Work Summit’에 참석한 브리짓 슐츠. 그는 “번아웃은 개인이 감당할 문제가 아니라, 조직이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브리짓 슐츠
롱블랙과 인터뷰하는 브리짓 슐츠. 현재 어머니를 돌보며 ‘베러 라이프 랩’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그는 현재 ‘본질적인 것’에 최대한의 시간을 쓰고 있다고 전했다. ⓒ롱블랙

브리짓 슐츠는 시간을 쪼개어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을 연구한다. 그는 바쁨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보다, 무엇에 시간을 쓸지 스스로 선택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Unsplash

롱블랙의 모든 콘텐츠는 제공자와 롱블랙에 저작권이 있습니다.
저작권법에 의거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을 금지합니다.

위드 롱블랙
멤버십 ONLY
롱블랙이 엄선한
브랜드들의 할인 혜택
만나보세요!
롱블랙 셀렉션 구경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