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롱블랙 프렌즈 B
캔버스 위에 연필로 선을 빼곡히 긋습니다. 그 위에 다시 물감으로 덮어요. 희미해진 선 위에 또 선을 긋습니다. 또 물감을 칠하고, 연필을 긋죠. 가까이 보면 그 흔적들이 겹겹이 비쳐요. 캔버스에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며 오묘한 색과 깊이감이 더해지죠.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고故 박서보 화백의 대표작 ‘묘법描法’입니다. 1967년 시작한 이 작업은 2023년, 그가 아흔두 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계속됐어요. 묘법은 한국 단색화를 세계에 알렸고, 구겐하임미술관과 테이트, 퐁피두센터 등 세계 주요 미술관이 박서보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죠.
2026년 8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박서보미술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바로 옆엔 그가 살던 집과 작업실이 있죠. 박서보미술관을 만든 건 둘째 아들 박승호 박서보재단 이사장입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어떻게 기억하고, 또 어떻게 전하고 싶었을까요. 김인애 인애스타일 대표와 함께 박서보미술관에서 박승호 이사장을 만났습니다.

김인애 인애스타일 대표
박서보 화백을 늘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있습니다. 수행자. 선을 긋고 덮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는 묘법은 마치 고행과도 같기 때문이죠. 그래서인지 저 역시 박서보 화백이 차분하고 흔들림 없는 수도승 같은 성품이었을 거라 상상했어요.
하지만 아들 박승호 이사장이 들려준 박서보는, ‘수행자’라는 한 단어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활화산 같았어요. 늘 억누를 수 없는 힘과 감정이 안에서 끓어오르는 사람이었죠. 그렇기 때문에, 그림을 자신을 다스리기 위한 수행으로 삼았던 거예요.”
_(이하) 박승호 박서보재단 이사장, 롱블랙 인터뷰에서
Chapter 1.
투사의 눈을 번뜩이던 화가
박서보는 타고난 반골이었어요. 법대에 가라는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고 1950년 홍익대 미대에 들어갔죠. 화가가 직업으로 제대로 인정도 못 받던 시절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