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신정 : 저민 대나무를 엮듯, 시간을 쌓아 채상의 맥을 잇다


롱블랙 프렌즈 B 

얼마 전 프리츠한센 150주년 기념 전시*에서 근사한 작품을 발견했습니다. 새카만 색의 단단한 피크닉 가방. 가죽 가방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서 보니, 대나무를 엮어 만든 것이었습니다. 채상彩箱이라 부른다고 해요. ‘대나무가 어쩌면 이렇게 정교하게 짜였을까’, ‘이걸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 궁금했습니다.
*‘영원한 아름다움’이라는 주제로 2022년 11월 12일부터 2023년 1월 5일까지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다. 

서울역에서 새벽 기차를 타고 전남 담양으로 갔습니다. 죽녹원 앞 채상장전시관에 들어서자 30평 남짓한 한옥 공간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파란색 소반, 새빨간 소쿠리, 상아색 핸드백 같은 채상 작품 수십 개가, 한쪽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어요. 그 옆으로 말없이 대오리*를 엮고 있는 서신정 장인이 있었습니다. <타임리스 위크> 첫 번째 주인공입니다.
*대나무를 쪼개 가늘고 긴 종이처럼 만든 것


서신정 국가무형문화재 제53호 채상장 기능보유자

채상*은 채죽상자의 줄임말입니다. 대나무 겉껍질을 얇게 떠낸 것을 대오리라고 해요. 이 대오리를 엮어 만드는 상자가 채상입니다. 대나무를 이용한 공예 중에서도 난도가 높습니다. 그래서 ‘채상 만드는 사람 ’을 가리켜 채상장, 즉 장인이라고 부릅니다.
*채상은 1975년 1월 29일, 국가무형문화재 제53호로 지정됐다. 

국내 3대 채상장인 서신정 장인은 아버지*를 따라 열아홉에 채상을 시작했습니다. 사십 년 넘게 담양의 대나무로 채상을 만들어 왔어요.
*故 서한규 채상장. 1987년 국가무형문화제 채상장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2017년 87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