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 김지용 : 빛과 어둠, 공기의 질감까지 카메라에 담다


롱블랙 프렌즈 B 

카메라 없는 영화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태초에 영화의 시작은 카메라였고, 카메라가 곧 영화였죠. 그러나 우리는 카메라 뒤에 어떤 인물들이 있는지, 정확히 모르는 게 사실입니다. 

영화 「헤어질 결심」을 보고 더욱 궁금했어요. 아름다운 미장센*을 만들어낸 사람이 누구인지. 그래서 정시우 작가를 찾았죠. 김지용 촬영 감독이라고 하더군요. 「달콤한 인생」(2005)부터 「도가니」(2011), 「밀정」(2016), 「남한산성」(2017), 그리고 올해 「헤어질 결심」(2022)까지. 매번 세련된 영상으로 주목을 받은 그를 만나면, 답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요.
*Mise-en-Scène : 연극의 무대, 혹은 영화 장면의 구성 요소들을 배치하는 작업

직접 만난 김지용 감독은, 카메라 앞을 어색해 했습니다. 그래서 더 그의 이야기가 궁금해졌죠. 배우들의 감정을 카메라에 가장 잘 담아내는 사람 중 한 명이니까요.



정시우 작가

영화 「헤어질 결심」은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없이 절절한 사랑을 그려낸 멜로드라마입니다. 칸 국제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고, 전국에 ‘헤친자’(「헤어질 결심」 열성 팬들)를 만들어냈죠. 

박찬욱 감독은 영화에서 한층 담대해진 시각적 비전을 선보였습니다. 감독이 구현하고자 하는 세계를, 매혹적인 영상으로 길어 올린 이는 김지용 촬영감독입니다. 

「헤어질 결심」을 처음 본 날이 생생합니다. 영화가 뿜어내는 분위기에 마음이 기분 좋게 붕괴됐어요. 어떤 영화는 장면 하나로 좋아지기도 하는데, 「헤어질 결심」에는 그런 장면이 너무 많았죠. 

김지용 촬영감독의 카메라에서 탄생한 「헤어질 결심」의 미학적 성취는 영화를 한층 미스터리하게 만들고 새롭게 바라보게 만들었습니다.

Chapter 1.
운을 기회로 만드는 건

어릴 때부터 영화 보는 걸 좋아했지만, 딱히 영화를 업으로 하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고 합니다. 사촌 형을 따라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갔다가, 스무 살 때 미국 필라델피아로 정식 유학을 떠났고, 인턴으로 LA의 한 프로덕션에 들어간 게 계기가 됐습니다. 사무실에서 전화받고 시나리오 모니터링하는 일을 하다가 우연히 현장 제작부와 조명부로 일을 했는데 “몸 쓰는 일”이 훨씬 적성에 맞더랍니다. 현장에서 일하며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갈망이 생겨서 미국영화연구소(AFI. American Film Institute)에 촬영 전공으로 들어갔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