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롱블랙 프렌즈 B
쉽게 써 내려가기 어려운 순간이 있습니다. 끝을 이야기할 때입니다.
오늘 노트의 주인공은 김새섬 그믐 대표입니다. 롱블랙은 2023년 4월 그를 만났습니다. 그와 남편 장강명 작가를 함께 인터뷰한 자리였죠. 그로부터 2년 뒤인 2025년 4월, 김새섬 대표는 교모세포종을 진단받습니다. 교모세포종 환자의 생존 기간은 평균 1년. 진단을 받을 때 그는 마흔일곱이었습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 김새섬 대표가 많은 이들에게 전할 말이 있다고 하더군요. 김진경 작가가 그와 여덟 차례에 걸쳐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김진경 작가
김새섬 대표가 쓰러진 건 2025년 4월 26일 토요일입니다. 온라인 독서 모임 플랫폼 “그믐”을 창업한 지 약 2년 반 만이었죠. 오랜 회사 생활을 관둔 뒤 의미 있는 일에 헌신하고 싶어 시작한 회사였습니다. 그믐은 작지만 내실 있는 커뮤니티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고, 김 대표를 찾는 곳도 점점 많아지던 시기였습니다.
이날 낮, 김 대표는 그믐의 문학 답사 행사에 참여해 서울 서촌 인근을 두 시간쯤 걸었는데요, 행사가 이어진 책방에서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평생 두통을 겪은 적이 없었다는 김 대표는 이때의 통증을 “머릿속에서 맥박이 뛰는 것 같은 낯선 느낌”이었다고 묘사했습니다. 쉬어야겠다 싶어 집으로 돌아가 두통약을 한 알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죠.
자다가 이상한 느낌에 깨어났는데 잠옷과 이불이 토사물 범벅이었다고 해요. 남편인 장강명 작가가 묻는 말에 대답도 못 했고요. 장 작가가 놀라서 119에 전화를 걸었죠. 구급차 안에서 구급대원이 몇 가지 질문을 했다는데요, 여기에서 김 대표의 기억이 끊깁니다. 이후 엿새는 기억에 없습니다.
Chapter 1.
말기 암 진단, 그 후
김 대표는 응급실에 실려 간 지 이틀 만에 수술을 받았습니다. 좌측 전두엽에서 6센티미터 크기의 종양이 발견돼 절제했죠. 분석 결과 나온 병명은 교모세포종이었습니다. 서울대 암연구소에 따르면 ‘진단 후에 치료를 하지 않으면 3~6개월 이내에 사망하고, 각종 치료 방법을 모두 동원하더라도 평균 생존 기간이 12-14개월인, 악성도가 매우 높은’ 뇌종양이죠.
수술을 한 의사는 인지·언어·운동 장애가 올 수밖에 없다고 했고 실제로 수술 직후 잠시 실어증이 찾아왔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이해는 했지만 입에서 말이 나오지는 않는 날이 이어졌어요. 장강명 작가는 말을 잃은 아내와 함께 시집을 읽었다고 합니다. 오은 시인의 『왼손은 마음이 아파』였어요. 자기표현을 하지 못하던 사람이, 시는 소리 내어 읽을 수 있었습니다.
실어증에서 회복된 김새섬 대표는 이후 방사선 치료와 항암 치료를 병행하며 생존 확률에 맞서 오고 있는데요, 그가 싸우는 방식은 독특합니다. 암 환자에게 좋다는 음식을 찾아다니거나 가혹한 운명을 원망하는 대신,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어요.
수술한 지 한 달여가 지나고 팟캐스트 ‘암과 책의 오디세이’를 시작해 현재 200회를 넘겼고요, 강연 무대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도 섰습니다. 오랜 꿈이었던 스탠드업 코미디(서촌코미디클럽 공연)에도 도전해 이뤄냈어요.
아무런 예고 없이 인생을 덮친 철퇴 앞에서 단단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선 겁니다. 그에게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냐고 묻자, 김 대표는 ‘인생 책’의 한 구절을 인용합니다.
“어느 누구도 그를 시련으로부터 구해낼 수 없고 대신 고통을 짊어질 수도 없다. 그가 자신의 짐을 짊어지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그에게만 주어진 독자적인 기회다.”
_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그의 독자적인 스토리를 좀 더 들어볼까요.

Chapter 2.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김새섬 대표는 말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어요. 나도 사람이고요. 즉, 나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거죠. 그런데 사람들은 마치 그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살아요. 어떻게 보면 아주 이상해요.
우리는 돈을 벌려고 투자도 하고,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새로운 공부도 하죠. 일어날지 모르는 사고에 대비해 보험에 들기도 해요. 사실 투자로 돈 벌 확률, 공부가 미래에 쓰일 확률, 사고가 일어날 확률은 100%는 아니에요. 그런데도 그것들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고 공들여 준비하죠. 하지만 막상 확률 100%의 사건인 자기 죽음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아요.”
김 대표는 아프기 전부터 죽음에 관한 생각을 많이 해왔다고 합니다. 회사에 다니던 젊은 시절, 출근하며 부모님에게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하면서도 속으로는 ‘내게 무슨 일이 생겨서 퇴근하고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고 해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라틴어 경구가 떠오릅니다.
죽음이 운명임을 안다고 해서 받아들이기 편할 수는 없습니다. 천수를 누리고 간 노인의 죽음 앞에서도 슬퍼하는 게 인지상정이죠. 김 대표는 47세이고 쓰러지기 전까지 건강한 편이었으니 그에게 내려진 말기 암 선고는 더 충격적이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자기 연민은 이 싸움에서 그의 무기가 아닙니다.
“제가 좋아하는 구절 중에 이런 게 있어요.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구절인데 ‘천지불인 이만물위추구(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예요. 하늘과 땅은 너그럽지 않아서 모든 만물을 ‘추구’로 여긴다는 건데, 여기서 ‘추구’가 뭐냐면 지푸라기 인형이래요. 나는 나한테 너무 소중한 존재잖아요. 손가락이라도 하나 베여 봐요. 얼마나 아픈데요. 그런데 세상은 내 위주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병이) 충격적이긴 했지만, 세상에 어떤 일들이, 우리가 뉴스에서 보는 자동차 사고, 비행기 사고, 희귀병, 전쟁, 내란, 이런 게 왜 우리를 쏙 피해 가야 될까요? 내가 뭐길래?”
_김새섬의 팟캐스트 ‘암과 책의 오디세이’ 34회에서
자신이 귀하다고, 특별하다고, 대접받아 마땅하다고 외치는 사람이 넘치는 시대에, 김 대표는 비극에서 스스로만 예외일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게다가 자신이 불행한 것만도 아니라고 합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급하게 떠나지 않고, 주변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이 감사하다고요.
사실 김 대표는 병에 걸리기 훨씬 전부터 주변 정리를 해왔습니다. 정리의 한 형태가 바로 유서입니다.

Chapter 3.
유서 쓰기
김새섬 대표와 남편 장강명 작가는 2017년부터 매년 유서를 써 왔습니다. 두 사람만의 의식ritual이죠. 의식에는 형식과 절차가 중요할 텐데요, 이 부부가 정한 형식은 이렇습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저녁에 각자 유서를 씁니다. 이것을 서로의 이메일로 보낸 뒤, 함께 앉아 상대방에게 자신의 유서를 읽어주죠. 읽는 과정을 스마트폰으로 녹음하고 오디오 파일을 교환합니다. 그다음 같이 와인을 마시는데, 안주는 주로 과메기라네요.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이 의식을 시작한 첫해에 마침 집에 과메기가 있었기 때문이죠.
“저는 원래 의식, 의례를 좋아하지 않아요. 결혼식도 올리지 않았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제가 따르지 않는 것은 남이 정한 형식, 사회가 정한 의식이에요. 저 스스로가 원하는 것을 제 방식대로 기념하는 의식은 달라요.”
김 대표가 써 온 유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지난 한 해에 대한 소회, 재산 변동 내용에 대한 기록, 장례식 절차와 유산 처리 방식에 대한 당부. 지금까지는 첫째 부분에 비중을 두고 써왔지만, 올해는 좀 달라질 것이라고 김 대표는 말했습니다. 재산 정리나 장례식 절차가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곧 닥칠 수도 있는 일이 됐기 때문이죠. 이때까지 유서 쓰기가 시뮬레이션이었다면, 올해의 유서는 실전입니다. 그래도 “시뮬레이션을 줄곧 해온 덕분에 실전에 잘 대처할 수 있게 됐다”는 게 김 대표의 말입니다. 2025년의 유서를 쓰기에 앞서 그는 지난해의 유서를 찾아 읽어봤습니다. 그중 일부를 소개합니다.
“2024년을 마감하며.
(…) (그믐은) 날마다 작은 성장을 잘 일궈 나가고 있습니다. 작지만 단단한 공동체라는 이야기는 단순히 듣기 좋은 수식어만은 아니었습니다. 한 가지 파도를 넘으면 다른 파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즐겁게, 아니 고통스럽지 않게 파도 타는 법을 익히려 합니다.
(…) 장례는 필요 없습니다. 장례식 알림 하지 마시고 부조금도 받지 말아 주세요. 병원에서 사망하면 빈소를 차리지 마시고 화장한 뒤에 해양장으로 해주세요. 필요한 비용은 전부 장강명이 저의 유산에서 지불을 할 것입니다. 바닷가에서 유골을 뿌린 뒤 시원한 바람 맞으시고 가족끼리 뜨끈한 식사 한번 하시면 되겠습니다. 그 이후로는 어떤 추모도 하지 마세요. 원래 아무것도 없는 데서 와서 이것저것 재밌게 해보다 가니 여한이 없고 행복합니다.
(…) 내 남편 장강명은 나의 죽음으로 좌절하지 말고 꼭 본인이 원하는 걸작을 최대한 많이 써서 남기기 바랍니다. Keep calm and carry on writing(차분히 글쓰기를 이어 나가세요). 사랑합니다. 우리는 꼭 다시 만날 거예요. 감사합니다.”

Chapter 4.
포기한 것들
병은 많은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무엇보다 삶의 우선순위가 달라졌습니다. 마음먹었던 일들 중 대부분은 암 환자가 되면서 포기하게 됐죠. 김새섬 대표는 그중 세 가지를 예로 들었습니다. 첫 번째는 ‘강연자로의 삶’입니다.
“그믐 창업 초기부터 염두에 둔 건 ‘자생 가능한 조직’이었어요. 외부 후원에 기대지 않고 운영에 들어가는 돈을 자체적으로 벌어들일 수 있는 조직이요. 서버 비용 등 기본적인 운영비를 버는 목표는 해결됐지만, 조직 규모를 키우려면 다른 수익 모델이 필요했죠.
강사 일을 떠올렸어요. 독서의 중요성, 특히 ‘함께 읽기’의 의미를 콘텐츠로 학교, 도서관 등에서 강연하는 거죠. 그 수익을 그믐에 투자하고 싶었어요. 마침 한국에서 강연 시장이 계속 커지고 있었고 제게 들어오는 강연 요청 횟수도 늘어나고 있었어요. 그러다 쓰러지게 된 거죠. 몸 상태 때문에 이 계획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어요.”
두 번째로 포기한 건 스위스 여행입니다. 김 대표는 딸 셋 중 장녀인데요, 바로 아래 동생이 스위스인과 결혼해 현재 스위스에 살고 있습니다. 동생이 스위스에서 올린 결혼식에 부모님은 가지 못했죠.
“부모님은 당시 멀리 여행을 갈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아버지는 경비로 일하시고 어머니는 청소 일을 하셨는데, 휴가를 길게 낼 수가 없는 직종이죠. 그나마 회사에 다니던 저와 막냇동생이 다녀왔지만 부모님의 아쉬움이 컸을 거예요.”
계획대로라면 김 대표와 어머니는 2025년 늦가을 스위스에 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4월 말 김 대표가 쓰러지면서 없던 일이 됐어요. 뇌 수술 이후엔 장거리 비행이 위험하기 때문이죠.
“엄마에게 제가 말했어요, ‘스위스에 못 가게 돼서 너무 아쉽지?’하고요. 엄마가 그러시더라고요. 가고는 싶었지만 실은 스위스 풍경 때문이 아니고 둘째 딸이 어떻게 사는지 보고 싶으셨다고요. 손주들 다니는 유치원은 어떤지, 딸이 살림하는 주방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셨대요. 또 며칠이나마 가 있는 동안 아이들 키우며 힘들게 사는 딸에게 쉬는 시간을 좀 주고 싶으셨던 거예요. 엄마에게도 미안하고 동생에게도 미안했죠.”
세 번째로 포기한 것은 쓰이지 않은 책입니다. 어머니와 김 대표, 그리고 스위스에 사는 조카로 이어지는 여성 3대의 삶에 관한 이야기죠.
“바쁘게 살다 보니 아이 가질 새가 없었지만 제가 아이들을 정말 좋아해요. 엉뚱한 소리를 해대는 순수한 아이들과 얘기하는 게 너무나 재밌어요. 제가 조카가 총 여섯 명인데, 그 중 스위스에 사는 첫째 조카의 삶이 아주 흥미로워요. 할머니는 독일인, 할아버지는 이탈리아인, 아빠는 스위스인, 엄마는 한국인이니까요.
이 조카의 삶을 엄마나 저와 비교해 봤어요. 엄마는 아주 힘들게 살았고 외국 여행은 거의 못 하셨죠. 저는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어쨌든 호주 영주권도 따고 다국적 기업에서 오래 일하며 여러 경험을 쌓았어요. 그런데 조카는 그걸 넘어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훨씬 더 다양하고 풍족한 환경에서 살잖아요.
드라마틱하게 달라지는 여성 3대의 삶에 대해 써보고 싶었어요. 한국의 변화를 반영하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겠죠.”
김 대표가 정해둔 책의 제목은 『새섬과 세실리아』입니다. ‘세실리아’는 조카의 이름에서 따온 가명이죠.
당장은 덮어둬야 하는 이 계획들을 김 대표가 다시 꺼내 들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김 대표는 “긴 약속은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못하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맨땅에서 일궈낸 그믐을 지키는 일이죠. 김 대표는 이것을 “평범한 사람인 내가 남길 수 있는 레거시legacy, 즉 유산”이라고 말합니다.

Chapter 5.
평범한 사람의 유산
김새섬 대표의 기억은 4월 26일 응급실에 가는 구급차 안에서 끊깁니다. 뇌종양 제거 수술을 받고 또렷한 의식이 돌아온 건 엿새 뒤였죠. 김 대표가 스스로의 상태를 자각했을 때, 처음 들었던 생각은 뭐였을까요.
“정신을 차리고 저의 병명을 알게 됐어요. ‘이제 곧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사실을 인지했죠. 그때 처음 든 생각이, ‘내가 그믐 일을 해서 참 다행이다’였어요. 제가 그전처럼 그냥 직장에 열심히 출퇴근하며 다니다 어느 날 쓰러져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면 너무 억울했을 것 같아요. 그게 아니라 제가 하고 싶은 일, 제 방식대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하다 쓰러져서 정말 좋다,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갑자기 쓰러져 악성 뇌종양 진단을 받았는데 ‘다행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김 대표가 다행으로 여긴 건 뇌종양이 아니라 그 직전까지 스스로 선택했던 삶의 방식이었죠.
“저는 어떤 일을 할 때 ‘내가 이걸 왜 해야 하지’라고 스스로에게 늘 물어요. 처음 사회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부터 그랬어요. 그때의 답은 단순했죠. ‘돈을 벌기 위해서’. 그런데 어느 정도 돈을 벌고 나면 더 무서운 걸 물어야 해요.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죠.
저는 답을 찾았어요. 공동체에 대한 헌신이라고까지 하면 너무 거창할 수 있겠지만,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답이었어요.”
그것이 독서 모임 플랫폼, 또는 지식 공동체 그믐이었습니다. 세상에 선보인 지 이제 2년 반 된 온라인 커뮤니티, 회원 수 1만8000명인 이곳에서 지금까지 2500건 넘는 독서 모임이 열렸습니다.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대단한 성취일 수도, 작은 성과일 수도 있겠죠.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라 태도라고, 그것이 유산의 핵심이라고 김 대표는 말합니다.
“유산이라는 게 아주 큰 것만은 아니에요. 예를 들어 저의 친절한 태도도 유산이 될 수 있죠. ‘저 사람은 늘 웃는 얼굴이야. 만날 때마다 꼭 기분 좋은 칭찬을 한마디씩 해 주네’ 같은 기억을 남들에게 남길 수 있어요. 뜨개질을 좋아하는 사람이 주변에 직접 떠서 만든 선물을 나누는 것도 유산을 남기는 거죠. 누군가를 조금씩 후원하는 것, 봉사활동 하는 것, 그것들이 다 유산이에요.
평범한 사람들이 남기는 작은 태도, 즉 유산이 모여 한 사회의 문화를 이루지 않을까요. 그게 큰 영향력은 없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스스로에게 주는 의미가 있어요.
스스로 쌓아 올린 유산이 없으면, 인생의 어느 순간 허무함과 무의미함이 물밀듯 찾아들어요. 특히 40~50대 중년이 그런 시기예요. 가족과 직장이 있어도 스스로의 삶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삶의 지지대가 되어주는 유산이 없으면 힘들어져요.”

Chapter 6.
웰다잉 : 좋은 죽음을 함께 이야기하자
‘무엇을 남길 것인가’에 대한 김새섬 대표의 선택은 새해에도 이어집니다. 2026년 1월부터 그믐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 ‘웰다잉 오디세이 2026’이 그것입니다.
웰다잉Well-Dying은 ‘좋은 죽음’ 또는 ‘품위 있는 죽음’으로 번역되는데요, 이 주제에 관련된 책을 한 달에 한 권씩 함께 읽고 토론하는 거죠. 현재 1, 2, 3월에 읽을 책이 정해진 상태입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셸리 케이건), 『죽음을 인터뷰하다』(박산호), 『이반 일리치의 죽음』(레프 톨스토이)인데요. 이처럼 이론서, 에세이 또는 실용서, 그리고 문학 작품을 고루 읽을 계획입니다.
“제가 처한 개인적 상황도 있지만, 웰다잉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이걸 기획하게 됐어요.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좋은 죽음의 조건에는 두 가지가 있어요. 첫째, 죽음의 과정에 고통이 적었으면 좋겠어요. 이것은 진통제라든가 의료진의 개입 등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겠죠.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적극적으로 받고 싶어요. 둘째, 관계를 잘 마무리하는 거예요. 사랑하는 사람들과 죽기 전에 좋은 시간을 충분히 함께 보냈으면 해요. 사랑한다,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해야 여한이 없을 것 같아요.”

김 대표는 좋은 죽음에 대한 고민을 실천에 옮겨왔습니다. 매년 쓰는 유서도 그렇고, 2019년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남겨두기도 했죠. 당시에는 죽음이 실질적으로 닥친 일이 아니었지만 상황이 바뀐 지금은 이것들이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죽음에 대해 미리 했던 생각, 연명의료 거부 결정, 유서 작성이 제가 암 선고 이후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 도움을 줬어요. 그걸 경험을 통해 깨닫고, 죽음에 관한 생각을 혼자 속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나눠보면 어떨까 싶었어요. 죽는 상황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해 보는 게 유용한데 그게 쉽지는 않아요. 그걸 도와주는 게 독서예요. 책에 나오는 인물의 경험을 통해 죽음을 간접적으로나마 상상해 볼 수 있거든요. 죽는 당사자든,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든, 주변 사람이든 말이죠.”
김 대표의 말은 ‘메멘토 모리’의 확장된 버전으로 들렸습니다. 개인이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는 것에서 나아가, 공동체가 함께 좋은 죽음에 대해 논의하고 대비하는 것이죠. 그걸 돕는 도구가 책이고요.
“갑자기 죽음이 찾아왔지만 억울할 건 없고, 헌신할 대상을 찾고 뜻한 대로 살아 다행”이라는 그의 말을 들으며 좋은 죽음이란 곧 좋은 삶의 이면임을 새삼 깨닫습니다.
2025년이 저물어갑니다. 올해의 마지막 날, 김새섬 대표는 6차 항암 치료를 시작합니다.


롱블랙 프렌즈 B
누군가에게 김새섬 대표는 김혜정이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할 거예요. ‘새섬’은 그가 2021년 제주도에서 발견한 섬의 이름입니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자 자신을 ‘김새섬’이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숙소 바로 앞에는 4개의 섬이 손에 닿을 듯 있었다. 이 중 3개의 섬은 육지와 이어져 있지 않아 갈 수 없고, 딱 하나의 섬, 새섬만은 다리로 제주도와 연결되어 있다. 그리하여 나의 새로운 이름은 김새섬이다.”
_김새섬, 그믐 블로그 <이름을 바꾸다>에서
롱블랙 피플, 한 사람이 남긴 고요한 궤적을 떠올리며 한 해를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김새섬 대표와 김진경 작가의 대화는 2026년 책으로 출간됩니다.

롱블랙 프렌즈 B
쉽게 써 내려가기 어려운 순간이 있습니다. 끝을 이야기할 때입니다.
오늘 노트의 주인공은 김새섬 그믐 대표입니다. 롱블랙은 2023년 4월 그를 만났습니다. 그와 남편 장강명 작가를 함께 인터뷰한 자리였죠. 그로부터 2년 뒤인 2025년 4월, 김새섬 대표는 교모세포종을 진단받습니다. 교모세포종 환자의 생존 기간은 평균 1년. 진단을 받을 때 그는 마흔일곱이었습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 김새섬 대표가 많은 이들에게 전할 말이 있다고 하더군요. 김진경 작가가 그와 여덟 차례에 걸쳐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김진경 작가
김새섬 대표가 쓰러진 건 2025년 4월 26일 토요일입니다. 온라인 독서 모임 플랫폼 “그믐”을 창업한 지 약 2년 반 만이었죠. 오랜 회사 생활을 관둔 뒤 의미 있는 일에 헌신하고 싶어 시작한 회사였습니다. 그믐은 작지만 내실 있는 커뮤니티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고, 김 대표를 찾는 곳도 점점 많아지던 시기였습니다.
이날 낮, 김 대표는 그믐의 문학 답사 행사에 참여해 서울 서촌 인근을 두 시간쯤 걸었는데요, 행사가 이어진 책방에서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평생 두통을 겪은 적이 없었다는 김 대표는 이때의 통증을 “머릿속에서 맥박이 뛰는 것 같은 낯선 느낌”이었다고 묘사했습니다. 쉬어야겠다 싶어 집으로 돌아가 두통약을 한 알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죠.
자다가 이상한 느낌에 깨어났는데 잠옷과 이불이 토사물 범벅이었다고 해요. 남편인 장강명 작가가 묻는 말에 대답도 못 했고요. 장 작가가 놀라서 119에 전화를 걸었죠. 구급차 안에서 구급대원이 몇 가지 질문을 했다는데요, 여기에서 김 대표의 기억이 끊깁니다. 이후 엿새는 기억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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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독서모임 플랫폼 ‘그믐’의 김새섬 대표. 서촌 문학 답사에서 시작된 낯선 두통은 교모세포종 진단으로 이어졌다. 그는 엿새 만에 뇌종양 수술을 받고 깨어난 순간에도 “하고 싶은 일을 하다 쓰러져 다행”이라 긍정했다. ©김새섬
6센티미터의 종양을 절제한 후 실어증을 겪던 김새섬 대표는 유일하게 ‘시’를 소리 내어 읽을 수 있었다. 사진은 남편 장강명 작가와 함께 낭독한 오은 시인의 『왼손은 마음이 아파』의 표지. ©현대문학
김새섬 대표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암과 책의 오디세이’. 자신의 병과 일, 삶의 생각을 기록하기 위해 팟캐스트 ‘암과 책의 오디세이’를 시작했다. ‘병실에서 의식을 되찾았을 때’, ‘나에게 새 이름을 지어주었다’와 같은 에피소드를 풀어낸다. ©김새섬
김새섬 대표가 공유한 어느 여름날의 팟캐스트 실내 녹음 현장. 그는 매일 아침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하며 10분가량의 내용을 편집 없이 올린다고 밝혔다. 녹음본에는 새 소리, 발걸음 소리, 운동하는 이들의 잡담도 함께 섞여 들어간다. ©그믐 인스타그램
세바시에서 강연하는 김새섬 대표. 교모세포종 진단 이후에도 그는 멈추지 않고 자신의 경험과 사유를 나누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공동체와 함께 이어갔다. ©세바시
서촌코미디클럽의 무대에 선 김새섬 대표. ‘문학으로 모이는 방법들 2025’ 행사에 참여해, 오래도록 품어온 스탠드업 코미디의 꿈을 실현해냈다. ©김새섬
김새섬 대표가 스탠드업 코미디를 위해 대본 삼아 들고 올라간 엽서 두 장. 엽서의 한편에 ‘죽음을 선고받고 절망적인 순간에도 문학은 위로가 된다’고 적혀있다. ©김새섬
김새섬 대표가 인생 책이라 밝힌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그는 “자신의 짐을 짊어지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자신에게만 주어진 독자적인 기회”라는 구절을 가슴에 품었다. ©청아출판사
김새섬 대표와 남편 장강명 작가의 사진. 이들은 2017년부터 매년 마지막 날, 각자 쓴 유서를 서로에게 낭독해 주는 의식을 치러왔다. ©그믐 인스타그램
온라인 독서모임 플랫폼 ‘그믐’. 김새섬 대표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식’이라 믿고 일궈낸 공간으로, 지난 2년 반 동안 2500건 넘는 독서 모임이 이곳에서 열렸다. ‘그믐’이 추구하는 두 가지 가치는 ‘공동체’와 ‘지식’이다. ©그믐 인스타그램
그믐은 음력으로 달의 마지막인 29일 또는 30일을 뜻한다. 김새섬 대표는 한 권을 읽고 토론하기에 가장 알맞은 시간이라 판단해, 이 ‘그믐’의 의미를 따라 모임의 최대 기간을 29일로 삼았다. ©그믐 인스타그램
2023년 망원동에서 열린 ‘그믐밤’. 『악인의 서사』의 저자 중 다섯 명이 함께 참여해, 작품의 배경과 집필 과정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그믐 인스타그램
김새섬 대표의 ‘새섬’이라는 이름은 2021년 제주에서 발견한 작은 섬에서 따왔다. 숙소 앞에 보였던 네 개의 섬 중 세 곳은 발을 디딜 수 없었지만, 단 하나의 섬 ‘새섬’만은 다리로 육지와 이어져 있었다. ©김새섬 그믐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