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 :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 마음 속에 오래 살아남는다


롱블랙 프렌즈 K 

‘시는 어렵다’고들 생각하시죠. 저도 그랬어요. 박준의 시를 읽기 전까지는요. ‘사람이 문장 하나로 위로받을 수 있구나’ 처음 알았습니다. 연인과 다툰 뒤엔 그의 시를 적어 마음을 전하기도 했어요.

“우리는 매번 끝을 보고서야 서로의 편을 들어주었고 끝물 과일들은 가난을 위로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_환절기,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중에서

정시우 작가와 함께 박준 시인을 만났습니다. 카키색 야상 재킷을 입고 둥근 안경을 쓴 그는 평범한 직업인처럼 보였습니다.



정시우 작가

‘시를 읽지 않는 시대’라는 말은 박준 시인 앞에서 힘을 쓰지 못합니다. 2012년 발표한 첫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대중과 평단의 관심을 무섭게 빨아들이더니 19만 부를 찍었습니다. 시집 1만 부 팔기가 어려운 국내 문학 시장을 생각하면 놀라운 수치입니다.

두 번째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2018)와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2017), 『계절산문』(2021) 역시 대중은 환대했죠. 그의 품에서 나온 문장을 사람들은 받아 적고, 인용하고, 누군가에게 소개했습니다.

저도 그런 독자 중 한 명입니다. 영감이 필요할 때, 울고 싶을 때, 박준 시인의 글을 펼쳐보곤 해요. 타인의 섬세하지 못한 말에 상처받은 날이나, 나의 섬세하지 못한 말로 상대가 아파하는 걸 목격한 날엔 이 문장 앞에서 서성였습니다.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박준 시인을 만나러 가는 길, 오랜만에 기분 좋은 떨림을 느낀 이유입니다.


Chapter 1.
“시 쓰는 박준입니다”

박준 시인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어요. “시 쓰는 박준입니다.”

“하루 중 시인으로 사는 시간은 길지 않아요. 시적인 것을 끄적이거나, 시적인 생각을 하는 건 10~30분? 그런데 이 시간은 귀해요. 내가 좋아하는 일에 기울이는 시간 없이는 다른 시간도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시인,이라고 하면 골방에서 묵묵히 시만 쓰는 사람이 그려지곤 합니다. 박준 시인은 출판사 편집자로 책을 만듭니다. 라디오 DJ로 활동하며 ‘언어의 다정함’을 전파하기도 했죠. DJ로 CBS FM <시작하는 밤 박준입니다>를 책임지는 동안엔 언어를 바라보는 관점에 변화를 겪었습니다.

“이전엔 ‘행복’, ‘힐링’ 같은 단어를 쓰지 않았어요. ‘행복하세요’, ‘힐링하세요’라는 말도 한 적이 없어요. 다소 무책임한, 큰 말이 아닌가 싶어서요. 그런데 라디오를 하다 보면 많은 사연이 오는데, 그중에 행복과 힐링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많겠어요. 

처음에는 동시통역처럼 바꿔서 소개했어요. ‘힐링이 된다’라면 ‘치유되는 마음이 든다’ 식으로. 그러다 어느 순간 ‘행복할 때 행복이라고 얘기하는 게 무슨 잘못인가’ ‘내가 뭐 잘났다고 단어에 우열을 가리나’ ‘내가 좀 오만했구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단어 하나 허투루 쓰지 않는 그 마음은 어디에서 비롯한 걸까요.

“치기도 있고요. 하하. 시인이라고 해서 잘 안 쓰는 말을 구태여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쓰지 않는 게 아까운 말들이 있어요. 그런 말들은 찾아내서 먼지 털어 쓰는 것도 작가의 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가령 ‘조용하다’를 ‘고요하다’ ‘고적하다’ ‘적요롭다’로 바꿔 쓰면 조금씩 뉘앙스가 달라져요. 어떤 생각을 하나의 단어로만 표현할 수 있는 것과 열 가지로 표현할 수 있는 건 다르죠.”

위드 롱블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