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블랙 프렌즈 B
여러분은 ‘내 일’을 얼마나 안다고 생각하시나요? 전 10년 넘게 에디터로 일했지만,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신입 때는 이쯤 되면 원고를 눈감고도 쓸 줄 알았어요. 하지만 지금도 인터뷰는 어렵고, 쓰는 건 더 어렵습니다.
비슷한 연차의 시니어가 없다 보니, 이런 고민을 나눌 기회가 많지 않았어요. 그런데 며칠 전, 오랜만에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오하림. 온라인 편집숍 29CM의 헤드 카피라이터입니다. TBWA*와 무신사를 거치며 광고와 마케팅 카피를 쓴, 11년 차 직업인이죠.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10대 글로벌 광고 에이전시 네트워크. 박웅현 조직문화연구소장이 재직 중인 회사로도 유명하다.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경력을 가졌지만, 정작 그도 이렇게 말하더군요. “11년 했지만 아직도 이 일을 모르겠다”고요.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그래서 이 일을 오래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몰라서 오래 할 수 있다니, 무슨 말일까요.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오하림 카피라이터의 집에서 더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오하림 29CM 헤드 카피라이터
하나둘 가을옷을 입은 나무들 사이에 보이는 양화대교. 오 카피라이터의 집 창문으로 본 풍경이었습니다. 창가에 볕이 들 때면 흰 고양이 ‘누끼’가 올라와 몸을 웅크리고 꼬리를 살랑거렸죠.
아늑한 복층 오피스텔 한쪽엔, 성인 남성 키만큼 쌓인 책이 있었어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산문집부터 한강의 『채식주의자』까지. 에세이와 소설이 쌓인 탑 꼭대기는, 류이치 사카모토가 작곡한 영화 「괴물」의 OST 앨범과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 DVD가 장식하고 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