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블랙 프렌즈 B
지난 주말, 서울 부암동에 다녀왔습니다. 북악산과 인왕산 사이, 고즈넉한 동네죠. 쉬어갈 곳이 가득합니다. 개중 유독 마음 가는 공간이 있어요. 올해로 개관 31주년을 맞이한 환기미술관입니다.
9월 시작된 전시 「김환기, 점점화點點畵 1970-74」는 조금 특별합니다. 김환기 탄생 110주년을 맞아 기획한 전시거든요. 외국어책처럼 어렵던 점화들이 그의 일기와 맞물려 거대한 서사를 이뤄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Vīta brevis, ars longa’. 히포크라테스의 말이 와닿는 오늘입니다. 오늘날 김환기의 그림들은 다양한 형태로 여운을 남기고 있으니까요. 그가 우리에게 던져온 화두는 무엇일까요. 김민주 울프하우스 대표와 환기미술관을 찾았습니다.
김민주 울프하우스 대표
환기미술관에선 마음이 편해집니다. 공간이 넓고, 여백이 많거든요. 대형 작품들이 굵직하게 하나씩 배치되어 있어요. 대부분의 전시장은 많은 걸 한 번에 보여주려 합니다. 하나의 동선으로 관객들을 이끌죠.
환기미술관은 조금 달라요. 이렇게 보세요, 하는 강렬한 메시지가 없습니다. 관객이 자유롭게 생각할 여지를 안겨주죠. 관람객의 경험이 전시를 완성시킨다는 말처럼요.
화가 김환기와 환기미술관을 설립한 그의 아내 김향안. 환기미술관은 부부가 평생 쫓았던 것들을 담아냅니다. 같은 그림도 작년에 볼 때와 올해 보는 건 또 다르잖아요. 저에게 이번 전시는 색다른 감정으로 와닿습니다.
Chapter 1.
열망이 된 화가
김환기. 그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한국의 피카소. 현대 미술의 거장. 달을 사랑한 화가. 한국화가 중 가장 비싸게 팔린 그림을 그린 사람… 그 어떤 수식어에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의 작품은 곧잘 숫자로 표현됩니다. 국내 미술품 중 최고가 작품은 '우주' 「Universe 5-IV-71 #200(1971)」. 2019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 낙찰가가 132억원이었어요. 종전 최고가는 85억원에 팔린 '붉은 점화' 「3-II-72 #220(1972)」. 역시 김환기의 작품이죠. 국내 미술품 가격 상위 10점 중 9점을 김환기가 그렸습니다.