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종 : 매일의 일기 같은 투박한 빵, 단맛 없는 진심을 빚다


롱블랙 프렌즈 B 

그가 첫 마디를 떼자, 녹취를 위해 올려둔 핸드폰을 더 가까이 밀어야 했습니다. 허스키한 목소리가 낮고 느릿했어요. 배우 엄태구, 영화 「해리 포터」 속 스네이프 교수가 떠올랐습니다. 

그의 이름은 정웅. 달콤한 앙금과 생크림 베이커리가 주를 이뤘던 2007년. 한남동 일대에서 유일하게 딱딱하고 거친 무화과호밀빵과 크랜베리 바게트를 팔던 빵집, ‘오월의종’의 주인입니다. 열세 개*의 블루리본, 평일에도 길게 늘어선 줄이 그 명성을 입증하죠. 매일 약 1000개의 빵이 만들어지고, 거의 다 팔립니다. 오후 2시 전에 동나는 경우도 있죠.
*2012년부터 13년째 연속으로 국내 맛집 가이드인 블루리본을 받았다. 

지난해 오월의종은 자리를 옮겼어요. 그래도 주 무대는 여전히 한남동입니다. 한적한 주택가 한가운데 자리 잡은 검고 긴 직사각형 건물. 빵을 굽는 지하, 빵을 파는 1층을 지나면 2층에 있는 그의 사무실이 나와요. 독특하게도 한쪽에 천장까지 굴뚝이 연결된 거대한 오븐이 놓여있었죠. 장식용인 줄 알았는데, 실제 빵을 굽는 곳이라고 합니다. 

사무실에도 오븐을 둘 정도로 그의 빵 사랑이 대단하구나, 생각했어요. 하지만 인터뷰가 시작되고 그가 건넨 첫 마디에 잠시 멈칫했습니다. 그가 말했죠. “사실, 난 빵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요.”


정웅 오월의종 제빵사 

빵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 맞습니다. 빵 그 자체를 좋아한다기보다 홀로 빵을 만드는 시간을 좋아하거든요. 남에게 간섭받기 싫어 빵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어느덧 20년 넘게 이 일을 하고 있네요. 

호텔에서 근무한 것도 아니고 유학파도 아닙니다. 대학 때는 무기재료공학을 공부했어요. 시멘트 회사에서도 열심히 일했고요. 31년간 남들이 하는 대로 살았습니다. 남들과 비슷해지는 날 보며 안심했죠.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보이지 않더군요. 나라는 사람이 사라진 거예요. 그 길로 퇴사하고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제빵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제 하루는 줄곧 새벽 4시에 시작됩니다. 가게 불을 켜고 오븐과 믹서기, 밀가루 포대와 발효종 그릇들을 깨우죠. 물 한잔 들이켜고 밀가루 포대를 열어젖히면, 그날의 빵 여정이 시작됩니다. 

광부가 하얀 석탄을 캐내듯 밀가루를 퍼 올립니다. 하얀 가루로 가득 찬 주방에서 길게 바게트 모양을 만들어요. 토실토실한 반죽 위에 쿠프(칼집)를 넣고 힘차게 오븐 안으로 밀어 넣은 다음, 스팀 버튼을 누릅니다. 노란 불빛 아래, 부풀어 오르는 빵을 지켜보는 순간은 늘 설렙니다. 오븐을 열면 안에 한가득 차 있던 수분감과 함께 구수한 빵 안개가 퍼져요. 문득 떠오른 생각을 소리 내 말해 봅니다. “아, 행복하다.”


Chapter 1.
시멘트 회사원, 퇴사 명분으로 빵을 택하다

어릴 적 제 관심사에 빵은 없었습니다. 술과 담배, 그림을 좋아했어요. ‘남자가 무슨 미술이냐’는 아버지 때문에, 미대 입시는 생각조차 못 했지만요. 대신 그림과 비슷한 데 꽂혔어요. 화학이었죠. 분자식과 원소 기호가 참 예뻐 보이더군요. 

연합고사에서 화학 만점을 받았습니다. 무기재료공학과에 붙었습니다. 총칼의 ‘무기weapon’가 아니라, ‘무기inorganic화학’의 무기라는 건 나중에 알았지만요. 

얼떨결에 들어왔지만, 그래도 화학 공부는 재미있었습니다. 연구원을 하고 싶어 대학원을 준비했는데, 가세가 기울며 무산됐어요. 마침 시멘트 회사에 들어간 친구가 그러더군요. “우리 회사에 연구원 자리가 있다”고. 냉큼 들어갔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