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블랙 프렌즈 B
워크워크WORKWORK. 인력사무소인가, 싶은 이름이지만 워크웨어workwear 브랜드입니다. 요즘 잘나가는 브랜드의 유니폼은 다 여기서 만들어요.
크림 가득한 도넛으로 유명한 노티드knotted, 미국 감성의 중식 브랜드 웍셔너리Woktionary, 퓨전 한식 핫플레이스 호족반, 젠틀몬스터가 만든 카페 누데이크NUDAKE와 화장품 브랜드 탬버린즈tamburins… 모두 워크워크가 유니폼을 만들었습니다.
이두성 워크워크 대표를 만났어요. 얼마나 멋진 워크웨어를 만들기에 핫한 브랜드들의 선택을 받는 건지 궁금했거든요. 그런데 예상 밖이었어요. 그가 가장 많이 한 말은 ‘일하는 사람에 대한 존중’ ‘일의 의미’였습니다.
가장 만들고 싶은 워크웨어도 의외였어요. 단골 식당 아주머니들의 앞치마를 만드는 것. 처음처럼, 진로 같은 주류 업체 이름이 쓰인 앞치마 대신 말이에요.
이두성 워크워크 대표
2016년 워크워크를 시작했습니다. 6년 만에 이렇게 힙한 브랜드의 유니폼을 제가 다 만들게 될 줄은 몰랐어요.
돌아보면 자신은 있었어요. 그런데 조금 오만했죠. 첫 워크웨어는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의 셰프들이 입는 셔츠였어요. 15만원대에 만들었죠. 질 좋은 원단을 아낌없이 쓴 거예요. 자신 있었거든요. 파리로 유학도 다녀왔고, 해외 워크웨어 브랜드는 다 그 정도 가격이니까요. 한국에도 수준 높은 워크웨어를 선보이면, 시장이 나를 따라올 거라고 생각했죠.
식당 이모님, 재봉사 어르신들을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유니폼이 따로 없으시잖아요. 후줄근한 차림인데도 일에 열중한 모습을 보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옷을 입고 일하느냐보다, 어떻게 일하는가가 중요하구나 깨닫죠.
그럼에도 제가 만든 작업복이 누군가에게 일에 대한 자부심을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워크웨어를 만듭니다.
Chapter 1.
26살, 온 마음을 다해 하고 싶은 일을 찾다
어떤 사람은 꿈을 조금 늦게 발견하기도 합니다. 제가 그랬어요. 뚜렷하게 되고 싶은 것이 없었어요. 대학에서 안경광학을 전공하면서 이십대 초반에는 안경원에서 일했습니다.
그런데 온 마음을 다해서 일할 수 없었어요. 매장에 가만히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는 게, 저는 그리 즐겁지 않더군요. 어느 날 일본에서 온 안경 디자이너를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제 또래였는데, 사장 앞에서 당당하게 본인이 만든 안경에 대해 설명하는 태도가 참 멋졌습니다. 그때 저는 안경을 닦고 있었거든요. ‘내가 만든 제품을 남들 앞에서 설명하는 건 어떤 기분일까,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죠.
2011년 26살 나이에 삼성디자인교육원 사디sadi에 입학했어요. 디자인의 기본에 대해 배울 수 있었죠. 하지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더 필요했어요. 휴학 후 공모전에 나갔습니다. 2013년 대한민국패션대전을 시작으로 파리와 도쿄에서 열린 공모전에 출품했어요. 모두 1차를 통과했어요. 이때부터 자신감이 생기더군요. 운 좋게도 한국패션대전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받았어요.
상금 2000만원과 함께 프랑스 패션학교 에스모드ESMODE에서 1년간 유학할 기회가 주어졌어요. 벅차고 신기했습니다. 스물넷까지는 꿈도 꾸지 않았던 디자이너의 세계였잖아요. 하고 싶은 일을 찾고, 불과 2년 만에 제 세상이 확 바뀐 겁니다.
치즈 가게도, 생선 가게도 갖춰 입는 파리지앵
패션의 도시 파리라니. 2014년 유학길에 오르며 환상에 부풀었습니다. 거리마다 오트쿠튀르* 패션 피플이 있을 거라고 상상했죠.
*고급 맞춤복. 샤넬, 디올, 지방시가 참여하는 오트쿠튀르 패션쇼는 1년에 단 2회, 오직 프랑스 파리에서만 열린다.
그런데 진짜 제 눈을 사로잡은 패션 피플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치즈가게, 생선가게, 케밥집에 말이에요. 파리는 어느 가게를 가도 사람들이 유니폼을 갖춰 입고 일하는 거예요. 집 앞 치즈 가게 사장님은 연세 지긋한 할아버지였는데 매일 새하얀 가운을 다려 입었어요. 생선 가게 직원들도 깔끔한 작업복을 하나로 맞춰 입고 일했고요.
마치 옷이 일하는 마음가짐을 세팅하는 장치처럼 보였어요. 아침에 유니폼을 입는 순간 ‘오늘은 이렇게 일해야지’ 다짐하고, 벗는 순간 ‘이제 일이 끝났다’ 홀가분해지는 거죠. 파리지앵은 일과 휴식의 경계가 명확하잖아요. 대신 일하는 시간에는 확실히 집중한다는 태도가 유니폼에도 담겼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파리에서부터 워크웨어를 만든 건 아니에요. 오트쿠튀르를 좋아했고, 현지 브랜드에서 스카우트 제안도 받았어요. 하지만 서울에서 일하고 싶었어요. 가족과 내 삶의 터전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었죠. 한 남성복 브랜드에서 디자이너직을 제안받고 커리어를 시작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