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블랙 프렌즈 B
지난주에 반가운 문자를 받았습니다. 오래 쉬었던 독서 모임이 다시 시작된다고요. 책을 좋아하지만, 책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건 더 좋아합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해석을 듣는 재미가 있거든요.
책에 대한 이야기, 하면 빼놓을 수 없는 행사가 있습니다. 제가 가을을 기다리는 이유, 독립출판계의 최대 축제인 언리미티드 에디션(이하 언리밋)입니다. 독립출판사들이 공들여 만든 책을 선보이는 동시에, 독자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리입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참석했던 2019년에는 198곳의 독립출판사와 2만2000명의 관람객이 찾았습니다. 입장을 기다리는 길고 구불구불한 줄은 언리밋의 상징입니다.
독립출판, 자칫하면 조금 쓸쓸해질 수 있는 업계에 이런 명절 같은 활력을 불어넣은 사람은 누구일까요. 사람을 연결해 비즈니스를 만드는 이들을 찾아가 본 롱블랙 콘택트 위크Contact Week, 어느새 마지막 노트입니다.
이로 유어마인드 대표
오해를 풀고싶다. 이로 유어마인드 대표가 언리미티드 에디션을 시작할 때, 목표는 이것 하나였습니다. 독립출판에 대한 오해가 너무 많다고 생각했답니다.
어렵고 난해하다. 소수의 전유물이다. 이런 오해를 풀려면 제작자들이 독자를 직접 만나야 한다고 이 대표는 생각했습니다. 독립출판사들이 책을 소개할 수 있는 장을 연 건 그래서입니다. 2009년 12월 처음 시작한 행사가 어느새 14년 차를 맞습니다.
시작은 조용했습니다. 2009년 첫 행사에는 30개의 독립출판사가 관람객 900명을 맞았습니다. 2019년, 관람객은 10년 만에 25배가 늘었어요. 언리밋은 독립출판에 대한 사회의 관심을 키웠습니다. 크고 작은 독립출판 행사들, KT&G 상상마당의 ‘어바웃북스’, 세종예술시장 ‘소소’의 독립출판 플리마켓, 국립 중앙 도서관의 ‘독립출판 특별전’이 언리밋 이후 쏟아져 나왔습니다.
Chapter 1.
제작자와 관람객이 떠드는, ‘시장통’같은 북 페어
빨강, 파랑, 노랑, 하양… 손바닥만한 크기에 알록달록한 표지의 책이 테이블을 가득 채웠습니다. 제목도 강렬합니다. 『서울의 3년 이하 서점들: 솔직히 책이 정말 잘 팔릴 거라 생각했나?』, 『제주의 3년 이하 이주민의 가게들: 원했던 삶의 방식을 일궜는가?』… 지역의 자영업자들을 인터뷰한 출판사 ‘브로드컬리’의 책들이에요. 창업한 지 몇년 되지 않은 자영업자들의 현실적인 고충을 담았습니다.
한 관람객이 책을 살펴보더니 말합니다. “퇴사하고 가게나 열까 했는데, 마음이 싹 가시네요.” 가만히 듣던 제작자가 고개를 저어요. “쉽게 생각하면 안 되는 일”이라면서요. 주위의 관람객들이 가볍게 웃습니다.
2019년 11월 15일 서울 중계동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언리미티드 에디션의 190여개 부스는 이렇게 대화로 꽉 차 있었습니다. 사흘 내내 출판 제작자와 독자들이 만나 대화를 이어갔죠. 그 풍경이 좋아 저도 이틀 연속 행사장을 찾았습니다.
언리밋에서 소개되는 책들은 대형 서점에선 만나기 힘든 것들입니다. 영화 70편에 등장한 샌드위치들을 소개한 『영화 속 샌드위치 도감』, 아버지의 타살 사건으로, 주인공이 법원에 다니며 겪은 일들을 담은 『당신이 아는 법원』, 그래픽 디자이너가 유년 시절부터 수집한 영화 전단과 팸플릿을 담은 『영화선전도감』까지.
구경하다 보면 두 가지 마음이 듭니다. ‘이렇게 좁고 섬세한 주제를 집요하게 파고들다니’ 하는 감탄과 ‘과연 이 책을 사는 사람들이 있을까’ 하는 걱정이에요.
독립출판 제작자에게 언리밋은 중요한 기준점입니다. 평소 만나기 어려운 독자들을 한꺼번에 만나 직접 피드백을 들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언리밋을 계기로 책을 계속 만들지 말지, 작품 세계를 고집할지 바꿀지를 결정하는 제작자들이 많습니다. 단순한 축제를 넘어, 냉엄한 시장 평가의 장이기도 한 거예요.
Chapter 2.
공간 경험은 규모보다 머무는 시간이 중요하다
행사를 기획한 이로 대표는 1세대 독립서점 기획자로 불립니다. 국어국문과를 나와 신춘문예, 문예지 공모에서 번번이 낙방했어요. 그는 늘 등단하지 않아도 되는 문학을 꿈꿔왔죠.
“고민했어요. 내가 쓴 창작물을 발표할 방법이, 등단과 대형출판사 말고는 없는 건가? 이런 고민을 저만 하는 건 아니더라고요. 디자이너들도 회사를 위한 작업에 질려, 자기만의 작품 세계를 책으로 만들고 있었죠. 전문적인 텍스트나 추천사가 없는 자유분방한 책을요.”
2000년대 중반, 독립출판과 독립서점 붐이 함께 찾아옵니다. 적게 벌어도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는 이들이 늘었어요. 또 적은 돈으로 취향을 사겠다는 흐름도 생겼죠.
이로 대표도 흐름에 올라탔습니다. 2009년 독립출판물만 유통하는 온라인 서점 ‘유어마인드’를 만들었어요. 웹사이트를 열고 프리랜서 작가, 디자이너가 만든 독립출판물 100여 종을 팔았죠.
이로 대표가 오프라인 판매를 고민한 건 1년쯤 버텼을 때입니다. 안 팔렸거든요. 하루 매출이 한 푼도 없을 때도 있었죠. 이름 없는 출판사와 작가가 낸 책을 읽지도 않고 살 사람이 없었던 거예요.
시장을 만들어 책 제작자들을 불러내다
북 페어book fair를 열겠다고 결심한 건 그래서예요. 이로 대표는 생각했어요. 책을 사고 파는 시끌벅적한 시장이 있다면? 책 제작자가 직접 상인이 돼 책을 만든 과정을 소개할 수 있다면? 서점에 잠들어있던 책이 살아 숨 쉴 것 같았죠.
이로 대표는 100만원이 채 안 되는 돈으로 첫 행사를 준비했습니다. 먼저 참가자를 모았어요. 홍대 인근에서 열리는 프리랜서 작가들의 책·미술품 전시장을 찾아다니면서요.
“독립출판 제작자들은 기다렸다는 듯 응했어요. 지금까지 땀 흘려 만든 책을 홍보할 방법이 없었다면서요.”
2009년 12월, 홍대 인근 지하 갤러리 30평 공간에 독립출판사 30팀이 모였습니다. 잡지사, 그래픽 디자이너, 소규모 출판업자들이 홍보를 도와줬어요. 하루 300명씩, 사흘 동안 900명이 찾아와 갤러리를 가득 채웠습니다.
“한정판을 의미하는 리미티드 에디션Limited Edition에 부정의 언Un을 붙였어요. 독립출판물 각각의 부수는 아주 적지만, 행사에 온 순간만큼은 누구든,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다는 뜻을 품었죠.”
Chapter 3.
좁은 장소와 불편한 위치, 행사에 집중하게 만든 전략
활기가 넘치는 시장통. 이로 대표가 설계한 언리미티드 에디션의 분위기입니다. 북 페어라고 하면 어딘가 점잖고 차분할 것 같잖아요. 이로 대표는 그런 분위기라면 독립출판물이 관심받기 어렵다고 봤어요.
규모를 줄이고 밀도를 높였다
이로 대표는 매회 규모에 관계없이 장소를 고릅니다. 그 규모를 꽉 채울 만큼의 참가팀만 받죠. 2013년 열린 언리밋은 합정동 인근 3층짜리 주류창고를 개조한 ‘무대륙’에서 열렸어요. 참가팀 100팀, 방문객 5000명이 행사장을 빼곡히 채웠습니다. 사람이 한 마디씩만 말해도 왁자지껄해졌죠.
“한 마디로 ‘의도된 착시’였어요. 관람객이 공간에 들어섰을 때 ‘와, 독립출판물에 관심 가지는 사람이 이렇게 많아?’하고 놀라게 만들고 싶었죠.”
전시장에 흔한 ‘ㄷ’자 부스를 없앤 것도 특징입니다. 대신 5~6개로 이어 붙인 긴 테이블을 뒀어요. 참가팀은 각자 배정받은 테이블에 책과 굿즈를 올려놓고, 뒤에 선 1~2미터 높이의 가벽에 출판사 이름과 포스터를 붙여두었죠.
“참가팀이 가급적 적은 비용으로 참여하게 하고 싶었어요. 컨벤션 센터에서 진행되는 페어fair의 양식을 따라가지 않았죠. 독립출판 제작자들은 벽이나 테이블에 자신의 작품 세계를 밀도있게 표현했습니다.”
벽이 없으니 참가팀이 서로의 작품과 행동, 방문객의 반응을 면밀하게 살폈습니다. 이따금 대화하거나 연락처를 주고받기도 했죠. 이로 대표가 원하는 그림이었습니다. 폐쇄적인 환경에서 각자 작업하는 독립출판 제작자들이, 이날 만큼은 서로 소통하게 된 거죠.
“관람객이 안 올 땐 참가팀들끼리 얘길 나눴어요. 협업을 약속하거나 작품 피드백을 주고받고, 정보를 교환하기도 했죠.”
개최 장소를 바꾸니 ‘매번 새로운 행사’가 됐다
언리밋은 2~3년마다 다른 장소에서 열립니다. 첫 회는 서교동의 지하 갤러리, 2·3회는 컨테이너 박스로 만든 문화공간인 논현동 쿤스트할레, 4·5회는 합정동의 문화 공간 무대륙, 7·8회는 광화문 일민미술관, 9·10·11회는 노원의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렸죠.
공간이 자주 바뀌니, 참가팀도 관람객도 올해 행사는 어디서 열릴지 궁금해합니다. 이로 대표는 말합니다. 자본금이 부족해 계속 바뀌는 공간이 몰입을 위한 장치가 됐다고요.
“접근성이 해마다 바뀌지만, 아랑곳 않고 방문하는 제작자와 관람객이 있어 과감하게 공간을 옮깁니다.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끝내 행사에 온 사람은 몰입의 정도가 높아요. 언리밋의 큰 강점이죠.”
참가팀과 관람객의 체류 시간도 자연스레 길어집니다. 찾아오는 과정 자체가 콘텐츠가 되기도 합니다.
Chapter 4.
불확실성을 끌어안아야 사람이 찾아온다
이로 대표는 왜 몰입에 집착할까요? 언리밋은 다음을 확신할 수 있는 정보가 없거든요. 어떤 출판사가 나올지, 어떤 작품이 소개될지 주최자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이건 독립출판 환경과 무관하지 않아요.
“독립출판사들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릅니다. 5년 넘게 버티는 출판사도 있지만, 과반 이상은 다음 해 사라지거나, 팀을 바꾸거나, 멤버를 교체하죠. 행사 주최자 입장에선 리스크입니다. 전반적인 참가팀의 규모와 성격을 미리 알아야 운영이 편한데, 그럴 수가 없으니까요.”
이로 대표는 예측하기를 포기했습니다. 대신 새로운 참가자를 최대한 많이 끌어안기로 했어요. 참가 기획서에 적은 내용이 분명하면, 이력이 없어도 선정합니다.
“조금이라도 더 자기만의 색이 뚜렷한 책을 선별하려고 해요. 개인이 만든 책이 모든 면에서 훌륭할 수 없어요. 만듦새가 허술해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명확하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이슬아 작가는 언리밋을 잘 활용한 스타 출판제작자입니다. 2018년, 이 작가는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들고 언리밋에 참여했어요. 행사에 참여한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심사팀은 이 작가의 기획력을 알아봤죠. 이틀 동안 600권이 팔렸습니다. 싸인을 받으려는 팬이 줄을 설 정도였어요.
*일간 이슬아 : 하루에 한 편씩 이슬아가 쓴 에세이를 보내주는 메일링 서비스
“그 자리에서 나는 처음으로 독자들의 실체를 확인했다. 물성을 가진 책을 만드니까 실체를 믿을 수 없던 인터넷 독자들을 오프라인에서도 직접 만날 수 있었다. 아주 소중한 순간들이었다.”
_이슬아, 월간 채널예스 2019년 1월호에서
주제가 행사를 장악해야 한다
행사장에 들어서면 스태프가 손목에 타이벡* 팔찌를 채워줍니다. 돌돌 말린 행사장 지도가 담긴 부직포 가방도 챙겨주죠. 모든 건 이로 대표가 의도한 그림이에요.
*밀도가 높은 합성 플라스틱 섬유. 잘 찢어지지 않고 탄력이 강하다.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무료예요. 팔찌를 채워서 방문객을 식별할 필요가 없죠. 순전히 몰입을 위한 거예요. ‘내가 본격적으로 공간에 들어간다, 행사를 완성하는 사람이 된다’는 경험을 주고 싶었거든요. 음악 페스티벌을 참고했죠. 빈 부직포 가방도 받는 순간 뭐라도 안에 채워야겠다는 감정을 일으키는 장치입니다.”
이로 대표는 ‘몰입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페어, 전시 같은 큰 행사에서 책, 그리고 독립출판은 다수를 곧장 끌어들이는 매체는 아니라면서요. 빵과 커피처럼 향으로 멀리 퍼질 수 있는 것도, 대형 작업물처럼 시선을 압도하는 것도 아니라고 말하죠.
“여러 해외 북페어를 다니며 집중의 필요성을 느꼈어요. 대형 전시장 3층에서 열린 북페어에 참여했는데, 관람객이 유독 시큰둥한 거예요. 알고 보니 1층엔 카레 페스티벌, 2층엔 벼룩시장이 열리고 있었죠. 카레 맛있게 먹은 사람이 벼룩시장에서 쇼핑하고, 북페어에 산책할 겸 들르는 겁니다.”
이로 대표는 말합니다. 언리밋이 이 행사의 온전한 주인공이 되면, 참가팀도 자신감을 얻는다고요. 이로 대표는 행사 홍보비에 예산을 많이 쓰지 않습니다. 언리밋에 참여하는 독립출판팀, 언리밋이 열리길 기다렸던 독립출판 팬덤이 SNS에 직접 알리는 게 효과적이라 말하죠.
“관심 타깃이 언리밋을 찾아야, 참가팀도 자신감을 잃지 않아요. 관람객 질문의 성격이 다르거든요. ‘이거 뭡니까? 책 팔아서 돈은 됩니까?’ 라고 물어보는 것과 ‘이번 책 잘 읽었어요. 다음 크라우드 펀딩은 언제 열려요?’ 라고 물어보는 건 차원이 다르죠.”
언리밋이 건물을 통째로 점유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다른 행사에 끼워 들어가지 않아요. 행사가 오롯이 독립출판물에 집중되길 원하는 겁니다.
“참가팀에게 ‘내가 주인공인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사람들이 내 작업물을 보러 왔다’는 느낌을 줘야 해요. 그래야 내년, 내후년에 찾아와요.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1년이 달라진다는 생각이 동기부여를 만들죠.”
Chapter 5.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을 때, 위기가 지나간다
코로나19가 한창일 때도 언리밋은 열렸습니다. 2020년엔 온라인, 2021년엔 방문객 규모를 2000명으로 줄인 전시회로요. 그런데 반응이 시들기는커녕 더 커졌죠. 2020년 언리밋은 온라인 방문객만 5만5000명에 달했고 2만2000권의 책이 팔렸습니다.
“행사는 언제든 어떻게든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독립출판이 주인공이어야 한다’는 철칙만 지키면 상관없었죠. 온라인 전환을 빠르게 논의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2020년 열린 온라인 전시회를 볼까요. 웹페이지를 새로고침할 때마다 책의 정렬 순서가 랜덤하게 바뀝니다. 책 검색 방법도 5가지로 만들었어요. 표지, 참가팀 로고, 제목, 키워드, 출판사 별로 꾸민 맞춤 포스터를 만들었죠.
“출품된 200여 팀의 책이 최대한 많은 독자를 만나게 하고 싶었어요. 오프라인에서 우연히 책을 만나는 것처럼, 관람객이 마우스 클릭 만으로 우연한 모험을 할 수 있게 랜덤한 요소를 배치했죠.”
좋은 점은 또 있었습니다. 의리 구매를 안 해도 됐죠. 오프라인 행사에선 관람객이 제작자의 간절한 눈빛에 이끌려 얼떨결에 책을 사는 경우도 많았거든요.
“독립출판물은 저렴하지 않아요. 소량으로 만들어 단가가 일반적인 책보다 평균 2~3배 비싸죠. 마음에 쏙 들지 않는 책을 사게 되면, 행사에 대한 거부감마저 들 수 있어요.”
2021년, 논현동의 플랫폼엘에서 열린 언리밋은 독립출판물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어요. 포스터, 엽서 같은 굿즈를 빼고 오직 책만 전시했죠. 100개의 저울, 원탁의 테이블, 운반용 카트, 택배 상자 위에 책을 놓았습니다. 관람객이 직접 허리를 숙여 책을 만지게 했어요.
“이전까지 출판제작자가 관람객에게 직접 다가갔다면, 이번엔 관람객이 주도적으로 책을 만지고 읽어보는 경험을 줬어요. 이젠 독립출판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거든요. ‘독립출판물 좋아 혹은 싫어’에서 ‘독립출판물 중에서 이건 좋고 이건 싫더라’로 세분화됐죠.”
매일 감당할 만큼의 최선만 해라
이로 대표는 연희동에서 오프라인 서점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언리밋을 시작한 이듬해인 2010년, 서교동에 처음 서점을 열었어요. 언리밋을 통해 독립출판물에 대한 관심을 확인했으니, 일 년 내내 손님을 맞을 공간도 필요하다고 생각한 거죠.
수익이 나기까지 3년을 버텨야했습니다. 한때 통장 잔고가 없어 책 배송을 못한 적도 있었죠. 그런데 이로 대표는 크게 힘들단 생각을 안 했다고요. 언리밋에서 배움을 얻었거든요.
“책을 반듯하게 놔두고 가져가길 바랄 순 없어요. 책을 아끼는 분들은 어떤 인쇄물을 좋아하는지, 토크와 워크숍으로 어떤 이야기를 채우면 좋을지, 어떤 음악이 이 공간과 어우러지는지, 어떻게 하면 문을 열었을 때 전혀 다른 공간에 들어온 것처럼 느끼게 할지 13년 동안 고민한 결과가 지금의 연희동 유어마인드 책방입니다.
이젠 압니다. 공간 비즈니스에서 중요한 건 규모가 아니라 머무는 시간의 길이란 걸요.”
이로 대표는 말합니다. 지난 13년 동안 거창한 기획을 짠 적은 거의 없었다고요.
“매일 감당할 만큼의 최선만 다 하면 됩니다. 행사가 잘 된다고 안심하긴 일러요. 올해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내년은 어떻게 될 지 아무도 모르거든요. 거창한 계획을 세우지 않되, 지난 번에 느낀 한계는 해소하려 합니다. 그게 언리밋을 기획하며 배운 이치죠.”
이로 대표가 오랫동안 일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더 나은 삶을 살아나갈 ‘동기부여’가 될 만큼만 노력하는 겁니다. 꾸준히 하다 보니 행사를 함께 만드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7명의 기획단이 열 달에 걸쳐 준비하죠. 행사 전체엔 50명이 넘는 사람이 함께 합니다.
“록 페스티벌에서 관중이 외치는 앵콜을 듣는 아티스트의 마음. 행사 마지막날 다 함께 박수와 환호를 주고받을 때의 기분입니다. 서점에서 잔잔한 일상을 보내다 일 년에 딱 3일, 책을 향한 열기를 확인하고 돌아오는 거죠. 그때 다짐해요. 내년에도 언리밋을 열고싶다.”
롱블랙 프렌즈 B
저도 언젠가는 제 취향을 담은 책 한 권을 만들고 싶습니다. 언리밋 덕분에 꾸게 된 꿈이에요. 독립출판에 대한 심리적 거리가 줄어든 거죠.
이로 대표가 언리밋에서 선보인 기획력을 정리해보겠습니다.
1. 일부러 좁은 공간에서 행사를 열었습니다. 공간을 꽉 채울 만큼의 참가팀만 받았죠. ‘독립출판물이 잘 나가는구나’ 생각하게 만들 의도된 착시였어요.
2. 장소를 자주 바꿔 열었어요. 언리밋에 오려고 안 가본 동네에 가거나, 길에서 헤매는 경험이 모두 ‘몰입’을 위한 장치라고 생각했죠.
3. 예측보다 발견에 집중했어요. 참가팀의 이력이 없어도, 기획서에 적은 내용이 분명하면 선정했죠. 자기만의 색이 뚜렷한 책이 반응도 좋다면서요.
4. 관람객에게 종이팔찌를 채우고, 장바구니를 나눠줬습니다. 공간에 들어서는 느낌, 본격적으로 구경하는 느낌을 주고 싶었거든요.
롱블랙 피플, 5일 동안 이어진 콘택트 위크가 모두 끝났습니다. 5개의 노트를 모두 읽고, 스티커를 받으셨나요? 저는 독서 모임에서 스티커를 자랑하면서 롱블랙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모두 SNS에서 스티커를 자랑해보시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